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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내 시간은 앞으로 나아갈 시간

시와 함께한 나날

by 참도깨비 2021. 8. 2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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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내 시간은 앞으로 나아갈 시간

오창 우림1차아파트 어머니 시

 

문화가 있는 날 시 강의를 하면 어른들 모집이 어렵다고들 한다. 시가 어렵고 시 쓰기는 무서워서 많이 모아봤지 10명 안쪽일 때가 많다. 다들 공감하는 일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뭐가 어렵냐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일이 되면 난감해지는 것이다. 시는 몇십 년이 지나도 늘 그 거리에서 근사하고 뭔지 모르지만 어렵고 모호한 것이다.

오늘은 오창에 있는 우림1차아파트도서관에서 시 이야기를 하는 시간. 며칠 전 도서관에 쌓인 옛날 책을 정리하며 아파트 주민들에게 나눔 행사를 했는데 시집만 그대로 남았다고 한다. 그래도 일단 시를 읽어나가고 우리가 교과서를 중심으로 학습 받은 시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나면 시만큼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남을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가 따로 없다는 말로 안심?시키며 시를 써 보기로 했다.

 

눈을 반개하고

틈만 나면

두툼한 입술을

삐죽인다.

 

무표정한 얼굴로

궁금증을 유발한다.

 

화났어? 졸려?

속상해? 불편해?

 

엄마는 답답해!

 

웃는 얼굴 한 번에

엄마 마음도 개인다.

 

고얀 녀석!

 

황인영, <큰아들>

 

초등학생들이 쓴 시와 어른들이 쓴 시를 읽어주며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자기 자신과 만나는 이야기든 가족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고받은 느낌을 말해보기로 했더니 첫 번째로 나온 시다. 큰아들의 면면이 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가족이라는 무심하면서도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첫 시라서 의미가 있다. 늘 바라보고 느끼고 있는 부분이지만 마음에 담아두기만 해서 어떤 때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감정을 자극하지만 이렇게 자주 표현하다 보면, 더 많은 말을 담아두고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리라 믿는다.

 

넌 남자다!

지구상 수십 억 인구 중에 나와 피를 나눈

몇 안 되는 나의 분신

 

타향살이 하느라

외로움과 싸우고

뭘 먹을까 고민하고

체력관리 안돼 훈육관님 눈치보느라 힘들고……

 

아들아!

세상은 할 일도 많고 볼 것도 많고

책임져야 할 것도 많단다.

힘차게 맞서 싸워 승리하길 바란다.

사랑하는 나의 분신을 위해

오늘도 엄마는 응원의 박수를 치고 있다.

 

우영선, <무제>

 

제목을 달지 않은 시라, <, 남자다!>라 할까. 그냥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쯤 해둘까. 가까이 지내다가 멀리 떨어져 지내는 때가 오면 전화 대신 하는 말은 이렇게 바람과 그리움이 뒤섞인 애틋함이 되게 마련이다. 물리적인 거리감에서 느끼는, 상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이 짠하고 부탁할 것도 많다. 어쩌면 담담하다 못해 어머니와 아버지의 분신과도 같은 말처럼 느껴진다. 새삼 시를 쓰고 읽어주는 걸 들어보니 옆에 있는 어머니들도 공감하는 것이어서 시 쓰기를 잘 했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시간이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지난 시간도

지금에서 보면 나의 시간이고

 

현재의 내 시간은 앞으로 나아갈 시간

옛 시간에 잡혀 지금의 시간을 아프지 않게

지금 나는 행복한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느끼고 있기에

행복한 시간 속에 살고 있는 나.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자

아자 아자 파이팅!

 

임혜연, <시간>

 

자신의 경험치를 잘 살려 연륜이 묻어나게 잘 쓴 시다. 누군가 좋은 문장을 쥐어준 것처럼 빌려다 쓸 수 없는 자신만의 경험에서 묻어나는 현재의 시간은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어서 옛 시간에 잡혀 지금의 시간을 아프지 않게보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쓰고 있는 것이다. ‘행복이 바로 그런 것임을 두 문장으로 간결하게 표현해 내어서 좋다.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자존감이 높은 상태에서 나온 말이어서 주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어느새 이렇게 많아졌지?

마음은 아직은 이십 대 때의 설렘 그대로인데

내 나이를 떠올리며 자꾸만 나를 주저앉히는

내 모습이 서글프다.

몸의 나이 말고

마음의 나이를 살 수는 없을까…….

 

정미영, <나이>

 

나를 주저앉히는 것나이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몸과 마음의 나이는 곧 몸과 육체의 엇박자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걱정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 생각한 것만이 아닌 오랫동안 잠식하고 있는 마음을 드러내놓고 써 보고 나니 해결책 또한 보이는 듯하다. 말 줄임표로 끝낸 것이 이 다음부터 생각해 보자는 작은 다짐이어서 어떻게든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으니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시는 드러내놓고 표현하고 보면 달라질 수 있는 의지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공감의 한 부분을 던져 유대감마저 만들어내게 된다.

 

의지 없는 자만은 실패를 불러왔고

거친 물살 징검다리 끊어져 있다.

엄마처럼 아기 낳아 잘 기르겠다는 딸의 말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돌을 깎아야겠다.

밤새 깎아 끊어진 다리 잇겠다는

마음 새긴다.

 

김성, <석수>

 

할 말은 많으나 간결하게 뱉어낸 시다. 안으로 많은 사연을 갖고 있지만 이 선에서 마무리해 주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끊어진 관계에 탄식하고 있었던 그간의 이야기의 여백이 느껴진다. 시를 읽어주는 순간 무슨 이야기지?’하는 것보다 어떻게 말해야 하지?’하는 표정을 보았다. 돌을 깎아 탑을 만들거나 다리를 만들었던 석수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굳은 마음이 석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마음의 결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어떻게든 끊어진 관계를 이어야 한다는 마음이어서 한 번 더 읽고 행간을 느끼도록 만드는 시라고 할 수 있다.

 

괭이밥풀은 괭이밥풀

애기똥풀은 애기똥풀

질경이는 질경이

 

도로가에 먼지 뒤집어쓰고

들판에 어지럽게

누구 하나 눈길 주지 않아도 너답게

그냥 자라고 그냥 피고 그냥 진다.

 

이름은 무엇에 쓸고.

그건 사람이 붙여준 것일 뿐, 괭이밥풀도 애기똥풀도 질경이도 아니다.

이름없이, 오늘도

그냥 자라고 그냥 피고 그냥 진다.

 

김미란, <이름 없음>

 

오랜 삶에서 느낀 이름 없음이다. 아무것도 없음일 수도 있다. 우리가 붙인 이름, 자신의 이름마저 본연의 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도 있기에 그냥이란 말이 달리 다가온다. 그렇지만 다른 뜻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그냥 피고 자라는 이름 없음이란 있을 수 없고 다 저만의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발견한 있음없음일 뿐이다. 그것을 뛰어넘는 너답게의 뜻이기도 하지만 우리 존재의 근본적인 물음이기도 하여서 읽는 이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불러오고 쓰게 하는 시라는 점에서 좋다.

앞선 시에서 말했듯이 지금의 시간을 살고 있는 눈금을 읽을 수 있어서 시를 쓰기 전과 후는 달라질 것이다. 현재의 시간이자 지금의 시를 쓰는 일이 내면과의 대화를 이끌어내고 가족과 타자에 이르기까지 관계망을 돈독하게 만들어주리라 믿기에 용기를 내어 시를 쓴 어머니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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