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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에세이 <작은 미덕들> 읽는 법

새책 소식

by 참도깨비 2023. 10. 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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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가 죽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언덕으로 갔다. (줄임) 그가 사랑했던 도시 끝자락의 풍경, 그리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의 풍경이었다. 우리는 풀이 우거진 낮은 언덕과 쟁기질해놓은 밭 위로 9월의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모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아주 친한 친구였다. 항상 함께 일하고 생각했다. 서로 사랑하다가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그러듯이 우리는 이제 더 사랑하고 서로를 보살펴주고 보호해주려고 애썼다. 그가 자신만의 어떤 신비한 방법으로 항상 우리를 보살피고 보호해주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생생하게 그 언덕에 존재했다.

 

되돌아오는 시선마다, 저녁 햇살이 스며든

바닷가의 풀과 사물들의 냄새가 간직되어 있다

바다의 숨결을 담고 있다

밤바다처럼 하늘이 가볍게 스치는

불안과 오래된 떨림이 뒤섞인 이 막연한 그림자

매일 저녁 되돌아온다 죽은 목소리들은

그 바다의 부서지는 파도를 닮았다

 

<친구의 초상> 마지막 부분

 

 나탈이라 긴츠부르그는 <가족어 사전>이란 장편소설로 알려진 작가이다. <친구의 초상>에 나오는 친구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에세이 내내 나온다. 친구와 대화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글을 쓰지 않았을 거라고 서문에 밝혀듯이 전쟁과 혁명의 시기를 어렵게 보낸 우정과 이웃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짧고 간결한 산문 정신이 빛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친구의 시를 제목도 없이 곁들였지만 그가 누구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멋대로 쳇사레 파베세라 여기고 그가 남긴 <냉담의 시>(문학동네)를 꺼내어 함께 읽으면 좋다. 삶의 고통과 기쁨의 한가운데에서 여성으로 존재하는 방식을 솔직하게 그려나간 작가의 힘이 살아있어서 우리가 산문을 쓰는 것은 신변잡기가 아니라 '오직 문학만이 기억하는 삶의 파편들로 이젠 돌아오지 않는 시절에게 보내는 뜨거운 환대'란 평가를 받을 만큼 자신의 삶과 세계를 담는 것임을 보여주는 본보기와 같다. 

 

제목이 말하고 있는 미덕이란 "자녀를 교육할 때 나는 작은 미덕들이 아니라 큰 미덕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작가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큰 미덕이란 용기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솔직함, 진리에 대한 사랑, 존재하는 법과 앎에 대한 열망 등이다. 작은 미덕은 이런 큰 미덕으로 흘러가는 대립의 개념으로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친구의 초상>에 나오는 친구는 흔히 말하듯 다정한 친구가 아닌 것도 우울하면서도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삶을 마친 친구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작은 미덕의 한 부분이었던 현실과의 부딪힘이 큰 미덕으로 흘러들어가는 흐름 그 자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매일 재발견되고 재창조되어야 한다"고 한 긴츠부르그의 에세이는 고통과 상처를 아름답고 고귀한 문장으로 승화시킨 산문 정신 그대로이다. 

그러기에 독자라면 자신의 삶을 솔직하고 용감하게 들여다보고 밝힐 수 있는 글쓰기로 이어져야 한다. <친구의 초상>에 밝힌 파세베의 시를 찾아 읽고 긴츠부르그의 소설 <가족어 사전>을 동시에 읽으며 <작은 미덕들>이 흘러가는 너머를 가늠해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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