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패스한다고 죽어있던 핸드폰을 살려 출입기록을 하며 도서관을 열고 있다가 그것마저 없어진지 오래. 소독환기실시대장과 일일근무일지도 꼬박꼬박 기록하며 대출 반납을 하고 있자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가까운 어린이집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하루에 몇 십 명씩 확진자가 생겼다는 말을 전해들으면서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점점 가까이 포위망을 조여오고 있는 오미크론. 그러더니,
"며칠 전에 책 빌려간 000인데요. 저, 확진되어 자가격리중이에요. 반납 연기 좀 해주세요."
소설을 좋아하는 그 분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하다. 확진되었다고 하면 바로 병원으로 실려가 격리 치료해야 했던 날을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한데, 지금은 '차라리 걸려라, 일주일 쉬고 가지 뭐'하고 농담 삼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헛웃음이 나온다. 치료 잘 하시라는 말을 해놓고도 의미가 없다. 크게 아프지는 않고 목이 불편할 뿐이라며 1주일 격리만 하면 끝이라니. 옆 동네 아파트 도서관 이야기를 들으면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 결정으로 출입 자체를 막았다는데, 이렇게 확진자가 될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곳에서 근무한다고 생각하니 최전선에 나와있는 것 같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인데도 한 사람은 걸리고 한 사람은 안 걸렸다는 영웅담도 있으니 아마도 나같이 도서관을 열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슈퍼 유전자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열심히 소독액을 묻는 티슈로 출입문 손잡이를 비롯하여 손이 닿을 만한 곳을 닦고 수기장부에 달린 볼펜까지 닦으며 언젠가는 오고야 말 손님 같다고 말하면 오만일까. 오늘도 벌써 주민들을 비롯하며 먼 거리에서 책 검색해서 오고 간 사람들이 꽤나 있는데, 그때마다 마스크를 고쳐 쓰고 창을 열어 환기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고 문을 닫을 시간이면 여느 때보다 큰 한숨이 나온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전화로 자가격리를 알렸던 그 분이 빌려간 책을 반납하러 왔다. 자가격리가 끝났다는 것마저 잊고 있다 불쑥 들어온 그 분을 보자 솔직히 겁이 나긴 했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꼬집 손으로 책을 받아들고 책 소독기에 넣고 돌렸다. 자가격리가 끝났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알린 덕분에 안심이 되기는 하지만 확진이라고 해서 별 고생 없이 보냈다는 말로 다시 소설을 고르는 그분에게서 어쩐지 위안을 얻는 것 같았다. 마침내 겪을 것을 겪고야 말았다는, 다시 확진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내 몸에 다녀갔다는 것만으로도 당당해 보이는 그분에게 후일담을 잠깐 듣고 새로운 소설을 권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가 소설 같기만 하다.
이런 날 소설을 비롯하여 문학책과 그림책이라도 없었으면 어땠을까? 동네 가까이 작은도서관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스스로 위무해 본다. 멀리서 절판된 지 오래인 책을 찾아 온 노학도에 집에 공부시켜 놓고 아이를 위해 과제용이나마 필요한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란 생각. 바이러스가 무섭고 두렵다지만 서로를 위해서 문 닫고 조용히 있는 것도 좋다는, 그래서 좋아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좋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침이면 으레 도서관으로 오기 위해 가방을 챙기고 천변길을 걸어오는 나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지 뭐.
나만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작은도서관 사람들은 어떻게든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자로 소독약을 바르며 마스크 너머로 출입문 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 중국 화산 꼭대기에 짐을 날라다 주는 짐꾼이 힘든 길을 왜 가느냐고 묻는 관광객에게 "길이 없더라도 가야 하는 것이 짐꾼"이라고 했던 것처럼 그런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하고 중얼거려 보는 것이다.
2022 청주시작은도서관협의회 워크숍 (0) | 2022.04.04 |
---|---|
어려운 때일수록 어려운 책을 (0) | 2022.03.31 |
작은도서관은 공동체 삶의 꽃이다 (0) | 2022.03.07 |
작은도서관이 살아남는 길 (0) | 2022.02.11 |
자본론 있어요? (0) | 2022.01.12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