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걸로 너를 대신해 본다
충주공고 학생 시를 중심으로
코로나19바이러스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올해 세 번째로 충주공고 아이들을 만났다. 담당 선생님은 공고 아이들 특성상 취업이 우선이다 보니 시와는 거리가 멀다,몇몇 아이들 가운데 희곡을 쓰고 시, 소설을 쓰는 아이들이 있기는 한데 지나치게 기대하지 않는 게 나을 거란다. 맞는 말이다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과작은 하리라 믿고 조기조 시인의 <기름 공주>란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고장난 기계를 분해하다
뒹구는 쇠구슬을 본다
아주 작은, 사랑의 최초 형식인
알(卵) 같은 눈동자를 본다
돌아갈 때나 멈추었을 때나
혹은 해체되어 이렇게 나뒹굴 때도
눈감지 못하는 눈동자를 가진
기름에 흠뻑 젖은 기름공주
지금 누군가 불안하다면
그대 망가져서 반짝이는 눈빛은 무엇인가
실패한 사랑도 삶이 아니냐
사랑이 쉽진 않더라
기름공주, 네 눈동자는
어느 지극한 마음의
마지막 그리움을 보여주는
진신사리를 닮았더라.
조기조, <기름공주>
시라는 것은 가장 자유롭고 이상하고 묘한 것이다, 모든 삶에서 튀어나온 기름공주처럼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니 받아 적어라, 자신의 모든 것이 역사가 된다면 그것을 기록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니 써라. 아주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한 줄로 길게 마스크를 쓴 아이들 몇몇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 시인이 현장에서 일 하다가 만난 기름에 젖은 쇠구슬을 보고 썼듯이 쉽게 쓸 수 있다고 말해주니 물꼬가 트이는 것 같았다. 쉽게 공감하든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든지 읽다 보면 알게 되고 자신의 말도 소통하게 된다고 말해주니 바짝 다가선 듯했다.
이렇게 시 이야기를 먼저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아니면 하기 어려운 마음의 말이나 설령 욕망이라고 할 수 있는 밑바닥의 말까지 주저하지 말고 쓰는 것이 좋다고 말해주고 속전속결로 시 쓰기에 들어갔다.
먹는 것도 내 마음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내 마음
모든 내 마음인데
너는 내 맘대로 안되는구나
너는 언제쯤 내 마음대로 나와줄 거니
○○○, <변비>
다른 학교에서 하듯 이름은 밝히지 않고 제목과 내용만 읽어주면서 각자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시 쓰는 시간을 10분만 주었다. 중간 중간 어떤 시를 쓸 것인지 생각해 두라는 말을 해주어서 그런지 과연 속전속결로 써냈다. 망설임 없이 몇 초만에 쓴 이에 끝끝내 백지 시험지 내듯 ‘죄송합니다’라는 한 줄만 쓴 이도 있었다.
그중에 ‘변비’란 시가 첫 번째로 읽어준 시였다. 누구나 겪고 나면 간절한 그 고통을 알 듯이 ‘변비’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표현해 주었다. 제목만 읽었는데도 뭔지 알겠다는 듯 웃어대는 아이들 때문에 분위기도 절로 좋아졌다. 광고 문안 같다. 단박에 변비약 광고가 떠올랐다. 새롭지는 않으나 시 쓰기라는 맞춰준 것 같은 아량이 느껴진다. 가볍게 넘어갈 수 있어서 좋다.
책이 좋다
책을 넘기는 소리가 좋다
소리가 날 때 앞으로 읽을 장이 적어져서 아쉬워도
책을 넘기는 소리가 좋다
책을 다 읽으면 아쉽지만
단 그 성취감이 좋다
○○○, <책>
누군지 알 것 같다. 맨 뒷자리에서 소설책인가를 읽고 있던 아이다. ‘너희들은 모르지? 책 읽는, 책장 넘기는 소리를?’ 하는 마음이 들리는 것 같다. 다른 친구들 아무도 관심이 없고 물어보지도 않는 ‘책장 넘기는 소리’와 난데없는 ‘성취감’이겠지만 스스로 겨워서 이런 시를 쓰는 친구가 꼭 한 명씩은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쓰는 것이 어딘가? 책이 이끄는 힘에 대해, 좋은 문장이 주는 그 성취감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시를 다음에 쓰리라 믿으니까 좋다.
오늘부터 쉰다.
오늘부터 불타는 밤이다.
오늘부터 내 생일 130일 남았다.
오늘부터 그녀와 1일이다.
