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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미 동시집 <드라큘라의 시>

새책 소식

by 참도깨비 2023. 9. 2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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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에서 김개미 시인은 이렇게 말하며 시작한다.

 

땅속에는

눈먼 두더지랑

부지런한 지렁이랑

코딱지만 한 개미가 살아

 

벌레 먹은 밤이랑

찢어진 나뭇잎이랑

죽은 곤충이랑

끝없이 이어지는 뿌리도 있어

 

이미 온 것들과

앞으로 올 것들

그리고 새로운 많은 것이

거기서 시작돼

 

언제나 깜깜한

밤인 곳에서

 

 이 말은 김개미 시인의 시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시인은 그곳에 자주 들러 '이미 온 것들'과 '앞으로 올 것들'을 만난다. 이번에는 드라큘라와 유령을 만났다. 드라큘라와 유령도 무서운 게 있고 혼자라는 공통점이 있어 이러다가는 둘이 사귀고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동시집이라고 해서 많은 주제를 다룬 동시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 드라큘라와 유령만 가지고 써도 충분히 어린 독자들까지 모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가끔

나쁘고 무서운 무언자가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럼 나는 다리보다 먼저 깨어

꿈속에서 도망쳐 나오는 

내 다리를 본다

 

<악몽> 

 

 누가 꾸는 악몽인가? 누구나 꾸는 악몽이다. 누구나 무서운 게 있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푹 자고, 아예 안 자고, 딴짓을 해봐도 잠과 현실 사이에서 훔쳐보고 웃고 있는 귀신이 있게 마련이다. 드라큘라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더 재미있다.

 

이 밤,

누가 나를 부르지?

 

내 이름을 이토록 다정하게 부를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데

 

나는 늙은 은행나무보다

대장 거북이보다 나이가 많은데

 

지금 나를 부르는 소리는

어젯밤 내가 나를 부르는 소리

 

누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어젯밤 병에 담아둔 소리

 

<누가 부르지?>

 

 드라큘라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싶어 병에 담아둔 소리를 밤에 다시 듣는다니, 어이가 없지만 잠잠 생각해 보면 어릴 적 무서운 밤, 혼자였던 밤에 듣고 싶었던 '나를 부르는 소리'이자 말이었던 것이다. 유령과 드라큘라는 얼마나 많이도 찾아왔던지, 함께 놀 사람을 부르며 골목과 밤을 떠도는 어린 개미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찾아온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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