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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교

책 속 한 문장, 또는 장소

by 참도깨비 2021. 9. 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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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종교 ”


시골에 살 때는 당산나무가 있는 언덕 교회에 다녔다.
열심히 다닌 적은 없고 크리스마스날에 맞춰 합창단 연습을 했고
끝에서 두 번째 줄인가에 서서 캐럴송을 불렀던 것 같다.
별이 빛나는 밤처럼 떨었지 아마
아니 그날은 가지 못하고 유리창으로만 보았던 듯싶다.
거기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들여다보며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시내 다리에서 고무신으로 한 가득 퍼올리던 피라미처럼
미리내미리내 하고 울리던 별소리가 이리 먼저 쏟아지지는 않았으리라
쇠로 둥글게 해올린 대문 위로
천상의 과일처럼 주렁주렁거리던 포도와
원기소 냄새나는 목사 딸을 짝사랑하는 내가 성경공부 시간에 배운
원죄처럼 나부끼던 언덕교회
지금도 그 교회는 불두덩 같이 작아진 언덕 위에 하얗게 서 있다
오래된 손수건처럼 나부끼며

대처로 이사를 와서도 교회에 다녔다
교회가 있는 시장 골목에서 인도되어
또 성탄절을 맞아 빵과 과자를 나누고
돌아온 탕아를 위한 연극도 했다
처음으로 어머니 원피스를 빌려 입고
돌아온 탕아의 어머니가 되어 용서라는 말을 배웠다
언덕교회에서처럼 숫기가 없어 하느님 가까이 가지 못했다
교회 아이들과 축구를 하다가 연방 골을 먹는 골키퍼로 욕을 먹다
교회를 나왔다 하늘로 돌을 던지다 그 돌에 맞아
탕아처럼 교회를 떠나노라고 웃기지도 않는 뇌까림을 남긴 채

어떻게 된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친구를 따라 안식일 교회를 다니기도 했다
주의 군대란 노래를 부르며 깃발을 들고 예배에 나갔던 기억과
교회 건물 옆에 마련된 침례장에 세례 요한이 있어
침례를 해야 할 무렵 코에 물이 들어가도록 누웠던가
아니면 훔쳐보다가 말았는지 가물가물하다
역시 숫기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그 교회를 나와
간장을 내다파는 교회에도 친구 따라 갔다
이단이라고 수군대는 소리를 연거푸 들었지만
다른 냄새나는 교회에 끌려 한참을 다녔다
파수대란 잡지에서 나는 냄새처럼
유난히도 곱고 사춘기마저 앓게 해주던 냄새와
그들의 낯빛이 숫기 없는 나를 홀린 것인지
내가 홀려든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 오래 가지 못했지만 하늘문에 다다르는
새마을기차표와 같다는 전도를 하러 먼 동네까지 다녔다
나처럼 나오다 만 친구들을 찾아 다니며
바리새인마냥 떠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종교를 바꿔 암자에 끌리기도 했다
할머니는 남녀호랭교를 위해 남은 삶을 벽에 바쳤고
절로만 떠돌던 시절이 있었다
황급히 목숨을 살려보겠다고 산중 암자 아닌
골목암자 빨간 깃발 위에 나부끼던 댓가지에 올라
밤고양이처럼 울기도 했다
모든 종교가 뒤엉켜 무신교가 되어버린 시장 골목에서
처음으로 소설을 쓰고 시를 썼다
후루꾸꾸 꾸꾸꾸 우는 비둘기처럼 시장 처마를 돌며
너의 침묵에 얼어붙인 그 한 마디~
목메인 기타를 배우며 시장터에 처음 생긴 아파트
창문턱 펜지꽃 같던 누나에게 설레는 곡을 뜯다가
몽정을 했다
밤손님처럼 불러세우는 고양이들처럼
목이 쉬어버린 음악상자처럼 울었다
언덕을 타며 울던 바람소리였다
칼바람이든 비바람이든 한 바가지 찌끄린 개숫물마냥
날아가다가도 댓가지에 찰싹 늘어붙어 밤새 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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