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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인 동시집 <웨하스를 먹는 시간>

새책 소식

by 참도깨비 2021. 10. 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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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인 시인의 <웨하스를 먹는 시간>는 시와 동시의 궤적이 동심에 따라 얼마나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인의 말에 나오듯 외딴집이었던 외갓집에서 깨어난 아침, 툇마루에서 할머니가 차려놓은 밥상을 지나 훨쩍 눈에 들어온 풍경에서 막 여기를 건너다 보고 있는 아이 같다.

 

"안 보여, 어디?"

엄마는 안 보인다고 한다.

아빠도 안 보인다고 한다.

누나도 안 보인다고 한다.

벚나무 무성한 잎사귀 사이

까만 마침표 같은

버찌 하나.

나는

아주 잘 보인다.

나랑

나하고만 눈 맞추는

버찌 하나.

 

조정인, <버찌> 전문

 

'웨하스 포장을 뜯을 때는 마음부터 바스락거린다./포장지 붉은 줄을 떼어 내는 손끝에서 자그만 행복이 실눈을 뜬다/바삭바삭, 입 안에서 행복이 소리를 낸다.'(<웨하스를 먹는 시간> 부분) 에서도 영락없이 자신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아이의 그 자체다. 손풍금 연주하듯 곡조대로 구부려 내는 마음의 말이다. 그러면서 자기 마음 부는 대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아이를 길러낼 수 있는 시이기도 하다.

 

어쩌면 아이 마음을 어른 눈에 보이지 않는 '버찌'와도 같은지도 모른다. 지금의 아이가 차마 부르지 못하는 마음의 노래 같은 것이어서 어른 시인들은 그것이 안타까워 자기만의 외딴집을 찾아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요즘 아이들의 시를 보면, 엄마가 써준 시들을 보면 아이들만의 자유로움이 없고, 어른들의 찌꺼기가 동심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조정인 시인의 <웨하스를 먹는 시간>은 아이들 옆구리를 간질러 마음을 불러내고 있는 것 같아 좋다.

 

할머니는 쌀을 일어 물에 담그고

안방으로 들어가 주무신다.

물에 잠긴 한 바닥 쌀은 저희끼리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표정이다.

뭔가를 감춘 듯, 감추지 않았다는 듯

감쪽같이 잠잠한 표정 아래

흰 물새알이라도 감춘 것 같다.

쪼로롱, 새소리라도 들릴 것 같다.

나는 쌀들의 비밀을 들추지 않기로 했다.

 

조정인, <쌀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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