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뛰어들기 전
-청주 대성고 학생 시를 중심으로
대부분이 학사에 있는 학생들과 함께 시 이야기를 하는 저녁. 지역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편안한 시간인 데다 미리 내 시집을 읽고 각자 고른 시에 대한 패러디 시를 쓰고 또 하나의 그림 시집을 만들어준 따뜻한 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시집을 읽고 무엇인가를 해본다는 것은 시인에게 값진 시간이다. 읽어주는 독자가 있고, 그 시에 자신의 생각을 얹어서 시를 써 본다는 것은 자기 시를 향한 연습이기도 하다. 멧돼지가 지나가고 뱀이 지나간 풀이 되어보고, 봉숭아 씨 터질 때의 설렘을 만져보고, 소나기를 뚫고 달려가야 할 때를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깊이 눌러두었던 시를 꺼낼 수 있음을.
빗속에 뛰어들기 전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든다
저곳에 들어갈까 말까
결국 뛰어들어가 보면
눈도 아프고 몸도 마음도
젖는 기분이지만
그래서 이상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막상 나쁘지만은 않아서
그날을 마음에 새긴다.
홍여빈(2학년), <빗속>
처음으로 쓴 빗속이 그랬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날 소나기 퍼붓는 길을 달려갔겠지. 좀 더 두드러지게 쓰자면 말다툼 끝에 빗속으로 뛰쳐가는 친구를 붙잡으러 가는 빗속일 수도 있겠다.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사람과 이별의 순간이라면 더욱 더 그래야겠지. 지나가는 비이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그럴 상황에서나 있는 법. 어떤 일인지 모르나 ‘그날’은 빗속에 있었다. 처음에는 빗속에 뛰어들어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결국 뛰어들어가야 했던 순간이었던 것이다. ‘눈도 아프고 몸도 마음’도 흠뻑 젖는 기분이었지만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지금도 드는 것이다. 상대방의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 누군가의 시를 읽고 마음이 통했으면 자신이 겪은 또 다른 이야기 속에서 재구성해 보아도 좋다.
너는 날 알지 못하지만
나는 널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는 걸
수십 번도 더 들어갔던 너의 SNS
밤마다 생각났던 너의 모습
너의 이상형은 무엇일까
너는 무엇을 좋아할까
너는 무슨 음악을 좋아할까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텅 빈 방 안에서 수없이 맴돌은 생각들
꾹꾹 누른 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넘쳐 흐른다.
네가 원하는 모습에 억지로 나를 끼워놓다 보니
점점 날 잃어가는 것 같아
지금 흐르는 눈물은
너를 향한 나의 아픈 눈물일까
나를 향한 사랑일까
이경아(2학년), <사랑 애(愛)>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렇게 절절한 것이었구나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시다.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실로 연결된 듯 알고 싶고 느끼고 싶은 것이 ‘사랑’임을 말하고 있다. 공부만 해야 할 때에 사랑이라니, 놀라서 말리기라도 하고 싶겠지만 현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 졸이던 때는 순간처럼 지나고 말았다. 모든 관심과 감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마음 깊이 눌러둘 수밖에 없기에 이내 사랑은 아픈 눈물이 된다. 모든 것이 좋아보였던 ‘네’가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억지로 나를 끼워놓’는 속에서 갈수록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이란,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고 했지 않은가.
그런 자신을 뒤늦게라도 발견한 것은 다행이다. 아픈 눈물이기도 하고 진정 자신을 들여다 본 사랑의 눈물이기도 하다. 중간 정도 읽어줄 때까지 함께 부러워하며 공감하던 친구들이 두 갈래 길로 흩어지듯 애틋한 위로와 서늘한 자기 발견의 순간임을 아는 듯 탄식이 이어졌다
모든 것에는 무게가 있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물건에도
심지어 보이지 않는 것에도
그의 무게가 있는데
그 무게를 무시하는 건
그를 무시하는 걸까
나를 무시하는 걸까
이시우(1학년), <업>
뒤이어 나온 시만 보아도 앞선 느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업’이란 말이 지나쳐 보이지만 각자 존재의 무게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 보이지 않는 것에도 무게가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무거운 ‘업’만이 아님을, 앞선 사랑의 말 또한 그렇다.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주고받는 생산적인 교류여야 하고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소유하고 강요할 일이 아닌, 그 존재 자체로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시인 이영광은 어느 산문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를 좋아하는 사람과 누가 좋아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존중과 배려가 없으면 그는 누구를 사랑하고 있지도 않고 누구에게 사랑받고 있지도 않다. 심지어는 자기를 사랑하고 있지도 않고 자기에게 사랑받고 있지도 않다. 그는 본래 한 사람인데 너무도 자주 여러 사람으로 갈라져버린다.”
