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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것은 빨라 사라진다-청주 진흥초등학교 3학년 시

시와 함께한 나날

by 참도깨비 2023. 7. 1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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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만큼 빨리 사라진다

-청주 진흥초등학교 3학년 시를 중심으로

 

학교에 가니 선생님은 시인 선생을 전문가라고 불렀다. 학교에 전문가를 불러 수업을 하는 것이 처음이라며 잘 부탁한다고 했다. 한 계통에 20년은 일해야 전문가라는 말을 듣는다지만 그 말을 들으니 시를 잘못 이해한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무슨 기술을 가진 사람이어서 보는 눈앞에서 고장 난 컴퓨터를 고쳐내는 사람으로 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는 말을 속엣말로 해보며 3학년과 4학년 반별로 한 시간씩, 4시간씩 시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많은 학교 현장을 돌았지만 이번에는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한 시간 하고 가는 것이 아니어서 느긋하고 기운이 절로 났다.

3학년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날 시 아저씨!”라고 부른다. 첫 시간부터 잡힌 거라 아이들과 함께 등교하고 쉬는 시간도 같이 누리면서 학교에 있다 보니 학교라는 공간이 낯선 듯 낯익은 곳으로 죄어온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경계를 풀고 서슴없이 대해주니 시가 별 거냐? 재미있게 읽어주는 시 듣고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보면서 딱 한 편 자기 시 하나 쓰고 고치고 다듬어서 함께 읽어보고 시화로 마무리하자!’고 했다. 우선 학교를 돌며 모은 시 주머니(유에스비에 뭐가 들었냐고 물어서 그렇게 대답했더니 더 흥미롭게 반응한다)에서 동생뻘 되는 아이들과 또래를 지나 아이들의 엄마일 수도 아빠일 수도 있는 어른들은 어떤 시를 썼는지 읽어보자고 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말하던 언어 천재였던 1학년 시절부터 교과서에서 볼 수 없는 또래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시, 학교생활에서 느끼는 감정들과 어른들의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시를 보여주었다. 그래야만 복잡한 내 마음도 이해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임을,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서 냉장고 문에 붙여 분란을 만들고 대화를 통해 화해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시의 힘임을, 아이들은 동생들과 또래들을 믿고 시를 차분하게 이해해 나갔다.

 

3학년 수업에는 몇몇 반 선생님이 산만한 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참가한 채 진행하고, 나머지 반과 4학년은 아이들과 자유롭게 진행하였다. 반 분위기는 선생님이 있어도 산만할 때가 많았다. 시도 때도 없이 돌아다니는 아이, 남의 말의 참견하고 훈수를 두거나 행동으로 제지하려 드는 아이, “집중! 집중!” “조용히!”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으나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쉬는 시간에 선생님은 ADHD증후근이 있는 아이들이 많아서 약 먹는 아이(심각한 정신치료약이 아니라 흥분을 가라앉혀 주거나 예방하는 약 정도)가 많고 한 가지 좋아하는 것만 하는 아이 등이 있다고 알려준다. 어느 때는 봉숭아학당이 되어버리기도 하지만 한 편 한 편 시에 집중하고 다음 말에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시는 원점에서 시작한다. 시 아저씨가 온다고 하니 먼저 읽었는지 정지용 동시집을 펼쳐드는 아이도 있다. 동시는 어른들이 동심으로 써서 어른이나 아이가 읽었으면 하는 것이라고 어렵게 정의한다면, 동시는 아이의 목소리일 수는 없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집에서 학교로 와서 학원을 거쳐 하루를 마감하는 아이들의 삶이 묻어나야 하기에 본보기 시에 공감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해도 시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네.’ ‘구름은 솜사탕, 먹고 싶다.’는 투의 비슷한 시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도 시는 그런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소재 위주의 비슷한 시들은 써놓고 나면 주변에 엄청 많다고 해도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주제별로 나눌까 하다가 학년과 반마다 같으면서도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 차례대로 들고 나보려고 한다.

 

사과를 먹을까?

포도를 먹을까?

~ 아님 딸기

아님 레몬

, 무엇을 먹을까?

수박 먹어야지!!~

 

김시연(3-1), <무엇을 먹을까?>

 

시연이 시는 순발력으로 쓴 시라서 넣었다. 보기시로 읽어준 <내가 말하는 세상>에서 거짓말만 하며 살기와 진실만 말하며 살기를 고르는 일에서 차라리 말하지 않고 살기를 고른 시를 보고 재치있게 쓴 것 같다. 쓸 게 없다고 고민하기보다 이렇게 순발력 있게 자기 시로 만드는 것도 좋다. 대신 한 번 정도로.

 

펩시는 가운데 태극기 모양 같다.

진짜로 비슷한 게 있다.

위에는 빨강색, 밑에는 파랑색

, 대박이다.

멘토스를 넣고 싶다.

왜냐하면

폭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못 참고 넣었다.

파왕!!!

깜짝이야

이거 언제 치우지?

 

박현준(3-1), <펩시>

 

현준이는 빨갛고 파란 태극무늬가 선명한 그림까지 그려서 장난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너튜브 영상에도 이런 실험들이 넘쳐나니 어찌 참을 수 있을까. 못 참고 넣는 순간의 그 파왕!!!”은 놀랍기도 하고 뒤처리 걱정을 몰고 오는 소리였으리라. 그림까지 어우러지니까 강렬하게 다가왔다. 미처 콜라와 만난 멘토스가 거품으로 솟구치는 모습을 그리지 못하고 황급히 마무리할 수밖에 없는 일이어서 아쉽지만 저질러 보아야 아는 일이니 그 시도만으로도 좋다. 물웅덩이를 보면 물창을 튀기고 싶은 건 당연하다.

 

나의 단짝 다이소

아주 싹 파는 다이소

사고 싶은 게 다 있는 다이소

예쁘다!”

싸다

소리가 들린다.

10000원 받으면 500원 남았네.

 

울 엄마가 다이소 사장님 되면 좋겠다.

꿈도 다이소

수학 시간에도 다이소

모두 모두 다이소

모두 모두 다이소

사랑해 다이소.

 

안채연(3-1), <다이소>

 

채연이 시를 읽고 나서야 요즘 초등학생들이 자주 가는 곳이 다이소라는 걸 알았다. 사지 않아도 될 것을 사게 되는 곳, 싸게 사서 금방 버려도 아깝지 않은 천 원 가게, 국민가게라고도 부르는 곳을 이렇게 좋아하다니 놀랍다. 어른들만의 가게가 아니라 아이들까지 예쁘다”, “싸다를 외치며 용돈을 쏟아붓는다니. 그래서 그곳에 가 보았더니 채연이 같은 초등학생들이 많았다. 과자에서 문구, 없는 게 없을 만큼 1,000원이 모두를 부르고 있었다. ‘아주 다 싹 파는곳이다 못해 엄마가 다이소 사장님이었으면 좋겠다고, 꿈에도, 수학 시간에도 생각나는 곳이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할까? 그만큼 이 시는 요즘 아이들의 욕망을 대표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채연이는 용돈 받으면 거의 다 쓰고 온단다. 사고 싶었던 것이 아닌데도 사게 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봤자 중국 같은 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가성비 좋은 싼 물건이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걸 알고 가는 곳이니, 싼 물건들의 운명이 그렇지 않느냐 할 수 있다. 용돈 관리 차원만이 아니라 집에서 토론이 필요해 보인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다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까지 사는 것이 좋은지, 그곳의 물건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지, 모두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문제인지를 채연이 시를 읽고 토론해 보는 것이다. 채연이가 다른 친구들의 입을 대신해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어디까지나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 아이들이 여과 없이 들어온 것이니 생각해 볼 일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가 소주를 드시면

게임을 24시간 시켜준다.

동굴을 같이 가자고 한다.

가끔 욕하거나 화내시기도 한다.(아주 가끔)

옛날에 내가 태어나기 전 엄마는

소주 3병을 먹는 것은 아주 쉽다고 했다.

아주 대단하다.

나도 커서 소주를 먹어보고 싶다.

모든 술을 다.

 

박재민(3-1), <소주>

 

재민이와 ○○, 희성이가 쓴 시는 희성이가 쓴 <막걸리> 때문에 시작되었다. 희성이네 할아버지가 막걸리를 좋아하시는데, 그것 가지고 할머니와 말다툼이 가끔 있다고 하는 걸 시로 썼는데, 아이 눈으로 본 어른의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더니 다음 시간에 술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자연스럽게 보여준 어른의 세계가 어떻게 비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시들이다.

