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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요일이었으면 좋겠어

도깨비 일기

by 참도깨비 2021. 9. 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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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 다 가잖아. 오늘이 토요일이었으면 좋겠어."
한울이가 부쩍 주말 타령을 하며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를 아쉬어합니다. 아니 어쩔 줄 모르고 밤 늦게까지 징징거리며 보챕니다.
"오늘밤이 지나면 월요일이고 내일이면..."
으레 월요병이거니 했는데, 갈수록 심해지는가 싶더니 아예 잠까지 자지 않으려 하더군요.
"지금 자면 일요일이 다 가잖아."
거의 유치원 수준이어서 대꾸하기도 그렇고 어이가 없더군요.
"그럼, 안 잔다고 일요일이 안 가니?"
12시가 가까워 오는데 잠 잘 생각은 안 하고 눈만 끔쩍끔쩍 하면서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일요일이 가니까 오늘도 계속 일요일이었으면..."

 

언제부터였을까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주말은 뻑쩍지근하게 몸으로 놀아야만 한다는 한울이의 믿음 때문일까요? 조금이라도 놀 거리가 없으면 심심하다고 하는 녀석의 심뽀 때문일 것 같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일기장에 아빠가 야구 놀이를 해주지 않는다고 세 장도 넘게 써대더니 나름대로 복수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날이 춥기도 하고 병원에 입원해 계신 아버지와 연이어 다시 입원하신 어머니 일로 정신이 없는 까닭도 한몫 했기는 했지만.

 

또 한 사람. 엄마한테 놀아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때문에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가 확성기마냥 들뜨게 하고 안타깝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안 자고 이렇게 있을 거야. 책 읽어줄게. 자자."
"그래도 가잖아."
평일에 밤마다 옛이야기 몇 편씩 읽어주다 보면 금세 곯아 떨어지던 녀석이 끈질기게 달라붙습니다. 온통 머릿속에 일요일이 다 간다는 생각으로 들어차서 그런지 몇 편을 거듭 읽어주었는데도 뚱한 표정으로 애간장을 태웁니다.

 

"그럼, 산책 갈까? 운동 갈까?"
마지못해 특효약이라도 쓰듯 권유해 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도 12시가 넘으면 가고.."
급기야 아내와 공동작전으로 들어서지만 이 녀석의 걱정어린 얼굴빛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빨리 자야 내일 안 피곤하지."
"내일 걱정거리 있어? 숙제 안 했니? 괴롭히는 친구 있어?"
알림장을 다시 꺼내 확인까지 해가며 추켜 보지만 고개만 가로젓습니다. 몇 번을 캐물어보니 컴퓨터로 문장 만들기 시험 비슷한 게 있다는 것과 시험 보는데 시간이 자꾸 지나가는데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단순하게 일요일이 가는게 아까워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한울아, 엄마도 월요일이면 월요병이 걸려서 학교 가기 싫지만 금방 지나가잖아."
월요병이라고 하니 이 녀석한테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데 몇 시간째 징징거리는 걸 지켜보니 신종 일요병이 맞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설득 작던이 먹히지 않아 으름짱을 놓아볼까 하다가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나보다 훨씬 인내심이 뛰어난 아내가 부산스러운 곰 재우듯 등도 긁어주고 다독거리고 있으니 역효과만 날 것 같아서지요.
그렇게 한울이는 닭똥 같은 눈물 몇 방울 흘리다가 안방 침대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잠에도 가는 일요일을 애타게 붙잡으려 뛰면서 보냈을까요.

