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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야

시와 함께한 나날

by 참도깨비 2021. 8. 3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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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야

,고등학생 시를 중심으로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궁금함

 

지난해부터 중, 고등학교에 시 이야기를 하러 다니고 있다. 선생님들은 입을 모아 말씀하신다. “우리 애들이 수준이 좀 떨어져요.”

중학교 1학년이라 유치하고 말도 잘 안 들어요.”

남자애들이라…….”

여자애들이라…….”

실업계라 …….”

하루 종일 교실에 묶여 있고 별 반응이 없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말씀도 틀린 건 아니다. 별 흥미와 꿈도 없이 오로지 공부와 성적으로밖에 나눌 수 없는 아이들의 수준이라는 것이 유치하고 짓궂고 생각 없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자칭 시를 읽어주는 ○○○이라고 소개하고 나서, 시란 마음의 소리이자 경직된 사고가 아닌 쓸모 없어서 아름다운자신의 목소리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시를 쓰면 아이들은 180도 바뀌었다. 선생님들은 놀란 얼굴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나 잘 쓸 줄 몰랐어요!”하고 말씀하신다. 어찌 아이들이라고 생각이 없고 마음이 없을 수 있겠냐고 항변하고 싶지만, 원래 아이들이 그래요, 하며 웃음짓고 만다. 짧은 시간인데도 아이들이 쏟아내는 시들은 눈곱만 한 고민에서 저 우주에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이들은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눌러 담아놓은 고민과 자신들의 진로, 가족, 친구 관계, 학교 이야기 등 교과서 밖의 이야기를 터놓는데 시만 한 장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주와 나는 참 닮은 것 같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우주와

끝이 없는 나의 상상력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우주와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 나의 궁금함

온통 검정뿐인 우주와

어두운 색의 마음인 나의 두려움

이렇게 우주와 나는 참 닮은 것 같다

 

오인택(보은중학교 1학년), <우주와 나>

 

우주와 나는 무엇으로든 엮여있는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출발한 아이는 그것이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자신과 한 교실로 엮여있는 친구와의 관계, 무엇이 되라 말하는 막연한 미래라는 두려움과 닮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것부터 말할 수 있어야만 우주란 것이 장밋빛 미래처럼 그리던 사생대회의 우주가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주라고 쓰고 그것을 끝이 없는’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어두운 색의 두려움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자신의 마음을 다 드러내지 않은 채 조금만 보여주는 것이다. 시를 이야기하는 시간은 바로 그런 것이다. 시를 읽어주는 시간이면 아이들은 위의 시를 듣고 나직한 탄성을 지른다. ‘그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말하는 듯 조용히 박수를 친다.

그렇다, 아이들에게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고여 있다. 그것이 유리처럼 내다보이는 것이어서 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유리 너머로 행복이 보였다

유리 너머로 재앙이 보였다

유리 너머로 가족이 보였다

마음 속에서 행복이 나왔다

마음 속에서 재앙이 나왔다

마음 속에서 가족이 나왔다

유리 너머 마음 너머에서 오는

여러 감정, 소중한 것들, 소중한 사람

유리는 마음과도 같은가?

 

김태욱(보은중학교 1학년), <유리>

 

왜 아이는 행복재앙가족을 꺼냈을까. 유리 너머, 마음 너머에서 오는 것이지만 막연한 두려움처럼 그 너머에서 수시로 실체를 바꾸곤 하기 때문일까.

 

녹슨 창문 뒤로 시원한 하늘이 보인다.

아무리 열려고 애를 써도 굳게 마음을 먹고 닫혀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내가 왜 창문을 열려고 하지?’

라는 생각으로 포기하고 싶었을 때.

창문이 열림과 동시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아아, 이것 때문이었구나.

