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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잔치를 열어야죠

도깨비 일기

by 참도깨비 2024. 7. 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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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쉰이야?"
"! !"
시커먼 아들 녀석 둘이 협공을 한다. 어쩌다가 뭐하다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느냐고 능글맞게 웃어가면서 나이를 들먹인다. 도서관과 함께 자라나다시피한 큰 녀석은 벌써 고등하교 2학년이 되어 죽을똥 살똥 하며 공부 스트레스에 우거지상으로 다니더니 초등학교 6학년이 동생과 죽이 맞아 놀리는 재미에 빠진 것이다.
"그래, 그래."
일일이 대응하다가 깃털 빠진 백로 신세가 되기에 그냥 웃고 말았다.
", 그때 오십잔치를 열면 되겠네."
여러 가족이 모였을 때 둘째 녀석이 또 한 번 놀렸을 때도 꾹 참았다. 아직도 석기시대 수렵 생활에 밝으신 어머니를 위해 서쪽 바다로 조개 잡으러 가자는 의견이 나온 터라 날짜를 잡는 날이었는데 이 녀석이 뭐 현수막도 걸고 거창하게 하자는 바람에 다같이 웃고 넘어갔던 것이다.
"저 녀석이 제대로 한 방 먹이는데?"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된 아내가 둘째 녀석의 선방에 웃으며 하는 말도 참을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잘 한다'
하고 꿀밤이라도 먹이려던 것도 참았다. 요즘 아버지 놀리는 재미로 사는 녀석들을 무슨 수로 당할까 싶다. 초딩들과 말씨름하면 백이면 백 질 수밖에 없다는 말을 실감하기에 그냥 웃어주면서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 오십이다. 어쩔래. 오십견도 오고 갱년기도 오고 대학 걱정에 군대 걱정까지 한꺼번에 오는 오십고개다, .
나름 방어를 해보지만 웃음만 나온다.
"내가 형처럼 대학 갈 때면 환갑이네?"
현기증이 날까봐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지만 2차 테러에 움찔했다. 그 짧은 순간에 손가락을 헤아려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사실, 또 한 번 웃음으로 방어했다. 니들은 나이 안 먹냐? 하고 에둘러 방어막을 쳐보려고 하지만 그래봤자 아직 탱탱하고 놀놀한 나이라 씨알도 안 먹힐 거라 포기하고 말았다.  한창 때 같았으면 앉은자세에서 휙 날아 니킥을 날리거나 강한 헤드락을 걸었을 테지만 몸이 반응을 하지 않기에 역시 포기!

도서관을 짊어지고 이사도 많이 다니던 시절, 낯선 곳에서 애기똥풀로 팔뚝에 이름을 써주며 웃던 큰 아들이 벌써 사회적 나이 열여덟, 실제나이 열일곱, 자기 인정 나이 열여섯(섣달그믐에 태어나 일찍 학교에 들어간 탓에 세 살 오차범위에서 신출귀몰하는)이고, 초딩 마지막 시절을 보내고 있는 둘째 아들 또한 도서관 물을 먹고 자랐기에 내 나이와 비교해보면 참 갸륵하기만 하다. 짖궂지만 정말 금모래밭에 '경 이종수옹, 오십잔치 축' 하고 현수막을 달아주고 번쩍 들어 바닷물에 빠뜨려줄 것만 같아 아버지 어머니께 실례를 무릅쓰고 한껏 즐기고 싶기도 한, 어쩌다가 뭐하다가 이렇게 나이를 먹어버렸는지, 그러면서 아닌 척 에둘러 숲길을 돌아나온 것인지 참, 혼자 뜨거운 감자 같은 것을 손에 바꿔 들어가면서 던져버리지도 못하고 웅얼거리고 있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오십이다. 오십견이 정확하게도 나이를 인정하라고, 더도말고 덜도말고 그 자리에서 굳은 몸을 스트레칭하면서 둘러보라고 오십잔치를 열어줄려나 보다. 즐거이 받아들여야겠다. 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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