눈에 담고 싶은
눈에 넣고 싶은
알면서도 저 멀리
도망치는
따라가면
다시 도망가는
마음에 가득 찬
마음에 넣기 아까운
나를 따라오는
오지 말라 해도
끝까지 따라오는
항상
나만 바라보는 달.
홍소영, <달>
나는 달이다. 달이 나이기도 하다. 나만 바라보는 달은 거울일 수도 있다. 나를 지켜보는 타인의 눈일 수도 있고, 진정 내 얼굴을 비춰보는 강물, 나르시스트이기도 하다.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끝내 자기 위로이자 사랑임을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어린 마음 같지만 ‘달’이라는 대상이 지금의 대화 상대이자 지금 들여다보는 자신의 마음과도 같은 것이니 괜찮다.
나갈까.
있을까.
싫다가도 그리워지는
좋다가도 집 가고 싶은
내 두 번째 집
많아야 2년뿐인 나의 집이
왜 이리 싫을까
매일 바뀌는 나의 맘
있을까.
나갈까.
이서진(1학년), <학사>
또 다른 고민이 나왔다. 1학년인 서진이는 학사에서 나갈까, 말까 고민 중이다. 사실 학사에 들어오면 금요일까지는 집에 갈 수 없으니 답답할 것이다. 매시간 정진하듯 공부한다면 모르겠지만 날마다 마음이 바뀌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제2의 집이라고 생각하자 했지만 말 그대로 싫다가도 좋고, 참아야지 하면서도 당장 뛰쳐나가고 싶을 것이다. 2학년 선배는 ‘나도 그랬어, 잘 참아봐!’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마지막까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를 썼으니 친구나 선배,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마음을 다잡거나 또 다른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예기치 않은 장기 계획까지 세워야 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가족과 긴 긴 싸움을 해야 하겠지. 어찌 됐든 현명한 판단과 결정은 서진이가 해야 할 몫이니 응원의 박수를 보낼 뿐이다.
누군가에겐 긴장의 시간
얼마나 떨리는지
누군가에겐 기다림의 시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누군가에겐 짧은 시간
너무나 짧다.
누군가에겐 긴 시간
빨리 지나갔으면
사람마다 1분이란 시간은 다르다.
나예린(1학년), <1분>
행복한 추억이 있기에
안타까움이 있다.
고통스런 시간이 있기에
해방감이 있다.
시간은 각자에게
상대적인 것.
내가 느끼는 대로
짧게,
혹은 길게
흘러가는 것.
강민주(1학년), <시간은 상대적인 것>
학교에서의 시간이나 바깥 사회에서의 시간 이야기는 두고두고 나온다. 마치 시간과의 싸움과도 같이 승패로 나뉘는 일 같다. ‘1분’을 놓고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낀다.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린 듯 생체 시계가 빨라지는 어르신들이나 수업 시간이 끝나길 기다리거나 수능을 기다리는 학생에게도 1분은 공평하게 흐르는 것이자 상대적인 것임을 안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초연해지는 수밖에 없다. 초 단위까지 아껴서 투자하라는 말은 가혹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햇빛처럼 공유재이기도 한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추억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런 시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움과 해방감마저 상대적이란 말을 달리 받아들이면 역시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것이라는 엄연한 진리다. 어쩌면 상대적이기보다 절대적인지도 모른다. 그것보다는 오늘을 잘 보내자는 생각이나 맞닥뜨릴 때마다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듯하다. 그러면 위의 시에서 방점을 찍은 이후에 각자의 현실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창고 속 장작들 다닥다닥
불꽃 속 장작들 타닥타닥
활활 타는 이들은 쉬고 싶겠지
차갑게 있는 이들은 타고 싶겠지
그런데 과연
불 속은 안 차가울까
창고 속은 안 뜨거울까
박세은(2학년), <장작>
물과 불의 싸움일까. 창고의 장작은 곧 불태워질 ‘나’일까. 활활 탄다는 것은 공부에 매진하듯 하는 어떤 상태일까. 장작을 제목으로 하였으니 장작에 꽂힌다. 장작은 우리들이겠지. 창고는 학교이고 불 속은 공부라는 숨 막히는 또 다른 현실이겠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타고 쉬고 다시 타는 장작들이란 말이 맞다면 세은이는 그 가운데 서서 바라보며 가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순 같아 보이지만 그런 모순이 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려운 일을 겪어내 보아야 하듯이 말이 안 되는 모순 같아 보이는 현실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하고 길을 찾아야만 하기에 불은 장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사람들이 하나 둘 잠에 드는 밤
내 방 창문 앞에 손님들이
하나 둘
똑
똑똑
누군가 하고 창밖을 보면
생각지 못한 불청객들이 나를 기다린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든다.
