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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서 다시 시작한다

내가 그린 기린 그림

by 참도깨비 2022. 3. 1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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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가 끝나고 며칠을 잠을 못 잤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토막 잠을 자다가 깨어 멀거니 누워있거나 불꺼진 거실에 서있었다. 진보라거나 당원이어서가 아니다. 페이스북에 넘쳐나는 선언들과 양비론자의 글, 진짜 진보 혁명주의자의 글을 보면서 평정심을 찾고 마지막 한 표를 찍었는데 낙선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정치를 떠나서 그 사람이 이루려고 하는 것을 하나도 펼치고 투표수만으로 승부가 결정나는 것이 맞는 일인가, 다른 방식으로 정치권력을 바꾸는 일은 가능한가, 하는 별별 생각이 나다가, 싫은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는 생각까지 잡탕을 끓이다가 숨 쉬기조차 어려운 지경까지 가서 심호흡을 해보기도 했다. 

 바닥이다. 온갖 위악적인 정치 술수와 그것에 가려진 진실들, 아직도 가라앉은 배를 건져내지도 못하고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외쳐대는데, 선거가 다 구해줄 것처럼, 권력을 가져오면 무슨 세상을 꿈꾸는지조차 모르는 또 한 무리의 권력배들을 어떻게 보고 살아야 할까. 바닥이면서 담쟁이 덩굴로 넘지 못하는 벽으로 우뚝 일어선 막다른 길에 서 있는 기분이어서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 날들을 헤아려 본다. 누가 만들어준 것을 쫓기만 하는 촛불이 아니라 주먹 그 자체로 뚫고 나가야 할 깊은 허방. 그런 나를 내가 그려본다. 돌아서서 주먹질하고만 있는, 하늘을 날 것처럼 보자기를 두르고 있는 바닥의 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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