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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음성고 학생 시를 중심으로

시와 함께한 나날

by 참도깨비 2021. 8. 1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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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성춘희 시인

언젠가는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음성고등학교 학생 시

 

충북 음성고등학교는 독서동아리와 문학동아리가 잘 움직이고 있어서 학교 분위기가 밝은 느낌이다. 문학이 중심이 되어 학교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선례라고 할 수 있다. 교과서에서 학습용으로 밑줄 긋고 배우는 문학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의 삶을 통해 문학이 되는 그 무엇을 배운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흔히 질풍노도(삶을 떠난 공부만을 위한 공부 광풍에 휩쓸려)의 시기라고 하는 중,고등학교 시절은 자칫하면 내가 누구이고 왜 사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기에 이렇게 시로 풀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비 오는 날 길을 걷다

비 맞아 고갤 숙인 작은 풀을 본다.

 

그 풀 오랫동안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냈기에

그토록 허리가 굽었을까?

 

나는 꽃을 보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나의 부모님과 나를 키우시느라

오랜 시간 동안 고되게 살아오신 나날들

 

이제는 허리가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굽었나 보다

 

! 이제라도 그분을 편히 쉬게 해드리고 싶다.

 

○○○, <할미꽃>

 

처음 만난 시부터 남다르다. 이런 시간을 가졌기에 썼고 돌려 읽으며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을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할미꽃을 보고 할머니를 생각하였다기보다 오랜 시간 동안 고되게 살아오신 나날들을 생각해 보는, 멈추어 마음에 담아본다는 것만으로 좋은 것이다. 꽃이나 나무를 그리면서 알게 된 그 눈맞춤의 순간이 가져다 준 여백을 말해주었더니 가장 최근에 본 할미꽃을 떠올려 쓴 것이기에 반가울 수밖에 없다.

 

아직 어린 것은

계단을 내려오지 못한다.

 

아직 낯선 것은

크게 자라나지 못한다.

 

내가 작은 강아지를 보았을 때 느낀 것이다.

너는 겨우 너 만한 높은 계단에서

낑낑거리는 울음으로 나를 불렀다.

 

겨우 한 뼘에 우는 것은 우스웠지만

기꺼이 손으로 너를 내려주었다.

 

좋을 때까지 불러라

네가 클 때까지 데려다 주마.

 

김주현, <계단 내려오기>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어쩌면 강아지를 도와주는 일이기에 하지만 본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기도 하다. ‘아직 낯선 것은/자라지 못한다는 말이 강아지처럼 계단마저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를 두고 하는 말이니 아직도 계단에서 내려오지 못한 자신의 어린 모습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겨우 너 만한 높은 계단에서/낑낑거리는 울음으로 나를 부르는 강아지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며 클 때까지 보살펴주겠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면 아직도 자신은 높은 계단에서 내려오는 방법이나 자신처럼 누군가 도와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계단 내려오기란 제목이 신경 쓰기 기술’(베스트셀러 책 제목)처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칠판 지우개와 분필은 다르다

하지만 정말로 다를까?

아니다, 그 근원은 같다

 

사람과 사람도 다르다.

하지만 정말로 다를까?

당연하다, 사람들은 가치관부터가 다르다.

 

가치관이 다름으로

싸움이 일어나고

전쟁도 일어난다.

 

이렇게 하나의 가치관이

세계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생각은 역시 중요하다.

 

이은서, <생각>

 

생각이 화두가 되어버린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생각인 줄 알았지만 파고들면 들수록 하나의 가치관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있게 마련이다. 왜 칠판 지우개와 분필은 다르지만 근원은 같다고 했을까? ‘사람과 사람이 다르다는 말과 충돌하며 생각을 잘못 한 듯 보이지만 같고도 다를 수 있는 가치관이 충돌하여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생각이라는 자리, 그것이 생각의 역사이지 않을까. 칠판에 글씨를 쓰는 분필과 그것을 지우는 지우개는 단지 칠판과 그곳에 쓰여지는 글씨와 문장이라는 큰 의미에서 보면 같고도 다르다는 생각에서 시작하여 세상 돌아가는 판 또한 처음에는 이렇게 작은 생각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네가 보는 많은 것들 중에

내 것 하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없는 것 같다

매일 괜히 널 보러 간다

그러면 그날 하루는

행복해지기 충분한 하루가 되기에

 

이명희, <충분한 하루>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말은 옛 어느 시인의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더할나위없이 좋은 라는 존재에게서 상처받을 수 있지만 아직은 괜찮다는 말일까. 행복 또한 누군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만드는 것임을 안다는 것일까. 아직은 충분하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 것 같다.