 

임세하(충주여고), <창문>

 

아이들은 하루 종일 갇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일을 기약하며 행복을 위해 가족을 위해, 무엇 때문에 답답하고 불안한지 알면서도 창문처럼 가로막고 있는 투명한 슬픔과 아픔을 말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코 시원한 하늘이 보이건만 땀을 뻘뻘 흘리며/’내가 왜 창문을 열려고 하지?’라는 생각마저 못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음을 비우거나 내려놓을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짧은 감탄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판다가 대나무만 먹는다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게 전부가 아냐

판다는 다른 것도 먹는다

우리는 별이 작고 반짝거린다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게 전부가 아냐

별은 매우 크지만 멀리 있어 작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나쁜 친구를 보면 모든 마음이 나쁘다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게 전부가 아냐

그 친구도 좋은 점과 좋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 가지만 보고 그 한 가지만 알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게 전부가 아냐

어딘가에는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유은성(보은중학교 1학년), <우리가 아는 게 전부가 아냐>

 

어쩌면 아이들을 스스로 가두는 고정관념과도 같은 생각들은 어딘가에 다른 점이 있을 것임을 모르도록 만든 어른들의 현실 논리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구름마저 순위경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드는 끝없는 유한의 논리. 훌륭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신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개미를 점같이 작다고 한다

기린은 사람이 점같이 작다고 한다

가장 높이 나는 새는 기린이 점처럼 작다고 한다

우주비행사는 가장 높이 나는 새가 점 같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같은 데서 재면 기린이 제일 크다

 

송영원(보은중학교 1학년), <>

 

분명 기린은 우리가 잴 수 있는 현실의 높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모두 같은 데서 재면우위마저 의미가 없는 일임에도 현실의 비유법은 ‘~같이’, ‘~처럼우위에 있거나 내려다보는 점을 유쾌하게 바라보도록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싸움에 지친 아이는 비교우위의 이 아니라 그저 푸른 멍이자 얼룩이기도 한 상태임을 말하고 싶다. 어디로든 긋지 않으면 선이 되지 못하고 에 지나지 않는 답답함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한 점의 고민으로부터

 

잘난 아들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이도 저도 아니게 방황해서 미안해.

이제 잘해야지 했는데 잘하지 못해서 미안해.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가 되어서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가 되어서 또 미안해.

책임을 돌린 것도 미안해.

그냥 그저 미안해.

 

이채운(보은중학교 1학년), <미안해>

 

그래서 시보다 어려운 것이 각자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마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한 의 마음에서 어디로든 긋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한참 사춘기가 올 나이 중1 사춘기라 그런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싫다

이마에 난 여드름부터 못생긴 얼굴까지

모든 게 다 싫다

 

이동규(용암중 1학년), <사춘기>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서로 처해있는 자리는 다르지만 분명 감정이나 나이 모든 면에서 정체停滯중인 것이다. 여드름 덕지덕지 앉은 모습이 다 싫다고 말하는 중학생이나 평생 보지 못한 전부를 비춰주는/거울을 바라보는 여고생이나 꿈틀거리는 마그마와도 같은 감정 덩어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강박이 만들어내는, 철저하게 드러내도록 비추는 거울 앞에서 본의 아니게 발가벗겨진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거울

내 모습, 친구의 모습

전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 거울

나도 모르는 나의 표정과 모습,

평소 보지 못한 전부를 비춰주는

거울

가끔은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가끔은 못생기고, 화가 나는 거울

너가 비춰준 것들, 보여준 것들을 보면서,

오늘도 난 배우고, 어른이 된다.

저 멀리 다른 세상에서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지켜주렴.

 

임다빈(충주여고), <거울>

 

푸른 점으로 보이거나 얼룩으로 보이는 점이 자신을 집어삼킬 듯 보이게 만드는 것도 거울효과이지 않을까.

 

살면서 누구에게나 묻는 얼룩

사람들은 얼룩을 씻고 싶어 한다.

씻겨지는 얼룩도 있지만

씻겨지지 않는 얼룩도 있다.

굳이 닦아내야 할까?

닦아내지 않으면 그것만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게

아닐까?

이원희(청주공고), <얼룩>

 

불편하다

무한대의 주머니를 유한의 구슬로 채우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섣부른 피아노 연주회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마찬가지일 뿐이었다. 왠지 모를 심장 박동의 의미가

이제야 밝혀진 듯하다. 몸에 열이 오르고

심지어 균형점까지 빨개진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는

빙하가 되어버렸다.

