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로우 시티 ”
일요일까지 출근하고 월요일은 혼자 실컷 자야지 싶은데
아침일찍부터 꽃들이 카카오톡으로 꼬여내는 바람에
일어난다. 일어나. 일어나면 될 거 아니야, 씩씩거리며
아점을 먹는다. 꽃 말고는 불러낼 데가 없다.
혼자 길을 걷는다.
꽃본지 오래인 외투처럼 골목길로 돌아간다.
버스를 타려다 보니
굴러다닌 적이 없는 바퀴처럼 주머니에 잔돈이 없다.
버스를 타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어느새 1,500씨씨 자가용족이 되어
연비나 따지고 있는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느낀다.
깡통이나 마분지 상자에 바퀴만 단 얍실한 다리를 느낀다.
꺼진 보도블럭이나 웅덩이에 발목이 접질린다.
개나리가 인공폭포처럼 쏟아지는 골목을 지나는데
꽃술을 드나드는 것들은 꿀벌이 아니다.
말벌들이 득시글거린다.
저것들도 꿀을 먹었던가,
소꿉그릇 같은 한 줄을 채우는데 꽃의 유랑은 얼마나 눈물겹던가
말벌들마저 앵벌이 나온 봄이라니,
설마 저 꽃이 앵벌이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전구석에서 지켜보던 눈길을 소년은 어찌 견뎌냈을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쥬시후레쉬 한 통 천 원, 을 외치며
머지 않아 단물이 빠질 나이를 떠올렸겠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봄볕만으로 꽃길은 뜨겁다.
개가 먹거나 고양이가 먹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코메디,
사람들은 담배꽁초 버리듯 양심을 쉽게 버린다.
훔쳐먹는 재미는 가난한 골목의 꿀조차 낼름거리기에
엄한 사람도 스티커처럼 여기기도 한다.
서커스에 나온 사자는 철창 안에서 양말을 갈아신는다.
한 번도 빤 적 없는, 사자의 근성만으로 접고 들어갈 뿐이다.
아무튼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해도
빈집 구석에는 집을 뛰쳐나가고 싶던 것들로 난리법석이다.
사연이야 어떻게 됐든 내던져서라도 저 담장밖으로 달아가고 싶은 일들이 많은 것이다.
나는 천천히 걸어왔다.
길이란 길로 다 비껴간 사람들 그림자 사이로
월요일 휴무처럼 사람의 방편을 삐딱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너무 빨리 가버린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만큼
너무 느려서 메가톤급의 봄을 떠받치며 걷고 있는 것이다.
부재중인 집으로 찾아오는 검침원처럼 꽃은 참다못해
계량기 뚜껑 같은 지붕을 밟고 온다.
몇 걸음 걷지 않아 식을 것을 알면서도 기어코
꺾어 셈을 하는 사람들.
어느 지방에는 몇 킬로와트급 폭설이 내리고
어느 지방에서는 몇 톤급의 바람이 불어
저 꽃밭쯤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듯이
봄볕에 입냄새를 풍기며 다녀간 얼굴들이여.
나는 느리게 느리게 걷는다.
너무 느려서 찍지 말아야 할 속곳을 찍을 때가 많다.
아주 당연히 봄의 정취를 즐길 뿐인데
처음 놓았던 장기 말판처럼 빠져나갈 구석을 떠올리느라
외통수를 부르고야 만다.
그러나 돌아보면 꽃은
제 몸의 피돌기로 따지만 몇 번은 피고 말았을 길을
나보다 더 느리게 느리게 걸어왔노라고
자전거포의 펌프처럼 헛둘헛둘 푸샵푸샵
웃고 있다. 그만치에서 기다리던 사람이여.
오히려 내가 버린 꼴이 되어버렸던 나이를 생각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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