재민이는 희성이 시에서 자극을 받았는지 소주를 꺼내들었다. 시화에 소주병까지 그렸다. 교육상 좋지 않다고 해야 할까? 재민이가 말하는 모든 술을 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시를 읽고 난 재민이 부모님은 당연히 그런 걸 왜 썼느냐고 나무라실 것이다. 가족의 치부를 드러내었다고 혼을 내실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거울처럼 배운 어른의 세계를 반면교사(본이 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가족의 자리에는 칸막이가 없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은 그대로 아이의 말과 행동이 되기 쉽고, 오래도록 각자의 삶에 녹아들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한다. 아니 재민이처럼 엎질러진 문제도 잘 추스르고 설득해야 옳다.

 

울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오면

울 아빠가 술을 먹고 기어오면

무릎 꿇고 샤워를 한다.

그리곤 바로 거실에 드러누워

폰을 한다.

 

○○○(3-1), <쏘맥>

 

그런데 ○○이로 자체 필터를 한 이 시는 심각하다. 술을 마신다는 말도 필터링했다. 그건 좀 심하지 않느냐고 하니 고개를 돌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어른의 세계가 이렇게까지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아이가 거침없이 말하는 가족 이야기는 더 심각해 보였다. 아빠가 하는 일이나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는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놀라웠다.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한다. 딱히 그것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이렇게 만든 환경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필터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집안 환경을 아이는 거친 표현으로 되갚고 있는 게 아닐까.

 

할아버지는 막걸리를 먹으면

할머니랑 말로 맞짱을 깐다.

그래서 내 귀에서 맨날 피가 철철

말로 맞짱 깐다.

우리 할아버지 막걸리 좀 그만 먹어라

무슨 술의 달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이희성(3-1), <막걸리>

 

희성이도 처음에는 술 마시고 실랑이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를 재미있게 말했다가 표현이 한층 거칠어졌다. 그만 좀 먹으라는 할머니의 다정한 타박 정도가 맛짱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할아버지를 걱정해주는 정도에서 무슨 술의 달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로 넘어갔다. 이것도 역시 충분히 쓸 수 있는 이야기다. 아이들 눈으로 바라본 어른의 세계를 말해주는 것인 만큼 교육상이라고 따져서 좋으냐 나쁘냐는 것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어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고 설명해주어야 마땅한 일이다.

 

초밥은 맛있다.

연어초밥 광어초밥은

내가 제일 좋아한다.

와사비

간장을 찍어 먹으면

꿀맛이다.

와우!

정말 맛있다.

 

홍지우(3-1), <초밥>

 

지우는 맛있게 먹은 초밥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는 연어초밥과 광어초밥이 맛있다는 것만 썼다가 어떻게 먹었는지에 대해 덧붙였다. 먹는 이야기는 맛있느냐 없느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인 없는 것일까? 맛있기보다 심심해져버렸다.

 

살랑살랑

움직이는

강아지풀

강아지풀 따서

검사 놀이한다.

상상은 칭칭

현실은 살랑 툭 살랑 툭

그렇게 놀다가

해가 진다.

 

강서현(3-1), <강아지풀>

 

서현이도 흔하게 보면서 달리 표현할 수 없었던 강아지풀에 대해 썼는데, 놀이가 아니라 그냥 강아지풀이 살랑살랑 움직인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다 상상 속에서는 칭칭, 내 손에서는 살랑 툭 살랑 툭, 한다는 강아지풀의 모양새를 간신히 그리면서 마무리했다. 그래도 평범한 강아지풀이 놀이로 바뀌면서 훨씬 재미있는 시가 되었다.

 

토카토카

MZ 세대의 춤

맨날 추는 우리는 MZ 세대?

예스, 왠지 좋은데?

 

김재윤(3-1), <토카토카>

 

재윤이는 요즘 빠지지 않고 나오는 MZ 세대가 좋아한다는 토카토카 춤에 대해 짧게 썼다. 이 춤은 마침 학교 운동장에 온 공연단 행사에서 전교생이 하나가 되어 추는 걸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선생님까지 한 몸이 되어 추는 것을 보고 스스로 뿌듯해하는 재윤이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좋다. 인정 인정.

 

태권도는 힘든데도

재미있다.

그런데 다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다.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메달도 따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김동율(3-1), <태권도>

 

평일에는

맨날 가야 하는 태권도

갔다 오면

너무 힘들다.

 

왜 힘드냐면

활동지 수련 횟수가

400번 이상이다.

 

박승현(3-1), <태권도>

 

흰 건반

검은 건반

보기만 해도

어지럽고 현기증 난다.

 

○○○(3-1), <피아노>

 

동율이와 몇몇 아이들은 학원과 학교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썼다. 힘들고도 재미있다는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힘든 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일이면 괜찮은 것일까. 자세히 들어가면 힘들다-그렇지만-좋다는 공식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아 불편하다. 그런 점에서 승현이가 말하는 수련 횟수 400번과 <피아노>에서 말한 흰 건반과 검은 건반으로만 보인다는 말이 단순한 그것으로만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친구들이 하니까 무조건 해야 한다면 억울한 측면이 있다. 서로 협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재능과 함께 기꺼이 찾아서 할 수 있는 계기와 자발적인 선택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학교는 어떤가?

 

딩동댕동!

학교 수업이 시작된다.

꼭 수업할 시간이면

우주로 가서 블랙홀을 부수는 느낌이다.

쉬는 시간 되면

떠들썩떠들썩.

 

신보민(3-1), <학교>

 

보민이는 아직도 수업에 적응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수업 시간이면 블랙홀로 빠져드는 느낌이고 쉬는 시간은 시끄럽기만 하다. 우주로 가서 블랙홀을 부수는 느낌에 더 바짝 다가가면 게임 속에 접어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정확하게 어떤 기분인지 말해주었으므로 방법을 찾기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다 귀찮고 이것밖에 말할 게 없다는 친구도 있으니 학교란 어떤 공간일까?

 

지겹다.

학교 오기만 하면 졸리다.

공부하기 싫다.

 

○○○(3-1), <학교>

 

나는 체력이 없다.

체력을 키우려면

운동을 해야 하는데

운동을 하려면

체력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체력이

운동을

못하는

.

 

장민하(3-1), <체력>

 

학원에 학교 공부에 지친 체력을 키워야 하는 것일까? 민하는 운동을 해야 체력이 생긴다는 건 알고 있으나 그럴 체력조차 바닥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알리고 싶었으면 강조까지 해가면서 이유를 대고 있다. 못 먹어서 그런 것이나 운동 부족 때문만이 아닌 것 같다. 앞서 세 줄로 쓴 <학교>에서 보듯 학교가 만드는 분위기 때문일까?

 

얼음은 차갑다.

그 대신

얼음을 씹어 먹으면

이빨이

아프다.

얼음 버릴까?

 

홍지우(3-1), <얼음>

 

지우는 쉬는 시간에 얼음 넣은 음료수를 먹다가 바로 써서 그런지 너무나 솔직하고 단순한 시가 되었다. 그렇다고 버릴까? 그렇지 않고 다른 시간에 더 고쳐 써보든지 진짜 쓰고 싶은 시를 쓰면 되니까 괜찮다.

 

동글동글 예쁜 포도

진주처럼 동글한 포도

포도나무는 꼭 진주나무 같다.

왜냐하면 포도는 꼭 동글한

진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도는 진주처럼

딱딱하지 않다.

그리고 진주는 포도처럼

달콤하지 않다.

 

피승환(3-1), <포도>

 

승환이는 포도와 진주를 비교하다가 둘 사이의 시 공식을 발견했다. 동글고 예쁜 포도는 진주 같다는 비유에서 시작했다가 포도는 진주처럼 딱딱하지 않고 진주는 포도처럼 달콤하지 않다는, 누구나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자기만의 격언(사리에 맞아 교훈이 될 만한 말)처럼, 시가 되는 길을 찾아냈다. 비슷한 점이 둘 사이를 같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만의 고유한 장점을 갖고 있음을 말하려는 것처럼. 포도는 달콤함을, 진주는 딱딱하고 귀중한 값어치를 갖고 있는, 그것 그대로의 발견이랄까.

 

콩벌레는 귀엽다.

사람들은 왜 징그럽다고 할까?

 

귀엽다.

예쁘다.

 

콩벌레를 보면 상처가 없는지

다친 데 없는지

 

친구들은 !”

나는 콩벌레가 귀엽다.

 

친구들은 이걸 왜 잡아.”

귀여우니까

 

 

안채연(3-1), <콩벌레>

 

학교 운동장 위에 있는 등나무 그늘 아래에서 공벌레를 키우던 친구들이 있었다. 나뭇잎으로 집을 만들어 먹이까지 주면서 말이다.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는 아이도 있다. 인기척을 느끼면 공처럼 몸을 말고 기다리는 콩처럼 생긴 공벌레에 대해 재미있게 썼다. 아이들의 반응까지 살피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대해 썼다. 공벌레도 알고 보면 흙 속의 청소부로서 하는 일이 많으니 벌레라고 무서워할 것만은 아니다.