 

― ○○○(영동고), <푸른 점>

 

비가 동그리도 내렸던 그날

나는 책 한 권을 주웠습니다

터져버린 흙먼지가 오르내리고

빗물이 울어내리는 그 속에서

책장을 넘겼을 때

나의 손은 검은색 글씨되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비에도

 

강민진(충주여고), <글씨>

 

여러 학교를 다니며 시를 교차해서 읽어주다 보면 이런 들은 맞아요. 내 마음이 이래요!’하며 급속하게 감염되는 것을 보게 된다. 분명 불편하고 몸에 열이 오르도록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현실 앞에서 아이들은 자신 안으로 촉수를 집어삼키는 원형 생물처럼 변하는 것을 감수한다. ‘무한대의 주머니유한대로 채우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푸른 점으로 꼭꼭 감추어서 무슨 뜻인지 의아해하다가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레 꺼내놓는 들은 상처이자 얼룩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굳이 닦아내지 않아도되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겠느냐며 말하는 것이다. ‘푸른 점으로 문을 닫기도 하지만 뭐가 어때서요?’ 하며 강변하고 싶기도 한 것이다. 다르다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야 골백번 강조해도 모자라는 진리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더 많이 괜찮다, 괜찮은 거야하고 말해주어야만 정말 그래도 되는 줄 안다. 가까이는 자신이 자리한 곳이 충분히 행복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뜬구름 잡던 꽃이 대충 폈다.

그 꽃들을 헤아리다 보니 문득 생각이 났다.

구름 위의 세계는 어떨까?

여기보다 더 행복할까?

여기보다 더 아름다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곳이 여기보다 더 행복할지 아름다울지는 몰라도

확실한 건 여기도 충분히

행복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서지훈(보은중학교 1학년), <구름 위의 세계>

 

똑같, ‘변함없는것이 아니라 충분히 다를 수 있고, 그것이 이상하다고 손가락질하고 교정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그때 가면 알게 된다고, 지금만 잘 참으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구름 위의 세계에 행복하게 누릴 보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뜬구름 잡는 꽃이라고 말하는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할까. 다르기 때문에, 그런 다른 부분이 있기에 진정한 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어야 당연하다.

 

내 친구들과 다른 부분이 조금 많다

하지만 다행히도 안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친구들 반응은 이상하다고 하는 걸까?

 

나는 친구들과 좋아하는 것이 조금

다르다

그냥 조금, 사람이 다른 것뿐이다

그런데 왜 이상하다고 하는 걸까?

 

친구들과 생각하는 것도 조금

다르다

그냥 조금, 관점이 다른 것뿐이다

그런데 왜 이상하다고 하는 걸까?

 

하지만

정말 이상한 건 따로 있다

친구들에게 이상하다고 하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낸다

그게 진짜 이상한 건데

 

최나림(용암중학교 1학년), <다르다는 것>

 

구름들은 정말 하늘 높이 떠 있다.

그 구름 중에도 높이가 각각 다르다.

높이 있는 거, 그거보다 낮은 거,

그거보다 높은 거

평화로워 보이는 구름 속에도

순위경쟁은 있나 보다.

 

김동원(금천중학교 1학년), <구름>

 

삶은 똑같은 것 같다.

학교 갔다, 학원 갔다

집 갔다.

 

삶은 똑같은 것 같다.

 

오르골이 시작하면

삶이 시작된다.

 

오르골이 고장 나면

나에겐 그 시간이

혼나는 시간일 것이다.

 

오르골이 멈추면

나에겐 주말일 것이다.

 

바빴던 하루하루가

나에게 주말로 행복해진다.

 

김현종(보은중학교 1학년), <똑같은 삶>

 

더 이상 똑같은 삶이길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오르골처럼 고장 나면 멈춰버리는 것이 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은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사람의 다른 숭고함인 것이다.

 

사람들이 보는 관점은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검정색,

어떤 사람은 빨간색으로

보인다.

