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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가격리중이에요

작은도서관 이야기

by 참도깨비 2022. 3. 2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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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오기 전에 아이들은 도서관 책처럼 손잡고 다녔지. 문의마을 골목 어딘가에서 찍은 사진.

방역패스한다고 죽어있던 핸드폰을 살려 출입기록을 하며 도서관을 열고 있다가 그것마저 없어진지 오래. 소독환기실시대장과 일일근무일지도 꼬박꼬박 기록하며 대출 반납을 하고 있자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가까운 어린이집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하루에 몇 십 명씩 확진자가 생겼다는 말을 전해들으면서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점점 가까이 포위망을 조여오고 있는 오미크론. 그러더니,

 

"며칠 전에 책 빌려간 000인데요. 저, 확진되어 자가격리중이에요. 반납 연기 좀 해주세요."

소설을 좋아하는 그 분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하다. 확진되었다고 하면 바로 병원으로 실려가 격리 치료해야 했던 날을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한데, 지금은 '차라리 걸려라, 일주일 쉬고 가지 뭐'하고 농담 삼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헛웃음이 나온다. 치료 잘 하시라는 말을 해놓고도 의미가 없다. 크게 아프지는 않고 목이 불편할 뿐이라며 1주일 격리만 하면 끝이라니. 옆 동네 아파트 도서관 이야기를 들으면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 결정으로 출입 자체를 막았다는데, 이렇게 확진자가 될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곳에서 근무한다고 생각하니 최전선에 나와있는 것 같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인데도 한 사람은 걸리고 한 사람은 안 걸렸다는 영웅담도 있으니 아마도 나같이 도서관을 열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슈퍼 유전자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열심히 소독액을 묻는 티슈로 출입문 손잡이를 비롯하여 손이 닿을 만한 곳을 닦고 수기장부에 달린 볼펜까지 닦으며 언젠가는 오고야 말 손님 같다고 말하면 오만일까. 오늘도 벌써 주민들을 비롯하며 먼 거리에서 책 검색해서 오고 간 사람들이 꽤나 있는데, 그때마다 마스크를 고쳐 쓰고 창을 열어 환기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고 문을 닫을 시간이면 여느 때보다 큰 한숨이 나온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전화로 자가격리를 알렸던 그 분이 빌려간 책을 반납하러 왔다. 자가격리가 끝났다는 것마저 잊고 있다 불쑥 들어온 그 분을 보자 솔직히 겁이 나긴 했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꼬집 손으로 책을 받아들고 책 소독기에 넣고 돌렸다. 자가격리가 끝났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알린 덕분에 안심이 되기는 하지만 확진이라고 해서 별 고생 없이 보냈다는 말로 다시 소설을 고르는 그분에게서 어쩐지 위안을 얻는 것 같았다. 마침내 겪을 것을 겪고야 말았다는, 다시 확진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내 몸에 다녀갔다는 것만으로도 당당해 보이는 그분에게 후일담을 잠깐 듣고 새로운 소설을 권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가 소설 같기만 하다. 

 

이런 날 소설을 비롯하여 문학책과 그림책이라도 없었으면 어땠을까? 동네 가까이 작은도서관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스스로 위무해 본다. 멀리서 절판된 지 오래인 책을 찾아 온 노학도에 집에 공부시켜 놓고 아이를 위해 과제용이나마 필요한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란 생각. 바이러스가 무섭고 두렵다지만 서로를 위해서 문 닫고 조용히 있는 것도 좋다는, 그래서 좋아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좋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침이면 으레 도서관으로 오기 위해 가방을 챙기고 천변길을 걸어오는 나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지 뭐.  

나만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작은도서관 사람들은 어떻게든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자로 소독약을 바르며 마스크 너머로 출입문 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 중국 화산 꼭대기에 짐을 날라다 주는 짐꾼이 힘든 길을 왜 가느냐고 묻는 관광객에게 "길이 없더라도 가야 하는 것이 짐꾼"이라고 했던 것처럼 그런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하고 중얼거려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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