 

처음엔 작은 나의 햄스터

점점 사료를 먹으면

마동석처럼 듬직해졌구나.

근데 가면 갈수록

살이 빠지니 다행이다.

 

○○○(3-1), <고도비만 햄스터>

 

공벌레 다음에 나온 것은 햄스터다. 햄스터는 주는 대로 먹어서 마동석처럼 쪘다가 살이 빠지는 중이라니 그걸 지켜보는 마음이 어떨지 충분히 알 것 같다. 고도비만이란 말이 사람한테나 쓰는 말인지 알았는데, 어쩌면 그렇게 만든 것이 사람의 습성에 맞춰 키운 탓은 아닐지 걱정이 된다. 고양이나 강아지 생각도 나게 한다. 정성 들여 키우는 만큼 좀 더 자세히 관찰하고 관심을 보인 만큼 그것만의 특성이 잘 표현해주면 좋겠다.

 

3학년 2반으로 건너오니 또 다르다. 대체로 어수선하지만 보기 시를 읽고 자기 시를 쓰고 완성할 때까지 잘 따라와 주었다.

 

시험은 실수를 줄이는 것이다.

시험은 잘 볼 자신은 있다.

하지만 막상 점수는 아쉽다.

실수였다.

사람은 실수한다.

그러니까 시험은

실수를 줄이는 것이다.

 

박선규(3-2), <시험>

 

선규는 모범생다운 시험시를 썼다. 대부분이 두근두근하고 떨리거나 망쳤다는 말로 마무리하는데, ‘실수를 줄어야만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썼다. 알고도 놓치거나 실수하는 것을 줄여야만 한다는 것을 차분하게 말하고 있다. 누구나 실수하는 법이지만 실수를 줄여야만 한다는 도돌이표 같은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2반은 학교와 학원, 공부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선규처럼 담담하게 이유를 찾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윤우처럼 허둥대고 아예 피하고 싶어하는 아이까지.

 

선생님이 나에게 문제를 나면

내 머릿속은 새하얘진다.

심장은 쿵쾅쿵쾅 식은땀이 난다.

나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전혀

생각이 안 난다.

내 머릿속은 점점 더 새하얘진다.

 

이윤우(3-2), <내 머릿속>

 

윤우는 시 쓸 종이를 주면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친구들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이일까? 앞 친구 등이 더 컸으면 하고 바라면서 선생님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을 것이다. 알고 있던 것도 새하얗게 지워져버리는 것은 어른들도 겪은 일이기에 충분히 공감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표현하고 나면 선생님도 이런 아이에게 어떻게 문제를 낼지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 않을까?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1년이 되면 7교시가 나올 것 같다.

너무 학교 가기 싫다.

그냥 3학년으로 살고 싶다.

 

박서율(3-2), <학교 가기 싫다>

 

서율이는 벌써 4학년이 되어 7교시로 늘어난 시간표를 보고 있다. 지금만으로도 벅찬데, 그렇다고 3학년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것인데, 숙제장 한쪽에다 낙서하듯 푸념을 늘어놓았다. 제목부터 답답한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안타깝다. 그래서 6교시가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스스로 솟아날 구멍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1교시 2교시 3교시 4교시 5교시 6교시가

재미있습니다.

근데 저는 4교시만 재미있습니다.

왜냐면 4교시는 체육 영어 과학 사회 체육

이렇게만 재미있습니다.

그중에서

수학이 재미있습니다.

 

○○○(3-2), <학교>

 

서율이에게 선생님 대신 말하기라도 하듯 그래도 재미있는 시간은 있잖아? 하고 좋아하는 과목을 말한 친구도 있다. 수학까지 재미있는 것으로 보아 국어 시간이 가장 재미없는 시간이었을까요? 국어 시간이 자유롭게 시를 읽고 이렇게 시를 쓰고 그리는 시간이면 좋겠다. 공부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뭘 알아가고 겪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학교에 다니는 선생님부터 아이들까지 모두 생각하고 찾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학교는 공부를 하니까 재미있다.

쉬는 시간도 있다.

학교가 좋다.

밥을 먹고

쉬는 시간이 있어서 좋다.

 

윤지영(3-2), <학교>

 

지영이가 나섰다. 학교가 왜 재미있냐면, 꼭 공부하는 시간만 있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누리는 쉬는 시간이며 밥 먹는 시간도 있잖냐고 말하는 것 같다. 공부가 재미있다고 말하면 원성을 듣기도 하겠지만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잘 가르쳐주는 곳이 학교이니 전부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학교에서 공부할 때 시간은 너무 느리게 간다.

게임 할 때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그게 반대로 되면 좋겠다.

 

김민준(3-2), <시간>

 

민준이도 한몫 거들었다. 공부할 때 시간은 느리게 가고 게임 할 때는 빨리 가는 시간에 지배당하니까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다. 게임하듯이 공부하고 공부하듯이 게임하자는 뜻으로 읽어도 될 것 같다.

학교를 오니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친구들과 밖에서 놀고

친구들과 축구도 하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놀고

 

최민준(3-2), <학교>

 

이름만 같은 민준이도 학교에는 친구들이 있지, 그러니 혼자 고민하지 말고 어울려서 놀면서 문제를 해결해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학교는 공부만 파는 곳이 아니라 놀고 어울리면서 그것마저 공부를 하는 다른 길이라는 것을 안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유희처럼 새 학기라서 설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학교 가는 길이 또 다른 설렘으로 바뀌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근두근 새 학기

신나는 새 학기

오랜만에 오니

정말 신난다.

새 친구를 사귀었다.

두근두근 새 학기

 

서유희(3-2), <새 학기>

 

쉽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맨얼굴로 만나기 시작한 새 학기의 설렘이 여지없이 깨지는 시간이 온다. 학교 끝나고 학원으로 이어지는 흰 건반검은 건반의 짓누름이 시작되는 시간.

 

학교 끝나면

엄마가

학원 가라 한다.

학원에 바로 가면

엄마가 놀라고 하고

학원에 바로 안 가면

엄마는 회초리를 든다.

망했다.

그냥 학원 때려치우고 싶다.

 

연준서(3-2), <회초리>

 

준서는 솔직하게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넘어 화를 드러냈다. 학원은 가라고 해서 가는 곳인데, 그마저 앞뒤가 안 맞는 엄마의 말에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학원 가라 해서 바로 가면 놀라 하고, 그렇다고 안 가기라도 하면 회초리를 드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가장 흔하게 말하는 표현 그대로 망한 것이다. 터져 나오는 울분에 무조건 화로 받아치지 않고 설득해야 한다. 3학년이니 준서도 때려치우겠다, 끊겠다는 말에 앞서 협상을 해야 한다.

 

모든 어린이들이 학원을 다닌다.

학원이 1시간도 있고 2시간도 있다.

학원을 싫어하는 어린이가 있고

좋아하는 어린이도 있다.

그중에 싫어하는 어린이가 더 많다.

학원은 종류가 많다.

영어, 피아노, 공부방, 수학, 국어 등등

아주 많다.

어린이들은 어른이 좋겠다고 하고

어른들은 어린이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김윤중(3-2), <학원>

 

그래서 윤중이는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한 것처럼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아니 친구들의 의견을 추슬러서 말해보고 있다고 해야 할까. 감당하지 못할 만큼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수가 많으니 조정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 어린이들은 어른이 되고 싶고 어른들은 어린이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어린이(자신이 어린이라고 하니 재미있다)들의 주장에 어른들도 우리라고 힘들지 않냐, 우리도 어린이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니, 윤중이는 내내 제3자인 것처럼 의뭉스럽게 말하니 웃음이 난다.

 

, 나는 피아노를 다니고 싶은데

, 엄마 아빠는 상의해 보아야 한다고 하고

, 운동을 다니고도 싶은데

둘 다 다니면 안 되나?

시간이 없다 그러네

, 뭐 다니지?

 

김서윤(3-2), <학원 뭐 다니지?>

 

서윤이는 앞의 친구들과 달리 자기가 다니고 싶은 학원을 고르고 싶지만 엄마, 아빠의 상의가 필요한 일이라고 했단다. 아무래도 현재 다니는 학원(, , ?)만으로 족하다는 뜻일까? 시간이 없다는 말도 부모의 말이라면 다른 친구들에 비해 훨씬 여유롭고 자기만의 시간을 쓸 몫이 늘어나는 일인데 학원을 더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몽글몽글 솜사탕

냠냠 쩝쩝 친구와 나누어 먹으면 더 맛있다.

사르르 사르르 입속에서 솜사탕이 녹아내린다.

