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은 자신의 어머니이자 지구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나무와 풀을 만나면 절을 한다. 그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도 서로 덕분이라며 맞절을 한다. "작은 일에 손 모아 고마워하고 서로 짝을 맞춰 키 잴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미움과 외로움과 슬픔과 잘 지내고, 사랑과 즐거움과 기쁨은 잘 누리고" 사는 일이야말로 어머니와 자궁과 밥상의 말씀이기도 해서 고마운 것이기에 덕분이라는 다시 시를 쓰는 것이다.
누가 문 앞에 놓고 간 노각무침
늦은 텃밭에서 따낸 풋고추조림
오이, 골파, 무청, 무로 지은 물김치
한 달에 두 번 보내는 흙살림 호박전 부침
아내가 몰래 보내드린 뚝대기 우족탕
손수 지은 강낭콩 올려 눈물로 지은 밥 한 그릇
일찍 내려가는 막내아들의 밥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느닷없는 말씀,
아범, 술 한잔 할려?
더 함께 있고 싶은 아름다운 꼼수
섬동, <늙은 어머니의 새벽 밥상>
어머니를 끼고 있는 이야기 가운데 거룩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그런 어머니가 아들의 바쁜 마음을 붙잡으며 '아름다운 꼼수'를 보여주는 것은 늘 잊고 있었던, 그래서 시를 쓰게 하는 '따뜻한 언어이자 마음'인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말과 마음으로 보면 지구 한쪽의 전쟁 소식이나 일그러지는 자연 한 대목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자 평화임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발문 대신 넣은 시인의 산문 <밥 이야기>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밥은 한 송이 꽃이자 지구 어머니의 사랑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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