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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남일과 함께가는 근대문학 산책

새책 소식

by 참도깨비 2023. 9. 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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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은 1930년대 중반에 쓴 장편 『성모』에서 지금으로선 꽤 낯선 교실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철진이가 엄마에게 자기네 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아예 지리부도까지 펴놓고 침을 튀기는 것이었다.
“엄마? 우리 반에 글쎄 여기 이 제주도서 온 아이두 있구 또 나허구 같이 앉었는 아인 함경북도 온성서 온 아이야. 뭐 경상남도 진주, 마산, 부산서도 오구 평안북도 신의주, 그리구 저 강계서 온 아이두 있는데 걘 글쎄 자동차루, 이틀이나 나와서 차를 탄대…. 퍽 멀지, 엄마?”
지도를 거침없이 짚어가는 그 손가락이 퍽 부러울 뿐이다. -8쪽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피장」 편에는 꺽정이가 스님이 된 스승 갖바치를 찾아 묘향산에 갔다가 둘이 함께 백두산 구경을 떠나는 대목이 나온다. 두 사람은 희천, 강계를 지나 후창으로 나와서 압록강을 끼고 올라오며 갈파지, 혜산진을 거쳐서 백두산 지경에 이른다. 길을 나선 지 달포가 지난 무렵이었다. 그동안에도 오막살이 한 채 없는 곳을 숱하게 지나왔지만 이번에는 도끼 소리 한 번 들어본 적 없을 나무들이 하늘을 가린 숲속에 들어섰다. 앞뒤를 가늠하기도 힘들었다. 가고 가고 쉬지 않고 가도 나무뿐이었다. 만일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된다면 10년, 20년에도 벗어나기가 어려울 성싶었다. 그 캄캄한 밀림에서 그들은 짐승처럼 살아가는 운총이와 천왕동이 남매를 만난다. -49쪽

 

그곳 역시 북국이었다. 동짓달부터 이듬해 2~3월까지 1년의 3분의 1은 눈에 파묻혔다. 그곳의 눈이란 대개는 동짓달 초승 밤새껏 처마 끝에 애끓는 듯한 낙숫물을 지으면서 시름없이 내리던 비가 갑자기 눈송이로 변하여 퍽퍽퍽 땅에 박히면서 시작되게 마련이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오래 기다리던 나그네 모양으로 그것을 반겼다. 아직 덜 큰 처녀애들은 작은 손뼉을 마주치며 뜨락으로 뛰어나가서는 치마폭을 버리면서 눈송이들을 받았다. 새로 해준 때때치마를 적셨다고 어머니의 주먹을 등덜미에 몇 개씩 받아도 마냥 흥겨울 뿐, 애기씨 배기씨들은 다시 찾아온 눈의 나그네를 결코 원망하지 않았다.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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