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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용기의 꽃이 피어난다-진천고등학교 학생 시를 중심으로

시와 함께한 나날

by 참도깨비 2023. 1. 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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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용기의 꽃이 피어난다

-진천고등학교 학생 시를 중심으로

 

직관直觀이란 경험, 판단, 추리를 거치지 않고 대상을 바로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려면 대상을 그대로 바라보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아주 어렸을 때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직관으로 말하던 때를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글을 깨우치고 자라나면서 직관보다는 경험을 많이 하고 판단과 추리의 미덕을 강조하는 세상에 살다 보니 직관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 경험과 판단, 추리를 통한 객관화도 중요하지만 대상을 바라보며 상상이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일도 필요하다, 진천고 학생들이 쓴 시를 읽으며 뚜렷한 직관보다는 마음안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번아웃에 이른 모습들을 보아 안타깝다.

 

마음은 현재에 있으면

행복하다.

마음은 과거에 있으면

후회하고

마음은 미래에 있으면

불안해 한다.

 

이제동(1학년), <마음>

 

제동이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면 과거는 후회되지만 현재는 행복하다고 했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다는 것이다.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기라는 말일까?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후회되는 것 투성이니 오늘만 사는 것이라면 미래가 왜 불안할까? 오지 않은 날들은 누구에게나 불안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행복은 마냥 행복한 것이기만 한 것일까? 꼭 그렇게 보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뒤이어 오는 시에 비친 모습이 하나같이 불안해 보인다.

 

친구는 심심하면 찾고

가족은 돌아가면 찾고

연인은 헤어지면 찾고

정작 우리는 그들의 소중함을

곁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고

떠나야 느낀다.

소소한 소중함이 우리를

무덤덤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제동, <소중함>

 

두 편을 쓴 제동이의 현재 마음이 왜 그런지 드러나 있는 듯하다. 친구, 가족, 연인은 멀어지고 떠나야만 존재가 드러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곁에 있을 때는 가벼이 여기기 때문일까? 친구이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대하고, 가족이니까 함부로 대하고, 연인이니까 소유하려 들기 때문에 떠나고서야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앞서 <마음>에서 보였듯이 현재는 지금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제동이가 말한 소소한 소중함이라는 말은 자기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인생은 공기

언제 행복이 올지

언제 불행이 올지

보이지 않는다.

 

인생은 날씨

언제 비가 올지

언제 눈이 올지

보이지 않는다.

 

인생은 예측 불가

 

노성준(1학년), <인생>

 

성준이는 인생이라고 더 크게 확대하여 말했지만 역시 예측불가의 미래이기 때문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공기와 날씨, 자연이 주는 혼돈이기도 하여 행복과 불행, 눈과 비가 언제 닥칠지 모를 불안으로 썼다. 예측 불가와 불안은 아무 방비 없이 맞을 수밖에 없어 어렵다. 경험에 따른 판단과 사유가 있다면 문제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바로 들여다보려는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을 즐기고 열심히 살면 충분히 주어지는 미래와 인생만은 아닌 듯하다.

 

하얗다

투명하고

까맣기도 하다.

 

차갑다

바람도 불고

뜨겁기도 하다.

12월 어느 날, 북반구 대한민국은 겨울이다.

 

이지현(1학년), <요즘>

 

지현이가 말한 요즘은 추운 겨울만이 아닐 것이다. 하얗고, 투명하고, 까맣고, 차갑고, 바람 불고 뜨겁기도 한 날씨라 했지만 역시 예측불가의 기후위기 너머의 인생 같기만 하다.

 

사람들이 걷는다

사람들이 차를 탄다

 

걸어서 간다

차를 타고 간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왜 가는 걸까

 

누구 하날 붙잡고 물어볼까

궁금하다.

 

이지현, <궁금하다>

 

다른 시에서 지현이는 묻는다. 누구에게 묻는 걸까? 길을 걷다 보면 모두가 바쁘게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단다. 그래서 누굴 붙들고 묻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고 궁금하다고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질문은 스스로 답을 찾기보다는 불안하다는 징표가 아닐까? 누구 하날 붙들고 물어보아도 그들이 가는 길은 행선지일 뿐, 진정 듣고 싶어하는 어디인지 가고 있는지 답을 얻을 수 없다. 나만이 갈 곳 정하지 않고 뒤처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럴까? 그런 점에서 뒤에 오는 준호의 시가 지현의 다른 모습 같다.

 

눈이 내린 뒤의 거리에는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있다

눈을 던지며 노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와 함께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이 있다.