구름 같아서 더 맛있는 것 같다.

알록달록해서 더 맛있다.

 

서민경(3-2), <솜사탕>

 

학원을 지나 잠깐 쉬어가는 시로 솜사탕을 보자. ‘구름하면 솜사탕이 으레 나오는 시는 거의 다 비슷해서 되도록 쓰지 말자고 했는데 민경이는 솜사탕 맛을 잊을 수 없는지 그대로 썼다.

 

하늘에 구름들이 모여서

수다를 떤다.

재미있는 이야기

슬픈 이야기

“...”

화난 이야기를 하니

천둥이 우르르 쾅!

새들이 놀라

도망친다.

 

김세연(3-2), <구름>

 

세연이처럼 같은 구름에서 시작했더라도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구름들이 몽글몽글 모여서 수다를 떨다가 끝내 화나는 이야기가 나와서 천둥이 친다는 자기만의 상상이 돋보인다.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구름은 시의 원천(샘물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이어서 계속 모양을 바꾸고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뭘까?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

아님

서로가 행복한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가족은

사랑이 넘치고

웃음도 넘치는

우리 가족이다.

 

박서윤(3-2), <가족>

 

가족도 마찬가지다. 처음을 가족이란 뭘까?’로 시작했다면 가족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서로 어떤 사이인지 이야기거리가 엄청 많다. ‘사랑이 넘치고/웃음이 넘치는가족도 있지만 늘 그렇지 않고, 서로 편하게만 생각하다가 상처를 주기도 하는 법이니, 서윤이가 자신있게 말한 가족 이야기를 한껏 펼쳐보는 것도 좋다. 서윤이네 가족의 비결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색종이 접기가 좋다.

즐거운 색종이 접기

다음에는 많이 접을 거다.

오늘은 더 많이 접을 거다.

, 50개 접을 거다.

!

 

박시윤(3-2), <색종이>

 

시윤이와 민균이가 유일하게 자주 하는 놀이를 썼다. 색종이 접기와 축구는 다른 반에서도 자주 나와서 놀이가 색종이 접기와 축구밖에 없나 하는 의문이 든다. 더 다양한 놀이가 쉬는 시간을 즐겁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시윤이도 색종이 접기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뭘 접었는지, 접으면서 생각한 것은 없는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고, 민균이도 축구를 좋아하고 잘 하지만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다.

 

축구공이 회전을 돌면서 간다.

공이 잘 차진다.

공이 좋아서 3학년 중에 제일 잘한다.

공한테 고맙다.

대회 나가서 상을 받았다.

 

송민균(3-2), <축구공>

 

공한테 고맙다고 한 만큼 축구를 좋아하는 민균이는 자랑부터 했다. 3학년 중에 따라올 자가 없다고 하고 상까지 내밀었는데 정작 어떤 축구 기술이 있는지 써주지 않아 아쉽다.

 

2반을 나와 3반에 가니 쉬는 시간마다 축구를 한다는 지후와 색종이 접기를 좋아하는 하은이가 민균이와 시윤이 시에서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다른 반에 비해 가족 구성원에 대한 시와 자연에서 겪은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내가 축구를

시작했을 때

슛을 많이 때렸다.

슛을 1번 때렸는데

발이 아팠다.

축구 학원을 다녀

발이 이제 안 아프다.

마법인가 공에 바람이 많았나?

페인팅을 처음 썼을 때

부드러웠다.

페인팅이 뭐냐고?

수비를 속이는 거다.

 

김지후(3-3), <축구>

 

지후는 이름난 축구 선수 유니폼을 입고 날렵하게 운동장을 휘젓고 다니더니 예사롭지 않은 축구 실력을 시로 썼다. 그냥 좋아한다고만 쓰는 것보다 이렇게 하고 싶은 자랑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학원까지 다녀서 축구 실력이 좋아졌고 아이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있으니 얼마나 뿌듯할까. 자기 기술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페인팅이 뭐냐고? 되물으면서 은근히 자랑하고 있어서 민균이가 의문의 1패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종이 종이 색종이

종이 종이 재밌는 종이

색종이는 많은 모양을 내는 종이

도형 모양 동물 모양 공룡 모양

많은 모양을 내는

종이 종이 색종이

나에게 재미를 주는

종이 종이 색종이

가위로 자르면

사각사각 소리 나고

재밌는 모양을 만드는

종이 종이 색종이

손으로 접어도 재미있고

스티커를 붙여도 재미있는

종이 종이 색종이

 

하은(3-3), <많은 모양 내는 색종이>

 

하은이는 앞반의 시윤이 시와 비교할 수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살짝 아쉽다. 무엇을 접고 있는지, 재미있는 모양을 내는 몇 가지 기술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다. 종이접기를 그림처럼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것을 접을 때의 즐거움이 재미있는 모양으로 나타나도록 고민했더라면 다른 시가 되었을 것이다.

 

시소는 왔다 갔다 한다.

시소는 어디로 갈지 모른다.

누구한테 갈까?

과연?

시소는 늘 다르다.

시소는 힘들겠다.

 

송하은(3-3), <시소>

 

하은이는 친구 사이를 말하는 것 같다. 시소를 잘 타려면 서로 굴러주면서 서로의 무게를 느끼는 놀이라면 어디로 갈지 모른다고, 누구한테 갈지 모른다고 하면서 친구 사이를 말해주는, 그래서 시소는 그걸 가늠해주라 힘들겠다고 한 것이 아닐까? 단순한 놀이만이 아닌 하은이의 마음을 읽게 만드는 시다.

 

엄마가 나를 혼낼 때

말을 하면

말대꾸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고도 말을 안 하면

말을 하라고 혼내고

그럼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면

말대꾸는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럼 나는 말대꾸 아닌 게 뭐냐고 물어보면

나도 모른다고 하신다.

그리고 내가 웃으면

뭘 잘했다고 웃냐고 하신다.

 

이시우, <엄마>

 

시우의 <엄마>를 읽으면서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마음껏 웃었다. 모두 자기 엄마를 말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엄마에 대해 털어놓았다. 아빠들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조목조목 따져서 보여줄 뿐이다. 어떻게 해야 혼나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스트레스 때문일까? 이런 시는 냉장고 문에 붙여놓아 가족 간에도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해서 토론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어떻게든 말로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잔소리에 토를 달지 말라는 뜻으로만 비친다면 정작 중요한 순간 대화마저 끊길 수 있으니 시우 말에 귀를 기울여주어야 한다.

 

동생은 내가 조끔 뭐라고 해도

앵앵거린다.

그 소리를 들은 엄마는

동생만 감싸고 나한테는 야단치신다.

엄마는 이렇게 매일 동생 편만 드시는 것 같다.

.

 

박주은, <동생과 엄마>

 

주은이도 할 말이 많으나 간단하게 동생과의 갈등을 보여주었다. 동생은 앵앵거리며 분풀이라도 하는데 주은이는 언니 노릇에만 붙박여 있어야 한다. 그런 점을 동생은 잘 이용하는 경향이 있어서 참 억울할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의 말을 들어보고 올바르게 판단해준다면 동생은 동생대로 언니는 언니대로 잘 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나마 표현해주어서 뒷날을 기약해 본다.

 

엄마는 천사와 악마가 된다.

천사가 되려면 마사지와 집안일을 도와주어야 한다.

천사가 되면 마음이 착해진다.

악마가 되려면 허락을 안 맞고 나가고 하면 악마가 된다.

게임을 30분 하라고 한다.

난 천사가 좋다.

 

홍시헌, <엄마>

 

시헌이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덮어놓고 엄마를 천사와 악마로 분류를 한 것일까? 천사와 악마로 나눌 일이 아닌 것만은 맞다. 어떤 일을 해야 엄마 마음이 누그러지는지 알면서도 허락을 안 맞고 나가속을 끓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일로 천사와 악마가 하는 것은 지나치다. 두 얼굴이 된다고 표현하면 좋은데 급발진한 느낌이 강하다. 마사지와 집안일은 엄마의 가사노동을 덜어주는 일이니 얼마나 좋은가. 엄마 말을 들어보고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동차 타고

영덕, 울산까지 가는데

멀미가 온다.

 

울렁이는 속을 참고

겨우 도착했더니

예쁜 바닷가.

당장이라도

물속에 들어가고 싶다.

자리 잡고 짐 꺼내고

 

아빠가 말한다.

애들아, 고기 먹자

냠냠맛있게 먹고

불멍하고

 

자려는데

예쁜 별 때문에

불면증이 걸릴 것 같다.

눈을 감고 잠을 잔다.

