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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학교 없는 사회>

새책 소식

by 참도깨비 2023. 2. 2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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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입학철이 되면 어쨌든 우리에게 학교가 있어야 한다고 믿게 된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한이 있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학교를 다니고 졸업장을 훈장처럼 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의 이 책을 읽으면 어떨까? 건축학자가 말하듯 학교 건물이 병영 막사 구조로 되어 있고 하루종일 갇혀 있는 또다른 감옥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학교를 정확히 규정짓기 어렵다. 이반 일리치는 학교는 불평등을 심화하고 배움의 자유를 억합하는 곳이라 말하고 있다. 학교는 타고난 '배움'의 능력을 교육의 '필요'로 바꾸고 하나의 서비스 상품으로 판매하는 기업적 제도라 말한다. 배우지 못한 사람이 교육의 기회를 통해 더 나은 사회 일원으로 나아가게 하는 이면에는 졸업장과 점수로 등급을 매기고 큰 틀에서 등급에 맞는 불평등을 양산한다는 것이다. 성적에 따라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부를 획득하는 상위층이 있는가 하면 학교에 다닐수록 가난해지고 배움의 기회를 잃는다는 모순을 낳는다고 한다. 학교 시스템 안에 불평등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가 1970년대 초 쓴 『학교 없는 사회』는 지금 교육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배움의 가치를 교육이라는 이름의 ‘서비스 가치’로 바꾸고, 승리자보다는 패배자를 양산하며, 학교교육이 아니면 직업도 사회적 지위도 얻을 수 없는 극단적 독점을 하고 있는 곳이 학교이고, 자본주의적 생산-소비 체제에 맞춰 이에 적합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면 교육 또한  ‘사용가치’를 시장의 ‘교환가치’로 바꾸어 공급하는 독점적 제도들이어서 학교가 아니면 배울 수 없다는 데 맹점이 있다. 일리치가 바라보는 학교는 가르침보다는 종교적 의례를 집행하는 곳이다. 선한 목자에 의해 길들여지는 신앙처럼 자본주의와 결탁한 사회 전체가 학교화되었다(schoolized)된 것이다. 졸업장과 성적이라는 가격표로 애초의 불평등을 추인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의례적 절차를 시행하는 곳에 불과하다고 일리치는 말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을 ‘학교화’함으로써 배우는 과정과 배움 자체를 혼동하게 만든다. 이렇게 과정과 실질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새로운 논리가 등장한다. 즉 더 많은 처치를 할수록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거나, 단계를 잘 밟아나가면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 이렇게 되면 학생의 상상력마저 학교화되어 진짜 가치 대신 서비스를 가치인 양 받아들이게 된다. 즉 의료서비스를 건강으로, 사회복지를 사회생활 개선으로, 경찰 보호를 안전으로, 무력에 의한 균형을 안보로, 무한경쟁을 생산적 활동으로 오해하게 된다. (…) 이 책에서 나는 이런 ‘가치의 제도화’가 필연적으로 물리적 오염, 사회적 양극화, 심리적 무능력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다. 전 지구적인 퇴행과 현대화된 가난이 생겨난 과정에는 이런 세 가지 차원이 있다.” (본문 17~18쪽)

학교를 벗어나 진정한 배움의 길을 가야 한다고 일리치는 주장하고 있다. 의료서비스를 건강으로, 사회복지를 사회생활 개선으로, 경찰 보호를 안전으로, 무력에 의한 균형을 안보로, 무한경쟁을 생산적 활동으로 오해하면서 제도적 가치에 휩싸이다 보면 물리적 오염, 사회적 양극화, 심리적 무능력을 불러온다. 전 지구적인 퇴행과 현대화된 가난이 생겨난 것은 이 세 가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교육을 대체할  ‘배움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개인적이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네트워크 말이다. 주변의 사물, 친구, 어른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우며, 마지막으로는 전문지식의 소유자로부터 깊은 지혜와 수준 높은 기술을 익히는 관계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를 말한다. 그래서 이반 일리치는 자율적 인간의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다. 조작된 가르침과 제도화된 서비스의 세상에서 벗어나 함께 ‘자율적 공생’의 삶을 누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학교 없는 사회'가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지만 이러한 인간 회복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삶이 더 풍요로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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