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사회주의자라 부르면서도 모든 것에 매서운 비판정신을 보였던 조지 오웰은 르뽀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동물농장>이나 <1984>보다 조지 오웰을 이해하는데 지름길을 제시하는 책이다.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저 아래 누가 석탄을 캐고 있는 곳은, 그런 곳이 있는 줄 들어본 적 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다.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곳 얘기는 안 듣는 게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는 지상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이다. 아마도 우리가 하는 모든 것, 말하자면 아이스트림을 먹는 것부터 대서양을 건너는 것까지, 빵을 굽는 것부터 소설을 쓰는 것까지, 모든 게 직간접으로 석탄을 쓰는 것과 상관이 있다. 평화를 위한 모든 수단에 석탄이 필요하며, 전쟁이 터지면 석탄은 더 필요해진다. 혁명기에도 광부는 일하러 가야 한다. 아니면 혁명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혁명도 반동도 석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건, 석탄을 파고 퍼담는 작업은 쉬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 아니면 길어도 몇 주 이상 중지되어서는 안 된다. 히틀러가 거위걸음으로 행진하기 위해, 교황이 볼셰비키 사상을 지탄하기 위해, 로즈 경기장에 크리켓 관중이 몰리기 위해, 동성애자 시인들이 서로의 등을 긁어주기 위해, 석탄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그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우리에게 '석탄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석탄을 얻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좀처럼, 또는 전혀 떠올리지 못한다. (줄임)
어떤 면에서는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괴감을 느낄 만하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나마 '지식인'으로서의, 전반적으로 우월한 존재로서의 자기 지위를 의심하게 된다. 적어도 지켜보는 동안에는, 우월한 인간들이 계속 우월하기 위해서는 광부들이 피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자각을 똑똑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도 나도 <타임스 문예 부록>의 편집자도, 동성애자 시인도 켄터베리 대주교도 아무개 동지도, <<유아를 위한 맑시즘>>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가 지금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다. 눈까지 시커메지고 목구멍에 석탄가루가 꽉 찬 상태에서 강철 같은 팔과 복근으로 삽질을 해대는 그들 말이다."
1936년 서른셋의 나이로 영국 북부 탄광 지대의 실업 문제에 대한 르뽀로 시작했던 글에서 오웰은 탄광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단순한 르뽀을 넘어서는 번뜩이는 통찰과 계급의 당파성을 담아내고 있다. 당대의 사회주의자들과 지식인 계급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을 보여주는 '실업을 다룬 세미 다큐멘터리의 위대한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연합해야 할 사람은 사장에게 굽실거려야 하고 집세 낼 생각을 하면 몸서리쳐지는 모든 이들이라' 고 말하는 조지 오웰의 상식적이면서도 독창적인 비판의식이 왜 그를 평생 사회주의자로 살게 했는지 깨닫게 해주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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