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소리와 함께 길을 걷다 ”
산성에 올라갔다가 오소리를 만났다.
산길 한가운데 몸을 말고 엎드려있기에
처음엔 산성마을에 사는 개인 줄 알았다.
가까이 가 보니 주둥이에 검은 줄이 나 있는 오소리였다.
여름 날씨에 가까워 그런지 겨우내 뒹굴고 나온 냄새가 물씬 풍겼다.
지하 셋방에서 막 나온 세입자처럼
배고픔에 앞서 햇볕이나 실컷 쬐면서 잊고 싶은 게 많은 것 같이
산길 한가운데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순간 멈칫하고 서서 저 백년동안의 잠처럼 늘어진 자리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러나 산길이라 어쩔 수 없는 일
가까이 가니 어물쩡하니 고개를 드는데 맥없이도
"어디 아프니?" 하는 말이 불쑥 나왔다.
소스라치게 놀랄 법도 한데 정말 어디라도 아픈 것처럼
느릿느릿 몸을 말아올렸다.
노란 큰뱀무꽃이라도 돌돌돌 찧어 발라주고 싶었다.
오소리는 그제서야 어물쩡하게 일어나 걸었다.
질러갈래야 갈 수 없을 만큼 길을 통째로 걸으면서
한참을 올라갔다
내 발이 오소리 발처럼 쪼그라들어서
느릿느릿 올라가는,
오랜만에 산벗을 만나 꽃 이야기에 바람 이야기를 하다 낮술을 걸친 듯
간잔지런하게 산길을 걸었다
굴뚝이 쓰러지던 날 (0) | 2021.09.07 |
---|---|
직박구리 구하기 (0) | 2021.09.07 |
악수 (0) | 2021.09.07 |
오세암 (0) | 2021.09.07 |
출생의 비밀 (0) | 2021.09.07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