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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 구하기

책 속 한 문장, 또는 장소

by 참도깨비 2021. 9. 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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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박구리 구하기 ”

 

 


김밥나라 아주머니가 뭔 새가 다 죽어간다고 나와보란다
마당 있는 뒷집으로 나가는 문 위에서 울어대는데, 힘이 하나도 없더란다
가까이 다가가니 가까스로 전깃줄로 올라가 앉았다가
우리 집 이층 베란다에 떨어졌으니 구해보란다
얼마 전에 주차 문제로 아버지와 대판 싸웠던 집이라
김밥 한 줄 안 사먹고 못 본 척했는데 아주머니가
꼭 그 새의 어미라도 되는양 수선을 피워서 올라가 봤다 
 
직박구리 새끼다
까치나 비둘기, 참새보다 더 텃새가 된 직박구리 
마당에 있는 두충나무에서 날아가는 매미까지 잡아먹을 만큼 
사냥에 일가견이 있는  직박구리 새끼답게 튼실하고 부리가 야무진 녀석이다
찢어지는 소리로 울면서 매미들을 호려서 날개, 머리 떼고 잡아먹던
어딘가에 둥지가 있는 모양이다
배쪽 털이 아직 뭉실뭉실하다
창문 턱에 앉아서 어미를 부르는지 긴급구호 신청을 한다
김밥나라 아주머니는 연신 밥이든 뭐든 줘야 한다고 주절거리니
야생동물구조대라도 된 것만 같다
손을 뻗치니 다시 가까스로 날아서 베란다와 맞물린
옆집 나무 가지로 도망을 간다
이쯤 해서 그만 두려고 하는데 가지에 앉아서 거의 다 죽어가는 꼴로 울어댄다
 

 
 
병 걸린 닭이 그렇듯 저절로 감기는 눈으로 까딱까딱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갈 것처럼 울어댄다
어미라도 나타나 얼른 데려가든지
마지막 안간힘을 써서라도 제 살던 곳으로 갔으면 좋겠는데
사람 마음 약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가까이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새를 본 적이 어디 있던가
사진이라도 찍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 산 사진기를 가져왔다
망원렌즈로 쫙 빨아들여서 찍고 싶던,
내심 망원렌즈가 부러워 욕심내서 사고도 싶었는데
내 몸이 줌기능이 되어 한컷 잡을 수 있게 해주니 놓칠 수가 없었다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 가지에 손을 뻗었다
딴에는 이리 와 밥 줄게 하며 안심시키면서 가지를 당겨 잡으려고 하니
이번에는 눈을 번뜩 뜨더니 베란다 바닥으로 내려와 앉는다
몸이 무척 무거워보였다
다시 손을 뻗치니 몸을 부르르 떨면서 순순히 잡힌다
 

 
 
콩닥거리는 몸이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
발작을 하며 거칠게 울어댄다
구한다고 나섰으니 어떻게든 해야지 싶어
얼마 전에 죽은 햄스터 집을 꺼내 잠깐 두기로 했다
 

 
 
 
목숨 있는 것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앞 뒤로 캥기게 묻어나는 책임감이란 어쩌고!
못내 미안하지만 뭐라도 먹여서 힘이라도 붙으면 보내줄 것이니 괜찮겠다 싶어
좁은 장에 넣고 나니 내가 진짜 어미가 된 것 같다
 
김밥나라 아주머니는 옆 가게 아주머니까지 끌고 와 또 한 번
수다를 떨다 갔다 다 죽어가는 걸 불쌍해서 어쩌냐고 먹여 보내야 한다고
무료 급식소에서 손이 안 보이게 김밥을 싸는 것처럼 부산을 떨고 갔다
 
뭘 먹이지?
어느새 이 녀석은 반쯤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울어댄다
파리채를 들고 파리를 찾았다
몇 마리를 연거푸 잡아서 가져가니
이 녀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미가 먹이를 물어오면 그렇듯이
머리를 떨면서 부리를 힘껏 벌리며 울어댄다
 

 
 
나무젓가락으로 파리를 집어 가져가니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연붉은 목젖이 그대로 드러나게 쩍쩍 벌리는 부리도 아직
덜 여물에서 한없이 여린 새끼 그대로 다가온다
그러니 난데없이 어미가 되어 기어가는 벌레, 날아가는 벌레 어느 것이든
가리지 않고 잡아야 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파리를 얼마나 잡았을까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까지 뜯어와서 먹이고
파리 모기 잡으러 온 파리매까지 잡아서 먹이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텃새에 잡식성이니 어제 딴 살구까지 먹였다
넙죽넙죽 받아먹고 조금씩 힘이 나는지 날개를 펴고 좁은 장 안을 푸덕이다가도
이내 꾸벅꾸벅 눈을 감으며 쓰러질 것만 같다
작은 파리로는 먹성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슬금슬금 겁이 나기도 했다
이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옴팡 뒤집어 쓸 것 같은 생각에
처음에 야멸차게 제 어미가 거두어가든지 제 몸에 남은 생존본능에 맡겼어야 하는데
후회가 되었다
이제는 가까이 가기만 해도 알아서 부리를 벌리며 밥 달라고 울어대는 통에
저물녘 길 가는 사람처럼 마음이 급해졌다
마당에까지 나와 파리를 잡아서 먹이고 또 먹였다
 
넙죽넙죽 받아 먹다가 진저리를 치고 안 먹는 것도 있다
딱딱하게 몸을 마는 공벌레나 잠자리 날개나 머리는 뱉어낸다
제 어미처럼 게워서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쉬파리 금파리 가리지 않고 먹였다 해바라기 씨까지 발라서 먹였다
그러고 나니 다시 힘이 나는지 푸덕거리며 날아다닌다
 
이제 보내야 할 시간인 것 같아
조심스럽게 꺼내 주니 무거운 몸을 끌고 날아올랐다
가까스로 담벼락 위에 올라앉아 약병아리마냥 옹숭거린다
처음 걸음마를 배우게 하는 부모처럼 안쓰럽기만 하다
 

 
 
그래도 좁은 장에 가둬키우는 것보다는 낫겠지
사람 손을 타서 좋을 일이 없지 싶어 안타까운 마음을 접고 저물녘으로 날려보냈다
위태롭게 구조신호를 보내는 걸 보며 돌아서는데 자꾸만 그쪽으로 눈길이 간다
무사히 밤을 보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괜히 보냈나, 하루만 더 묵어가게 할 것을 미안하기도 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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