이를 감상하던 내 발은 이미 축축해져 있다.

눈은 눈으로만 보아야 한다.

 

이준호(2학년), <>

 

눈을 치우고 눈사람을 만들고 눈을 던지고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 발이 젖어버린 자신에게 눈은 눈으로만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준호가 지현이에게 화답하는 시 같다. 젖은 발을 의식하는 준호나 누구 하날 붙들고 물어보고 싶은 번아웃 상태 같은 지현이의 처지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뜨겁고 싶다

이 추위를 날릴 정도로

뜨겁고 싶다

나에게 달려드는

눈보라조차 막을 수 있게

 

뜨겁고 싶다

그 어느 폭염보다도

 

뜨겁고 싶다

새벽이 낮보다 온도가 높을 정도로

 

정다현, <뜨거운 마음>

 

차라리 다현이처럼 지금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어떨까? 축축히 젖은 마음으로 서 있지 않고 추위를 날리고 눈보라를 막고 낮보다 더 높을 수 있는 새벽의 뜨거운 마음으로 떨쳐내고 싶다고 말하면 좋지 않을까? 어떻게든 올 것은 오게 마련이고 정작 닥쳤을 때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중요한 일이라면 뜨거운 마음으로 길을 가는 것이다.

 

내 마음이 어렵다

막막해서 울고 싶다가도

어느새 떠오른 네가,

날 다시 움직이게 한다.

 

너는, 날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인가.

날 그리움에 사무쳐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늪과 같은 존재인가.

 

그러나 네가 어떤 존재이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네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장소진(2학년), <무제>

 

소진이는 다른 곳으로 마음을 돌렸다. 어차피 내 마음이라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막막해서 울고 싶고, 그리움에 사무쳐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늪을 넘어서 벗어날 수 없는 라는 존재, 무엇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어떤 존재이든 벗어날 수 없는 타자와의 관계이거나 인생, 미래 등등일 것이다. 학교 안에서, 교실 안에서, 집에서나 공통 언어처럼 갖고 사는 이들의 맨얼굴인 셈이다.

 

우리 모두 결승선을 향해 달린다

각자 다른 속도로 달린다

 

누구는 1년이 걸리고

누구는 3년이 걸린다

그리고 또 다른 이는 10년이 걸린다

 

1년이 걸리는 사람은 여유롭게

10년이 걸리는 사람은 초조하게 달린다

 

하지만 괜찮다

누구나 걷는 속도, 나아가는 속도는 다르다

결국 모두 결승선에 언젠가 도착할 것이다.

 

강성일(2학년), <결승선>

 

그래서 성일이는 지금 현재의 출발선과 결승선은 같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각자의 속도로 달리는 먼 길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불안을 누르고 있다. 어떤 모습으로 도착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지만 결승선에 언젠가 도착할 것이니 초조해하거나 불안에 자신을 맡기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다.

 

사람이 많다고 해서

외로움이 가시진 않는다.

 

사람이 없다고 해서

외로운 것은 아니다.

 

그저 외로운 것은 마음이 텅 빈 것뿐이다.

사람의 수와는 상관없다.

 

그러나 혼자 있는 사람을 동정하지 마라.

곁에 사람이 더 많은 너보다

그 사람의 마음이 더 꽉 차 있으니

 

박수현(2학년), <외로움>

 

수현이는 주변에 사람이 있고 없고에 따라 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지 말하는 뜻으로 마음이 꽉 차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발적인 고독도 있지 않은가. 좋아요, 팔로우 수에 따라 자신을 평가하고 남을 평가하는 요즘 디지털 시대의 외로움을 역설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수현이가 말한 외로움은 상호의 과 같지 않을까?

 

넓은 들에 꽃 한 송이가 피었다.

수백 마리의 벌들이 그 꽃 한 송이로 몰려든다.

날씨가 더워 벌들 중 절반만 겨우 꽃에 도달했다.

하지만 남은 절반도

벌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무모하지도

이기적이지도

 

이상호, <>

 

넓은 들에 핀 꽃 한 송이만으로 독보적인 상징이다. 그에 필적할 벌들의 무모하지도 이기적이지도 않은 것조차 외로움의 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 송이마저 그냥 지나치지 않는 벌이나 아무리 작은 꽃이라고 해도 수백 마리의 벌들을 다녀가게 하는 아우라라면 어떤 모습을 비칠지 모를 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떨쳐야 한다. ‘무모하지도 이기적이라고만 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으면 언젠가는 숱한 수정과 변화를 통해 결승선에 닿게 될 것이니.