 

김온유, <캠핑>

 

온유의 시는 그냥 캠핑 다녀왔다는 이야기로 끝날 뻔했는데 그림과 함께 살아난 시다. 바깥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일을 잘 기록하는 것이 사진보다 나은 일 아닐까. 먼 바닷가까지 가서 텐트를 치고 밤하늘까지 보았던 일은 오래 기억에 남는 일이기에 이렇게 조금이라도 더 써주어야 한다. 차멀미를 하며 고생해서 간 길이 고기와 불멍, 밤하늘로 보상이 되는 일이다. 같은 일을 겪었던 친구들도 이 시를 읽으며 좀 더 실감있게 썼으면 좋겠다.

 

아빠가 강아지를 받으셨다.

그래서 6시에서 8시까지 이름을 정했다.

이름은 레오다.

10일이 넘게 집에서 키웠는데

레오가 아빠 팔을 물어서 밭으로 갔다.

아빠에게 밭에 보내지 말라 했는데

아빠가 다음날에 밭에 보내셨다.

그래서 토요일이던가 일요일에 간다.

그때마다 기분이 좋다.

요즘은 힘들어서 토, 일에도 못 온().

그래서 가끔씩 오()려고 한다.

우리가 집에 가면

간식 달라고 멍멍 짖는다.

아빠는 새벽 5시에 레오와 산책하러 간다.

레오는 개밥을 안 먹고

간식만 먹는다.

 

김준수, <우리 가족 레오>

 

레오는 또 다른 가족이어서 강아지 때 이름 정하는 데만 두 시간이 걸릴 만큼 소중한 존재다. 반려견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아빠 팔을 물어서 농막이 있는 밭으로 갈 수밖에 없다. 오고 간다는 말이 서툴러서 레오가 오는 것인지 가족이 가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레오를 사랑하는 준수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레오가 아빠 팔을 물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 잘 알아보고 훈련을 했더라면 밭에 가지 않았을 텐데, 함께 사는 길을 찾지 못하고 헤어져 지내는 게 안타깝다. 레오가 개밥을 안 먹고 간식만 먹는 모습이 짠하다.

 

비가 가득 오는 날

나는 가족들과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간다.

 

창문에 빗방울이 한가득 맺히면

다른 빗방울이

창문에 붙어있던 빗방울을

쓸어내리며

멋진 그림을 그린다.

 

그 빗방울 위에 다른 빗방울이

! 하고 달라붙으면

새로운 도화지가 생겨난다.

 

그림을 그리면

다시 생겨나고

무한대로 생겨난

그림들은

언젠가 없어지게 되어있다.

 

이주하(3-3), <비 오는 날>

 

주하는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 길에 혼자만의 느낌을 잘 표현해주었다. 휴대폰만 들여다 본다고 뭐라 할 것이 아니다. 창문에 끝없이 달라불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우리가 바쁘다 하면서 잊고 사는 이야기를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빗방울 위에 다른 빗방울이/! 하고 달라붙으면/새로운 도화지가 생겨난다는 표현이 가슴을 울린다. 다른 사람이 눈여겨보지 않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시인 아닌가. 그런 도화지에 무한대로 생겨나는 그림이 우리의 삶이기도 하고, 언젠가 없어지게 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해야 할 일이란 것을 주하는 조금은 아는 것 같다.

 

비가 왔다.

물방울이 나뭇잎에

앉아 놀고 있다가

물방울은 땅으로 뚝뚝

그 물방울은 올라갔다.

구름으로

 

송지은(3-3), <구름>

 

지은이는 또 다른 그림을 그렸다. 주하 시를 이어받아 무한대를 짧고 간결하게 말로 해주는 것 같다. 그냥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니라 나뭇잎에 매달려 놀다가 땅으로 떨어지는 마음, 다시 구름으로 올라가는 무한대의 그림이기도 하다. 글씨인 듯 몇 획으로 그린 수묵화 같다.

 

길쭉한 막대기에

구멍 뽕뽕 뚫린 리코더

후후 불면 삐이익

소리 나는 리코더

 

○○○, <리코더>

 

리코더는 악기이니 음악을 만드는 도구다. 그냥 구멍 뚫린 모양이면 삐이익소리만 나는 것이지만 그 구멍을 잘 막고 트면서 연주를 하면 음악이 된다. 리코더에 서툴다 보니 그냥 모양만 표현하고 말아 아쉽다.

 

봄바람 따스하게 불어오는 날

내 앞에 운명같이 꽃 한 잎

떨어지네.

나에게 행운이 일어날 듯이

따스하게 봄바람이 불어오네.

미신이라 믿고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계속 신기한 일이 내 앞에

당당히 보여주네.

내가 원치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일어나네.

 

양예찬(3-3), <>

 

예찬이는 앞의 시의 아쉬움을 풀어주고 있다. 봄이라는 악기가 예찬이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 같다. 꽃 한 잎이 떨어지고 행운이 벌어질 듯 따스한 바람으로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미신일 거라 믿으며 나아간다는 말이 재미있다. 이렇게 한걸음 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대부분의 이라는 시를 읽으면 책상 앞에서 머리로 쓰는 시가 많다. 신기한 일은 이렇게 예찬이가 원하지 않아도 일어나는 법이다. 봄이 그렇게 예찬이를 걷게 하고 깊이 느끼게 해주었다. 봄은 신기한 일을 당당하게 보여준다는 말이 좋다. 예찬이의 의지와는 다르게 변화를 만들어주는 것이 자연이지 않을까? 입맛대로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앞으로 가까이 갈수록 보고 느낄 수 있는.

 

쓰레기통은 마법 같다.

계속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쓰레기가 꽉 차도 들어간다.

블랙홀이 빨아들이는 것 같이

끝도 없이 들어간다.

 

김민기(3-3), <쓰레기통>

 

민기는 교실 뒤에 있는 쓰레기통을 보면서 썼다. 친구들이 버린 종이 쪼가리와 다른 쓰레기들을 눌러 담으면서 썼다. 그렇다고 쓰레기통에 블랙홀이 있는 것처럼 계속 담아낼 수 없는 일인데 왜 끝도 없이 들어간다고 했을까?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쓰레기들이 어딘가로 가서 쌓일 것만 같다.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쓴 것일까? 그 끝은 어디일까, 하고 묻는 것이라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

 

처음 와서 친구 없을 때

다가와 주었던 친구

꼭 필요한 친구 주하.

 

학교도 같이 가고

급식도 같이 먹었던 친구

꼭 필요한 친구 주하.

 

어떨 땐 싸우고

다툼이 일어났지만

꼭 필요한 친구 주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

꼭 필요한 친구 주하

 

김연서(3-3), <하나밖에 없는 내 친구>

 

연서는 친구 이름을 공개하면서 애정을 보여주었다. 친구란 혼자일 때 먼저 다가와 주는 존재이자, 학교 안에서 같이 움직이고, 설령 다투었더라도 화해를 하며 더 필요한 존재임을 감성 사전을 보여주듯 그대로 드러냈다. 함께 읽어주었을 때 주하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쉬운 듯하지만 쉽게 말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난 아기를 잘 돌본다.

내가 아기와 놀아주면 재미있어서

소리를 내면서 웃는다.

내가 놀아주는 종류는

집에서 그네를 밀기

그리고 아기가 놀이터에 가면

엄마들이 귀여워 한다.

그리고 내 엄마의 아기였으면 좋겠다.

 

○○○, <내 이모의 아기>

 

이모의 아기를 보며 동생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일까? 아니다. 자신이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동생이 생기면 진심으로 좋아하고 보살펴 줄 거란 말이 첫 행에서부터 그대로 드러난다. 밖에 나가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기를 보며 엄마의 아기, 즉 내 동생이었으면 하고 부러웠다니, 아기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말이다. 또래 아이들 가운데 보기 드문 시다.

 

숙제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다 하면 자유긴 하지만

평일이 되면

숙제가 쌓인다.

쌓인 숙제는

주말에 다 해결해서

힘들다

숙제에 갇힌 것 같다.

 

○○○, <숙제>

 

숙제 지옥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전 빡빡이 숙제라고 같은 문장이나 공식을 몇백 번 썼던 기억이 저절로 떠오른다. 끝이 없는 숙제를 주말에 몰아서 하자니 당연히 숙제에 갇혀버린 느낌일 것이다. 숙제하고 놀라는 말을 몰라서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놀거나 쉬고 싶은 평일이 지나면 자연스레 숙제가 쌓이는 것이다. 스스로도 알 것이다. 미리 미리 해놓으면 자유라는 것을 아는 데도 자꾸 놓치는 것이다. 눈만큼 게으른 게 없다는 어른들 말씀이 맞다.

 

불은 나무의 적이다

나무를 불로

뜨겁게 한다.

