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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르 잠이 듭니다

도깨비 일기

by 참도깨비 2021. 8. 1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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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르 잠이 듭니다

 

 

 

한길이 동생 한울이가 발로 겉싸개를 차대며 끙끙거립니다. 엄마 젖을 실컷 먹고 잘 만한 데도 용트림을 한 번 해야 시원한지 소리를 지릅니다. 이불까지 젖을 정도로 오줌을 많이 쌌습니다. 거기다가 방귀를 삐직삐직 꿉니다. 오늘따라 곱슬머리가 더 곱슬거려 부시맨 같습니다. 잔뜩 힘을 주는 바람에 밤고구마 얼굴이 되었고요.
기저귀를 갈아주니 가랑이와 엉덩이가 시원한지 아주 편안한 얼굴로 다시 잠에 들려합니다. 옆집 과수원 할아버지가 경운기를 끌고 나갈 시간이라 걱정이 됩니다. 엄마는 밤새 젖 짜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느라 토막잠을 자고 있어 조심조심 기저귀를 매만져주고 토닥거려줍니다. 예정대로라면 추석까지 엄마 뱃속에 있어야 할 녀석인데, 이찍 나와서 이렇게 빠꼼하게 날 올려다 보고 있으니 신기한 생각이 듭니다.

 

"자장 자장 우리 아기/넘의 아기 똥밭에다 재우고요/우리 아기 꽃밭에다 재운다네" 하며 시작하여 멋대로 자장가를 불러주며 토닥거리니 눈을 맞추는 한울이. 아직 눈을 맞추기에는 이르다고들 하지만 분명히 날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숨을 크게 몰아쉬며 염소 소리를 내더니 다시 꿈틀대며 웁니다.

"한울아, 아빠야! 젖 먹고 나서 배부를 텐데 왜 그래?"

아무 말이나 붙여봅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의 파장이 꽤 세서 그런지 입술을 동그랗게 말고 눈을 깜박거립니다. 그러더니 다시 얼굴을 찡그리고 고개를 틀며 웁니다.
이번에는 '섬집 아기'를 불러줍니다. 한길이 때에도 들려주었던 노래라 한울이도 알아들을까 싶어 불러주는 것이지요. 그러자 실눈을 뜨고 소리 나는 쪽에 온 신경을 다 씁니다. 두세 번을 정성스럽게 불러주니 눈꺼풀이 살며시 닫히고 사리살짝 떨리는 걸로 보아 '이거 자야 하는 건지 어떤 건지'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도돌이표를 붙여 내리내리 불러주니 잠에 폭 드는 한울이 얼굴이 밤고구마에서 물고구마로 돌아왔습니다. 큰일을 해낸 듯 뿌듯합니다. 먹고 자고 먹고 자면서 살이 붙게 하고 뼈를 이루는 엄마 젖에 노래 한 줄금. 창문으로 오랜만에 햇빛이 들어 한울이 얼굴이 보들보들 빛납니다.

 

2003.9.3

참도깨비도서관과 함께한 한길이와 한울이.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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