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있어요?"
유선전화가 울려 받아보니 가까운 공공도서관 사서가 자본론을 찾는다. 공공도서관과 같은 도서관리 프로그램을 쓰는 이음 서비스를 하는 탓에 먼저 검색해 보고 책을 찾으러 오는 분들이 많아서 낯선 풍경은 아니다.
"검색해 보니 거기밖에 없어서요."
어느 독서동아리 회원인지 모르지만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대출하려고 왔는데 없었던 모양이다. 이음 서비스 덕분이다. 상호대차까지 하면 더 많은 대출이 이루어지겠지만 우선은 여기까지라도 많이 발전한 것이다. 대개 미리 검색해보고 대출하러 오는 이용자들은 긴하게 책을 찾는 통에 내비게이션을 켜고서라도 여기까지 온다.
"책이 여기밖에 없네요."
공공도서관이 열 군데가 넘는 청주시에서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공공도서관이라면 웬만한 책은 구비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다니! 처음 공공도서관을 찾는 이용자는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그런데 다행히 검색 결과 작은도서관에라도 한 권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성질 급한 사람은 온라인 서점 특급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가까운 서점에 주문해서 사 보겠지만 도서관을 이용자들 대부분은 어떻게라도 대출해 보는 것이어서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단숨에 달려오고는 한다.
공공도서관 사서 전화를 받고 난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급하게 온 그 분이 <자본론> 네 권을 빌려갔다. 어려운 내용인데도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 냄새가 났다. 책이 여기밖에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돌아서는 책 냄새 나는 모습에 약간은 뿌듯해 진다. 누군가 간절히 원하는 책을 갖고 있었다는, 그것도 작은도서관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에 다른 책을 대출해준 것과는 다른 기쁨을 누려보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1990년판 <천국과 지옥의 결혼> 시집을 찾으러 온 분도 있었다. 문청 시절부터 보던 민음사 세계시인선을 버리지 않고 등록해 둔 탓에 귀한 독자를 만난 것이다. 가까운 대학 평생학습관에서 하는 시 창작 교실 선생님이 숙제를 낸 모양인데, 역시 책을 검색해 보니 여기밖에 없어서 노구(?)를 끌고 온 것이니 서로 가슴 쓸어내리며 책의 기쁨을 누렸다.
그래서 작은도서관에서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책이 서가에 두 줄로 꽂혀 있다. 새로 들어오는 책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는 쌓아두고 싶다. 공공도서관이나 작은도서관 지원을 위한 평가 방식을 내놓는 컨설팅에 따르면 도서 회전율을 높여야 한다고 하지만 당분간은 그럴 수 없다.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읽어야 할 책이 공공도서관에도 없는 경우가 많으니 누군가 찾을 수밖에 없는 책에 대한 판단과 함께 신간이라도 그렇게 진정 독서가를 위해 책을 구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회전율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넘쳐나는 책이 아니라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하는 책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는 도서관에 가까워야 한다는 고집 때문일까?
회전율과 대출 빈도가 높은 책은 따로 있다. 대출하기 무섭게 예약이 들어와 예기치 않은 항의를 받기도 한다. 전화가 와서 바로 빌리러 오겠다는 사람과 예약(예약이라고 하지만 공공도서관 사서처럼 프로그램 관리자가 아닌 경우에는 이약 시스템을 적응하기 어렵다. 일일히 확인하고 메시지 보내주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도서관리프로그램의 하위 인 작은도서관의 현실이다)한 사람과 얽혀서 싸움이 나거나 '일을 똑바로 하라!'는 훈계를 듣기도 한다. 빌리려는 책이 도서관에 있어야 하고 그 사이에서 사서 역할을 잘 해야 하는 것이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 인자요수에 요산오수(적당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라는 말처럼 과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싶을 만큼 전투적이 대출 전쟁 앞에 아찔한 기분일 때가 많다.
어느 때 생각해 보면 갈수록 도서관이 베스트셀러나 특정 독서동아리들이 좋아하는 책, 내 돈 주고 사기 아까워 주문하는 책들로 가득 차는 것은 아닐까 싶다. 최근의 책 읽는 청주 대표도서 선정이나 100권 읽기 프로그램 등을 보면 대부분의 도서관이 비슷한 장서로 돌려 막기를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책의 수명은 몇 백 년이 가든 한정이 없는 것인데 눈앞의 신간들과 베스트셀러 위주나 무분별한 권장도서 위주로 갖춰지다 보면 다양한 도서관별 서비스가 가능할까 싶다.
여기까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니 지금의 기조를 잘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림책에서 인문학, 기술서적, 총류 등등까지, 내가 갈급하기 공부하면서 세계에 감응했던 책들처럼 누군가 간절히 원하는 책(공상적이라고 해도)을 갖추고 자원이유붕래하듯이 기쁨을 누리는 작은도서관 노릇을 하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생각도 그러지 않을까. 각자의 집안 문고부터 다르고 다양할 수밖에 없지만 공통의 언어처럼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만들어가는 세계와의 감응에 맞게 원하는 책이 있을 것이고, 그런 책은 잘 팔리는 책이기 앞서 꾸준히 세대를 거쳐가며 찾는 책이라는 것을. 우리가 책에서 얻고자 아는 것이 무엇인지 좀더 확장된 책과 책의 연결고리 속에서 또 바라보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하고 자본론 이후에 생각하고 생각해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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