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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작가 안 하련다

도깨비 일기

by 참도깨비 2021. 11. 1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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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은 '찾아가는 학교 독서교육' 초청 강사로 갔을 때 찍은 것으로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로서의 유의미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빙 사진입니다. 

 

 

 얼마전 공공도서관 책 읽기 프로그램에 선정도서를 추리는 과정에서 '지역작가' 책을 배제했다는 소식을 듣고 선배 작가가 매우 화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백 권 읽기 식으로 도서관 이용자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선정위원들이 시민들의 추천을 받아 책을 고르는 과정에서 선배 작가의 책이 배제된 까닭은 그 책을 선정하면 다른 지역작가들의 항의가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지역작가의 책을 선정하면 다른 지역작가들이 "왜 내 책은 선정하지 않느냐?"고 할까봐 배제했다는 것이다. 

 

 곧이곧대로 들으면 그렇게 결정한 공공도서관 사서의 말은 애당초 시비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한 고육책을 쓴 것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어느 작가의 책이 선정되면 그에 따르는 다른 작가의 항의가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딘지 궁색해 보인다. 사서의 판단이 옳으냐 그렇지 않으냐를 누가 가릴 수 있을까? 선배작가는 자괴감이 들었을 테고, 그 이야기를 듣는 작가 또한 화가 나서 단체에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당연히 그래야 마땅하다. 이런 일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어서 쓸개즙이 더 품어져 나오는 것 같다. '지역작가'란 말이 처음에는 지역에도 작가가 있다는 뜻이었는데, 이상하게 날이 갈수록 지역에 한정되어 활동하고 있는 '야생동물보호구역'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것일까? 몇 해 전 전국 단위로 연 독서대전 프로그램을 공유하면서 공공도서관에서 작성했던 문서에서 '유명작가/동화작가/지역작가'순으로 강사비가 매겨진 것을 보고 항의했던 기억이 난다. 동화작가 아래 지역작가가 있는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강사비의 차이는 너무나도 치졸하고 비현실적이 것이었기에 항의했더니 계획일 뿐이라고 둘러댔던, 그러면서도 그 등급 아닌 등급이 계속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서들이나 공무원들이 강사비로 대변하는 가치 등급이 그런 것이라면 '지역작가'는 작가는 작가인데 유명작가가 아니라 지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니 끼워주는 것이라고밖에 해설할 수 없을 것 같다. 실제로 학교에 들어가거나 공공도서관에 들어가서 강의를 할 때면 '지역작가'로 대접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초청강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유명작가와의 강사비 차이가 어마어마한 것을 보면, 유명작가는 강사 등급에 따라 2등급 정도이고 지역작가는 시간당 3,4만 원이라는 보조금 지급 규정에 따라 대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그러니 꼬우면 유명해져서 그런 대접을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들릴 때가 많아 자괴감이 든다. 적어도 나태주 시인처럼 유명해져서 강사비가 어마어마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인데, 나태주 시인도 엄밀하게 따지면 지역작가인 것이다. 유명 작가가 되어 초청하려면 어디나 경쟁할 수밖에 없는 지역작가임에 틀림 없다. 더 이상 중앙과 지역이 따로 나눠진 것이 아닌데도 중앙에서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유명작가에게 많은 기회와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책 읽는 도시를 선포하면서 각 지역마다 유명작가들의 책을 선정하고 있는 것도 그렇게 해야만 책을 읽는 분위기를 만들고 더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건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공공도서관과 더불어 작은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 또한 권장도서와 추천도서로 알려진 책들 위주로 독서하고 모임하는 현실이니 '지역작가'는 한 귀퉁이에 향토자료와 함께 바래가는 작가일 뿐인가? 모두가 최고의 작가가 되기 위해 쓰고 또 다듬고 쓰는 작가인 것을 유명해졌다는 베스트셀러 기준으로 숭배하는 차원은 지양해야 한다. 지역작가는 그저 자기가 사는 지역을 떠나지 않고 작품을 쓰는 작가일 뿐이다. 모든 지역작가에게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닌 불합리한 상황에서 열심히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인데 한 지역의 독서문화를 이끌어 가야 할 공공도서관에서 '지역'에 순응하지 않고 단지 참고 자료일 뿐인 '지역작가'로만 대우하며 일방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해 나가서는 안 될 것이다.

 

 도 단위 교육청 사서 한 분이 '책 읽는 도시' 위원회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역에도 작가가 있으니 학교 현장이나  도서관에 책을 비치하고 이른바 A/S가 되는 문학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는 질문에 "그럼, 지역작가 얼마나 되나요. 우리에겐 그런 데이터가 없으니 자료를 뽑아서 주시면 참고하겠다."고 말이다. 심지어 공공도서관 관장은 "지역작가가 몇 명이냐?"고 되물은 적도 있다. 자기들 방식의 데이터만으로도 복잡한 데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수 있느냐는 말로도 들려서 거슬렸는데 현실이 이렇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지역작가'란 말을 없애고 모두가 작가이고, 작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을 우선으로 선정하고 선정 당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가는 어떤 현장에 가거나 문학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삶에서 문학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자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있는 작가들은 자신의 창작도 창작이지만 현장에서 어떤 식으로든 교류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존재인 것이다. 한 번 특강식으로 왔다가 가고 마는 유명작가들과는 달리 지역에서 문학과 예술이 필요한 이유를 증명해가는 존재여서 혜안이 있는 사서와 공무원,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어야만 값어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물론 내 생각과는 다른 작가가 있겠지만 지역을 떠나지 않고 내 문학의 내 삶 뿐아니라 가상의 독자들에게 필요한 이유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나로서는 최대한 화를 삭이며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서라면, 학교 현장의 교사라면 그들의 작품을 스스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판단해야 한다. 누구의 작품을 텍스트로 삼고 부를 것인지는 그런 판단 이후에 현명하게 해야 한다. 오로지 기준이 그런 노력 없이 유명작가≥동화작가≥지역작가 식의 편의주의식 분류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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