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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지게에 시집을 싣고 팔던 시인이 생각나는 날

도깨비 일기

by 참도깨비 2024. 5. 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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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내 책을 사주신 이 분은 다음날 천안에서 호두과자를 사오셨다. 여분의 책을 선물로 드렸더니 고맙다고, 그래서 손수건까지 또 선물로 드렸고, 호두과자는 회원들과 다른 부스에 있는 예술가들과 나누어 먹었다.

 

가끔 이런 궁금증이 든다.

동네서점이 많아야 작가에게 유리할까?

아니면 도서관이 많아야 작가에게 유리할까? 

쓸데 없는 생각이다. 동네서점이 없어지고 온라인서점과 책 모형이 팔리기 시작했다는 책 안 읽는 시대에서 무슨 당랑거철이란 말인가. 

내가 사는 지역에서 동네서점과 작가, 출판사가 상생하자는 일이 시작된 것도 작가와 출판사, 독자로 이어지는 독서생태계 조성을 위한 일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동네서점의 가장 좋은 자리에 책을 비치해도 독자의 마음과 지갑에 달려있는 일이니 잠자코 지켜볼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청주민예총이라는 예술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충북작가회의 회원 도서 전시 판매전을 해보기로 했다. 최근에 신간을 낸 분들이 시민과 함께하는 북 콘서트가 주 행사였지만 이번 참에 회원들이 낸 책을 받아서 직접 판매해 보기로 한 것이다. 영동에 사는 박운식 시인은 장날에 지게에 시집(첫 시집 <모두 모두 즐거워서 술도 먹고 떡도 먹고>였나, <아버지의 논>이었나, 제목마저 의미심장하다)을 싣고 나가 팔았다 하지 않은가. 사실 작가가 자기 책을 냈으면 염치불구하고 그런 마음으로 팔아야 하는게 한다는게 개인적인 의견이기는 하다.

 

지금은 문화제조창으로 바뀐 담배공장 광장에 부스를 열고 회원들의 책을 받아 깔았다. 서점에서도 안 팔리는 책이 팔리긴 할까, 하는 의문을 품고 직접 책을 가져다 주는 회원이나 멀리서 우편으로 보내주는 책들과 출판사에 남아있는 책들을 모아보니 두 개의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모두 표지를 놓고 보니 신간도 있고 오래된 책도 있는데, 표지와 제목을 전면으로 놓고 보니 책 주인공의 신산한 얼굴이다. 책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것보다 이렇게 책을 내기까지의 삶이 보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더라도 등만 보이며 누군가 팔릴 날을 기다리다 이제야 제대로 얼굴빛을 펴고 독자를 기다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시 보조금을 받아 여는 행사이니 체험용 코인(천 원부터 오천 원)을 받아 해야 했으나 책값이 다양하니 계좌입금이나 현금을 받아 예술제 주관 운영본부에 다시 입금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거창하게 '충북작가 도서 전시 판매'라는 현수막을 붙였으나 과연 몇이나 책 가까이 와서 표지나 열어볼까, 지갑을 열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작가마저 그렇게 해서 팔릴까 의문을 갖는데 동네서점도 아니고 공연과 체험 행사에 줄을 서는 상황에서 가능하기나 할까 싶었다.

 

마침 주말을 맞아 문화제조창 일대에는 다른 행사가 많아 식당이고 푸드트럭이고 부스마다 사람들이 많았다. 어린 아이들을 둔 젊은 부모들과 가족, 연인, 학생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도시의 장날이나 다름없다고 해야 할 정도로 많긴 많은데 책 판매대까지 선뜻 오는 분들이 드물어서 긴장 반 설렘 반이 엇갈렸다. 다행인 것은 회원 작가들이 하나 둘 부스에 모이기 시작하여 임시정부 같은 모양새를 했다는 것. 총회나 큰 행사를 열 때에만 볼 수 있는 분들이 모여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며 앉아있으니 힘이 났다. 

그래서 없던 용기까지 났다. 

"책 사세요. 작가들이 사인해 주고 해줍니다. 와서 읽어보세요!"

