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법에 따라 500세대 이상 아파트에 작은도서관 공간이 생긴 지 오래되었다. 처음 작은도서관이 생길 때는 함께 책 읽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임대하거나 방 한 쪽을 내어서 했지만 지금은 엄연히 법으로 만들게 되었다. 공동주택이라고 하면 다른 대안이 없고 아파트밖에 들 수 없으니 요즘 생겼다 하는 곳은 대부분이 아파트다. 법으로 강제하니까 해야 한다니 만드는 경우도 많다. 애절하게 필요한 공간이라기보다 만들어야 하니 만드는 쪽에 가깝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동화 세계에 빠져들던 부모들도 이제는 아이를 다 키워 지난날의 열정이 식고 밥벌이나 자기계발에 더 신경을 쓰는 때여서 아파트 작은도서관들은 정작 운영할 사람이 없어서 비워둔 곳들이 많다. 지난날처럼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있게 마련이니 그 빈 자리를 채우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서 함께 만들어가려는 의지보다는 각자의 복지를 누리려고 할 뿐일까? 그래서인지 분양아파트처럼 형편이 좋은 곳이나 임대아파트처럼 자기 집이라는 인식이 없는 곳에서도 도서관을 꾸려갈 사람들이 모자라기만 하다.
공동주택법에 따라서 작은도서관이 생기면서 아파트 관리규약에도 단지 내에 작은도서관을 두고 운영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작은도서관의 지위를 보장하고 어떻게 운영해야 할 것인지 구체적인 사항을 넣은 곳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작은도서관이 공동주택법에 의해 모든 주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당연히 두어야 한다면 그에 맞는 운영 인력과 그들에 대한 보상이나 운영계획 등의 세부적인 것을 보장이 뒤따라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깊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다. 공동주택이지만 자기 집으로 분양을 받아 대표자회의를 구성하고 막대한 예산을 쓰는 아파트에서는 물론이고 몇 년 살다가 다시 재계약하거나 이사를 해야 하는 임대 아파트에서는 자기 집이라는 의식이 없으니 작은도서관 같은 공동 문화시설에 대해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리규약에 작은도서관을 두고 관장이나 전담자를 두고 자원봉사자를 두어야 하고, 그에 따른 운영비를 예산에 책정하고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으나 마나하면 작은도서관의 운영이 제대로 될 수 없다.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다. 관장이나 전담자는 입주민을 대표항 작은도서관을 책임 지고 운영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운영위원회를 조직하고 운영계획을 짜고 독서문화프로그램 등 도서관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합당한 예산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2022년 3월 현재 시립도서관에 등록된 작은도서관이 120여 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아파트 도서관이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큰 세대 아파트마다 독서실을 함께 작은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들어가 있음에도 정식으로 등록할 엄두조차 못 내는 곳이 많다. 오랫동안 작은도서관을 운영해오고 있던 아파트 단지마다 속사정도 다양해서 전담자나 관장을 뽑지 못하거나 자원봉사자가 없어 독서실(공부방)로 쓰고 있는 곳도 많다. 카페 공간을 만들어 주민사랑방으로 쓰고 있는 곳도 있다. 가뭄에 콩 나듯 사서 자격증을 가진 전담자를 고용하여 매달 급여를 주고 있는 곳이 있으나 이것마저 입주자대표회의의 입김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자리마저 위태로운 경우가 많다. 어떤 곳에서는 그런 문제가 있자 고용을 하지 않고 자원봉사자로만 운영하기도 한다. 시니어클럽에서 노인 인력을 지원받아 대출 반납 서비스만 하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이 전담자라고 할 수 있는 관장을 뽑았다고 해도 1년씩 돌아가며 운영하기에 장기 계획을 세우거나 앞선 도서관 업무를 이어받는 것도 어렵다. 현재 작은도서관협의회에 가입된 도서관들의 사정을 보면 일 년이 지나면 새로운 전담자와 어색한 인사 후 언제 만났나 싶게 어색해질 때가 많다.
오늘은 새로 입주하기 시작한 임대아파트 관리소장님이 도서관 운영에 대해 고민을 나누고자 방문했는데, 사회적 기업 이야기부터 꺼냈다. 가까운 다른 군에서 여기로 온 것인데, 그곳에서는 마침 도서관을 위탁해서 운영하겠다는 사회적 기업이 있어서 무난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섯 개 동이 있는 이곳에 와보니 공간만 있고 사람이 없어서 고민이라는 것이다. 여기 관리소장을 통해 알아보니 사회적 협동조합이 운영한다고 하니 무난하다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돌아보니 그렇게 갖춰진 현실은 없은 것이어서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꼴, 가장 먼저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작은도서관 운영 인력을 모집해보라고 하니 고개부터 내젓는다. 임대 아파트라 엄두도 못 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 않아도 아는 임대 아파트만의 사정이니 어쩔 수 없는 고민이다. 그러나 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니 정식으로 입주민 대상으로 작은도서관 전담자나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운영위원회를 조직하라고 권유했다. 다행히 동대표를 구성하여 대표회의체를 만든다고 하니 그 사람들을 축으로 주민 공간인 작은도서관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고 LH본부에 도서와 장비, 서가를 지원받으라, 그리고 시립도서관에 등록하고 운영위원과 전담자, 자원봉사자들이 합심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출 반납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하고 주민 문화프로그램을 한두 개라도 하면서 1년 지나면 작은도서관 지원사업을 신청할 수 있다, 그렇게 작은도서관으로서 자리를 만들어가면 된다 하니 관리소장 눈빛이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답답하기 마찬가지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야 한다면 손에 먼지를 묻히고 공동체 주민들에게 읍소해야 하는 일이다. 사는 동안 그곳은 터전이고 작은도서관이라는 자리에 맞는 마땅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관리규약에 당연히 들어갈 작은도서관을 강조하고 하나부터 풀어가야 할 것이다. 작은도서관은 책을 빌려보고 이용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그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면서 지켜가려는 공동부담 원칙 속에서 누리고 보장하는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공동체 삶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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