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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때일수록 어려운 책을

작은도서관 이야기

by 참도깨비 2022. 3. 3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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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지역에서는 '책 읽는 00' 대표 도서를 선정하여 시민들이 독서동아리나 학교와 도서관을 통해 읽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성인과 청소년, 아동 부문으로 나누어 시민들로부터 추천 받은 책을 투표를 거쳐 선정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립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투표를 했다. 실시간으로 표를 얻는 과정이 그대로 보여 요즘 방송에서 하는 경연 프로그램을 보는 듯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이 같은 방식의 대표 도서를 선정하여 시민들의 독서 진흥을 독려하고 있기에 중복되기 쉬운 베스트셀러나 대형출판사의 책을 선택적으로 배제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정작 뽑아놓고 보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도 한다.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모든 이에게 많이 노출된 책이 되기 쉽다는 것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시민투표를 거쳐 올라온 여러 권의 책을 놓고  선정위원들의 의견을 공유하고 최종 투표하여 결정하는 방식으로 올해도 세 권의 책이 선정되었다. 성인 부문에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동아시아)와 청소년 부문에는 <불편한 편의점>(김호연 장편동화/나무옆의자), 아동 부문에는 <강남 사장님>(이지음 장편동화/비룡소)이다. 아마도 시민투표로 올라온 몇 권의 책들에 대한 열띤 토론과 투표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과정은 어느 누구도 딴죽을 걸 수 없는 선정위원회의 고유 권한과 결정에 대한 책임과 보장이 있어야 하기에 다른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선정위원들이 과연 시민들이 어떤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결정하는 방식에서 고려해야 할 것은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마다의 고민이 들어가야 하는 대목이기도 해서 하는 말이다. 사실 한 권의 대표도서만 선정하던 초기의 방식에서 세 부분의 책으로 확장한 것은 책을 대하는 다양한 계층을 고려하자는 뜻과 함께 지역에서 열심히 창작하고 있는 작가에 대한 몫도 있었다. 한마디로 지역작가의 책이 대표도서가 되어 베스트셀러 위주의 강연식 프로그램과 선포식만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지역작가라 함은 단순히 지역을 배제할 수 없어 끼워주는 낮은 의미의 지역작가가 아니다. 작가로서나 작품의 질과 영향면에서 높이 살 만한 것을 뽑되 지역에서 작가 대우를 더 해주고 지역이 사랑하는 작가와 작품을 기대할 수 있자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제주에서는 우리와 방식이 비슷하지만 세 가지 부문에 '제주문학'이라는 중요한 한 자리를 추가하였는데, 실상은 그런 의미의 지역문학에 대한 고민과 창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시민들이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제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긴 하다. 그러나 이렇게 대표도서를 선정하여 작가를 초청하여 선포식을 하고 본격적으로 읽어보자는 방식에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제주처럼 '제주문학' 부문을 넣은 것은 단지 지역에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삶, 문화를 통틀어 작가로서 어떤 창작을 해야 하고, 그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무엇을 공유하고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세 부문 모두 문학 작품이 선정될 가능이 많은 상황에서라면 좀 더 고민과 토론에 이른 변화의 시기가 앞당겨져야 한다. 

 

우선 선정위원으로 참여하는 명망 있는 지역 인사들(당연직으로 참여하는 공공도서관 관장이나 각 부문을 배려한 시 의원, 작가, 교육청이나 대학 교수, 학교도서관 담당 사서 등)의 황금율에 가까운 구성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대표 도서로 선정했으면 하고 추천하는 도서들부터 선정 방식에 이르기까지 해당되는 일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어느 선정위원의 의견처럼 "요즘처럼 어려운 시절에는 쉬운 책, 힐링되는 책이 좋지 않느냐"나 "문학은 어려워서 시민들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궁색한 의견이 반영되는 쪽은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올해 선정된 세 부문의 책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선정위원의 공통된 의견들이 시민들의 힐링까지 생각하게 하는 쪽으로 시혜 성격의 투표로 흘렀다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문학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가장 황당한 경우가 그것이기도 하다. 문학은 대개 어렵다. 그렇기에 어려운 시절에 힐링이 우선이라는 주장이 과연 책을 읽는다는 이 관변적 행사와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행사에 어울리는가 하는 것이다. 더욱이 시는 어려워서 먼저 떼놓고 가자는 식의 의견(실제로 이번에 중복투표 방식의 문제를 안고 시작했지만 후보도서로 올라온 시집에 대한 다른 해의 결정에 이같은 의견이 반영되었기에 하는 말이다)도 있었다면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책 읽는 00은 시민들에게 일방적으로 던지는 독서 방식이 아니라 선정된 작가와 함께 토론하거나 단순한 읽기 모임이나 숙의적인 방식으로 각 부문의 책에 가깝게 다가가는 행위와 그 다음의 결과물들이 남는 것이다. 더욱이 어렵다는 문학이 삶에서 나온 장르이기에 이 어려운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방식이어야 맞을 것이다. 그런데 교양주의나 단순 독서 권장이나 보여주기식 성과주의로 가는 듯해서 안타깝다. 그 지역에서 선택한 책이 시민들의 독서 수준을 가늠하는 것도 아니고 전국적인 작가들을 모셔와서 독서진흥을 북돋우겠다는 것으로만 해결될 수 없는 것이기에 제주처럼 또 다른 대안을 통해 지역이 사랑하는 작가를 길러내고 그들의 창작 환경을 도와주려는 변화가 필요하다.

어려울 때일수록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위대한 작가는 재발견되고 읽는 행위를 거듭하면서 좋은 작품으로 자리잡고 기억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행을 타는 힐링 위주의 책이 오래 남는 고전의 자리에 오를 수 없듯이 제대로 된 책을 찾아 읽고 고민하고 삶의 근간을 삼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끝없이 공부하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삶은 얼마나 더 어렵고 어려운가, 나를 생각하고 타자를 생각하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이 요지경의 세상은 얼마나 더 어려운가.

제주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 제주시 우당도서관 이미지를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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