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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소離巢의 시간이 오면

도깨비 일기

by 참도깨비 2022. 4. 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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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떠날 때가 오면 새끼 까치는 과감히 둥지를 뛰어내린다. 어미 아비보다 더 커버린 몸에다가 날개가 익기를 기다려 혼자 살아야 할 때가 오는 것이다.

 

 

오늘 숲에서 새끼 까치가 불안한 몸짓으로 버둥대며 바닥의 시간을 견디는 것을 보았다. 날개가 짱짱해지려면 둥지에서 뛰어내려 바닥에서 시작해야 할 때다. 새끼 까치는 꽁지 날개도 짧아서 날 수 없으니 낮은 가지에 올라 버티기에도 힘겹다. 가까이 다가가니 부리를 크게 벌리며 운다. 

 

어미 아비를 부르는 것이다. 위를 올려다 보니 새로 이사할 둥지가 보이고 언제 날아왔는지 다급하게 울어대며 가까운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어미와 아비 까치. 역시 불안한지 나뭇가지를 부리로 쪼기도 하고 마른 가지끝을 분질러 떨어뜨리기도 하면서 경계의 메시지를 보낸다. 미안하기도 해서 숲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았다. 다시 그 자리에 가도 새끼 까치는 아직 그 자리에서 날개를 퍼득이거나 기지개를 켜듯 날개를 움직여 또 이소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다시 새끼 까치는 애타게 어미 아비에게 신호를 보낸다. 가마우지처럼 크게 부리를 벌리며 울어댄다. 또 한 번 어미 아비 까치가 날아와 머리 위를 쫄듯이 위협한다. 천천히 뒷걸음질해서 한 바퀴 돌다가 멀찍히 앉아서 지켜본다. 부러질 것 같은 가지를 꼭 움켜쥐고 있다가 다른 나뭇가지로 올라가려다가 헛디뎌 날개를 벌리고 간신히 균형을 잡는다. 어미 아비는 근처 가이아댄스학원 옥상에 올라가 둥지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산책길이자 운동길이기도 하니 다른 사람들이 지날 때마다 허둥대며 불안한 시간을 견딘다.

 

대각선으로 보이는 새 둥지와 어미, 그리고 오른쪽 아래 새끼 까치

날개가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니 당연히 견뎌야 하는 불안이다. 새로운 곳으로 옮긴다는 것보다 혼자 날아야만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더 불안일 수도 있다. 아무리 어미 아비가 있다 해도 그 시간을 당겨줄 수는 없기에 혼자 날아오르려면 오로지 혼자 견뎌야 한다. 

 

숲에 들어서 이소의 시간을 지켜보면서 나 또한 그런 시간을 새로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아니 곧 그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뭘 그리 복잡하게 말하느냐고 하면 어쩔 수 없다. 작은도서관을 지금껏 꾸려오면서 수없이 이소해야 했던 시간을 떠올려 보니 그렇다. 한 곳에 정착하기가 어려웠다. 로또 당첨이라도 된다면야 꿈에 그리던 도서관 건물을 짓고 해보고 싶은 대로 꾸며보겠지만 늘 빌린 공간에서 달이 차면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새끼 까치가 견딘 시간이 어느새 20년 세월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어떻게 떠나야 할지, 어디로 떠나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이미 날개는 짱짱해졌으니 불안하지는 않으나 걱정은 된다. 한 자리에 오래 있어야 하는 도서관의 암묵적인 약속이 깨어지고 원성을 들어야 하는 시간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직 새로운 둥지를 마련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까치야 건너편 나무에 새로 집을 짓고 빈집은 다른 새에게 무상 임대해줄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기에 이소의 시간은 간단치 않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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