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꽃'이란 출판사가 있다. 새 그림책이 나올 때마다 도서관에 증정본을 보내주는 작은 출판사여서 작은도서관과 끈끈한 이야기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주로 신진 작가들을 길러내는 출판사 같다. 오소리 작가를 소개한 글에 눈에 띄는 부분은 이렇다. "어린 시절 상처도 받고 위로도 받으며 마음이 자라던 기억과 놀이공원, 공장, 골프장 등에서 일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작업하고" 있다고.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저마다의 시선으로 즐겁게 읽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것도.
요즘 그림책이 그런 것 같다. 부모가 읽어주는 그림책에서 이제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흐름으로 바뀐 것 같다. 아름다운 그림과 글에 빠져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났으면 하는 것에서 좀 더 자기 주체성을 들여다보도록 갖춰진 주인공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오소리 작가의 <노를 든 신부>도 그렇다. 외딴 섬에 사는 심심한 소녀가 주인공이다. 모든 이야기에서 '심심하다'는 것은 중요한 지점인 듯하다. 그래야만 어떤 일을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을 권하는 세상에서 옛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내 복으로 산다'는 마음이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짝을 만나 떠나는 섬에서 심심한 소녀가 '신부'가 되어 모험을 떠나겠다고 하자. 소녀의 부모는 허름한 드레스와 '노'를 선물로 주고 모험을 축하해 준다. 어떤 상황인지 전혀 말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일은 모두가 소녀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을 '노'는 말해 준다. 외딴 섬을 벗어날 배를 위한 '노'가 아니라는 것은 첫 번째 고개에서 밝혀진다. 신부가 된 소녀도 처음에는 몰랐지만 두 개의 노(짝)가 있어야만 섬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에 다른 길로 접어든다. 산 꼭대기에 올라간 배를 만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상누각처럼 헛된 일이라는 걸 안다.
그림은 한 편 한 편이 미술관에서 보듯 캔버스에 들어있는 그림처럼 단순하고 강렬하지만 그만큼 간결한 이야기 토막을 따라 사냥꾼을 살리는 '노'로 거듭 나고, 과일을 따고 요리를 하고, 곰과 싸우는 도구가 되기도 하면서 소녀는 당당한 캐릭터로 변해 간다. 결국 아랫 동네의 야구 하는 사람들을 만나 '노'는 홈런을 만들어내는 소녀의 꿈이 되는 결말. 추운 나라의 야구팀에 스카우트되어 가는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소녀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오로지 눈이 내리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썼던 '10월'이란 시가 떠오른다.
산수유로 만든 루비 반지를 끼고
가을식장에 나가야겠다
오늘의 주례는 오늘
곧 주름 지고 물러버릴 시간은 버려두고
가을 햇볕으로 화장을 하고
신부가 되는 거다
당당하게 혼자 걸어 들어가
10월과 결혼해야지
빠르면 3월이나 5월의 아이를 낳고
또 10월이나 11월을 기다리는 거야
더는 이별할 것이 없는
이별하더라도 다시 낭창거리는 하늘 아래
구름처럼 울고 불을 지르는 거야
졸시, <10월>
어느 정도 접점은 있는 듯하다. 짜릿하다고 할까. 그런 마음을 알 것 같은 <노를 든 신부>. 아이에게 읽어줄 때, 어른에게 읽어줄 때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 같다. 서로를 갸륵하고 당당한 존재로 바라보며 '노'를 발견하는 시간. 외로운 길이지만 타자에 비추어 자기를 만들어가는 그럴 수밖에 없는 길 위에 모두가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말을 배워가는 어린 아이부터 글 읽는다고 그림책 세계에서 일찍 은퇴해 버린 아이들, 어느 누구와도 함께 읽으며 '당당하게 혼자 걸어 들어가'는 가을식장과도 같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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