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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왜 특별한 것만 있을까요?

도깨비 일기

by 참도깨비 2021. 9. 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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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이와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 갔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울이의 파머머리 곱슬머리를 백만불짜리 머리라고들 하지만 갈수록 악성곱슬머리가 되어가는 한울이로서는 스트레스일 뿐이다. 4학년에 올라가 약간 까칠해지기 시작해서 그런지 부들부들하던 머리카락이 끝이 갈라지는 것처럼 억세지고 있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닌 모양이다.
단골로 가던 미용실에 손님들이 많아 새로 생긴 세바스찬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외로 남자 미용사다. 곱슬머리를 잘 아는 단골 미용사가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새로 생긴 곳에는 가질 않는데 금쪽 같은 주말 시간을 아끼려면 어쩔 수 없다.

 

"아빠 머리에서 진화를 했군요."
미용실 의자에 한울이를 앉히고 난 세바스찬이 머리결을 매만지며 한 소리 한다. 진화라 하면 더 나아졌다는 뜻인데 어감이 살짝 비껴난다.
"갈수록 머리끝이 갈라지는 것 같아요. 어쩌죠?"
"곱슬머리들은 어쩔 수 없어요. 지금이야 괜찮지만 중학생이 되고나면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을 거예요."
세바스찬이 이름만큼 우아하고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러나, 당사자를 앞에 앉혀놓고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아 잘 다듬어달라는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가장 좋은 건 아예 삭발은 하는 거지요."
순간 세바스찬 손님 한 명 떨어졌다 싶더군요. 애 앞에서 할 소리가 있고 안 할 소리가 있지.
"우리 나라 정서에는 안 맞지만 외국에서는 삭발한 머리들이 많잖아요."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다.
"그래도 그건 그렇잖아요. 짧게 잘 자르고 다닐 수밖에요."
"맞아요. 곱슬머리는 스포츠머리가 최고예요."
그걸 누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세바스찬답게 잘 다뤄달라는 무언의 뜻이거늘 상남자답게 군다.
뒷머리를 바짝 올려붙이고 짧게 자르고 나니 전혀 다른 한울이가 되었다. 가타부타 말은 안 하지만 적잖이 상처를 받은 얼굴이긴 하다.  이른바 상고머리를 최고로 치는 할머니에게는 거 시원시원한게 더 미남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아무튼 머리를 깎고 집에 들어와 엄마와 이야기를 하는데 한울이가 품어둔 사정이 쏟아진 모양이다. 아내는 뭐 그런 세바스찬이 있냐고 툴툴거린다. 그러잖아도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눈치도 없이 그랬느냐고 역시 다음에는 가지 말란다.
"한울이가 뭐라는지 알아?"
"뭘?"
"한울이가 자기는 왜 특별한 것만 있느냐고 하는 거야."
 처음는 외모를 가지고 뭐라는 건 좋지 않은 거라고 말하더니 머리까지 겹쳐서 그런지 볼멘소리를 한 모양이다.
"눈썹도 여자처럼 말려올라갔지, 머리도 곱슬이지, 살도 안 찌지..."
또래들에 비하면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한울이만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거슬렸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한울이가 매력있다는 말이지."
매력이란 진정한 뜻을 아직 모르는 한울이에게는 다른 생김새가 거슬리는 것이다.
"날마다 밥 잘 먹는데도 살이 안 쪄서 이런데요 뭘."
일부러 살을 찌운다고 고기에 쌈도 싸먹고 된장국도 열심히 먹는데 저울에 올라갈 때마다 변함이 없는 몸무게, 가느당당한 팔과 다리를 두고 저 혼자 푸념이다보니 그것마저 특별한 것으로 비친 것이다.
"너는 참 특별한 아이란다." 하는 뜻과는 다른 콤플렉스가 될까 걱정이 된다.

 

조물주가 아이들마다 특별한 것을 주었고, 부모의 좋은 면을 골고루 얻은 특별함이니까 괜찮다고 말해주면서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느낀다. 어쩌면 이 녀석이 진짜 대화를 걸어오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마다 가진 진짜 매력이 무엇이고 외모만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게 아님을 고민과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그리 걱정할 것이 아니라 한울이의 장점처럼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길이 생길 테니까.

 

2013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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