그들을 초대한 건 내가 아닌가…
그들을 불청객이라 할 수 있을까…
서연주(2학년), <손님? 불청객?>
못난 생각이 자꾸자꾸 자라난다.
걱정과 우울, 질투같이 못난 생각들만
마음 속에 뿌리를 내려서
자꾸만 자꾸만 자라난다.
어린왕자는 늘 바오밥나무에 대해 경고했다.
작은 새싹을 조심하지 않으면
바오밥나무가 행성을 뒤덮을 거라고
물을 주지도 않는데
어디서 자꾸 생겨나고 자라나는지
그저 장미가 싹 틔우기만 기다릴 뿐이다.
이상지(1학년), <바오밥나무>
연주와 상지의 시를 보면 ‘불청객’이란 곧 ‘못난 생각’ 같다. 자주 창밖에 와 두드리는 불청객이나 물을 주지 않는데도 자라는, 곧 내가 사는 행성을 뒤덮어버릴 것 같은 바오밥나무. 그러나 그런 행성에 장미가 싹 틔우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나 불청객인 줄 알았던 것마저 내 생각에서 오는 것, 내가 초대한 손님과도 같은 것이지 않을까. 걱정, 우울, 질투로 뿌리를 내리는 것들을 어찌해야 하는지는 어린왕자처럼 혼자 찾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
내가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새벽에 홀로
달을 보는 시간
내가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새벽에 홀로
노래를 듣는 시간
내가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새벽에 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 하는 시간
김소연(1학년), <하루 중에>
그런 점에서 소연의 시는 평화롭다. 앞선 시간의 분 단위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즐기고 있으니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새벽에 혼자 마주하고 앉은 시간을 즐기는 때가 있어서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봄이면 벚꽃 담아 보내고
여름이면 파도 소리 담아 보내오고
가을이면 낙엽 주섬주섬 담는다.
겨울이면 눈사람 하나 만들어 보내본다.
그렇게 받은 편지 3통
내가 보낸 연락은 4통인데
김하늘(1학년), <편지>
하늘이는 편지로 정분 어린 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둘 사이에 오간 편지만으로도 애틋한데, 부치지 않은 편지도 아닌 받지 못한 편지를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봄 편지에 벚꽃 소식을 보내면 여름 파도 소리를 담아 보내오는 사람, 가을에 낙엽 담아 보내면 겨울 눈사람 만들어 보내는 편지만으로도 족한 듯한데 받지 못한 편지(연락)는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일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다시 돌아가 봄이면 그 사람이 발신인이 되고 여름 숲을 담아 하늘이가 편지를 보내게 될 수도 있겠지. 오랜만에 편지라는 말을 들으니 수없이 보낸 편지보다 받지 못한 한 통의 답신이 떠오르긴 한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내가 있기에 내가 있으니
네가 있기에 내가 있는 것은 아니니
극복할 것은 나뿐이다
이레, <한계>
결국 나라는 한계보다 무서운 것은 없는 것일까. 어느 곳에서나 네가 대신해줄 수 없는 ‘나’라는 한계, 아니 극복 대상이 나라는 것만 알아도 되지 않을까. 좀 더 나와 맞닥뜨리고 해결해야 할 것이 많으니 서서히 풀어나가길 바랄 뿐이다.
어른이 되는 것이 무섭다.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할 때마다
엄마는 “어른은 책임져야 하는 일이 많은 거야”
라고 말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책임이라는 단어가 두렵다.
이소현, <어른이란>
책임이란 말이 이렇게 무섭게 들인 적이 없다. 어른들도 책임지기란 어려운 일인데 “어른은 책임져야 하는 일이 많”다고 하면 어른 되기란 영영 무서운 일이다.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진다는 말은 옳지만 그것은 실패를 감싸주지 못한 무한책임의 말 같아서 무섭다. 게다가 어른들이 도처에서 책임지지 못한 것까지 보기로 들으며 어른의 세계에 대한 진입을 두렵게 한다면 어른의 아량이 아니다. 어른이가 많은 세상에서 어른이란, 무엇이고 어떤 것이 어른인지 보여주면서 진입의 장벽을 좁히고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루종일 기다리다
기다리다 잠든다.