 

이건 폭력과 같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건

나무가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김우진(3-3), <>

 

우진이는 불을 한바탕 그리면서 썼다. 산불 나는 장면을 보여주는 뉴스를 보고 불이 얼마나 무서운지 느낀 것 같다. 나무에게 불은 적이자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이 나무의 눈물이라고 앞 연과는 다른 느낌을 보였지만 불의 기운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은 나무에게 무서운 것이지만 적이라 할 수 없다. 불이 나면 한순간에 나무를 태우니 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게 구분하면 무조건 나쁘고 좋다는 이분법에 빠지기 쉽다. 촛불이나 캠핑장의 화덕에 있는 불처럼 그 자체로 보고(나무를 불로 뜨겁게 하듯) 나뭇잎이 떨어지는 건 스스로 짐을 지우고 겨울을 이겨내듯 자연의 한 모습으로 봐야 할 것이다. 폭력이 아니라 자연의 다른 모습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배는 감기에 좋다고 한다.

배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다.

배는 아삭아삭하고 달콤하다.

배는 제사상에도 올려놓는다.

 

조재율(3-3), <>

 

재율이는 배를 좋아해서 감기에 좋다는 말로 시작해 제사상에 놓인 모습까지 썼다. 배가 듬직한 모습으로 그림 가운데 놓인 것처럼 또 다른 시각 효과를 준다. 단순하나 상 한 차림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자신의 마음을 비춰주는 것 같다.

 

돋보기로 확대하면

잘 보인다.

근데 당연한 말이다.

그래도 나는 궁금하다.

왜 돋보기는 내 눈처럼

또렷하지 않을까?

또 너무 확대하면

뒤집힌다.

 

서인영(3-3), <돋보기>

 

인영이는 배 대신 돋보기를 썼다. 배가 모든 과일 가운데 맛있듯이 돋보기를 통해 눈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든 걸 확대시켜 잘 보이게 하는 돋보기도 눈처럼 또렷하지만은 않다고 한다. 너무 확대하면 형상을 뒤집듯이 그저 확대 도구인 돋보기를 제대로 간파한 듯 말하고 있다. 카메라가 아무리 잘 찍는다 해도 눈만큼 좋을 수 없듯이.

 

사람들은 지혜롭다.

하지만

지혜롭지 않을 때도 있다.

지혜롭지 않을 때는

화를 낼 때이다.

누구나 화를 낼 순 있지만

화를 내면 지혜를 하나씩 잃는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니

지혜가 조금만 있어도

우리들 옆에는 사람들이 있으니 괜찮다.

그리고 지혜는 시간이 지나면 또 생긴다.

 

이서영(3-3), <지혜>

 

그런 점에서 3반의 시를 마무리하며 서영이는 사람이 가진 지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화를 낼 때는 불이 모든 걸 집어삼키면서 잿더미로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화를 내면 지혜로울 수 없다. 지혜라는 말의 새로운 발견이다. 서영이는 사람들이 어울려서 사는 세상이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 지혜 때문이라고 믿는 것 같다. 지혜가 샘물처럼 솟아나고 있어 탁한 강물이 깨끗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면 지혜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왠지 위안을 받는 느낌이다. 지혜를 등불처럼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사람이지 않을까.

 

다음 3학년 4반 아이들도 만만치 않다. 다른 반과 달리 정원 쪽에 맞닿아 있는 교실 덕분인지 꽃과 나무, 계절을 지나 놀이와 삶에 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선생님 영향도 큰 것 같다. 차분하면서도 골똘하게 자기만의 생각에 빠진 아이들로 다양한 분위기다. 두 학기 동안 그렇게 끌고 가려면 많은 공이 들어가야 한단다. 조금이라도 흩어지면 다시 모으는데 오래 걸리지만 곧바로 균형을 잡는 아이들이 조화로운 것 같다.

 

일요일은 뭐가 급한지

빨리 왔다 빨리 간다.

 

월요일은 뭐가 한가한지

일찍 왔다 늦게 간다.

 

금요일은 뭐가 그리 좋은지

일찍 왔다 빨리 간다.

 

토요일은 뭐가 안 좋은지

늦게 왔다 일찍 간다.

 

맹지수, <요일>

 

지수부터 남다르다. 토요일만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월요일은 싫다는 식으로 감정을 쏟아놓지 않고 리듬을 타고 선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듣자마자 콕 박힌다. ‘아쉬움이 쌓이는 소리/내 마음 무거워지는 소리//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아버지가 돈 버는 소리//내 마음 안타까운 소리’(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처럼 다가온다. 어른들도 충분히 공감하는 요일 노래가 될 만하다. 어른들은 직장과 집에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런 요일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빨리 왔다 빨리 가는 일요일, ‘일찍 왔다 늦게 가는 월요일, ‘일찍 왔다 빨리 가는 금요일, ‘늦게 왔다 일찍 가는 토요일까지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분식은

뭐가 맛있을까?

, 떡볶이 아니면

회오리 감자?

못 정하겠어.

음식은 정할 수 있겠지?

음식은

뭐가 제일 좋을까?

스팸, 음 아니면

계란프라이?

못 정하겠어.

뭐를 먹을까?

누가 정해주었으면 좋을 텐데.

 

이서하, <분식, 음식>

 

서하도 친구들의 고민 아닌 고민을 대신 해결해주러 나왔다. 쉽게 결정하지 못할 만큼 다 맛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친구들 마음을 대신하여 불러주는 분식집 노래다. 분식과 음식의 구분이 조금 애매하지만 리듬을 타고 부르면 입맛을 다시게 하니 그것으로 족하다. 서하가 냄새를 피우자 유준이가 돌림 노래처럼 시를 썼다.

 

고기 먹으면

집에 없는 상추 생각나고

과일 먹으면

또 집에 없는 주스 먹고 싶다.

 

아마도 내 혀가

심심한가 보다.

과일 먹으면

비슷한 주스랑

먹고 싶나 보다.

 

전유준, <음식>

 

고기 먹으면 상추 생각, 과일 먹으면 주스 생각’ ‘내 혀는 장난꾸러기로 고쳐서 썼다.

 

내 혀는 장난꾸러기다.

 

고기를 먹으면 상추가 먹고 싶고

상추를 먹으면

고기를 먹고 싶다.

 

고기와 상추를 먹으면

쌈장을 먹고 싶다.

 

정말 장난꾸러기다.

 

전유준, <음식>

 

처음 쓴 시보다 훨씬 재미있다. 제목을 그냥 <내 혀는(로 말할 것 같으면)>으로 해도 좋았겠지만 시를 쓰는 즐거움까지 더해서 읽는 맛을 더해주고 있다. 그러니 못 참고 등장하는 라면은 어쩌겠는가.

 

뭘 넣어도 맛있는 건

바로!

라면이야.

 

라면을 제일 맛있게

먹는 법은

 

친구에게

라면 한 입만하고

 

김치, 계란 준비하고

많이 집어서

면치기 고고!

 

전형민, <라면>

 

친구들 뱃속을 요동치게 하려고 작정하고 노래를 불렀다. ‘뭘 넣어도 맛있는 건/바로!/라면!//라면을 맛있게 먹는 법 알아?//그건 바로!/한 입만!/그런 다음에 김치에 계란 준비하시고/한 젓가락 집어/면치기 고고!!’로 다듬으면 수능금지송에 다이어트금지송이 될 것 같다. 이것은 재미있는 생각을 들어주고 적극 권장한 선생님과 아이들의 개성 넘치는 분위기 덕분이라 믿는다.

음식 냄새로 가득 한 교실에 창문을 열고 자연에 조금 더 가까이 간 시들을 보자.

 

무지개는 비가 올수록

더 활짝 피는 것 같다.

무지개는 7가지 색이 있어서

예쁜 것 같다. 빨강색, 주황색

노랑색 연두색 하늘색 남색

여러 가지가 있는 무지개

무지개는 언제 필지 모른다.

무지개가 피면 사람들도 좋아한다.

 

○○○, <무지개>

 

무지개는 왜 일곱 가지일까? 비 오고 난 뒤 물방울이 햇빛에 분산되어 비칠 때 색깔들이 빨, , , , , , 보인 것인데 조화롭게 겹쳐있는 걸 흔히 보기 어렵기 때문에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두 편의 시는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무지개와 사진으로 찍으려다가 놓친 눈앞의 무지개이다. 앞의 시는 비가 오고 난 뒤 언제 필지 모를 무지개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 들어가 있다면 진규의 무지개는 직접 맞닥뜨린 무지개이다. 그냥 눈으로 구경했더라면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었을 텐데, 그걸 사진으로 담아놓고 싶어 집에 들어갔다가 사라져버린 아쉬움을 표현했다.

 

참 예쁜 무지개

밖에서 우연히 무지개를 보았다.

사진을 찍으려고 집에 가서

핸드폰을 가져오면

 

무지개는 이미 사라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찍었지.

