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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시인의 <서사시 골령골>

새책 소식

by 참도깨비 2022. 6. 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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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산내골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 있다. 한국전쟁 기간 중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 지역인 산내 골령골의 이야기를 서사시로 그려낸 시집이다. 레드 컴플렉스에 꺼내지 못했던 전쟁의 상처는 이제 좌익을 넘어 우익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자리하고 있기에 시인은 아직 끝나지 않은 골령골의 아픔을 서사시로 재현해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대전 형무소에 있던 미결수를 포함 약 8천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6월 28일부터 7월 초까지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자행되었다

대전에서 시를 쓰며 미룸갤러리와 출판사를 함께하고 있는 시인의 책은 2022년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되어 뜻깊다. . 시인은 학살 희생자들의 아픔, 상처, 슬픔, 억울함, 그리움, 기다림, 한恨을 개인이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생각해 보고 시라는 이름으로 옷을 입혔다. 더불어 유가족들의 아픔과 희생자들의 삶을 돌아보고 그들의 마음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저마다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대부분의 서사시가 역사적 사건을 줄거리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서사시 골령골’은 49편의 연작시를 순서대로 쓰지 않고 한 편 한 편 독립적으로 시를 창작했고 연결하면 하나의 이야기 시로 나온다.
희생된 분들의 죽음을 통해 그 분들이 국가 폭력에 의해 주검이 되어 어떤 마음이 남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을 시에 그렸다.
사람이 죽으면 이승에서 49일을 보내고 떠난다는 종교적인 의식이 있다. 그 의식을 치루지 못한 희생자들의 마음을 시인이 빙의憑依 해 풀었다. 이번 시는 그래서 49편으로 만들어졌다.
소설적 기법을 동원해 1인칭 주인공시점으로 시詩를 끌고 간다. 시인이 희생자의 한 사람이 되어 가족이란 무엇이고 아버지, 어머니, 아내, 아이들이 어떤 그리움으로 남아있는지 시는 독백처럼 이야기한다.
작품 해설을 대신해 서사시 골령골을 쓰게 된 이유와 창작과정에서 느낀 감정을 산문 한 편으로 대신했다.


올해도 벌초를 하지 못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벌초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행방불명이다
형은 어디에 묻혀있을까
억울하다는 말 피맺힌다는 말
가해자는 그 뜻 모른다
수천 명이 학살당했는데
왜, 죽어야 했는지
국가는 유가족 마음 외면하고 있다
몇몇 정치꾼들
빨갱이라서 죽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꿈에서도 만날 수 없다
형은 동생이 보고 싶어도
이 땅에 오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억울해서
혼이 되어서도 집에 올 수 없었다
아니었다, 내 가족이 당신처럼 끌려가
무참한 주검이 될까 봐
울타리 밖에서도 서성일 수 없었다
추석이면 이 산 저 산에서
예초기 소리 요란하다
산내 골령골엔 65년째
정적만 숨이 겨우 붙어 있다

-「벌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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