 

인생에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지만

사실 원하는 것이 없는 건

가장 큰 힘이다

, 사랑, 우정

보고 있는 것은 많지만

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질수록

피폐해져 가는 게

무언가에 의지하려 할수록

더 무너질 것만 같음이

어릴 때 배우던 인생의 목표에 대한 생각을

부질없게 만든다.

원하는 것이 없는 건

날 때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임미란, <무욕>

 

정말 무욕이라는 것을 알까? ‘무욕이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 오는 평화로운 것인지 쉽게 알 수 없는 때이긴 하지만 마지막 대목이 걸린다. ‘날 때 그대로의 모습’. 앞에 말한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라고 한 대목에 맞물려 울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힘에 의해 일률적으로 세워놓은 목표와 , 사랑, 우정마저 원하고자 애쓸수록 본연의 것이 아닌 강박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무욕을 꺼내든 것일까? 어쩌면 내려놓았다기보다 아무런 의욕이 없다는 표현인지도 모르겠지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찾아가는 험난한 길을 선택한 것 같다. 말이 무욕이지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할지 알기에(무너질 것만 같은, 부질없게 만드는 그간의 일들이 생략되어 있으니) 어깨를 두드려주며 박수를 쳐주는 길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나는

공무원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꿈이 아닌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꿈

 

나는 그런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이예지, <>

 

무욕이 나오니 바로 이런 시가 나왔다. 목표라는 것이 이렇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꿈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직업과 그와 연관된 생계이듯이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마저 진정한 인지 되묻게 한다. 지금 현실의 아이들이 허무맹랑하게 받아들이는 이라는 것이 이렇다. 정작 내가 하고자 하는 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도 내리지 못하고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꿈의 결정판인 공무원을 입에 올려야 한다는 것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제발 그 이라는 것조차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려버리고 싶게 만든다.

 

내 발밑에 그어져 있는 흰 선

달리고 싶다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아 차마 발을 내밀 수 없다.

내 옆에 떨어지는 낙엽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달려야 한다.

 

오른발 왼발 잔상을 남기며 달리는 나

옆에 있는 낙엽과 함께 흰 선으로부터 멀어져간다.

점차 가까워진 흰 끈, 그 끈을 끊고 나서야

지나가던 나무는 멈추고, 양발의 잔상은 사라졌다.

늦게나마 뒤를 돌아봤을 때, 낙엽은 이미 떨어져 있었다.

달려야 했을까?

 

내 발밑에 흰 선은 없다.

 

남병훈, <달리는 나>

 

우리는 완벽해야 한다.

수학도 잘 해야 하고

국어도 잘 해야 하고

체육도 잘 해야 하고

말도 잘 해야 하고

유머 감각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공에 가까워진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난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오늘 슈크림 붕어빵 사먹을 거다.

 

김예원, <슈크림 붕어빵>

 

앞서 말한 목표는 어찌 보면 이렇게 숨겨진 흰 선일 수도 있다. 낙엽에 묻혀 다시 출발선에 있어야 할지, 지나친 도정의 선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이것마저 모르게 달리고 있다는 환상처럼 보여서 정말 달려야 했을까? 하고 묻게 만든다. 또 다른 흰 선인 피시니라인를 지나야만 끝이 날 수 있는 잔상이라면 조금은 가혹해 보인다.

그에 비해서 슈크림 붕어빵은 또 다른 현실자각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행복을 보여주는 것이 어찌 붕어빵이기만 할까 싶지만 내일에 불안해하며 살기보다 슈크림 붕어빵처럼 맛있는 삶을 선택하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목표와 꿈처럼 완벽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과감하게 난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고 선언하는 말 자체가 슈크림 붕어빵처럼 달착지근한 것이어서 웃음이 난다. 앞의 시와는 달리 현실적인 선택을 한 대상을 슈크림 붕어빵이 본인의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아 좋다.