김단우, <오늘부터>
화끈하다고 해야 하나. 남학교나 여학교 구분 없이 이성 친구에 대한 불타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친구가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지금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몰입하고 있는 마음의 전쟁이기도 해서 이런 시가 나오면 환호성부터 나온다. “누구냐?”, “와우, 너?” 하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몇은 부러운 듯 박수를 치고, 몇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던진다. 오늘부터 사귀기 1일차이니 얼마나 설레고 좋을까. 피 끓는 청춘 때는 무엇보다 연애 사업에 먼저 나서는 이가 영웅과도 같은 대접을 받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래서 자주 등장하는 제목이나 단어도 ‘별’이기도 하다. 앞의 시에 나온 친구는 1일차 연애 사업에 돌진하고 있지만 다음 시에 나오는 친구는 보란 듯이 퇴짜 받은 이야기를 썼다. 연애 사업에 성공해서 모두의 부러움을 받으면 별도 달도 빛나는 그대로 좋지만 1일차도 못 지내보고 차인 친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밝은 별 밝은 달 밝은 너
내가 죽어 별이 되면
너는 별을 보면 울어 줄까
이현동, <별>
자기 스스로 큰곰자리 꼬리별이라도 될 듯이 자못 비장하면서도 허세스럽게 ‘나를 보고 울어줄까“’ 하고 말해보는 것이다.
첫 번째는 첫 만남이라 반갑고,
두 번째는 다시 만나서 반갑고,
세 번째는 친구 같아 반갑고,
네 번째는 가족 같아 반갑더라.
양승주, <반갑다>
힘들지 않아도 돼
힘을 내지 않아도 좋아
너의
발걸음에 맞춰 걸으면 돼
한발 더 나아가면 되니까.
○○○, <발걸음>
연이어 작당이라고 한 듯 연애 사업 보고를 한 격이다. 앞의 시는 짐짓 점잖은 투로 연애 사업인 듯 아닌 듯 말했다면 두 번째 시는 연애 편지의 한 대목처럼 한껏 목울대를 치켜 세우며 멋진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진심을 내보여야 하지만 말본새도 가다듬어야 한다. 번지르르한 말일지 몰라도 연애 소설을 읽든 시집을 읽든 어느 누군가의 말을 빌려서든 상대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가 제격이다. 극락조나 바우어새가 그렇듯 다른 이성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마땅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침대에 누우면
어김없이 나오는 그 녀석
내 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나를 괴롭히는 녀석
일어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지는 그 녀석
신현우, <모기>
한창 연애 사업이 지나니 중간 그룹의 시가 나온다. 쓰기는 해야겠고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고 해서 서둘러 쓴 시들. ‘모기’는 생각보다 쓸 게 없다. 왜냐하면 귀신처럼 나타나 피를 빨고 가는 느릿하지만 파리보다 영리한 듯 피해다니는 요물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그런 기술을 구사하셨지,
무슈?
그렇게 긴 다리로 뭐든 버티겠어?
그렇게 갈래갈래 찢어진 긴 다리로,
뭐 그렇게 기고만장해?
그건 네 무게 중심을 위로 들어 올려서
나한테 착륙할 때 공기처럼 가볍게
무게 없이 서기 위한 건가, 이 유령아?
한 여인이 너를 날개 달린 승리자라고 부르는 걸 들었어
게으른 베니스에서 말야.
넌 머리를 꼬리로 돌리며, 미소를 지었지.
물러터진 시체에서 나온
반투명의 유령 누더기 안에다가
어쩜 그런 잔악함을 심을 수 있지?
이상해, 그 얇은 날개랑 흐느적거리는 다리로,
어떻게 왜가리나 흐릿한 공기 덩어리처럼 항해할 수 있지,
아무것도 아닌 게.
그런데 무슨 후광이 널 감싸고 있네;
살금살금 돌아다니며,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네 사악하고 작은 후광.
그게 네 속임수야, 네 더러운 마법 말이야:
네 쪽으로 끌리는 내 주의력을 죽여버리는
보이지 않는, 마취하는 힘.
하지만 난 이제 네 수업을 알아, 이 줄무늬 마법사야.
이상하지, 어떻게 허공을 활보하고 배회하는지
원을 그리며 도망 다니면서, 나를 포위하는지,
날아다니는 송장 귀신아
날개 달린 승리자.
내려앉아서, 그 얇고 긴 정강이로 서서
나를 곁눈질하고, 내가 경계하는 것을 교활하게 의식하는,
너 이 작은 티끌아.
난 싫어, 내 적대감을 읽고
공중으로 비스듬히 휘청거리며 기어가는 너.
자, 그럼 우리 아무 견제 없이 놀자,
그리고 봐, 누가 이 멍청한 허세 게임에서 이기는지.
