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과 어머니는 다시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그 물고기를 보았다. 그곳에서 어슬렁거리던 물고기는 두 사람이 다가가자 몸을 틀어 조심스럽게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 물고기는 근육을 약간 실룩거리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앞으로 조금 다가왔다. 커다란 아가미가 부채 모양으로 펼쳐졌다. 갑옷을 두른 듯한 비늘이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초록색과 까만색 비늘 띠들이 나란히 뻗어나가면서 황홀한 푸른색으로 한데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루퍼는 전혀 힘들이지 않고 움직였다. 그 물고기는 굉장히 멋졌으며, 아벨이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이런 식으로 중간 중간 중요한 부분을 읽어주면서 이야기해 볼 거야."
처음 이 책을 고르면서 어렵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환경동화라고는 하지만 두꺼운 소설에다 아이들이 접하지 못한 바다 이야기라서 말이다. 아니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라서 아벨과 그의 어머니 도라 잭슨의 삶이 쉽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껍지만 이거(갈피끈) 넘겨가면서 읽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혜인이 말에 따르면 벅찼지만 그래도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재미처럼 다른 구석도 있었다는 것 때문에 읽어주는 것은 필수일 것 같았다.
"다들 읽어는 왔겠지?"
딱 한 사람, 보형이만 안 읽어오고 다 읽어왔단다. 놀랍다.
"저는 세 번이나 읽었어요."
민우가 사람을 놀라게 한다.
"(그렇다면) 저는 백 번 읽었어요."
혜인이가 지지 않고 자랑을 한다.
"오우, 그럼 민우가 짧게 요약을 해볼까?"
"그럼, 안 읽었어요."
금세 꼬리를 내리며 입을 닫는다.
"그러지 말고 읽어왔다니 한 번 해 봐."
"그루펀가 하는 고기를 만나 바다를 지키는 어머니와..아들 이야기..."
얼버무렸지만 골자만은 확실하게 말한 덕분에 오늘 수업을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지, 잘 했어.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꼭 세 번이 아니더라도 읽어 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조금만 읽어주면서 이야기해 보면 좋은 글이 나올 것 같았다.
"민우가 요약한 것처럼 여기에는 조상 대대로 바다를 지켜온 잭슨네 사람들 중, 아벨과 그의 어머니 도라 잭슨 이야기지? 너희들은 금방 읽어준 것처럼 이런 순간을 만난 적이 있을까?"
"없는데요."
"그러니까 숲에 들어갔다가 새 소리에 이끌려 발을 멈추고 가만히 들어봤다거나."
"전혀!"
"숲에 갈 일이 없어요."
김을 새게 만드는 특유의 심드렁한 말투들!
"가족들과 바다에 갔더나 냇물에서 고기를 잡았을 때 느끼는 기분도 있잖아."
"별루!"
말은 그렇게 하지만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아빠랑 어디에서 고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렇지, 그 고기를 보면서?"
"그냥 고기들이 불쌍했어요. 갇혀 있으니까."
그래도 지원이가 어렵사리 꺼낸 말로 그나마 분위기를 이어갈 수는 있었다.
"맞아, 너희들은 그냥 즐겁게 놀기만 했을 테지만 바다 밑에서 블루백을 만난 순간을 상상해 봐. 어땠을까?"
"무서웠을 것 같아요."
"상어를 만나면 어떻게 해요. 호랑이상어."
그래도 호랑이상어 이야기가 나오니 참아주기로 했다. 아벨과 어머니가 바닷속에서 블루백을 만나는 순간을 읽어주면서도 아이들이 이런 순간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본다면 책 읽기는 아주 수월할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아벨과 어머니는 이 바다와 이 땅에서 살아왔다. 잭슨네 집안은 백 년이 넘는 동안 여기서 이렇게 살아온 것이다. 롱보트 만의 땅은 고래잡이를 하던 시절 이래로 그들의 것이었고, 주위의 땅은 모두 국립공원이었다. 과수원 너머 관목지와 숲이 시작되는 곳에는 자그마한 가족 공동묘지가 있었다. (줄임)
아벨과 어머니는 그들 나름대로 고기를 잡고 과일과 야채를 가꿨다. 오리와 닭을 쳐서 고기와 알을 마련했고, 염소 한두 마리를 키우면서 그 젖으로 우유를 대신했다. 롱보트 만으로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빗물말고는 물이라곤 없었으며, 텔레비전도 없었다. 그들처럼 사는 것은 때때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아벨은 그와 다른 방식의 삶을 전혀 몰랐다. 아벨은 날마다 국립공원 숲 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바다에서 헤엄쳤다. 가끔 외롭기도 했지만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아벨과 어머니는 집안 대대로 살아온 그곳을 지켰지.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었잖아. 경기 화성에 시화호 근처에 살던 사람들 말이야. 갯벌을 끼고 조개나 낙지 같은 걸 얻고 살았는데 나라에서 공단을 만든다고 수십 년 일해서 얻을까 말까 한 돈으로 보상받고 사람들도 떠났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
"맞아요. 도시로 가면 그 돈도 얼마 되지 않은 거예요."