 

쓸쓸함이 불어와

가슴에 여운을 흐리고 가는 계절.

 

쓸쓸함을 주고도

대답을 주지 않고 그저 마냥 떠나보내게 되는 계절.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뒹굴거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색이 변해버린 색색의 식물들과

그렇게 그렇게 시간을 멀리 바라보게 되는 계절.

 

가을에게 묻는다.

답을 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

 

그렇게나마 가을에게 질문을 하면

그리움이라는 시간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줄 수 있을까봐.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며

가을의 의미를 알아간다.

 

홍유빈, <가을의 의미>

 

아무런 생각이 없고 시키는 대로만 움직일 것 같은 아이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을의 의미가 바로 그렇다. 왜 가을이 쓸쓸할까, 떠나보내는 계절답게 정답 없는 물음 속에서 의미를 찾게 만들기 때문일까? 대답이 없을 걸 알면서 물어보는 쓸쓸함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라도 질문을 하면 그리움이라는 시간에게 조금이나마/위안을 줄 수 있을것이라는 말이 작지만 대단한 발견이다. ‘그리움그림에서 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람이란 그렇게 그리는 존재이고 떠나보내는 것들에 대해, 자신의 삶과 어우러진 것들에 대한 위안의 다른 말이기도 하니, ‘가을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사람이 너무 좋다

사람이 너무 좋아 큰일이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도 좋다

매일 어렵고 힘들다고 징징대도 좋다

사람이 너무 좋아 큰일이다.

 

○○○, <사람>

 

그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부끄러워서일까.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대로 보인다. 사람이 좋아 누구에게라도 다가가면서 상처도 받지만 어렵고 힘들어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이것은 정말 큰일이기만 할까?

 

나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 싶다.

왜 벌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대답을 한다.

돈을 많이 벌어 맨날 돈 없다는 우리 엄마

건물주 만들어줘야겠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갖게 된다면 우리 아빠가

갖고 싶다던 자동차도 바꿔줘야겠다.

나는 부자가 정말 되고 싶다.

 

○○○, <>

 

꼭 이런 시 몇 편은 나오게 마련이다.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을 어찌 다른 말로 바꿀 수 있을까? 아주 가난하지는 않은 듯한 살림에서 보여지는 가족의 욕망마저 느낄 수 있기에 귀엽기까지 하다. 이 시대의 상징이 되어버린 건물주자동차를 피해갈 수 없기에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경제를 배워가고 삶의 본질을 배워가는 것이니 부자란 말이 여러 친구들을 웃게 만드는 시다.

 

안녕, 하고는

매일 너의 안부를 묻는다.

 

오늘은 무얼하며 보냈는지

 

○○○, <그대의 이름>

 

나는 오늘도 우울하다

하지만 너의 말 한마디라면

나도 모르게 웃어버린다.

이럴 때는 너의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될 때도 있고,

상처가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떡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너의 말 한마디는……

 

내 마음을 왔다갔다하게 만드는

신기한 초능력인 것 같다.

 

○○○, <너의 말 한마디>

 

영원한 시간이 지나

 

사진은 노랗게 바랄 대로 바란 채

추억의 편지는 번진 채로 번진 채

 

그렇게 너와의 시간은

꼬깃꼬깃 구겨져

 

휴지통에 버려진다

 

한세은, <안녕, 나의 별>

 

 

다시 아이들의 원초적인 마음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들은 한숨도 쉬지 않고 라는 대상을 생각하고 있다. ‘를 좋아할 수밖에 없어서 그 존재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그리워하는 의 분신들. 부디 상처받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알아가는 시간이기를 바랄 뿐이다.

 

은하수에 떠내려가는 저 밝은 달

어디로 흘러가기에 어디 저리 바삐도 넘어가는가.

저 흘러가는 은하수 속 그녀의 자취 또한

흔적없이

말도 없이

사라진다.

그녀가 날 위해 남겨둔 저 밝은 명월.

애처롭게 은하수는 내 맘을 몰라주는구나.

홀로 남겨진 그림자

그녀가 명월을 남겨둔 이유 또한

나 없이도 외롭지 말라고 그림자를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나 또한 별을 쏘아 그녀 계신 곳에 보내고져

외로움 달래시길 바랄 뿐이다.

