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파 선언 ”
에리히 프롬의 <인간의 마음>을 읽다가 보니 이탈리아의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1878~1944) 시인이 했다는 미래파 선언이 나온다.
인간은 왜 사랑하지 못하고 악을 행하게 되는가를 따져 묻게 되는 이 책에서 에리히 프롬은 바로 지금이 인류가 풍요로움 속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느냐 또는 풍요를 대가로 인간성을 상실한 채 자동 인간으로 살아가느냐 중에서 선택해야 할 갈림길에 와 있는 때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두 가능성 중에서 양자택일을 하지 않으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미증유의 기회를 가진 이때 인류 역사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이 보기로 든 마리네티는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평론가로 미래파의 대표자다. 미래파는 기성 예술을 과거주의로 부정하는 한편 과거의 모든 전통에 반대하면서 반철학적, 반지성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현대 문명을 찬미하며 새로운 형식으로 미래의 꿈을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유파다.
마리네티의 '미래파 선언'은 이렇다.
1) 우리는 위험을 사랑하고, 정력적이고 대담한 습관을 노래할 것이다.
2) 우리들 시의 본질적 요소는 용기와 대담성과 반항이 될 것이다.
3) 지금까지 문학은 사려깊은 정지靜止와 황홀경과 잠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생각해왔다. 우리는 공격적 운동, 열에 들뜬 불면증, 이중 킥 스텝, 재주넘기, 따귀때리기, 주먹싸움을 찬양할 것이다.
4) 우리는 세계의 웅장함을 새로운 아름다움, 곧 속도의 아름다움에 의해 풍요로워졌음을 선언한다. 폭발적인 숨을 내쉬는 뱀 같은 커다란 파이프로 장식된 경주용 자동차... 마치 유산탄榴散彈에 의해 달리는 것처럼 성내어 소리지르는 자동차는 '사모트라키의 승리(에게 해 북쪽에 있는 그리스 섬)'보다 더 아름답다.
5) 우리는 핸들을 잡은 사람을 노래할 것이다. 그의 이상에서 뻗어나오는 줄기는 지구 궤도를 뻗어나가 지구를 꿰뚫을 것이다.
6) 시인은 원초적 요소들이 더더욱 열광적으로 작열하게 하기 위해 열광과 광채와 낭비에 열중해야 한다.
7) 투쟁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공격성이 없는 걸작은 있을 수 없다. 시는 미지의 힘으로 하여금 인간 앞에서 고개 숙이게 하기 위한 맹공격이어야 한다.
8) 우리는 세기의 극단인 곶串에 서 있다. 불가능한 것의 신비한 문을 부수어야 할 때 우리가 왜 뒤를 돌아봐야 하는가? 시간과 공간은 어제 죽었다. 우리는 벌써 영원하고 항상 현재적인 속도를 창조했으므로 이미 절대 속에 살고 있다.
9) 우리는 이 세상 유일한 건강의 샘인 전쟁, 군국주의, 애국심, 무정부주의자의 파괴적인 힘, 죽인다는 아름다운 이상, 여자에 대한 경멸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10) 우리는 도덕주의, 여성 숭배, 모든 낙관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야비함과 맞서 싸우기 위해 박물관과 도서관을 파괴하고자 한다.
11) 우리는 노동과 쾌락과 반항에 흥분한 대군중을, 현대 수도에 등장한 다채롭고 소리도 다양한 혁명의 물결을, 강렬한 전깃불 밑에 드러나는 병기창과 작업장에서 울리는 밤의 진동을, 연기 내뿜는 뱀을 집어삼키는 게걸스런 기차역을, 연기를 타고 구름에 매달리는 공장을, 햇빛 찬란한 강의 악마 같은 날붙이 너머로 체조선수처럼 미끈하게 솟아오른 다리를, 수평선의 향기를 맡는 모험심 강한 정기선을, 긴 철관으로 된 말굴레를 쓴 강철로 만든 거대한 말처럼 철로 위를 달리는 떡하니 어깨가 벌어진 기관차를, 그리고 마치 깃발의 펄럭임, 열광한 군중의 박수갈채 같은 프로펠러 소리를 내는 비행기의 미끄러지는 듯한 비행을 노래할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자본주의 사회의 산업에 대한 마리네티의 태도가 삶의 원리와 모순되지는 않지만 기계화의 원리에 종속되어 있거나 지배되어 있는지를 가늠하는 본보기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 삶을 지배하고 있는 관료적 산업주의에 반대되는 휴머니즘 산업주의를 창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발견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요즘 젊은 시인들 가운데 몇몇을 '미래파'라고 말한 어느 시인이자 평론가의 말과 미래파로 지목이 된 시인들이 시를 생각해 보다가 에리히 프롬의 글을 옮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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