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미허물 ”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시인학교를 하는데 숲에서 매미허물을 발견한 한 아이가 말했다.
"짝퉁매미다!"
매미허물을 처음 본 도시 아이들이라 그런지 영락없이 매미 모양을 한 껍질이 명품 대신 판친다는 짝퉁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떤 아이는 브로치라도 되는 양 옷섶에 달고 다니기도 하면서 매미허물은 놀잇감이 되버리고 말았다. 짖궂은 사내 녀석들은 여자 아이들 등덜미에 달아놓고 놀리기도 했다. 손 안에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매미허물을 놓고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매미허물
손을 빳빳!
발은 뾰족
매미가 벗어논 옷
애벌레 부딪치면 죽을라
밟으면 뿌셔질라
참 힘들다
색은 옅은 갈색
힘센 발로 풀을 붙들고
등을 갈라 옷을 벗네
<매미허물>(이경재, 초등학교 3학년)
짝퉁매미라고 한 아이와 혼자 자세히 관찰하고 한 번이라도 매미의 마음이 되어 본 아이의 생각 차이는 엄청났다. 아주 비밀스런 순간이라 미시의 눈으로 보지 않고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이기에 나무랄 수는 없지만 생살을 찢고 나왔을 순간을 떠올려 본다면 또다른 매미의 몸이자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리란 아쉬움을 가졌더랬다.
마당에 있는 두충나무에는 참매미 애벌레가 올라오고, 모과나무에는 말매미 애벌레가 올라오는 여름이다. 저물 무렵 제각각 야무진 몸으로 땅거죽을 뚫고 올라와 탈바꿈을 하는 걸 지켜보면서 건 드라마와 다름없다. 땅 속에서 6,7년 넘게 기다렸다가 올라오는 녀석들이라 그런지 바다로 나갔다가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비릿한 냄새가 나는 매미 애벌레들. 비가 오는 날이라도 젖은 몸을 꺼내 날개를 말렸다가 우듬지로 올라가야 하는 필생의 사명과도 같다.
허물이자 마지막 깃들다 가는 집이여
고통 없이는 빼낼 수 없는 별이여
방금 전까지의 눈이여
검은 눈을 배웅하는
이승과 저승이 저리도 가까운 유체이탈의 순간을 보았는가
그것은 하나의 필생의 명령과도 같다
비가 오는 날이라도 젖은 몸을 말리고
젖은 날개를 말려야만 하는 각개전투처럼
몸을 사리지 않는,
탄환처럼 부풀어올랐다가 살을 찢으며 나오는
저 작은 몸 안에 들어있는 화약과 격발장치 같은 것
그러나 풀잎 하나, 나부끼는 나뭇잎이라도 붙들고 꺼내는
저것은 바람의 노래
떠나간 빈 집의 노래를 부르는 여름을 보라
아침공양 마치고 물로 부시고 난 탁발 같은 햇살을 보라
졸시, <바람의 노래> 중에서
저렇게 완벽하게 버려두고 가는 빈 집이 있을까? 빈 집은 전생처럼 우듬지를 찾아간 매미 아래 그대로 붙어 문을 열어두고 바람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다가도 호박잎에 붙어서 온 매미허물을 보면 다른 생각이 난다.
어머니가 된장찌개 끓이려고 따 온
호박잎에 매미허물이 매달려있다
한 소끔 끓어 넘친
된장찌개 한 투가리
매달려 있다
졸시, <매미허물>
여름내내 매미는 그렇게 나에게 새롭게 태어난다는 몸을 보여주며 난청지대를 거슬러올라가고 있다. 땅에서 올라오는 시간에 비해 너무 짧은 여름을 나고 가지만 몸을 바꾸는 한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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