 

○○○, <달빛>

 

연애편지가 따로 없다. 실패할 확률이 많은 연애편지. 그림자끼리의 연애편지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애처롭다.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아 내 마음에 들게 하기까지가 그렇다. 그러니 그림자로만 끝내지 말고 왜 좋은지, 그 사람의 마음에 제대로 된 연애편지를 써야 하지 않을까? 옛 편지에 기대어 자신의 마음을 담은 듯 식상해 보이지만 저만의 연애기술을 쓰고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림자가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구실로 쓰였으니 진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로 써서 들려주었으니 분명히 대답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 아이 마음을 모르겠어.

내 마음 또한 모르겠어.

그러나 하나 알 수 있는 건,

내가 그 아이를 아낀다는 거야.

그렇게 아껴준다면,

언젠가는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 <서로에게 묻는 마음>

 

그림자로 표현된 앞의 시에서 따온다면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의 정체는 아껴준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러니 헛된 망상만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는 알아주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이 힘든 나날을 견디게 하는 것이니 언젠가는 이어질 날이 올 것이다.

 

나는 항상 추억을 원한다.

그 속엔 즐거움일 있으니까

나는 항상 잠을 원한다

하지만 그 속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왜 난 항상 잠을 원할까?

 

이유진, <>

 

듣기도 어렵고

쓰기도 어려운

눈으로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어려워

 

잘려고 맘을 먹는다.

꾸벅꾸벅 하며 조는 것은

왠지 자겠다는 내 결정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

꾸벅꾸벅 안 하려 하는데

 

꾸벅꾸벅하는 것은

내 양심의 위험을 가리키는 듯이

자꾸만 하게 된다.

 

곽민이, <수학 시간>

 

수학 시간에 연필을 굴려 답을 구했던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 시다. 얼마나 많은 수학 시간을 이렇게 처절한 싸움을 하며 보냈던가. 웃고 볼 일이다.

 

애국이란 무엇인가?

일제의 억압 속에서 대한의 독립을 외치는 것이

애국자이다

색바랜 태극기에 마음 아파함도 애국이다.

 

○○○, <애국>

 

느닷없이 애국이 나온 까닭이야 모르겠지만 자신이 알고 있고 말하고 있는 신념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아이들의 뜻모를 원성과 함께 정리해 본다.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라고.

 

너는 무슨 색을 가졌니?”

제 색깔은 무지개에요.”

 

색깔은 여러 개가 존재한다.

내가 무지개라 답한 이유는

 

난 한 가지 색이 아닌

여러 가지 색을 뽐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혜미, <무지개>

 

슈크림 붕어빵과 같은 동문서답 같지만 충분히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 시다. 자기만의 색깔이 어찌 한 가지 색이기만 하겠는가.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자신에게 만족하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우린 언제쯤 헤어질 수 있을까.

너를 보내기 싫어

너를 외면했던 그 일주일

하지만 우리의 이별은 많은 것을 불러오겠지.

나는 너의 감정을 가지고

너는 나의 손길을 가지고

서로를 떠난다.

또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위해

우리의 끝이 없는 이별을 위해.

 

○○○, <소설책과의 이별>

 

소설을 자주 읽는 아이답게 한 권 한 권이 끝이 없는 이별이자 만남이다. 문학이 그렇다. 단지 읽고 마는 독자로서만이 아니라 문학 안의 여러 인물과 사건을 통해 나누는 감정이자 손길임을 아는 남다른 발견이 시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수평선 너머 저 멀리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는 점점 더 다가온다.

애써 멈추고 싶지만 그 파도는 멈추질 않는다.

 

능력이 부족해서, 말 주변이 없어서

멈출 수 없는 건 아니다.

 

그저 내게 다가와

파도처럼 부서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는 하얀 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모래사장 같은 그녀의 가슴에 스며 한참을 서성인다.

 

김민주, <파도>

 

시는 이렇게 은유와 상상의 도가니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목소리가 파도 거품이 되어 사라진다는 표현이나 그것이 모래사장 같은 그녀의 가슴에 스며 여운을 남긴다는 표현을 보더라도 연애편지를 잘 쓸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그만큼 풍족한 바다의 마음의 가진 것이니 부러움을 살 만하다.