똑똑한 아이들!
"그렇지, 처음에는 그 돈이 큰 돈이었겠지만 평생 바다일만 하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았겠어?"
"네, 수산시장에서 아르바이트나 할 수 있었을 거예요."
지원이 말이 그럴 듯하다. 아르바이트란 말이 쉽게 나오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공사장에서 노동하거나 날품팔이 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이야기를 쏙쏙 잘도 이해하는, 역시 도시에서 굳건히 살아가는 아이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도 아벨의 어머니가 왜 롱보트 만을 떠나지 않고, 개발업자들의 요구에도 지지 않고 고향을 지킬 수 있었는지 비교가 될 거야."
"저라면 그냥 살았던 곳이니까 안 가겠다고 했겠지만...."
"또 온갖 생명들이 사는 곳이니까..."
지원이와 혜인지 단짝이 이야기 중심으로 치고 들어가는 바람에 읽어주는 보람이 있었다.
"하루 종일 아벨은 블루백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그 물고기는 얼마나 나이를 먹었길래 그렇게 클까? 내가 여태껏 보아왔던 것들을 몽땅 떠올려볼까? 그 동안 나를 스쳐 지나간 모든 물고기와 동물들, 보트들, 사람들, 로버스헤드 곶 언저리에서 보낸 시간들. 어쩌면 바닷속 암초도 그 정도 시간이라면 변할 텐데.
카리 나무를 베면 둥치의 나이테로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아벨은 알고 있었다. 나이테를 보면 계절의 변화도 구분해낼 수 있고, 그 곳에 새겨진 가뭄과 풍년의 흔적까지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화를 한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것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물고기는 달랐다. 물고기의 모든 세월은 비밀이었고, 신비였다. 아벨은 물고기가 기억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물고기 한 마리가 죽으면 그 물고기 한 마리의 모든 세월이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이런 식으로 바다일에 빠져든 아벨의 생각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맛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 더욱더 힘차게 읽어주었다.
그러다가 기계에 의존해서 해산물을 따던 마카 아저씨 대목에 와서 제주 해녀 이야기도 하고 다시 한 번 억척스러운 어머니들 이야기도 덧붙였다.
"바다에서는 어머니들이 이중 삼중으로 일을 많이 하거든. 밭일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바다일까지 하려면 누구보다도 생활력이 강해지는 것이거든. 제주 해녀들도 어릴 적부터 배운 물질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여기서는 잠수복을 입고 들어가지만 그냥 옷을 입고 들어갔다고 생각해 봐. 지금도 제주에 가면 바닷가에 해녀의 집이라고 있지? 그 할머니들은 아직도 바다에 들어가 전복도 따고..."
"아직까지 들어간단 말이에요?"
아이들 모두 가족과 함께 먹어본 탓인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함부로 값을 깎거나 하면 안 되겠지?"
오지랖이 넓었다. 도라 잭슨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오버를 했다 싶지만 그래도 알 건 알아야 하겠기에...
"마카 아저씨가 어떻게 죽었지?"
"공기호흡기가 고장 나서 심장마비로 죽었어요."
"그래도 기계로 하면 편하잖아요."
"그러다 고장 나면 더 힘들 수도 있지."
즉석에서 토론장이 되었다. 그것이 암초 싹쓸이꾼 코스테요에 이르니 도라 잭슨과 아벨의 일이 얼마나 힘들고 값어치 있는 것인지 아는 것 같았다.
"(줄임) 아침에 호랑이상어는 죽어 있었다. 상어는 물결에 밀려와 해변에 뻣뻣하게 굳은 한 덩어리의 가죽으로 놓여 있었다. 아벨이 붉은 부표를 집어들고 뒤집어보니 한 옆에 글자들이 찍혀 있었다. 코.스.테.요!"
