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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냐르의 문학 예찬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새로 들어온 책

by 참도깨비 2023. 3. 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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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물결의 출렁임 속에 바다가 아닌 다른 무엇이 나아간다. 나뭇잎들의 떨림 속에서 바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떨린다. 우리가 사랑하는 살아 있는 여성의 눈빛 속에서 전등 불빛이나 햇빛의 반나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반짝인다. 꽃들의 개화 속에서 꽃들이 알지 못하는 미래의 어느 계절에 번식을 시작할 번식 기관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꽃피고, 그 사이 꽃들은 스스로 열리고 색색으로 물든다.   죽은 사람들이 지은 책들 속에 매목하고 있는 건 무시무시한 유령들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길 없이 생기발랄한 특징을 띠고 기쁨과 고통 사이에서 삶의 경계선에 자리한 채 끝나지 않고 끈질기게 버티고 나아가고 뻗고 호소하는 부활이다. 심연의 낭떠러지는 산 자에게 그저 사는 방식으로, 예측 불가능한 징후로 닥친다. 의도적인 작업 방식이나 예술로서 닥치는 것이 아니라.   69쪽                                                                                                                                                                                                                                                                                                                              예측 불가능한 작가로 불리는 파스칼 키냐르의 문학 세계를 보여주는 책이다. 어두운 미궁 속을 더듬어가는 무모한 모험처럼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인 글이 자칫 혼란을 줄 수도 있으나 그가 다루고 있는 소재들은 역사의 먼지 더미 아래 부당하게 무딘 존재와 사물들을 발굴해 그들의 명예를 회복해 주려 애쓰는 작가 의식이기도 하다. 경계 없는 글쓰기다. 글쓰기에 대해 독창적인 사고를 보여주는 “사색적 수사학”이라는 원제에서 느껴지는 “이 세상에는 안내가 없으니 언어의 부재하는 별을 단호히 따라가야 한다”는 그의 문학론을 보여주고 있다.

키냐르는 철학보다는 감수성의 세계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논리와 논증에 기반한 철학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이미지에 기반한 문학적 글쓰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 속 잊힌 인물이나 언어, 전통이 회복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로마의 수사학자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프론토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철학에 맞서 문학 전통이 존재했음을 증언한 최초의 인물이며,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심오한” 인물로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영향을 준 인물. 그 책이야말로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고 사색적이며 연상적인 이미지의 모음집”이라고 평가하는 키냐르의 말에서 글쓰기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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