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사람에서 나온 시집
by 참도깨비 2022. 1. 6. 14:29
걷는사람 출판사는 김성규 시인이 발행인으로 있는 전문 출판사다. 걷는사람 시인선 55번째 시집으로 나온 정덕재 시인의 『치약을 마중 나온 칫솔』은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덕재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앞선 시집 <대통령은 굽은 길에 서라>에 이어지는 뼈 있는 웃음이 묻어나는 시들이 그의 시 세계를 돋보이게 한다.
표제작으로 고른 <치약이 나오면>에서 "치약을 짜는 순간 외로움이 밀려왔다”, “외나무다리 칫솔 위로 미끄러지듯 누군가 걸어 나온다”며 “치약이 세상에 나오면 적어도 한 사람은/마중을 간다”에 나오듯 짠한 이웃과 그들의 삶에서 길어올린 비유들이 새삼 우리를 견디게 하는 힘이었음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2000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고 등단한 김은경 시인의 새 이름 김안녕. 『불량 젤리』(삶창, 2013), 『우리는 매일 헤어지는 중입니다』(실천문학사, 2018)에 이은 세 번째 시집은 “어떤 암흑 속에서도 결코 신으로부터 구원받지 않겠어”라는 시인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말이기도 하다. 이름을 바꾸는 것은 그동안 그 이름으로 산 세월을 접고 "더 기쁘게 씩씩하게 손 흔들며 인사하는 법을 배운다"(<덩그러니> 부분)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시집에는 그동안 살아온 삶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안부를 담고 있는 시들이 많다. “마흔 번 살아 본 여름”(「석류가 익는 계절」)에 “나는 내가 저, 그칠 줄 모르는 장맛비 같아”(「누가 같이 살고 있다」) 중얼거리는 밤이자 “시를 써야 할 텐데/못 쓴 날들이 얼마나 되었지,” 세어 보는 순간이기도 하고 “정말 멀리 가는 사람이 된 것 같”(「망원」)은 삶에게 보내는 안부. 끝내 표제작처럼 <사랑의 근력>으로 눈을 뭉치는 사랑이 되고 “평생 울음이 숙명인 짐승이 있듯/그런 사람도 세상 어딘가에 있겠지”(「울음의 입하」)하고 스스로 씩씩해지기 위한 발돋음인 셈이다.
김명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는 가장 먼저 나온 <시인>에서 밝히고 있는 어쩔 수 없는 ‘밥과 시’ 사이에서 스스로 돌아갈 길을 묻고 쓰는 사랑의 기록이다. 쓸쓸하고 아픈 길의 고백이어서 어둑한 울림과 함께 따뜻한 뒷맛을 가져다 주는 시편들이 실려 있다. "그냥 실없는 짓 하는 사람이래요/그래!/니가 그래 실없나/하기사 동네 고예이 거다 멕이고/집 나온 개도 거다 멕이고/있는 땅도 무단이 놀리고/그카마 밭에다 자꾸 꽃만 심는/느 어마이도 시인이라..."(<시인>)는 대화에서 보듯이 어머니와 함께 사는 시인의 중얼거림이기도 하다. 시에 거창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목숨들 챙기고 아픈 이웃들에게 손 내미는 일임을 이웃들의 삶과 목소리에서 깨닫는 것이다. 그동안 중장비를 운전하는 신산한 삶을 살다가 이제는 동네 개나 고양이를 거워 먹이는 직업을 가졌다고 말한 시인의 뜻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래서 시인은 “나는 큰사람이 되기 위해 객지와 바다 위를 무시로 떠돌았지만/(…)/이제 오십이 넘어 무슨 큰사람이 될까 싶었는데/(…)/장탄식을 내뱉었다 일백팔십이 센티의 키에 몸무게/백 킬로그램이 넘는 큰 사람”(「큰사람」)에서 보듯 깊이 새겨들어야 할 울림을 가진 말이 되었다.
1994년 월간 《포스트모던》 한국문학예술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청주에서 중견 시인으로 활동 중인 신영순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그의 발길과 눈길이 닿는 공간들은 “비린내 수십 톤을/내려놓고 가는 트럭”을 보면서 “뻐꾸기 울음이 포옥 절여지”(「추자도」)는 곳이자 “매미 울음이 한가득” 고여 있는 “폐허가 녹슨 대문을 닫아걸고/칸나 잎 이슬로 기척이 열리는 곳”(「소금독 푸른 들개들」)이어서 공동체의 근간을 만들어낸 사유의 공간이다. 좀 더 확장해서 말하자면 함기석 시인이 말한 대로 “신의 가슴과 맨발이 만져지는 슬픔의 성지"이면서 "죽음과 삶, 어둠과 빛이 한 몸으로 기록된 봄밤의 매화 수첩"과도 같은 인간 본향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남승원의 해설에서 “그가 작품을 통해서 주목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소재나 기교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내재되어 있는 현실적 고난의 경험들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비롯한다”고 했듯이 그가 시를 쓰는 공동체의 언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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