아이들은 악명 놓은 사냥꾼을 만난 듯 진저리를 치며 어금니를 무는 시늉을 했다. 또 카스테요는 아벨이 해양학자로 성장하기 위해 떠난 자리에 몰려든 개발업자들과 그들을 보호하는 시 의원들 무리의 비겁한 복수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곤 개발이 능사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바닷가 옆에 세워진 물놀이장과 리조트 따위를 그림에 그려놓고 그것이 불러올 위기들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결국 아벨은 개발론자들과의 5년 싸움 끝에 바다를 지켜낸다. 그 뒤로도 병든 바다와도 싸움을 해야 했는데, 그동안 아벨은 해양학자로 전세계 바다를 돌며 바다를 구하는 방법을 찾았다지만 단 한 곳도 지켜내지 못한 자책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다. 마지막 대목에서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바닷물에 씻기는 의식을 치루면서 어머니의 바다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읽어주면서 긴 긴 잡담과 딴짓을 떨구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블루백은 블루 그루퍼, 물고기를 부르는 일종의 별명으로 아벨이 지은 것이다. 아벨과 아벨의 어머니 도라 잭슨은 오랫동안 바다에서 살았고, 블루백과 친구처럼 지내왔기 때문에 블루백이 무섭지 않았겠지만 나라면 물고기를 가까이 직접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아벨보다 더 무서워 했을 것이다.
나이는 들었지만 오랜 생활 덕에 여유가 있는 모습이 신기하였다. 사냥꾼에게 피해다니는 것도.
어머니 도라 잭슨이 밀렵꾼이 롱보트 만, 잭슨네 땅을 개발하자는 제안을 물리쳤을 때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도라 잭슨이라면 그 이유는 내가 살았던 곳이고, 그 사람들은 지금 돈 생각만 하지만 공사를 하려면 땅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식물들을 모두 깎아야 하고 사람들이 오면 바다 생물을 모두 잡아 먹기 때문에 생물이 많이 희생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벨의 어머니 도라 잭슨은 바다를 이해했고 지켜내려는 책임감이 강했다. 아벨처럼 학문으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느끼며 살아온 곳이자 우리가 영원히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블루백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고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은 바다와 한 가족인 느낌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온갖 유혹과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것이 5년간의 싸움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아벨은 블루백과 어머니에게 더 큰 것을 배운 것이다. 자신은 해양학자가 되어 지구 곳곳을 여행하면서 배웠다고 하지만 어머니보다 대단한 것을 배우지는 못했다는 것을 느꼈다.
이 환경소설의 잭슨 가족처럼 거의 모든 생물과 친해지고 싶다.
최지원(개신초 4)
하나의 생물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가는 것이나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 때문에 블루백이 재미있었다.
아벨이 블루백의 정체를 몰랐을 때는 바다에는 무서운 상어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블루백을 만나는 장면을 읽고 나서는 바닷속에 들어가서 블루백을 만나고 싶었다. 거대하면서도 신비로운 블루백을 만나면 금방 친해질 것 같다. 날마다 바닷속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블루백을 만나는 순간이 아벨에게는 바다를 사랑하게 되는 마음이 고정되는 때였다고 생각한다. 아벨보다 위대한 것은 그의 어머니 도라 잭슨이었다. 어머니는 롱보트 만을 사랑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이득을 준다고 해도 꿋꿋이 롱보트 만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아벨에게 보여주어서 아벨이 고향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아벨은 해양학자가 되어버 바다를 지키려 했지만 어머니처럼 바다 한 곳도 지켜내지 못했다. 그래서 아벨은 어머니와 살던 롱보트 만이라도 지켜야겠다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돌아오게 된다. 나중에 자기 딸을 바닷물에 씻기는 의식을 하는 것도 바다를 느끼게 하면서 거기서 계속 지켜나가면서 살겠다는 뜻인 것 같았다.
이 책을 보니 바다를 살리자는 마음이 들었다. 책의 거의 끝에 호랑이상어가 부표를 끌고다니다가 죽은 것이나 바다를 싹쓸이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바다의 느낌을 느껴보고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를 지키자는 굳은 다짐이 생겼다.
류혜인(개신초 4)
아벨은 왜 블루 그루퍼의 이름을 블루백이라고 했을까? 그리고 코스테요가 왜 호랑이상어를 잡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지가 산 것도 아니면서 이름을 붙인 게 이상하다.
이준호(창신초 5)
이 책에 나오는 도라 잭슨은 강힌한 어머니의 일종이었다.
이 책에서 나오는 호랑이상어가 죽는 모습을 옛날에 나왔던 모습처럼 잔인하게 죽었다.
아벨이 블루백을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을 잡아 먹으려고 달려드는 상어인 줄 알았지만 실체를 알고 나서는 무섭지 않았다.
만약 내가 블루백을 만났다면 도망쳤을 것 같다. 하지만 친구가 된다면 날마다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나와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김보형(창신초 4)
* 이 글은 2011년 6월, 흥덕문화의집 글쓰기 교실에서 아이들과 나눈 책 이야기입니다.
늙은 소년들을 위하여 (0) | 2021.09.02 |
---|---|
억울한 늑대 이야기 <난 늑대 싫어!> (0) | 2021.09.02 |
부패와 순환의 진리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0) | 2021.09.02 |
오소리의 <노를 든 신부> (0) | 2021.09.01 |
이야기가 흐르는 바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0) | 2021.08.30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