사람인지 모기인지.
넌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난 네가 존재하는 것을 몰라.
그럼 시작이다!
이번엔 네 패구나,
징그럽고 한심한 패로군,
혐오감으로 내 피를 뒤흔들어놓는,
너 이 뾰족한 악마야:
네놈의 작고, 높고, 증오스러운 나팔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왜 그러는 거니?
그건 확실히 좋지 않은 수야.
이젠 도리가 없대.
뭐 그렇다고 하면, 난 무죄추정의 원칙을 믿어볼까.
그런데 놀라운 함성이 들리네,
네가 내 머리 가죽을 잡아채는 승리의 함성이.
피, 붉은 피
초마술적인
금지된 술.
나는 네가 서 있는 것을 본다
잠시 동안 망각 속에 빠져 경련하는,
기분 나쁜 황홀감에 빠져
살아 있는 피를 빠네,
내 피를.
어떤 침묵, 어떤, 어떤 멈춰 선 도취,
어떤 게걸스러움,
어떤 불법의 외설.
너는 비틀거린다,
당연히 그러겠지.
너의 저주받은 털투성이 허약함,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 무게가 없다는 것이
너를 구원한다, 내 분노가 너를 낚아채기 위해 만든
바람이 너를 날려 보낸다.
조롱 섞인 승리의 찬가와 함께,
너 날개 달린 핏방울아.
내가 너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넌 나한테 너무 벅찬 상대일까?
날개 달린 승리자?
나는 모기를 능가하는 모기가 아닌 걸까?
이상해, 너는 희미한 상처만 남겼을 뿐인데
빨린 피가 얼마나 큰 얼룩을 만들었는가!
이상해, 얼마나 희미한, 번지는 어둠 속으로 넌 사라졌지!
D.H 로런스, <모기>
소설가로 널리 알려진 로런스의 ‘모기’는 그 당돌하고 희미한 존재에 대한 유쾌한 시각을 보여주는 시다. 이렇게 집요하게 대상과의 씨름을 통해 새롭게 보여주는 일도 필요하다. 로런스의 시를 짧게 줄인 것이 또한 ‘모기’이니 말이다. 좀 더 집중해서 씨름해 보면 특유의 허세스럽고 유쾌한 성격에 맞게 내용 있는 ‘모기’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아쉬움은 아직 시를 본격적으로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다.
엄마 차를 타고 갈 때
종종 보이는 터널
들어가면 주변에 보이는
노란 배경과 신비로운 바퀴 소리
터널에서 나오면
나도 몰래 아쉬운 느낌이 든다
○○○, <터널>
‘터널’도 ‘모기’만큼이나 할 이야기가 많은 대상이다. 초등학생과도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듯 진정 그 ‘아쉬운 느낌’을 뽑아올리기 어렵다. 어쩌면 두려움이나 불안일 수도 있는 내면의 이야기에 맞설 수 없어서 ‘노란 불빛과 바퀴 소리’로 뒤섞인 터널 안의 이야기를 얼버무리고 만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느낌을 잡아서 좀 더 나아가면 단박에 느낀 것이 아닌 고여 있는 마음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그런 점에서 다음에 나온 ‘문’도 마찬가지다.
열리고 닫히고밖에 하지 못하는 문
누군가에게 당겨지고 밀어져야만 하는 문
하지만 소리를 바깥으로 못 나가게 막아주고
또는 통로도 되어 우리를 도와주는 신기한 문
열리고 닫히고밖에 못하지만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신기한 문
선주형, <문>
고등학생이 되어 느끼는 ‘문’은 열고 닫는 문만을 뜻하지 않을 것이다. ‘문’은 좀 더 확장되어 문턱을 넘어 어딘가로 나아가야 하거나 다시 돌아올 자신의 영혼 같은 것을 받아줄 그 무엇이다. 사람들은 ‘문’이라고 하면 열고 닫는 기능만 있는 줄 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안의 소리를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반대로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를 막아주는 단순한 구실도 있지만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서 ‘문’과 ‘문턱’ 이야기를 해야 할 때이다. 아무리 시를 모르는 독자라고 해도 신기한 ‘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화자의 뜻을 알아채고 있다고, 단순하지만 않다는 것을 알고 또 다른 ‘문’으로 이끌어야 할 몫이 시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시는 짧게
인생은 길게
밤도 길게
유철희, <시>
‘시’는 어렵다. 또 끊임없이 ‘시가 뭐냐고?’ 묻는다. 도대체 시가 무엇인데 이렇게 머리 아프게 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뭘 꺼내놓도록 하는 것인가. 차라리 이러저러한 것 다 골치 아프니까 이렇게 말하고 종지부를 찍고자 할 수 있으면 그 용기 또한 가상하리라. ‘시는 짧고 인생은 길다’인지도 모른다. 시가 되는 것은 짧지만 살아야 하고 견뎌야 하는 밤의 길이는 길기만 하다는 것일까. ‘시’라는 도장을 파서 단번에 찍듯이 써놓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모습 또한 재미있다.
