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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 온 직박구리

내가 그린 기린 그림

by 참도깨비 2022. 2. 1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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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 조기가 걸리고 머지 않아 식구 생일상이 기다리는 베란다에 직박구리가 왔다. 어머니가 뭔가 말리시는가 보다. 곶감 만든다고 내놓은 감 껍질이거나 음식물 쓰레기통에 들어갈 부피를 줄인다고 뭔가를 말리실 때면 참새나 직박구리가 와서 좋은 구경거리를 주어서 좋긴 하다. 숲길에서 숨을 멈추고 바라보는 새 구경처럼 따뜻한 햇볕을 쬐며 호사를 누린다. 직박구리는 마당 있는 집에 살 때 새끼를 키운 적이 있어서 좀 시끄럽지만 요모조모 지켜보는 재미가 책 한 권이다. 베란다라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역시 숨을 죽이고 움직이지 않고 눈만 굴려야 오래 볼 수 있다. 마음껏 먹을거리를 댁댁댁 부리질해서 먹고 갈 수 있도록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직박구리로 시를 쓴 적도 있다. 바다직박구리도 있다는데 언젠가 바다에 가면 한번 그려보고 싶다. 

 

새끼 셋을 기르느라

비 오는 이른 아침부터 직박구리들

먹이를 물어 나른다

새끼들은 어미만큼 자랐으나

아직 나는 게 서툴러서

어수룩한 떠꺼머리들

주둥이 놀놀한 막걸리 주전자,

웅덩이에 떨어지며 터지는 물방울처럼

젖내 나는 부리를 연신 댁댁거리며

삐이요, 삐이요, 삐, 삣, 히이요, 히이요

어머들을 부른다

어디서 잡아오는지 잠자리며 벌레들, 씨 꼬투리까지 물어오는데

어미들의 머리가 까슬하다

지치지도 않고 먹이 달라고 보채는

새끼들 부리에 하나씩 집어넣어준다

한숨도 쉬지 않고 오는 비 다 맞아가며 먹이를 물어 나르는 일만

몸에 배인, 요령이 없다

고작 할 수 있는 것 나뭇가지에

고단한 부리를 닦는 일뿐이다

새끼들 몸집이 불고

짱짱한 바람을 이길 수 있는 깃털을 가질 때까지

수고롭고 짐진 어미새들은

처처진진한 하늘을 단져줄 뿐일까

단순하고 지극한 탁발이다

사람의 삶과는 달리 저 너머의 삶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다

자식들 아픈 데 없이 잘살기만 바랄 뿐이라며

묵은 잎과 새들마저 날려 보낸 나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바리때 그 자체인 것이다

 

졸시, <탁발>(자작나무 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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