 

무지개는 소닉이다.

예쁜 만큼

빨리 사라진다.

 

박진규, <무지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사진에 담아두듯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꽃이나 무지개를 만나면 사진부터 찍는 건 버릇이 된 것 같다. 충분히 감상하기보다 사진으로 담아서 저장하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진규는 예쁜 만큼/빨리 사라진다고 뒤늦은 깨달음을 썼다. 눈으로 바라보며 마음에 저장하는 것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본보기 시다.

 

헉헉, 드디어

쉼터다.

! 앉을 자리가

없다.

자리가

1인용이랑

2인용밖에

없다.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계속 올라갔다.

 

황민규, <등산>

 

민규는 가족과 함께 산에 올랐던 모양인데 숨이 차서 힘들었던 기억부터 났다. 쉼터에 사람들이 많아서 몇 자리 없으니 제대로 쉬지도 못했지만 신들메를 고쳐 신 듯 바짝 힘을 내어 올라간 날을 뿌듯하게 썼다.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올라가는 순간순간을 살리지 못해 아쉽기도 하다.

 

떨린다.

개미를 지나가다가

밝으면

개미가 사망.

 

서민욱, <개미>

 

민욱이는 개미를 밟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을 서둘러 개미 사망으로 마무리해버렸다. ‘떨린다/개미를 지나가다가/밟을까 봐까지만 썼어도 좋은데, 조심하다가 밟아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느린 느린 달팽이 느린

느린 느린 코알라 느린

느린 느린 거북이 느린

느린 느린 나무늘보 느린

느려도 너무 느리다.

같이 달리자고 하면

너무 답답하다.

 

서민욱, <느린>

 

달팽이는 느린 것일까? 코알라, 나무늘보도 느린 것일까? 모두 사람의 속도와 비교하다 보니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민욱이는 그 모두를 느린으로 에워싸며 답답함을 강조했다. 같이 달릴 일도 없겠지만 눈으로 도저히 보아주기 어려운 모습을 그려냈다. 이에 다른 생각을 쓴 시가 나올 수 있으니 충분히 새겨볼 만한 시다. 이런 경우는 모두 사람 기준으로 보기 때문인데 날씨도 마찬가지다.

 

하늘은 변덕쟁이

어떤 날은 화가 나 쨍쨍

어떤 날은 슬퍼 주룩주룩

어떤 날은 기분 좋아 살랑살랑

어떤 날은 울고 기분 좋아

무지개가 뜨네.

하늘은 변덕쟁이.

 

김유나, <변덕쟁이 하늘>

 

유나는 날씨를 자연이 부리는 변덕이라 보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연이 원래 그런 것임을 기분에 따라 변덕을 부리고 심술을 부리고 피해를 주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런 변화에 기분이 바뀌는 것은 사람인데 말이다.

 

별은 예쁘다.

밤에는 별을 보고

밤에는 별을 갖고 싶다.

별을 먹고 싶다.

별은 빨간 색이면 좋겠다.

 

○○○, <>

 

별도 마찬가지다. 별이 예쁜 것은 사람의 마음이 부리는 조화다. 예쁘면 갖고 싶고 먹고 싶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예쁜 꽃을 꺾고 싶은 마음처럼 별도 자기가 좋아하는 색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배울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나 마음이라는 것은 대상에 좀 더 깊이 들어가 알아보는 일이지 않을까.

 

나뭇가지는 많은 일을 하지.

홍수를 막아주는 일.

공기를 좋게 해주는 일.

이것보다 많은 일을 하겠지.

 

나뭇가지는 가끔 춤을 추지.

그 춤은 바람이 조정하지.

친구 나뭇잎도 같이.

 

봄이 되면 나뭇가지를 좋아하지.

다양한 꽃 옷을 입으니.

 

○○○, <나뭇가지>

 

그런 점에서 <나뭇가지>는 마음 부는 대로 잘 표현해주었다. 가까이 있는 나무를 보면서 생각을 정리한 끝에 쓴 것이다. 나무는 우리에게 좋은 공기를 준다는 식으로 시작했지만 좀 더 바라보고 느낀 것이 생겼다.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이 아니라 나무에 오고 가는 계절의 변화를 읽은 것이다. 나뭇가지가 춤을 추는 것이 바람이 하는 일이고 그 나뭇가지에 꽃이 피는 것도 보면서 할 말이 생긴 것이다.

 

숲속은 편안하다.

숲속 냄새만 맡아도 숲속에 내가 있는 것 같다.

나무와 풀은 살랑살랑

시냇물은 졸졸졸

숲속 소리만 들어도 숲속에 내가 있는 것 같다.

 

눈을 감으며 숲속 생각을 해봐.

그럼 어느새 숲속에 도착해 있을 거야.

 

박이윤, <숲속>

 

이윤이는 더 나아가 숲을 느끼고 있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보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숲속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도 숲이 주는 편안함을 언젠가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숲속의 소리와 냄새를 살랑살랑졸졸졸만으로 전달하기에는 아깝다. 앞의 시에서 바람이 나뭇가지와 잎을 춤추게 하듯이 눈을 감고 조금 더 상상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버릴 수 없다.

 

학교 끝나 친구랑 어디에 갈까?

떡볶이? 우리 집? 친구 집? 편의점? 문구점?

 

어디에 갈까? 모르겠어, , 생각났다!

친구랑 맛있는 거 먹으면 산책가는 거야!

 

, 이제야 생각났네. 올래는 까먹었는데

친구야, 나랑 산책갈래?

 

, 그럴까, 좋아, 그래 얼른 가자!

심심한데 비밀 이야기나 할래? 그래

, 있잖아. 속닥속닥 비밀이야. 알겠지?

알았어 나도 할게. 속닥속닥 내 이야기도 비밀이야!

, 알겠어. 그렇게 나와 친구는 그렇게 산책하고

집에 돌아왔다.

 

이서하, <함께 가는 길>

 

다른 이야기지만 서하의 산책길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친구와 맛있는 것을 먹고 산책 가는 길을 그려보면서 시작했는데 음, 좋아, 응 하고 대꾸를 하며 서로의 비밀 이야기까지 나누는 이야기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았지만 충분히 그림이 그려진다. 비밀 이야기에 더 가까워지는 친구와의 산책이야말로 숲속의 기운이 아닐까. 재미나면서도 맛있게 썼다.

 

빨강색

단풍잎

 

주황색

나무에 열린

오렌지

 

노란색

은행잎

 

초록색

소나무

 

파랑색

달개비꽃

 

보라색

제비꽃

 

무지개 식물

 

안다은, <무지개 식물>

 

다은이는 계절마다 피는 꽃을 모아 무지개 식물을 말하고 있다. 그 모두를 기억하고 불러 모으는 마음이 무지개다. 시를 쓰면서 꽃 이름이 생각나지 않은 것은 물어봐 가면서 무지개색에 가깝게 썼다. 무지개를 강조하려다 보니 색깔과 꽃 이름을 단순하게 엮는 것으로 끝나 아쉽지만 무지개만큼 어울리는 시를 쓰려는 마음이니 좋다.

 

고양이는 귀엽다

봐도 귀엽다 또 봐도 귀엽다.

나는 고양이가 좋다.

길고양이는 너무 귀엽다.

길고양이는 다양한 색이 많다.

 

사서연, <고양이>

 

서연이의 다은이가 말한 식물과 마찬가지로 귀엽고 다양한 색을 넘어 좀 더 가까이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귀여운 것을 넘을 만한 표현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길고양이까지 좋아하는 서연이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설날 용돈은 받아도 없다.

설날 용돈은 간수 잘 해도 없다.

설날 용돈은 안 잃어버려도 없다.

발이 달렸나 보니

엄마가 가져갔다.

엄마 너무해.

엄마가 가져간 용돈은 30만 원.

더 가져갈지도 모른다.

 

○○○, <설날 용돈>

 

가족에 대한 시는 두 편이 나왔는데 <설날 용돈><나쁜 아빠> 아이들이 이해하기 힘든 어른 몫이다. 명절에 받은 용돈이 모두 엄마에게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을 표시할 때가 되었다. 통장을 만들어 관리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 많은 돈을 직접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간수를 잘하고 잘 쓰겠다고 약속한다 해도 소용이 없다. 30만 원은 경제관념이 들어차기 전에는 푼돈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해도 아쉬울 뿐이다. 다른 반에서도 읽었듯이 슬슬 협상과 타협이 필요하다. 가족 문제는 더욱 더 그렇다.

 

아빠는 매일 누나 형을 더 좋아한다.

아빠는 누나 형 있는 데서만 더 많이 도와주고

아빠 싫다.