이른바 호객 행위까지 해가면서 멀찌감치 떨어져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세웠다. 어린 아이를 둔 젊은 부모들이 동시집과 동화책에 관심을 많이 갖는건 당연해서 마침 자리에 있는 회원들이 나서서 사인과 사진까지 찍어주니 전세가 바뀌었다. 사실 작가와 독자는 책으로 만나야 하는 오작교 같은 것이긴 하다 생각하지만 이 정도의 만남은 필요한 듯하다. 처음 지게에 시집을 싣고 장날에 나가 팔았던 그 분이 얼마만큼 팔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뭐 이런 일이! 하면서 신기하기는 하겠지만그런 일이 세상을 바꾸고 '모두 모두 즐거워서 술도 먹고 떡도 먹'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분위기를 타니 책 판매대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끊이지 않고 찾아와 주었다. 자기 책을 내놓고 직접 팔리는 것을 본 회원들은 한 권 팔린 것도 '완판'이라 말하여 한껏 고무될 수밖에 없었다. 판매대에 올린 책을 그대로 싣고 가야 하는 상황만 피하자며 적극적으로 책을 홍보한 덕분이었다. 책 내용을 다 설명하기보다 직접 몇 편 읽어보다가 공감하는 것에 감응하고 추임새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물론 지인찬스라 부르는 회원의 지인이 와서 다른 작가의 책을 사주는 것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현장에서 직접 읽고 사는 것이었다. 

오후 1시에 열어 저녁이 되어갈 쯤에 보니 절반 가까이 팔렸다. 살림을 맡은 사무처장이 알려주는 판매 실적에 회원들의 얼굴빛이 환해졌다. 완판시인, 완판소설가가 여럿 나오기 시작하자, 책을 더 가져오기도 해서 빈 자리를 채웠다. 오래 전에 낸 책도 기꺼이 사서 읽겠다는 분들이 있으니 20% 할인까지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가장 큰 행사인 총회 때보다 더 사람들이 많다거나 자리에 앉아 그동안 정독하지 못한 회원 책을 다 읽었다는 분들이 많으니 이것이야말로 상생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렇게 첫째날에 잔뜩 고무되어 다음날에는 다른 전략을 세웠다. 나머지 책들까지 팔 셈으로 선물을 준비했다. 지난 가을에 만들어두었던 단풍잎 손수건과 예쁜 책 엽서를 액자에 넣어 책 한 권 사면 선물로 준다고 했다. 거기에 20& 할인(파장 무렵에는 좀 더 세게 할인하는 무리수?를 두었지만)까지 해주니 반응은 좋았다. 더 많은 회원들이 오고 가며 부스를 지켜주고 사인까지 해주며 판매고를 올리니 다른 부스나 예술제 감독과 운영본부에서도 놀랐다. 그렇게 꼬박 저녁까지 "책 사세요! 작가 사인도 해줘요. 선물도 줍니다" 하며 분위기를 북돋우고 스스로 힘을 충전해가며 부스를 지켰다. 

거의 백 권이 넘는 책들이 팔렸다. 자기 책을 사라고 말하기가 얼마나 쑥스럽고 거시기한 일인데,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장날을 부려쓴 회원들 덕분에 벌써 가을 더 큰 장날을 준비해보자는 말이 나왔다. 그때는 더 많은 작가들이 나와 독자와 만나고 조금이라도 책의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으면서도 밀당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마 참여하지 않은 회원들도 새로운 책과 함께 장날을 찾을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첫 질문을 되풀이해 본다. 작은도서관을 하는 나로서는 이런 전시 판매전이 더 많은 책이 대출되는 것만큼이나 고무적이라는 결론과 함께. 작가의 책이 동네서점에 입고되어 한 권이라도 팔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서관에 들어와 더 많이 대출되어 작가를 알리고 다시 동네서점에 들어가고 팔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생태계 순환이 아닐까 하고. 도서관에서 작가를 알리고 좋은 책이라는 믿음을 주면 동네서점에서 사보는 일로 순환되는 일이 필요하다. 도서관의 서가가 작가에게 죽음의 자리이기만 하지는 않다. 한 권이라도 동네서점을 통해 팔려야 작가에게 좋겠지만 한 권 두 권으로 고객의 서가에 묻히는 것보다 도서관에서 대출 반납 대출을 거듭하여 작가를 알리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가로서는 도서관을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도 책 쓰는 사람으로 이틀 동안 책을 팔아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기 때문이다. 학교에 찾아가는 작가 행사를 하는 것이나 도서관 이용자를 만나는 것, 판매부스에서 직접 자기 책을 팔아보는 일 모두가 또다른 작가의 소임이라는 것을 이렇게 책 안 팔리는 시대에 느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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