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사람처럼 안 되려면 ”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의 목소리에 빙의되어 나오는 어른들의 모습이
종종 겹쳐있다는 걸 알게 된다.
보이지 않는 눈이 있어 아이들을 제멋대로 가지 않게 하는
어른의 눈으로 잣대질하고 윽박지르는 모법 답안의 위인전이 있게 마련이다.
용산 참사가 그렇고 변변한 노동조합 없이 그저 인력일 뿐인 날품팔이 노동자들을 보는 시각도 그렇다.
아이들의 꿈은 그것들에서 비껴나 있는 곳에 있어야 마땅하기에
어른들은 애써 눈을 돌리게 하고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아니 설명할 수가 없다. 자본주의에서는 자신이 대형마트의 계산원이어도 말해줄 수가 없다.
어떤 아이가 노동자에 대해서 말했다.
흔한 말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이야기할 때였으리라.
아니 판사 변호사 선생님이 꿈이라는 아이들,
집에 돈이 많아 부모가 다 뒷바라지 할테니 꿈 같은 건 꾸지 않는다는 아이들,
노동자는 돈을 많이 못 버니까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는 부모의 말을 경전처럼 외우고 있는,
엄마가 전봇대에 매달려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더니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어요" 하고 손가락질을 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아이들에게 굳이 아버지가 뭐 하시냐고 묻지 않았다.
아니 그 옆에 앉아있는 보일러 하나는 끝나게 고친다는 아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학부모강좌를 할 때 그런 엄마를 만났다.
책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는데, 독서지도사가 되겠다고 ,
아이들에게 책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온 엄마였더랬는데
어린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전봇대 이야기가 다시 나왔더랬는데,
그 엄마가 하는 말,
"그게 뭐가 잘못이에요. 엄마로서는 당연한 말 아닌가요?"
순간 강의실 안이 술렁거렸다. 아찔했다.
"나도 아이 데리고 길 가다가 전봇대에 매달려 일하는 아저씨 보고, 저 사람처럼 안 되려면 죽어라고 공부해야 하라고 하는데요."
아이들의 꿈을 만들어주고 세상 밖에 내보낸 노심초사하는 엄마로서는 그럴 수가 있다고 쳐도 얼굴빛 하나 고치지 않고 그렇게 말하는 데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똑똑하고 센 엄마로서 맞는 말이라고 해도 재단용 가위 같은 말의 섬뜩함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느냐고,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해야 할 사람이 그런 말을 쉽게 해도 되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느냐고 했지만 그 엄마는 내내 무슨 잘못이냐는 얼굴빛이었다.
참새와 포수라는 우스개소리에 나오듯이 그 엄마의 말에 전봇대에 매달려 일하는 전기기사가 참새처럼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고 '사'자로 끝나는 돌림병에 걸린 것처럼 아이에게 무턱대고 꿈을 주입하는 밑도끝도없는 믿음은 과연 옳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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