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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이야기

책 속 한 문장, 또는 장소

by 참도깨비 2021. 9. 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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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서운 이야기 ”


<속죄양의 아내>(아네스 데자르트/비룡소)란 동화가 있다. 비가 오고 천둥이 치는 날 무섬쟁이에 울보인 아이를 왕따 시키는 아이들에게 들려준 속죄양 이야기. 폭풍우를 무서워 하기는 그 아이나 자기들이 비슷한데 유독 그 아이를 속죄양 삼아 왕따시키는 집단 심리.
속죄양은 온갖 죄를 짓고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누구에겐가 뒤집어씌워 풀어버리려는 말이다. 속죄양은 그렇게 남의 죄를 뒤집어쓰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가 된 것처럼 여기는 직업정신에서 나온 것인데 속죄양의 아내가 그를 대신하여 아름다운 노래로 고객들의 나쁜 마음을 정화시킨다는 그런 이야기다.

속죄양 이야기를 한 것은 다름 아닌 아이들과 책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에 느낀 것 때문이다. 지루한 수업 대신에 이야기를 해 달라고 보채는 아이들 거개가 무서운 이야기를 바라는데, 그것도 아주 잔인한 이야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함께 듣기에도 오싹하고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으흐흐'하며 즐기며 해달라는 것이다. 다들 밤에 나쁜 꿈을 꾸고는 했으면서도 자꾸 보채는 것이다. 마치 손에 피를 잔뜩 묻히고 닦지 않은 것처럼 질척하게 남아있는, 전설의 고향과는 차원이 다른 머리 잘리고 피가 나는 건 으레 당연하다는 듯이 나오는 이야기.

그런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여우나 호랑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늑대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시시할 뿐이다. 늑대 이야기를 하면 터무니없는 편견 때문에 잔인하고 무서운 동물로만 여기는 문제도 있지만 어느새 늑대가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다 잡아먹고 싶다는 식으로 들이대는 아이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란 어떤 뜻이 담겨있을까?

이제 왠만한 이야기는 무섭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중독이 된 것일까? 아니면 손사래를 치며 귀를 막고 싶으면서도 집단 심리에 묻혀 억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 게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전기톱이 등장하고 총기가 등장하는 것 또한 아슬하게 현실과 얽혀있는 듯한 세상에서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이제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보던 공포영화의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처럼 사람의 속성을 온갖 반전 모티브 속에 감춰놓고 누구라도 건드리면 연쇄 폭발할 부비트랩처럼 보인다. '부모님과 선생님을 기쁘게 해주고 경쟁자를 이기게 해준다'는 참고서 광고나 '지금 이 순간에도 적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는 논술학원의 자극제를 예견했던 교실괴담류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얼마나 등골이 오싹했던가.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 보면 천둥 번개에도 찌릿찌릿한 진도 3 정도의 무서움을 느끼는게 사람이다. 밤길을 걸으면서 자기 발소리에 쭈볏쭈볏 머리카락이 곤두서던, 그야말로 고전이 되어버린 무서움 앞에서 우리는 속죄양을 만들어 뒤집어씌우고 무섭지 않은 것처럼 하고 있지 않나. 돈과 권력으로 회칼 들고 권총을 차고 보복을 하며 과잉방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약이 심한 것 같지만 아무튼 연결고리를 생각하다 보니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모든 어거지는 동네 세탁소에 갔다가 발견한 인형 때문에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처키'라는 인형이 나오는 공포영화도 떠올랐고 단지 제웅 수준의 것이 아니라 버지니아의 조승희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던 것이다. 아주 나약하면서도 안아주지 못한 슬픈 영혼이 바로 조승희의 여려겹 얼굴 속에서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천둥을 무서워하는 손주 녀석을 위해 천둥케이크를 만들어준다는 할머니 이야기(패트리샤 폴라코의 <천둥케이크>)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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