 

또는 다양한 색이

보이기도 하고,

노란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색맹이라서가 아니다.

환경이 보이는 색을

정할 뿐이다.

 

― ○○○, <색맹>

 

어디까지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색맹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말하고 싶다. 이런 관점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교과서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되풀이해서 말해왔지 않은 가. 그러나 현실은 요지부동으로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을 오역하여 강요하고 있기만 하다.

 

복숭아는 부드러워

마치 어린이처럼

 

복숭아는 이뻐

마치 어린이처럼

 

사람은 모두 특별해

마치 복숭아 색이 다 다르듯

 

사람은 각자 다르지만

그것이 틀린 건 아니야

 

박은혁(감곡중학교 1학년), <복숭아와 어린이>

 

아직 어린 티를 못 벗어서 그렇지, 그것이 하루아침에 의젓해지고 철이 들어서 기계처럼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그 나이만큼 성장하고 늙지 않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복숭아와 어린이처럼 이쁘게 성장하는 것이지 어느 시점부터 자기다움을 버리고 늙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먼 친구도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아이들은 충분히 아이들답다. 여드름 짜던 손으로 까다로운 시를 읽어주러 온 사람을 시인으로 대접해주며 환호하며 자기 맞춤형 시를 꺼내 보여준다.

 

오늘은 학교 가기 좋은 날

오늘 급식은 잔치국수

1교시는 졸리다

2교시는 힘들다

3교시는 고통이다

4교시는 괴롭다. 드디어 급식 시간

알고 보니 잔치국수는 내일 급식이였다.

 

이재호(감곡중학교 1학년), <급식>

 

복숭아로 이름만 마을에 가서 살아생전 복숭아 한 개 먹여드리지 못한 장모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줄 아는 먼 미래의 신랑들답다. 그러면서도 배고프고 졸린 시간을 가까스로 견디며 오늘 하루를 연명하게 하는 급식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아직은 교실 안이 친구들로 복받치기 때문에 견딜만 하다는 듯 서로가 쓴 시를 읽어줄 때마다 부러움과 동조 어린 감탄사와 박수로 응답한다.

 

친구는 가장 가까운 친구도 있고

가장 먼 친구도 있다

친구를 가리는 것은 좋지 않다.

가장 먼 친구도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같이 놀고 같이 웃고 하는 친구처럼

점점 가까워지는 친구처럼

같이 노는 친구처럼 모든 친구들은 내 친구.

 

김영후(감곡중학교 1학년), <친구>

 

위의 시를 당장 화장실에 걸어야 한다고, 유명한 위인들의 말만 걸어놓을 게 아니라 이런 시를 걸어놓아야 한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시인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집안 일을 돕는 식구 노릇을 해내는 아이도 시인이다. 선생님이 가장 놀라기도 한 그날 바다에 대해서 말한 아이도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시인임을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복숭아 농사를 하는 우리 집을

부럽다고 한다.

복숭아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부럽다고 한다.

 

하지만 복숭아 농사가 더 힘들다.

가지치기, 가지 모아서 버리기, 봉지 까기,

농약 치기, 복숭아 따기, 복숭아 선별하기 등등

 

복숭아는 맛있지만 복숭아 농사가

더 힘들다.

 

정은혁(감곡중학교 1학년), <복숭아 농사>

 

그날 바다는 잔잔한 것 같았다.

하지만 파도는 점점 거세졌다.

방송에도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가 있을 뿐

다른 명령은 없었다.

 

계속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을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 때문에 바다로 뛰어들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붙잡았다.

 

배는 기울어져 갔고 결국 못 믿은 사람들은 스스로 뛰어

내렸다. 명령을 따른 사람들은 배와 함께 사라졌다.

 

심상준(감곡중학교 1학년), <그날 바다>

 

점을 이어 선을 긋는 아이들

 

아이들이 시를 쓰면서 확인하게 되는 사실 가운데 하나가 가족이다. 가족을 이루고 있는 한 구성원으로서의 도 있지만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을 줄 아는 아빠’, ‘엄마언니들이 있다. ‘라는 점을 이어 선을 그으면 그것이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고 사회가 되고 역사가 됨을 알아가는 것이다.

