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올리는 글은 오래 전 운영하던 홈페이지에 '참도깨비 일기'란 제목으로 썼던 것입니다. 역순으로 올립니다.
겨울방학과 함께 살판난 한길이와 한울이. 처음에는 피자 한판 거뜬히 나누듯 그럴듯하게 생활계획표를 그려대더니 어느새 흐물흐물해졌습니다. 진짜 피자만큼한 사발을 엎어서 동그라미를 그리고 아침 8시부터 밤 10시 사이를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온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라도 하듯 촘촘히 시간돔박질을 하더니 말입니다.
자기들 말로는 키득키득 작전이라나 뭐라나. 밤, 아니 새벽까지 노는지 공부하는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집안을 헤집고 다니더니 아침에는 9시, 아니 깨우지 않으면 10시까지 늘어지게 잡니다. 그게 키득키득 작전의 시작인 셈이지요. 제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언제 계획표대로 하느냐고 잔소리를 해댔더니 이번에는 늦게 자고 아주 일찍 일어나 후다닥 해치우고 중간 중간 낮잠을 자대는 통에 도서관 지키느라 밥까지 차려줘야 하는 나로선 완전 아주머니가 다 된 기분입니다. 제때에 밥 안 먹으니 잔소리(밥을 해주다 보니 밥 제때 안 먹으면 속상하고 남긴 찬밥 걱정하는 심정을 알겠더군요)하고, 애써 만들어준 반찬(반찬이라고 해봐야 달걀부침이나 야채 샐러드 정도지만) 거들떠도 안 보는데 자동잔소리방송이 되더군요.
그러니 밤에 퇴근한 엄마한테 숙제 검사를 받으면 완전 깨지는 것이지요. 수학문제는 별표 치기 바쁘고, 국어문제 또한 건성건성 풀어서 옆구리에 화살 박히는 소리 나는 것이지요. 어느 때는 엄마가 올 시간이 가까워오자 해답지를 보고 베껴놓고 안 베꼈다고 오리발에 거짓말 늘어놓다가 영판 깨지곤 합니다.
이 녀석들 뒤를 빗자루와 쓰레받이 들고 졸졸 따라다니는 꼴이나 다름없습니다. 키득키득 작전이니 어디 먹혀야 말이지요. 빨랫감이며 먹고 난 쓰레기 처리까지 일일히 지적해야만 쫌 하는가 싶다가 다시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녀석들에게 특효약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지요.
'그렇게만 해봐라' 하고 요시찰 대상마냥 노리고 있다가 '그럴 줄 알았어. 딱 걸렸어' 하며 바로 체포에 들어가는 구조인 것이지요. 어른들이란 이렇게 단순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런데 양치기 소년 이한길 거짓말 사건으로 크게 한 번 터졌습니다. 방바닥에 떨어진 껌을 놓고 CSI 못지 않은 지경까지 가게 된 끝에 말입니다. 누가 봐도 바로 전에 씹다 버린 게 틀림없다싶게 말랑말랑한 껌이 방바닥에 붙어 있기에 누가 그랬냐고 물어보면서 시작된 것이지요.
모르겠는데요. 난 아니에요.
한길이는 전혀 아니라고 오히려 성질까지 내려고 하는 통에 표정관리가 안 되는 한울이가 된통 뒤집어 쓰게 되었습니다. 아니 씌운 것이지요. 가끔씩 그런 적이 있기도 하고 머뭇거리다가 웃는 바람에 사춘기가 가까워진 듯 표정이 없는 한길이 대신 딱 걸린 것입니다.
며칠 전에 다녀간 사촌 동생이 어쩌니 하고 둘러대는 한길이의 말은 곧이 곧대로 믿을만, 아니 그럴 뻔했기게 결국 방학생활 점검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효자손을 가져오게 되었고, 종아리를 걷게 되었을 즈음에야 한길이가 털어놓는 바람에 괘씸죄까지 추가하게 된 것입니다.
종아리에 불이 나도록 때렸습니다. 키득키득 작전에 말려든 것일까요.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만 이런 거짓말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흐물흐물해진 파이처럼 되버린 생활계획표까지 들먹이며 혼을 낸 것이지요. 울고 짜증내고 새학년이 가까워오는데 어쩌자고 그러냐며 종합선물세트마냥 품어져나오는 독기에 저 스스로도 짜증나고 화가 났습니다. 독기는 왜 그리 거미줄마냥 술술 나오는지 강조에 강조, 다짐에 각서까지 받아놓고 난 다음에 끝을 냈습니다.
밤에 엄마가 오기까지는 아주 절간처럼 조용했습니다. 어른들이 말하는 각성효과 백점에 알량한 자존심을 지켜주기 안성마춤이었지요.
그런데 한울이 녀석이 아예 나와 협상 같은 건 하지 않으려는 듯 피하는가 싶더니 엄마 앞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일러바치더군요. 형 때문에 맞았다는 것이 아니라 형이 그런 건데 자기만 때렸다는 식으로 말하니 졸지에 나는 엉터리 심증수사에 공정하지 못한 아빠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효자손이 휘어졌어요."
어느새 맹탕맹탕해진 한길이가 효자손이 휘어지도록 맞았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하자 한울이도 한몫 보태어 설명한 것이지요.
효자손이 휘어지도록 맞았으니 얼마나 모진 아빠입니까. 참 아찔하더군요. 무엇보다 이쯤해서 보듬어주고 잘못한 건 잘못한 것이고, 하며 안아주려고 해도 자꾸 피하며 엄마하게 숙제 검사 받고 날마다 읽어주는 책까지 거부하는 통에 국제미아?가 되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그 진통이 며칠은 가는데 벌쭘하더군요. 지금에야 나아졌지만 서로에게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더군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하고 서로 간절하게 생각나는 대목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울이가 공책 한켠에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더랬습니다. 제법 비슷하게 얼굴을 그리더니 털 많은 다리 두 짝 달랑 그려놓은 것으로 복수를 했더군요. 웃기는 건 그 옆에 프로필 같이 써놓은 것이었습니다.
이름 : 이종수
직업 : 사람(시인)
대표시 : 자작나무 눈처럼
출신학교 : 종수초등학교
스킬 : 360도 회전킥, 효자손맛, 힐링 살리기, 소환
슈퍼그레이트 골든 가드 브레이커
(주) 금팬티
성격 : 보통
나이 : 46
발가벗겨진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종수초등학교나 나와서 시인이라는 사람이 360도 회전킥이나 날리고 효자손맛이나 주고 있는 보통 성격의 금팬티!
할말을 잃어 그저 "진짜 잘 그렸는데!" 하고 말하고 있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더군요. 자분자분 이야기하며 할 수도 있는 것을 덜컥덜컥 회전킥(오해 마시길)에 효자손이 회어지도록 때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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