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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와 김혜순 시집

새로 들어온 책

by 참도깨비 2023. 2. 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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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모든 정서적 경험을 천 조각처럼 사용했다. 그 조각들을 짜 맞춰 멋진 드레스로 만들 수 있다는 듯이, 자신이 느낀 그 어떤 것도 낭비하지 않았다. 그 격정적인 감정들이 통제가 될 때면 어머니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시적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지휘하여 위대한 결과를 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불안한 정서적 상태와 벼랑 끝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성과인 <에어리얼>이 나왔다. 예술은 추락할 수 없었다. (줄임) 죽은 이후 어머니는 해부되고 분석되고 재해석되고 재창조되고 허구화되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완전히 날조되었다. (줄임) 시시각각 변하던 그의 기분은 그가 세상을 보았던 방식과 가차없는 눈으로 자신의 주제들을 붙잡았던 방식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프리다 휴스, 실비아 플라스 시집 <에어리얼> 복원본 서문                                                                                                                                                                                                                                                                                                                                    실비아 플라스가 죽은 뒤에 나온 시집 「에어리얼」은 그의 남편인 테드 휴스가 낸 것이지만 이번에 다시 나온 시집은 실비아 플라스의 딸 프리다 휴스가 묶은 것이다. 복원본이다. 서문에서 프리다 휴스는 어머니 실비아 플라스의 삶이 그대로 복원된 시집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비아 플라스는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신산한 삶을 일찍 마감한 시인인 데도 왜 복원본이 다시 나온 것일까. 그것은 서문에 그대로 나와있다. 테드 휴스가 낸 시집이 그녀의 주변 사람들을 고려한 편집본이었다면 딸이 묶은 이 시집은 실비아 플라스의 가감없는 에너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복원본인 것이다. 테드 휴스와 실비아 플라스라는 무겁고도 위대한 문학 유산을 받은 프리다 휴스가 오로지 어머니만을 위한 시집으로 기획한 진정한 마지막 시집인 것이다. 그래서 팽팽한 긴장감과 서늘함을 놓지 않으며, 그 점이야말로 그의 시가 지닌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기억해주기를 당부(진은영 시인 번역)할 수밖에 없다.  “원문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시인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의 강렬한 분출을 드러내고, 그것이 가능한 한에서 음악적인 요소를 고려”하면서 “눈으로만 읽기보다는 소리 내어 읽을 때 의미도 분명해지고 리듬감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우리말로 옮긴 소회를 밝히고 있다. 아울러 실비아 플라스가 직접 타자기로 작성한 ‘「에어리얼」과 그 외 시들’ 원고 복사본, 표제시 「에어리얼」의 친필 원고 복사본을 실었다.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고 확장하고 싶었던 실비아 플라스, 격렬하게 증오하고 치열하게 사랑하며 자신의 정념을 불태운 그 순간을 재현한 마지막 시집 그대로이다. 

 

시집이라기보다 ‘시산문’이라 부루는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쪼다’라는 필명으로  ‘않아’라는 부정정신으로 쓴 새로움이 돋보인다.

이것을 시라고 하면 시가 화냅니다. 이것을 산문이라고 하면 산문이 화냅니다. 시는 이것보다 높이 올라가고, 산문은 이 글들보다 낮게 퍼집니다. 이것은 마이너스 시, 마이너스 산문입니다. 이것을 미시미산(未詩未散)이라고 부를 순 없을까, 시산문(Poprose)이라고 부를 순 없을까, 시에 미안하고 산문에 미안하니까. 이것들을 읊조리는 산문이라고, 중얼거리는 시라고 부를 순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나는 시로 쓸 수 있는 것과 산문으로 쓸 수 있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그 두 장르에 다 걸쳐지는 사이의 장르를 발명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글은 나를 관찰하면 할수록 불안이 깊어지는 사람이 쓴 글입니다. 권태와 고독이 의인화된 사람이 된 그 사람이 쓴 글입니다. 그 사람을 나라고 불러본 사람이 쓴 글입니다. 이 글들은 장르 명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저멀리 존재하는 미지의 나라, 애록(AEROK)에서 가장 멀리 있는 별자리, 생각만 해도 현기증나는 그 멀고먼 나라, 시의 나라를 그리워하면서 쓴 글입니다. 시 같은 것도 있고, 산문시 같은 것도 있고 단상 같은 것도 있습니다. 소설을 쓰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는 김수영의 말, 산문을 쓸 때도 자신은 시인이라는 보들레르의 말 사이의 길항을 붙들고 쓴 글입니다. 쓰는 동안에 거룩함이라는 쾌락, 연민이라는 자학, 건전함이라는 기만에만은 빠지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_433쪽, 「마지막 말」에서

예상 가능하고 익숙한 것으로부터  ‘않아’는 김혜순 시인의 시 인생에서 중요한 문턱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사는 나라의 이름이 ‘애록(AEROK)’인 것도 “정치가가 트럭 연설대에서 연설을 한다./ 정치가의 머리 위에는 그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제 이름을 적어놓느라 우리의 하늘과 벽을 제일 많이 더럽히는 사람들이다./ 제 이름을 외치느라 우리에게 제일 많은 소음 공해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구걸하고서는 곧 우리를 억압”(「비굴의 장르」)하고 있는 현실을 비튼 '않아'의 정신이다. “이 나라는 부끄러운 나라야./ 부끄러울까봐 부끄러운 짓을 하는 나라”(「KAL」)이면서 “시는 사라지고 넘치는 센티멘털과 포즈가 남았다./ 시는 사라지고 시의 효용, 시의 쓰임, 시의 이용만 남았다./ 시는 사라지고 시인 되기 프로젝트 가동만 남”(「사라지는 장르」) 나라에서 여성 시인으로 버텨야 하는 '않아ㅣ마저 ‘마녀형 여성시인’으로 분류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시인의 성찰이 담긴 것이다. “여성의 언어가 따로 없으니까. 남성시인들이 쓰는 언어를 그대로 가져다가 요리조리 회를 떠서 사용해야 하니까. 익힌 것을 날것으로 되돌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 그러기에 여성시인은 늘 새로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시를 시 장르의 확산에 바쳐야 한다.”(「마녀형 시인」) 는 투쟁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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