 

가족사진에서 제일 어색한 사람

우리 아빠.

 

우리 아빠의 모습은 얼굴은 억지라도

웃곤 있지만

축 늘어진 어깨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다리

 

사진이 어색한 우리 아빠

사진사는 아버님, 웃어보세요~!”

아버님, 웃어보세요~!”

그 말한 계속 외친다.

 

김향희(봉명중학교 1학년), <아버님 웃어보세요>

 

사진첩에서 보기 어려운 사람, 늘 가족 사진에서 빠져 있는 사람이 아빠이지?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대부분 공감한다. 늘 어색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 아빠의 자리가 느껴지는 시다. 중학생의 눈에나 자격증을 따서 얼른 독립하라고 하는 실업계 고등학생의 눈에도 사실 서로짠해 보일 수밖에 없는 빈자리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무일 없이 잔소리를 하신다

중얼중얼중얼~

 

― ○○○(청주농고), <아버지의 잔소리>

 

학교를 끝내고 집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저녁 준비를 하시는데

맨날 샤워하기 전에 잔소리를 하신다

너는 언제 자격증을 딸 거야! 옆집 애는 벌써 땄는데.”

같은 소리를 하시는데

매번 서운하다

아직 1학년인데

 

― ○○○(청주농고 1학년), <잔소리>

 

아부지는 술 먹고 살만 하냐 묻는다

나는 그냥 으응 한다

아버지는 힘들겠지 위로받았음 하겠지

그래서 그냥 으응 했다.

 

― ○○○(영동고), <위로>

 

얼마나 의뭉스러운가. 서로 잘 알면서도 더 따뜻한 말로 위로해주지 못하는 지점에 가족들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서운하기에 더 위로받고 사랑받았으면 하는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퍼즐처럼 나눠져버린 큰 그림판 앞을 끝없이 맞춰나가는 노역을 해야 한다.

 

꽃잎이 4개인 꽃 한 송이

꽃잎도 색깔이 다 다르네

하나는 분홍색, 하나는 푸른색, 또 하나는 붉은색, 그리고 마지막 잎은 흰색

 

시간이 지날 때마다 한 잎씩 떨어지는 신기한 꽃

이 꽃을 볼 때마다 생각하겠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가는구나 빠르기도 해라

 

누군가는 잎이 빨리 떨어지길 바라고

누군가는 잎이 늦게 떨어지길 바라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지 어차피 시간은 똑같이 흐르니 언젠가는 떨어질 텐데

 

난 이 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나이가 드는구나

시간아 빨리 가라

아니 둘 다 아니야

난 이 꽃을 보며

! 한 잎 떨어졌네. 이제 곧 시험이겠다, 하는 생각을 해.

시험이 두 글자를 젤 먼저 생각하게 하는 꽃의 이름은 뭘까?

 

정민(금천중학교 2학년), <꽃의 이름은?>

 

이렇게 물음을 던지는 것만으로 시가 되고, 그 시를 통해 화자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위로를 받는다고 말한다. 아직은 감정에 서투른 존재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알 듯 모를 듯 감추어놓은 지점을 아프게 건드리지 않고 이해해 줄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마음 한켠 꾹 눌러 담아놓은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저수지처럼 고여 있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산을 굽어 굽어 길 따라 걸어 올라가면

저 멀리 저수지는 기다리고 있다

가는 길 외롭지 말라고 잎 없이 피어

나보다 더 외로운 진달래는 피어있고

너와 나는 잠시나마 인사해 외롭지 않다.

 

산 밑에서 기다리는 어른들은

내가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곳이란 모두가 남아 있고 나아가는 곳

아직 못 만난 저수지의 곁이 아니다.

 

겨우 광활한 웅덩이를 만나면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속 한 켠 꾹 눌러 담아온 새들을 날려보낸다.

내 몸속에서 시끄럽게 노래하며 날 좀먹던 새들은

미련 없이 산이 펼쳐진 골짜기로 떠난다.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고 다급하게 마음속 싹이 재촉해온다.

