“ 약초꾼 ”
낭성 인경 지나 말구 가는 길
현호색, 산괴불주머니꽃 피던 길 지나다가
겨우내 기침 달고 사는 식구들 생각에 곰보배추를 캐볼까 멈췄네.
산그늘마다 눈은 녹지 않아 되레 따뜻해 보이는 고개마을
사람은 없고 투실하게 생긴 개 한 마리 길마중 나왔네.
언제 봤다고 흙발로 달려들며 꼬리를 흔들었네.
한눈에 봐도 나물도둑 약초도둑이라는 걸 알텐데도
기다렸다는 듯 길을 따라나섰네.
여럿이면 멀찍이 서서 짖기만 했을 개와 길을 나서니
개에게나 나에게나 혼자인게 눈물겹게 반가웠네.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생에 헤어진 누이 같기만 하여, 이런 느낌을 뭐라 해야 하나
노란 개꼬랑지처럼 생긴 무엇인가 무르춤하게 안겨오는 그것을.
일면식도 없으면서 지난 봄에 끼고 놀았던 가락지를 찾듯
꿍꿍이가 있어보여도 어물쩡 모르는 척 패를 보여주며
점에 십원하는 화투판처럼 반가운 그것을.
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네.
개여울 가까운 곳이라거나 논둑이나 밭둑으로 갈 거라고.
어차피 눈앞에 두고도 못 찾을 어설픈 약초꾼이기에
눈이불이나 개킨 길로 들어서려는데 개가 앞장서 길을 틀었네.
개에게 홀린 듯 했네.
주인도 아니고 오다가다 떨어뜨린 흙덩이 같은 나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처럼 멀찍이 내다보고 냄새 맡아가며.
딱 두어 걸음 앞에서 살갑게.
길이 끊긴 곳에서는 뒤돌아보며 묻는 듯 했네.
가자면 가겠지만 굳이 가야겠느냐고,
그것도 잠시 길을 돌아 개여울 끼고 두둑하니 냉이며 꽃다지 품은 곳으로 이끄는
저 개는 진정 나의 전생이었을까.
못되게 굴다가 다시 살러온 혼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네.
그것도 아니면 나처럼 혼자 구르다 나온 쓸쓸한 털뭉치이거나.
그 개는 타고난 약초꾼이라도 되는 듯 큼큼거렸네.
산도라지, 더덕, 천마, 복령, 삼지구엽초 줄줄이 꿰고 있다는 듯
산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했네.
나는 기껏해야 곰보배추나 캘까 해서 온 것이라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면 휘파람만 불었네.
그러면 어느새 달려와 길앞잡이 노릇을 하며 꼬리를 흔들었네.
제가 살던 마을에서 자꾸 멀어지는데도
저 멀리까지 영역표시를 해놓은 듯 길을 나섰네.
그러다 돌배나무 고욤나무 있는 산밭둑쯤에서 어슬렁거렸는데
그곳에 거짓말처럼 곰보배추가 있었네.
찾는 게 이것이었냐는 듯, 사람들이란!
웅얼거리는 듯 바라보다가 의뭉스럽고도 당당하게 왼고개를 틀었네.
검은비닐봉다리에 곰보배추를 담는 나를 위해
덜 무안하게 망을 보아주는 듯하여
따뜻한 개 털 위로 눈이라도 내리면 좋겠다 싶었네.
그제서야 개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네.
날 추운데 어서 들어가라고, 다음에 보자고, 잘 지내라고.
개는 다시 흙발로 뛰어오르며 해살거렸네.
어느새 듬직한 약초꾼에서 눈빛 고운 누이로 돌아와 있었네.
헤어지기 싫은 오누이라도 된 것처럼 작별인사는 서툴렀네.
몇 번이나 등을 떠다밀었으나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그렁그렁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런 날도 있었네. 어느 산골마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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