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엄마 젖이 소나기 같아요

도깨비 일기

by 참도깨비 2021. 8. 19. 09:44

본문

엄마 젖이 소나기 같아요

 

 

 

 

한길이가 어렸을 때에는 젖몸살에 직장 때문에 그냥 지나갔지만 한울이만큼은 엄마 젖으로 키우고 싶은 아내의 정성이 갸륵하기만 합니다. 어느덧 한울이가 세상에 나온 지 한 달이 되었고 초보운전 딱지를 못 뗀 내가 모는 차를 타고 추석까지 쇠고 오기까지 이 모두가 엄마 젖의 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몇 번이고 분유만 먹일 생각으로 마음고생했는데 아무 탈 없이 잘 먹고 잘 자는 한울이를 볼 때마다 벅찬 기분이 듭니다.

지하철에서나 터미널에서 아기에게 거침없이 젖을 물리는 아주머니를 보았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맛이 나는 일입니다. 아직은 한울이가 한쪽 젖만 물어서 젖을 짜서 병으로 먹이지만 한울이가 분유보다 아주 평화로운 얼굴로 받아들이는 걸 보면 좋기만 합니다. 그러나 몸조리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젖을 짜고 먹이는 것도 힘든데 벌써 셋째를 낳아서 몸조리 대신하려는 생각까지 하는 아내를 보면 안쓰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가끔 엄마 젖에 얼굴을 파묻고 젖을 먹는 한울이와 그 얼굴을 내려다보는 아내의 모습이 새로운 힘이 되는 것은 맞습니다. 한길이야 한 번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누가 물으면 한울이가 예쁘다고 하지만 저도 은근히 젖 냄새가 그립고 아쉬운 눈치입니다. 그래서 모처럼 아내가 유축기로 젖을 짜는데 달라붙어서 한 점 찍어 먹어보려고 안달입니다. 나도 몇 번 먹어 보았지만 그 어느 것보다 맛있더군요. 젖이 잘 돌아 한 번 힘에도 젖이 막 쏟아지는 걸 지켜보면서 입맛을 다셔봅니다.

"엄마 젖이 소나기 같아요"

지난 여름 눈도 뜰 수 없을 만큼 내렸던 소나기에 빗대어 말한 것입니다. 찔끔찔끔 나오던 젖줄이 한꺼번에 터져 어느새 한울이의 양식이 가득 찼으니 셋이 한통속이 되어 들뜰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엄마가 젖소 같아요"

어디서 보았는지 유축기를 대고 빨아들이는 모습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 풍만한 젖을 떠올려보니 젖을 짜고 있는 모습이 한울이 잠자는 모습처럼 평화로워 보입니다. 젖 냄새를 맡았는지 한울이 녀석, 그새 입을 벌리고 고개를 젖히고 몸을 젖히느라 야단이 났지만요. 소나기 같이 내리는 엄마 젖을 한 모금 먹고 나니 삼부자가 나름대로 꾸물대는 강아지들 같습니다

 

 

2003.9.16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