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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왜 날 싫어하는지 알아보려고요

도깨비 일기

by 참도깨비 2021. 10. 1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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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 엄마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빌려갔다. 시립도서관에서 검색해 보니 <동물농장> 이 여기밖에 없어서 멀리서 왔단다. 도서관에 펭귄클래식판과 푸른숲주니어판 두 권이 있었는데, 푸른숲주니어판을 빌려갔다. 급한 숙제라도 되는지 한숨을 내쉬며 빌려가기에 엄마 숙제가 아닌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런데 점심 시간이 지난 뒤 다른 엄마가 <동물농장>을 찾는 것이다. 

 

"아, 점심 전에 한 분이 빌려가시고 한 권 있는데요."

펭귄클래식판 <동물농장>만 있다고 말하니, 그 엄마는 낭패라는 듯 한숨을 쉬었다.

"급하게 와보니 점심 시간이어서!"

이럴 때는 뭔가 급체할 만한 일이 있는 것이다. 책이 겹치는 경우는 대부분 학교에서 권장도서로 내 준 숙제이거나 독서동아리 분들의 경쟁이다. 

"아, 그 엄마가 다녀갔군. 우리 아이가 읽을 건데요. 다른 책은 없나요?"

"고학년인가요?"

"아니요, 2학년이요."

놀랍다. 초등학교 2학년이 <동물농장>을! 놀라는 것도 잠시, 그 엄마가 원하는 건 초등학생을 위한 <동물농장>인 것이다. 먼저 <동물농장>을 빌려간 엄마를 아는 눈치다. '그새 먼저 가져가다니!' 하는 난감한 얼굴빛이다. 펭귄클래식판 <동물농장>을 만지막거리며, '그렇다면 엄마와 함께 읽으면 될 텐데, 이 책이라도?' 하며 말을 할까 하는데 그 엄마는 마음이 급하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도서관마다 전화를 하는 것이다. <동물농장>을 머쓱하게 들고 있다가 어느 도서관에서 책을 찾았는지 부리나케 나가는 그 엄마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럴 수 있어!'

양희은 가수가 한 말을 따라하며 <동물농장>을 서가에 다시 꽂았다. 그럴 수 있다. 헛걸음한 엄마는 다시 도서관을 향해 차를 몰 것이고, 급히 예약해 놓은 책을 대출하고 쾌재를 부를까? 

 

그런 일이 있고 오후 늦게 도서관에서 언니를 기다리는 보미(어린이집 다님)와 다른 여자 아이가 왔다. 보미는 혼자 있을 때는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는데, 이렇게 언니들이 있으면 읽어주는 중간에도 바로 일어선다. 자기 언니가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기에 언니라도 붙들고 놀고 싶은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얼른 그림책을 닫고 서가에 꽂을 수밖에. 

그런데 보미랑 놀던 여자 아이가 책을 빌려가겠다고 한다. 엄마와 함께 왔던 아이다. 마스크를 써서 가물가물할 뿐이었는데 고른 책을 보니, <착한 엄마 콤플렉스>다. 

"너, 몇 학년인데. 이 책을 빌리려고 하는 거니?"

"저, 충분히 어른이예요."

"4학년이요!"

웃음이 나왔으나(마스크 안에 감추고) 진지하게 물었다.

"너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니, 콤플렉스가 무슨 말인지 알아?"

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앞선 말이 있어서 그런지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얼굴이다. 삐리릭 머리를 빨리 돌려 생각해 본다. 

"일부러 엄마 읽으라고 빌려가는 건 아니고?"

자기가 읽을 거란다. 접근방식부터가 특이한 아이다 싶어 다시 물었더니,

"엄마가 알면 그렇고, 엄마가 왜 나를 싫어하는지 알아보려고 읽으려는 거예요."

대충 감이 잡히긴 하는데, 아이가 이 책을 빌려가는 건 무슨 비밀결사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이름으로 되어있지요? 엄마가 알면....."

착한 엄마 콤플렉스는 나쁜 엄마보다 더 무서운 것일까. 별별 생각을 하며 아이와 엄마 사이를 가늠해 보고 있는데, 아이가 책을 바꿔 왔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다시 빌려온 책을 보니 <아이다움을 읽는 시간>이다. 역시 엄마가 읽어야 할 책이다. 도서관지기 특성상 뭔가 물어보고 개입하고 싶지만 참았다. 이 아이는 진짜 참을 수 없을 만큼 엄마의 마음을 이런 책으로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고, 그것이 무리인 줄 알지만 그 사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요즘 핫하다는 오은영 박사 같은 사람의 말을 통해 자기 엄마의 마음을 알아보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거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책을 반납할 때 잠깐 물어보기로 하고 보내는데, 저 말랑말랑한 얼굴 속에 감춰진 '나'를 어쩔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너는 충분히 괜찮은 아이일 거야! 그러고도 남아."

이런 말이라도 해주어야 할 것 같은 충동이 들었으나 나중을 위해 참기로 했다.

 

전혀 다른 일에 연관된 엄마들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착한 엄마 콤플렉스 또한 그러려고 만들어낸 가면이 아닐테고, 그 사이에 책이 있다면, 책을 읽고 돌아보고 평안해지는 시간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혹 이런 일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연구해보길 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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