갖고 싶은 별이 있다.
높이 있어 갖지 못한다.
○○○, <나의 별>
앞서 나왔던 별과는 다르게 ‘꿈’이나 ‘목표’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지레 포기한 것일까. 또 다른 시일까. 안타깝지만 그 모습 또한 표현할 필요가 있고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감정을 읽고 물음에 답하면서 해답을 찾아가야 하리라. 그런 점에서 이번 코로나19바이러스 시절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어쩌면 ‘별’마저 찾을 수 없게 만들지도 모를, 모든 삶의 방식이 바뀔 지도 모를 상황이다. ‘자동화기계반’의 수민이나 순태가 느끼는 막연한 현실의 배경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또 다른 ‘기름공주’를 기대하면서 제목을 반겼는데 아직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껍데기만 있었다. 기초공장 밀링 가공 시간은 ‘기름공주’나 ‘기름미인’이 나올 수 있는 삶의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쭉정이만 있는 것이다.
충주공고 자동화기계반은 재미있다.
기초공작 밀링 가공 시간.
코로나 때문에 못 만났지만
직접 이제 만난 자동화기계반.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길 바랄뿐
그러면 더 친해지겠다.
친구들과
이수민, <자동화기계반>
나는 코로나가 싫다.
이 코로나 때문에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불편하게 생활하고
친구들과 마음 편하게 놀러 다니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 코로나가 싫다.
김순태, <코로나>
덧붙여 그동안 무엇이 바뀌고 달라졌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말해 보는 것은 어떤지 말해줄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글쓰기로 이들의 삶을 살펴보고 기록할 수 있는 여분의 시간이 있으면 모를까 한 번 다녀가는 것만으로는 턱도 없는 바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부터 어른들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를 넘어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는 ‘코로나19바이러스 시대’에 맞는 생각과 실천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솔직한 자신의 마음, 욕망일지도 모를 이야기를 한껏 꺼내어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끝으로 살펴볼 ‘난 돈을 쓴다’는 오늘 시 쓰기 수업 시간 단박에 요구한 것이지만 오래 생각해 왔다는 듯 잘 써낸 시라서 뜻깊다. ‘돈’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기 쉽지 않기에 흔히들 말하듯 ‘경제’를 알고 ‘정치’를 알고 현실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재치있게 보여주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난 돈을 쓴다.
주차장에 외제차를 세우고, 갤러리아백화점으로 들어간다.
구찌 후드티, 루이비통 벨트, 몽클레어 패딩, 가격표도 안 보고 쇼핑백에 담는다.
난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인생을 산다 모든 사람이 날 우러러보고 부러워 한다.
난 돈을 쓴다.
나는 너를 잃었다. 부족한 마음을 돈으로 채워본다.
돌첸가바나 선그라스, 발렌티노 바지, 에르메스 가방
이러한 걸로 너를 대신해 본다. 오늘도 밑 빠진 욕심에 난 돈을 채운다.
이준기, <난 돈을 쓴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부자가 되고 싶은, 상상만으로도 좋은 것이 ‘돈’이다. 역설적이게 쓸 때보다 손에 쥐고 있을 때가 더 행복하다고 하지만 아직 그런 것을 모를 때이기에 한껏 명품으로 채운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2연에서 ‘나는 너를 잃었다. 부족한 마음을 돈으로 채워’본다는 실토와 함께 ‘밑 빠진 욕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이자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다시 거꾸로 돌아가 ‘난 돈을 쓴다’는 말로 돌아가면 얼마나 허무한 말인지, 잃을 걸 알면서, 빠져 달아날 걸 알면서 저 이름난 상표들을 걸치고 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떠올려보면 알 것이다. 역시 같이 작당하여 ‘돈’을 밝힌(?) 친구가 한마디 한다.
밥 먹느라 쓰고
필요해서 쓰고
과금하느라 쓰고
어느새 돈을 빌리는
내가 있었다.
오민택, <돈>
그러다 ‘어느새 돈을 빌리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게 될 거야!’ 하고. 두 친구의 진심을 알기에 이런 이야기를 이어서 말하고 쓰는 일이 공부의 한 대목이 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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