 

박하민, <나쁜 아빠>

 

하민이가 제대로 판단한 것이라면 이런 차별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가족이니 누구에게도 치우침일 없을 것 같지만 해묵은 감정이 고여 있기 마련이다. 엄마, 아빠가 묶여있던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차별은 공공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민이는 아빠가 표를 내지 않은 것 같아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나쁜 아빠라 몰아세울 수는 없다. 대화를 해서 풀어야 한다.

 

모두의 운명은 두 개이고

어떨 때는 여러 개다.

두 개는 썩기 VS 죽음

죽음은 나이사, 즉사, 자살, 살해, 굶어죽음, 더위로 쪄죽기, 추위로 얼어죽기 등이 있고

썩기는 죽음 후에 시체 썩기 등이 있죠.

그렇지만 사람은 번식하니깐 동물은 번식하니까

우리의 생활이 좋고 활기찬 것입니다.

그러니 인생을 즐기세요.

즐겁게 살면 살맛 나니까요.

 

한동엽, <모두의 운명>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음식은 썩고 생명이 있는 건 죽으니깐

인형은 찢어지고,

그것은 운명이기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 즐겁게 살아서 행복하게 가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힘들게 살아서 슬프고 원이 있게 가는 게 나을까요?

당연히 즐겁고 행복하게 가는 게 낫겠죠?

그러니 인생을 즐기세요.

 

한동엽, <영원한 것은 없다>

 

동엽이는 4반의 철학자다. 주관이 뚜렷하다. 벌써 그걸 안단 말이야? 하고 되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나 알지만 인생은 늘 그런 것이 아닌데도? 하고 물어도 그런 게 인생이에요!’하고 웃는다. 책이나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알았다 해도 무거운 문제인데 지구의 모든 생명이 갖고 있는 운명이 언젠가는 썩어서 죽는다는 것을 담담하게 적고 있다. 인형이 찢겨지는 일, 쓰레기를 버리는 일, 길고양이나 쥐가 죽고 난 뒤 썩는 것,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일찍 알았다고 해서 삶의 길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즐겁고 행복하게 가는 길이 어떤 것임을 알고 자신만의 뚜렷한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 조화를 이루며 성장하는 4반이 부럽다. 개성이 다른 아이들마다 가진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우러지게 만든 선생님이 덕분이기도 하다.

 

인라인은

재미있다.

앞으로 슝~

가다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슝~ 나간다.

그러니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걸.

 

이서민, <인라인>

 

서민이는 자기만의 재미로 사는 아이 같다. ‘앞으로 슝~“ 가다가 넘어져도 다시 앞으로 슝~‘ 가면 되지, 그게 동엽이가 말한 즐거움이고 재미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 같다. 마음에 담고만 있지 않고 시로 써서 나눈다는 뜻고 그렇다.

 

젠가는 멋지다.

젠가는 탑이다.

근데 이건 젠가다.

탑에 벽돌 하나를 뺄 때가 왔다.

침을 꿀꺽

젠가에 벽돌 하나를 뺐다.

탑이 무너졌다.

탑이 무너져서 놀랐다.

그런데 왜 내 차례만 되면 무너질까.

 

조성환, <젠가>

 

성환이가 젠가를 하면서 조마조마하는 모습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끝내 완성한 시도 함께 읽는 친구들에게 그렇지, 맞아하는 공감과 즐거움을 주고 있다. 저마다의 일과 이야기를 잘 표현해서 나누는 일.

 

축구를 하면 발로 축구공을 차니까

스트레스가 풀린다.

드리블해서 상대방을 제치면

친구를 놀리는 것 같다.

잘 하는 친구가

드리블해서 제치면

날 놀리는 것 같아

속상해진다.

이제부터 진짜 전쟁이다.

 

이하준, <축구>

 

하준이도 3반의 지후만큼이나 축구를 잘하는 아이다. 역시 축구의 맛은 드리블해서 상대방을 제치는 일이다. 헛다리 짚기나 다른 기술로 자신이 속아 넘어갔을 때 속상한 것처럼 하준이에게는 늘 도전하게 만드는 축구야말로 즐거운 놀이라는 것을 그대로 썼다. 이것도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또 다른 공부가 아닐까 싶다.

 

학교 갈 때 터벅터벅

수업할 때 집중

쉬는 시간이 되면 와글와글 시끌벅적 소리 난다.

밥 먹을 때 우걱우걱

또 쉬는 시간이 되면 운동장에 나가서 놀지

축구하고 있는 형아들

술래잡기하는 어린이들

운동장도 시끌벅끌

놀이터도 하하하

모두 재미있게 놀지

집에 갈 때면

모두 와~ 하고

소리치지.

 

안가온, <학교>

 

가온이가 말한 것이 바로 학교의 모습이다. 학교에서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곳이지, 어때 즐겁지 않아? 하고 말하는 것 같다. 위에서 붕 떠서 바라보듯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모습과 소리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재미를 찾는 것이다. 그러니 하랑이처럼 책상과 의자, 교실의 모든 것들도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한다.

 

책상은 공부할 때 쓰고

책상은 밥 먹을 때 쓰고

책상은 종이를 내려놓을 때 쓰고

책상은 도구를 만들 때 쓰고

책상은 그림을 그릴 때 쓰고

책상은 도움이 되는 게 많다.

 

안하랑, <책상>

 

하루종일 책상과 의자에 붙들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모든 행위가 이루어지는 작은 마당이다. 하랑이는 새삼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자리가 책상이라고 느낀 것이다. 쉬는 시간에 잠깐 자느라 엎드려 꿈을 꾸는 자리도 책상이다. 공부상, 밥상, 그림상이라고 부른다 해도 책상은 책상이니까.

 

조르륵 조르륵

조르르르륵

굴러가서

!

탁탁

탑을 쌓고

다시

주르르륵

 

최준우, <도미노>

 

도미노를 힘들여 쌓고 한순간에 쓰러지는 걸 보는 것도 즐거움이자 재미다. 힘들여 쌓은 것이 한순간에 쓰러져버리는 것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조르륵 조르륵‘ ’조르르륵부딪치며 쓰러지는 소리만으로 재미있다. ’굴러가서라 쓰고 탑을 쌓는다 해서 잠시 헷갈렸지만 다시 세우고 첫 도미노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떠올리며 재미있게 지나간다.

 

짜증 나는 내 친구

자기 일도 안 하고

남 일만 신경 쓴다.

 

너무 싫은 내 친구

내가 다른 친구랑 놀면

그 친구를 뺏어간다.

 

걔랑 살 바엔

내가 죽는 게 낫다.

왜냐하면

죽을 만큼 싫기 때문이다.

 

강다유, <짜증 나는 내 친구>

 

도미노가 지나간 자리에 다유의 친구 이야기가 있다. 친구를 뺏어간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아픔이다. 죽을 만큼 싫은 이유를 더 이상 어떻게 표현할까. ’걔랑 살 바엔/내가 죽은 게 낫다라 표현할 만큼 큰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남의 일에 시시콜콜 간섭하면서 친구까지 뺏어가는 일이라면 공개적으로 울분을 토로해야겠지만 친구라는 자리까지 버리겠다는 것이 아니기에 대화로 풀어야 할 것 같다. 생각보다 큰일이 아니라 오해일 수도 있으니 대화가 있어야 한다. 가족 다음으로 고민이 많은 친구‘,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시다.

 

! 에어컨 켜지는 소리가 났다.

빨리 거실로 뛰어갔다.

더운 게 없어졌다.

하지만 이번엔 춥다.

닭살이 돋았다.

~ 에어컨 꺼지는 소리가 났다.

또 덥다.

앞으로 그냥 버티자.

 

정민준, <에어컨>

 

민준이는 에어컨 꺼진 김에 버텨보자고 굳은 결심을 했다. 집집마다 에어컨 때문에 고민이 많을 것이다. 전기세가 많이 나오는 것을 떠나 에어컨에 적당한 온도라는 게 없어 보인다. 켜면 좋다가 곧 추워서 끄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실천하기 어려운 일을 민준이는 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말하지 않아도 혼자 실천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부터 해야 함을 또 다른 철학자 민준이는 말하고 있다.

 

이렇게 교실에서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쓰고 고치고 다듬어 완성한 시를 나눠 읽는 과정이야말로 삶이 예술이 되는 길을 배우는 것이다. 조금 일찍 와서 교문에 들어서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학교는 아이들로 하여금 선생님과 함께 배우는 곳임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선생님의 자리가 크고 위대하다는 것도. 예쁜 만큼 빨리 사라지는 것이 무지개이듯 아이들을 보듬어 이야기를 들어주고 살피는 시간이 계속 이어졌으면 바라면서 3학년 시를 마무리한다.

 

 

 

 

* 이 글은 2023년 5월 9일부터 19일까지 청주 진흥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과 한 시 쓰기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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