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를 대표하는 소설가이면서 201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올가 토카르주크의 글과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책 작가의 그림이 만났다. 주로 인간의 실존적 문제와 소통의 부재를 다루는 올가 토카르주크와 요안나 콘세이요는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으로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이 5년만에 선보인 신작 『잃어버린 얼굴』은 8개 국어로 번역이 되었다. 이번에도 두 작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주목하고 있다. 세상에서 알아주는 얼굴로 산 주인공이 세상 곳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자랑하다가 어느날 얼굴 세부 선들이 흐릿해지고 얼굴마저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근사하게 포장된 사진 속에서 '나' 자신이 사라지고 감정마저 사라진다는 낯설고 서늘한 상상이 돋보인다.
그림책 구도도 우리가 수많은 앨범에서 꺼낸 듯 사진들로 콜라주하고 있다. 갓난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주인공은 빛나는 눈, 선이 예쁜 코, 도톰한 입술을 가진 또렷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여러 도시와 유적지, 구름과 바다, 숲과 차와 사람이 가득한 거리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인터넷이 떠돌 만큼 유명해진다. 그러나 어느날 자신의 얼굴이 희미해지자 급기야 얼굴을 파는 밀수품 업자에게서 잃어버린 얼굴을 되찾고자 한다. 어쩌면 작가의 상상은 진정한 만남과 소통을 뒤로 하고 SNS를 통해 끊임없이 '좋아요'를 눌러야만 존재감을 찾는 지금의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팔로우 수와 좋아요 수와 친구 수가 늘어나는 것이 오히려 얼굴을 잃어버린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림책 한 문장 ‘그가 누구인지보다는 얼굴을 더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자아는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는 확신 같은 것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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