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수빗자루 ”
시제가 있어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에 다녀왔다. 새벽밥을 먹고 호남고속도로를 지나 남해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주암으로 나와 송광사 앞을 거쳐 순천으로 가다 벌교를 얼마 남기지 않는 순천시 외서면 덕치리. 어릴 적에 한 번 다녀갈 참이면 겨울바람이 그렇게 세서 저기만 넘으면 서울일 거라고 가늠했던 덧재.
시제라고는 하지만 해마다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아버지와 집안 어르신들이 걱정하듯 "우리들 죽으면 다 소용없지" 하는 말 그대로 시제는 마지막 상영을 앞둔 영화 같기만 하다.
집안 어른 한 분이 돌아가셨다. 왜 연락하지 않았냐고 아버지가 물으니 멀기도 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일 치르다 보니 그렇게 됐노라고 한다.
흥근이 아재라 부르던 어른신은 풍이 와서 반쪽을 못 쓰시는데도 시제를 준비하시느라 바쁘시다. 사람들이 살다 보니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살고 보자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하는데 시제 또한 그런 것 같다. 이제 더는 못하지 하는 소리를 골백번 하면서도 수수 빗자루 만들듯 또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 뒤꼍에 심었던 수수를 베어내면서 빗자루를 만들면 '구구구구구' 하는 소리에 닭들이 모여들듯 수수가 떨어지고 그것들을 다 떨군 다음 참빗처럼 잘 쓸리던.
수수빗자루가 마을 어르신들을 그대로 닮았다. 이것도 몇 번 적막한 하루를 지나고 나면 제 길을 쓸며 사라지겠지. 시젯상에 술을 올리고 복개를 열어 밥을 숭늉에 말아넣고 적을 올리면서 내내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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