 

따뜻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이 있다.

북극의 여름날이나 어머니의 차가운 손

 

그리고, 너의 말처럼

차갑지만 부드러운 것들이 있다.

 

○○○, <아이스크림>

 

아이들의 탄성을 불러온 까닭은 복잡하지 않게 그냥 아이스크림이기 때문이다. 차갑고 부드러운 너의 말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져질 것 같은 말랑말랑한 말에 까르르 웃어제끼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로 위로하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나는 공허한 눈길로 카메라 렌즈만을 바라보지만

어릴 적 나는 카메라를 쥐고 있는 엄마를 바라봤다.

 

카메라 렌즈 속에 담긴 그대의 눈동자 맺음새가

눈동자에 맺힌 그대의 찬란함이,

빛바랜 필름에 담긴 그녀의 그 시절이,

지금의 나를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하나, , 셋이라는 구령에 맞춰 지어낸

그대의 양쪽 볼의 꽉 찬 미소는

내 시선을 가두어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둔다.

 

홍유빈, <꽉 찬 미소>

 

어느 중학생이 사진관에서 굳어버린 아빠의 얼굴을 발견했다는 시를 읽어주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오래 전 사진과 그 사진기를 통해 들여다본 낯익은 그림이다. 지금도 이런 미소로 바라보아주고 있는 어머니에게서 느끼는 유대감이다.

 

우리가 늘 지니고 다니는 것이

한순간 없어진다면,

그 허전함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김다희, <소중함>

 

그 소중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몸에 지니고 있고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니 잠깐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그런 매순간의 소중함을 짧게 표현한 것만으로도 좋다.

 

학교가 끝나 집에 가면

공부를 안 하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이 미워진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력을 안 하는 나 자신이 밉다.

 

하지만 노력하면 그만한 성과가

나와 나 스스로가 뿌듯하기에

그리 밉지는 않다.

 

하면 할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을 가질 뿐 실천은 잘 안 하는 나 자신이 밉다

그래도 실천할 때면 그리 밉지는 않다.

 

나는

나를 모르겠다.

 

박순지, <모르겠다>

 

한쪽에 이런 후회를 하며 머물러 있는 아이가 있게 마련이다. 나약하고 게으름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는 자책에 빠져 있는 것이다. 알고는 있다. ‘노력하면 그만한 성과가 따른다는 것이이나 그런 순간의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기에 실천만이 해결책이지만 현재의 상태는 지쳐서 나조차 모르겠다는 정체 상태에 빠져있다. 응원과 위로의 말이 필요하다. 이렇게 시로 써서 알리는 것 또한 필요하다.

 

연필이 좋았다.

실수하면, 아무 일 없듯 지울 수 있는

누구도 모르게 지울 수 있는

연필이 좋았다.

 

지우개로 지웠다.

지우개는 내 실수를 지웠다.

나는 내 기억을 지웠고,

또 다시 실수를 반복했다.

 

이제는,

볼펜이 좋다.

실수해도 직직 그을 수 있는,

흔적이 남아 기억할 수 있는

볼펜이 좋다.

 

조민주, <연필과 볼펜>

 

지우개와 볼펜, 연필은 초등학생 시나 중,고등학생 시에 자주 등장한다. 사물에 빗대어 보기 시로 자주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발견과 성찰과 주장을 담을 수 있기도 하다. 연필과 볼펜, 지우개는 아이들을 따라 다니는 또 다른 분신이자 조바심과 실수, 강박을 담아내는 사물이기도 하다. 실수하면 금방 지울 수 있는 연필이 좋다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지우개(‘지우개는 지울 수 있다/글씨도 그림도 지울 수 있다/어쩌다간 우리 마음까지 지울 수 있겠다’-신준호;초등 1학년)로 시작하는 여러 버전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고등학생의 시는 좀 다르다. 지금까지는 실수가 두려워 지우길 반복하게 만들었던 연필과 지우개를 넘어 실수해도 그만의 흔적을 남기며 새로운 시도를 해도 된다는 걸 알아가는 자리로 넘어온 것이다.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면 더욱 더 좋겠지만 스스로 터득한 볼펜으로 빗댄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것 같아 좋다. 그때까지 기다려주고 위로의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것이말로 문학이고 시이지 않을까?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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