월요일 아침. 잠 투정을 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길이 형과 투닥거리고 히히거리다가 학교에 갑니다. 점심 먹고 피아노치고 돌아와서는,
"오늘 너무 재미있었고 좋았어요."
하고 묻지도 않은 말을 썩썩 합니다.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점심도 맛있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어째 판에 박힌 말 같다 싶어 의심스럽지만 화요일, 수요일, 잘 지내니 다행이다 싶었지요.
그러나 또 주말이 다가오고 일요일이면 큼큼거리며 일요일에 흠뻑 빠져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녀석에게 따끔한 소리라도 해줘야 할 것 같더군요.
"왜 이래. 유치원생처럼. 그럼 별님반 이런 데로 갈래? 할 수 없지. 그렇게 칭얼댈 거면 2학년 올라가지 말고 다시 유치원으로 돌아가야지 뭐."
말도 안 되는 으름짱으로 맞서는 내 자신에게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옆에서 아내는 싫은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럴수록 단단히 붙들어매두어야겠다는 자존심이라니.
"일요일이 가야 월요일이 오고 또 주말이 오는 건데 자꾸 그러면 아예 2학년도 못 올라가고 돌아가는 거야. 네네 선생님 하면서 날마다 놀고 일요일 같으면 좋잖아."
한울이야 진짜 그렇게 되면 어쩌나 싶어 잔뜩 도사리고 있지만 아내는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는 듯이 눈짓을 보내더군요.
이야기 몇 자리 해주고 간신히 재우며 지나갔지만 또 일요일 고개를 넘어야 하니 완전 떡장수 할머니의 열두 고개만 같더군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가 아니라 일요일을 주면 안 잡아먹지, 하고 징징거리는 한울이 호랑이!

그러고보니 일요일은 금세 다가옵니다. 토요일, 일요일만 기다리며 일한 아내도 마찬가지지만. 한울이에게는 일요일이 고비입니다.
아침에 눈을 설핏 뜨고서 지나간 일요일 타령을 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아내말대로 좋은 말로 구슬러주기로 했지요.
"한울아, 걱정하지 말고 10분만 푹 자."
한울이 옆에 찰싹 달라붙어 누워서 소곤거렸지요.
"아예 일요일로 보내줄까?"
"아니, 토요일로."
미끼를 덥석 문 김에 아예 토요일로 보내달라는 녀석 앞에 콧김이 팍팍 새어나오더군요.
"그래, 토요일로 보내줄까? 그러면 좋을까?"
"네."
목소리가 조금 달달해졌음을 느끼겠더군요.
"그런데 토요일로 보내주는 건 괜찮은데, 그러면 다시 오늘로 오기는 힘들텐데?"
즉석으로 해놓고도 이건 뭔 소리? 스스로도 미궁 속으로 빠져들 것 같더군요.
"그러니까 맨날 토요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진짜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닌 토요일만 계속 되더래."
어느 영화 이야기를 섞었지요. 벗어나려고 몸을 꿈틀거리던 녀석이 순순히 안겨오는 느낌이 들더군요.
"처음엔 좋았대. 날마다 토요일이고 실컷 놀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날마다 똑같은 토요일이 되는 거야.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이 놀고..."
말꼬리 잡기 놀이처럼 토요일이라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다 보니 진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하더군요.
"그러니까 토요일로 가면 오늘로 오는 건 너무 힘들다는 거야. 아무리 뛰어도 계속 토요일, 일요일. 계속 토요일 일요일만 되는 거야."

한 마디로 외딴 섬에 발이 묶인 것처럼 가족들과 헤어져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마무리하려는 무리수를 쓴 것이지요.
의외로 이 녀석이 솔깃해 하더군요.

 

"그러니까 월요일이 된다고 걱정하지 말고 으라차차 하고 힘내서 잘 보내보는 거야. 그러면 금방 화요일이 되고 수요일이 되고 토요일이 돌아오잖아. 그래야 한울이도 씩씩하게 2학년이 되고..."
완전 애들 말대로 유딩 수준이다 싶었지만 효과는 은근히 있는 것 같더군요.
말은 없지만 몸으로 받아들이는 듯 근심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으로 듣고 있던 한울이.
"어, 30분 다 되간다. 밥 차려줘."
얼음 녹듯이 목소리가 맹랑해져서 또 언제 그랬냐는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더군요. 일단 민방위훈련 종료!
"학교에서 짧은 글 짓는다고 걱정하지 마. 한컴타자할 때처럼 피아노치듯 자리 익혀가며 치면 되니까. 독수리타법으로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이렇게 치면 어떻겠니?"
손가락 하나로 몸을 살짝 찔러가며 흉내를 내니 간지박을 타며 웃었으니 나름대로 훌륭한? 마무리가 된 것이겠지요?
"시험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보고 어제 문제 냈을 때 잘 푼 것처럼 하면 돼. 그러면 아무 문제없어."
조금 마무리가 긴 듯했지만 역시 효과는 있더군요.  밥 한그릇 뚝딱 비우고 한길이 형과 잘 갔으니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을 부라리며 회초리 꺾어다 놓아야겠다고 으름짱을 놓던 내가 맞나 싶을만큼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는 참!

 

2010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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