 

오늘도 일렁이는 산을 바라보며

코를 어루만지는 듯한 풀내음을 느끼며

더욱 깊숙이 더욱더 깊숙이 산으로 들어간다

비릿한 물비린내 총알처럼 쏟아지는 물방울

이 모든 것들이 다시금 추억을 꺼내주었다.

 

이승훈(1학년), <>

 

오늘은 승훈이처럼 나를 비출 수 있는 대상을 직관의 눈으로 보는 것이 어떨까? ‘코를 어루만지는 듯한 풀내음을 느끼며 산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러면 비릿한 물비린내총알처럼 쏟아지는 물방울이 오늘을 살게 할 기억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그것으로 마음은 꽉 차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면 석표처럼 여유도 생기리라.

 

작은 용이 거짓말쟁이를 피해

산속에서 드러누웠네

 

용이 지키던 나무와 봉황이 있었지만

나무는 거짓말쟁이가 베어가고

봉황은 호랑이를 찾아 동쪽으로 떠났네

 

산속 혼자 누운 용에게

뱀이 찾아와 용을 깨워

세상을 삼등분하네.

 

이석표(2학년), <와룡>

 

어느 곳의 전설일까? 아니면 우화 일지도 모르겠다. ‘와룡은 석표가 다니는 학교의 터전일 수도 있겠다. 산을 지키는 용에게서 나무를 베어가고 봉황마저 떠난 세상에서 이 깨우침을 준다는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의 근원을 찾아 상상해 보는 시간도 아깝지 않다. 여기서 세상을 삼등분한 것은 거짓말쟁이와 봉황과 용일까? 아니면 봉황과 용과 뱀일까? 각자의 버전으로 세상을 가늠해 보고 이야기의 살을 붙여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한 공간에 여러 색들이 모여있다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하얀색

내가 막대기를 넣고 휘저었다

빨간색이 다른 색들에 묻었다

색들은 조화로워 보였다

나는 다른 도구를 들어

색을 골고루 떠서 올렸다.

 

정다원, <육회비빔밥>

 

다원이도 재미있는 순발력을 보여주었다. 본보기시로 들려준 시를 모방하여 자기만의 시를 만들었다. 제목만 살짝 가리면 무엇으로도 상상할 수 있으니 재치와 웃음으로 지금의 강을 건너도 보는 것이다. 아니면 노래 가사의 주인공이 된 듯 윤지처럼 연애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겠다.

 

너를 생각하면 눈물이 차오른다.

아 아

나에게 닿을 수 없는 너의 손

아 아

도무지 잡히지 않아

설움을 삼킨다

함께 들었던 새벽 기차 소리

따뜻하고 포근했던 팔베개

밤하늘의 별을 보고

환히 웃던 네가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너무나도 냉정한 세상에서

따뜻하게 품어주고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줬던 너

너의 지치고 야윈 손

잡아줄 수 없어

서러움만 맺힌다

너와 함께 걷던 길을

이젠 나홀로 걷는다

그때 그 시절의 너와 내가

너무나도 그립다.

 

조윤지, <그리움>

 

노래 가사를 빌어온 듯 그다지 공력은 느껴지지 않으나 그 시절의 화양연화花陽年華를 떠올리며 누구의 마음을 사로잡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용기는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 저항하는 힘이니 그것이 어느 것이든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나만의 길를 걸을 수 있고, 발자국을 새길 수 있는 길. 그 길에는 모순혼돈마저 사라지고 상처를 치유해주는 용기라는 꽃이 필 것이다. ‘마음이 소금밭일수록 책(어려운 책)을 읽고 쓰고 말하라는 제목을 달고 시 쓰기 한 보람이 있다. 마음이 어려울수록 시를 쓰고 보여주고 낯선 독자로 하여금 읽게 했으면 좋겠다. 각자의 마음이 소요하듯 들려주었으니 다른 마음으로 위로하며 다독이는 시간이 계속 될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다.

온통 하얀 세상이다.

나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나만의 발자국을 새길 수 있는

 

꽃잎 계절

태양 계절

낙엽 계절 지나

이곳에 왔더니

나의 모순 싸악

쓸어내린다

 

쓰라린 내 마음

이곳은 1년의 끝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해줄

출발점이다

 

다시 시작해보자

내 마음에 피어난다

하얀 용기의 꽃이

 

변서영(2학년), <겨울>

 

*2022년 12월 21일 진천고등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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