아쉬운 감정에 발길은 시원찮다만 끝내 내 충동을 뒤로 하고

진달래를 만나러 어른들을 만나러 산 밑으로 향한다.

 

김연화(청산고등학교 2학년), <저수지>

 

다시 되돌아 아이들이 체념부터 배우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다르고 다르다는 말처럼 너는 언니랑 다를 줄 알았는데다르다는 말은 앞서 말한 충분히 다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공격본능, 파괴본능의 말임을 알아야 한다.

 

엄마는 말한다.

너는 언니랑 다를 줄 알았는데

엄마가 한숨을 쉰다.

나는 말한다.

나는 언니랑 다르다고.

엄마가 그만하자며

또 다시 한숨을 쉰다.

 

다른 날이 되어서는

엄마는 말한다.

언니와 다르게 왜 그러냐고

그리곤 다시 한숨을 쉰다.

나는 체념하곤

생각을 해본다.

언니는 언니인데.”

 

이승원(금천중학교 1학년), <언니>

 

한 번쯤은 내 자신을 토닥혀주고 싶다

 

아이들은 반면교사다. 앞서 읽어준 시를 들으며 자신을 추스르고 나눌 줄 안다. 무엇보다 위로받고 싶고 자기 자신인 채로 인정받고 싶어한다.

 

내 일상은 항상 똑같다.

학교를 가고, 학원을 가고, 밥 먹고 자고……

 

일상이 항상 똑같이 싫증이 나기도 한데

나는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버텼을까?

 

나도 사람이니깐 학교 가기 싫은 날

학원을 땡땡이 치고 싶은 날

비뚤어지고 싶을 때가 있다

 

나에게 지금까지 잘 하고 있었다고

한 번쯤은 내 자신을 토닥혀주고 싶다.

 

오늘도, 수고했어.

 

오수빈(금천중학교 1학년), <일상>

 

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닌데

왜 자꾸 다른 마음인 거지?

어디서 온 마음일까?

 

나는 내 마음이 좋은데

다른 마음이 따라오네

 

나쁜 마음이 따라오는 거 같아.

그 따라오는 마음이

착한 마음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마음 나쁜 마음 떨쳐내고

좋은 마음을 받아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좋을까?

 

김상태(용암중 1학년), <마음>

 

이렇게 아이들은 별과도 같은 자신의 빛남에서 선을 그으려 하는 시기에 있다. 충분히 고민하고 생각할 줄 알기에 생동하려 한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무엇에 비추어 보면 또 다른 얼굴의 나로 바뀌고 역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말하지 않아도 삶이 충분히 아프고 고달프다는 것도. 점을 이어 선을 만들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어설프기도 한 나이란 것도 알기에 슬프고 아름답다는 말도 할 줄 안다.

 

비가 옵니다

밖으로 나가봅니다

진흙 웅덩이가 생겨서

발을 담궈 봅니다.

무언가 아쉬워서

다리까지 담궈 봅니다

아직도 아쉬워서

몸을 굴러봅니다

집으로 돌아와

몸을 씻어도 아직

내 맘은

더럽습니다

 

최관호(청주공고 1학년), <더러운 마음>

 

삶은 고달프다.

고달픈 나의 삶이여.

삶은 어렵다.

삶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나는 이 미로 속에 있는 많은

생명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이 미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미로의 공간이 간격을 좁혀

나를 위협한다.

이 좁은 미로를 빠져나가는 것은

삶의 성공이다.

미로를 넘어섰다면 이제 더 넓은

우주도 넘어가 보자.

이것이 바로 삶이다.