그렇게 기다리다
기다리다 반가운 얼굴
볼 때는 세상 모든 것이 내 것.
문서연(1학년), <강아지>
수업 시간
선생님 몰래
초코칩 하나를
입에 넣었다.
초코의 달콤한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아
이것이 달콤한 행복인가.
○○○, <촉촉한 초코칩>
두 편의 시는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 마음 그대로 흐뭇하게 읽고 지나갈 만한 이야기다. 바로 다음 시가 문을 두드리기 때문에 촉촉한 시간에 빠져드는 것만으로도 좋다.
눈을 뜨는 순간
경주는 시작된다
펜을 잡고 책을 편다
공부를 하고 공부들 한다.
내 옆에 있는 이는
친구일까 경쟁자일까.
결승선은 어디일까
경주는 언제 끝날까
그만 뛰고, 걷고 싶다.
○○○, <경주>
자기 발걸음으로 가면 되는 것을 경쟁이라고 경주라고 여기면 거북이마저 슈퍼 거북이가 되어야만 한다. 모두 공부들 하느라고 친구조차 경쟁자로 모는 것 같아 두려워지나 이내 자기 걸음을 걸어야만 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좋다. 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세운 목표대로 열심히 하는 것이다.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줄 세우지 않고 각자 다른 꿈대로 계획대로 가는 공부를 하는 자리라고 여기면 되는 것인데, 그러면 그만 뛰고 걸어서 평화가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가을에게는 냄새가 있다.
여름도 겨울도 아닌 가을 냄새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라던가
무심코 올려다 본 구름 없는 하늘이라던가
인사하는 가을 새라던가
담아둘 수 없기에 느껴나보는
가을에게는 가을 냄새가 있다.
김한솔(2학년), <가을>
가을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10월 지나 11월이 그렇다. 낙엽이 떨어져 나무를 비우지만 그것이 내는 냄새는 다른 계절과 다른 들큼하고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무엇이 있다. ‘구름 없는 하늘’이나 ‘인사 하는 가을 새’나 할것없이 ‘담아둘 수 없’기에 가을만의 냄새가 있다. 흔히 가을 낙엽 이야기만을 하지 않아서 좋다. 곧 눈이 오고 추워지겠지만 봄을 멀리 둔 잠시 동안의 이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잔뜩 칭찬해 주었다.
잡아도 잡은 것 같지 않은 모래 같은 사람
마주치면 속을 파도처럼 울렁이게 만드는 사람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꼭 붙어있고 싶은 사람
이유 없이 질투 나는 사람
속눈썹 길이까지 알아내고 싶은 사람
산소처럼 가벼운 듯 꼭 필요한 사람
겨울 바람처럼 거친 듯 봄바람처럼 섬세한 사람
갈라진 머리끝도 어루만져주고 싶은 사람
아기 같은 표정과 어른 같은 내면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
되고 싶은 사람
권규리, <우상>
‘우상’이라고 했지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같다. 우상은 우상일 뿐이다. 이루기도 어렵다. 멀리 두고 바랄 때만이 우상처럼 흠결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상의 자리에서 내려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면서도 한없이 자애로운 부모 같기도 하고 조력자 같기도 하여서 한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타자마다 다른 역할을 갖게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이 되려고 내면을 가다듬고 저절로 그렇게 되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밤이다. 시로 감정을 나누는 밤이 그렇다.
안개 가득 낀 11월의 어느 밤.
나만의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따뜻한 조명 아래.
줄지어 앉아 생각에 잠긴다.
운동장을 비추는 강한 플래쉬
안개와 어울려 묘한 분위기
함께 감정을 나누는 오늘 이 밤
친구들의 마음을 방문하여 묘한 감정을 느낀다.
오늘 참 의미 있다.
○○○, <11월 16일>
마침 오늘에 맞는 시를 써주었다. 저녁밥을 먹고 모여 한창 공부할 시간에 편안하게 앉아 묘한 감정을 나누는 시간, 무엇보다 그런 금쪽 같은 시간을 내어 시를 쓰고 읽어주면, ‘친구들의 마음을 방문하여 묘한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다. 빗속에 뛰어들기 전의 묘한 흥분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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