 

고규연(금천중학교 2학년), <>

 

여러 가지의 죽음의 길

한 번의 죽음

한 번의 삶

한 번의 결혼

한 번의 고등학생

한 번의 중학생

한 번의 초등학생

한 번의 탄생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인생

 

이해강(청주공고), <인생>

 

삶이자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도’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흔들리지 않는 민들레를 보고 자신 삼을 수 있도록 어깨를 토닥여 주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이룰 수 없어 신이 되고 싶다거나 아무 꿈도 없어 꿈을 꾸지 않는다는 시니컬한 애어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반짝이게 만들어야 한다. 반짝이기나 할까 하고 의심하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민들레가 되고 싶다

나는 민들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민들레는 강한 꽃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도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고는

결국 자신만의 예쁜 꽃을 피운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고난도

어떤 역경도 이겨내고

나만의 빛을 낼 수 있는

그런 사람

 

권은율(금천중학교 1학년), <민들레>

 

별은 반짝인다.

왜 별은 반짝일까?

뭐가 좋으라고 반짝일까?

나는 언제 반짝일까

과연 나는 반짝일까?

 

연찬흠(청주공고 2학년), <>

 

아이들은 스스로 빛나는 별이다. 빛나지 않을 거라는 의심 없는 그 자체로 있어야만 한다. 길거리의 꽃처럼 아름다움으로 빛나도록 배웅해 주어야 맞다.

 

길거리에 핀 꽃들을 보라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림 속의 그들을 보라

아름답지 아니한가

 

아무런 말 없는 그들을 보라

아름답지 아니한가

 

수많은 소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9

말 없는 이들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신정섭, <말 없는 이의 아름다움>

 

만화책 한 권과 다음 권

드라마 한 편과 다음 편

소설책의 한 장과 그 다음 장

 

모든 이야기들이

적절히 맺어져 새로 시작되는데

 

나의, 그리고 내 주변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시작해야 할 좋은 시기는

매듭지어야 할 좋은 시점은

 

과연 언제인가요

 

박선하(충주여고), <관계>

 

이렇듯 아이들은 점과 선을 거쳐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기이다. 그래야만 새로운 세계를 만나 마땅히 그 세계와 하나가 되고 살아온 기적으로 살아온 열정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않을까.

 

사라진다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사라졌다는 것도 아무도 모른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다.

늘 이렇게, 상처만 주고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난 사라진다는 것을 모른다.

그렇기에 내일을 버틴다.

 

이젠 나도 붙잡지 않으려 한다.

기적을 믿으며 난 하루를 산다.

 

오늘을 살아온 기적으로, 난 내일을 살아간다.

오늘을 살아온 열정으로 난 내일을 만들어간다.

 

이제야 사라지지 않는다.

치열하게 살아간다.

 

박미소(충주여고),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

 

안 될 게 뻔하다고 믿기 시작하고 포기하게 되면 아이들은 텅빈 집이자 슬픔우울고립의 관계 속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굳이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요즘이 란 시처럼 지쳐가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시로 소통할 수 있는 자리들을 교과서와 교실 틈바구니로 들이밀어야 한다. 거대한 학교마저 아이들을 돕는 방법이자 구실이 되어야 한다.

 

바다가 있어

한없이 깊고도 푸른 바다

사람들은 그곳을 슬픔이라 부르지

이따금 그곳에 누군가가 빠지면

어떤 이들은 쉽게 헤엄쳐 나오지만

어떤 이들은 하염없이 가라앉아

손을 잡아달라 애처로이 외치지.

 

이따금 그곳을 내다보긴 했어도

그곳에 있는 사람을 구해주지는 않아

그곳에 가본 적이 없는 이들은

얼마나 그곳이 깊은지 모르거든

얼마나 푸른지

얼마나 무서운지

가라앉아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사람들은 그곳을 우울이라 부르지

사람들은 그곳을 고립이라 부르지.

 

○○○(청산고), <바다>

 

이제는 그만 다니고 싶은 학교

성인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

하지만 학교에서 졸업하고 꿈꾸던

일들, 하고 싶은 일들…….

 

빨리 졸업하고 싶은 마음

나중에는 학교가 그리워지겠지만

지금은 벗어나고 싶은 학교

점점 지쳐가네.

 

한민규(청산고), <학교>

 

 

*이 글은 충북교육도서관이 주관하는 2018년~2019년 찾아가는 독서문화학교 기간에 나온 학생 시를 중심으로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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