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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줄기 빛으로 빠져나간다-청주 진흥초 4학년 학생 시를 중심으로

시와 함께한 나날

by 참도깨비 2023. 7. 2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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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줄기 빛으로 빠져나간다-청주 진흥초등학교 4학년 시를 중심으로

 

3학년 반을 지나 4학년 반을 차례대로 드나들며 느낀 것은 확실히 4학년에 더 세 보인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남의 일이 간섭하면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 같다. 불만도 많다.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등교하여 1반부터 5반까지 드나들며 함께 이야기하고 썼던 시들을 소개한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일어나지 않았다.

침대가 밑에서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침대에 붙잡혀 있을 때

엄마가 와서 잔소리를 했다.

엄마가 잔소리를 하니

침대가 나를 점점 놔주었다.

 

○○○(4-1), <침대>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써서 그런지 침대자국이 느껴지는 시다. 존 버닝햄의 그림책 지각대장 존을 보는 것 같다. 날마다 지각하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대는 존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침대가 붙잡고, 문이 붙잡고, 길이 붙잡는 느낌이다. 능청스럽게 돌려 말해보는 것이다. 그래보았자 엄마의 잔소리가 이어지면 침대가 나를 놔준다는 재미있는 생각이 돋보인다. 역시 엄마의 잔소리는 힘이 세다.

 

선생님은 여자들한테 고통받는다.

선생님이 우울해 보이신다.

 

여자들은 이해가 안 된다.

왜 선생님을 괴롭힐까?

그래서 선생님을 괴롭히는

여자들을 못난이 3형제라 지었다.

 

박대휘(4-1), <못난이 3형제>

 

이 시는 선생님을 좋아해 선생님 둘레를 호위하듯 움직이는 여학생 셋을 두고 쓴 것이다. 남자 선생님을 좋아하는 정도가 심하긴 했다.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도 선생님 바라기로 있을 정도니 대휘가 질투?할 만했다. 선생님을 좋아하는 정도가 지나치다 생각하니 괴롭힌다고까지 말한 것이다. 시를 쓰면서도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의견이 부딪힐 정도다. 선생님이야 지금은 저렇게 좋아해도 사춘기 들어서면 아는 척도 안 할 거면서 하고 넘어가시지만 아이들에게는 최대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못난이 3형제로 지목된 여학생들로서는 억울할 만하다. 선생님을 짖궂은 남학생들로부터 보호해준다고 여기니 평형선을 달리는 문제다.

 

우리 반은 3월부터 강낭콩을 심었다.

물을 많이 주고 햇빛도 많이 쐬어 주었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났다.

잎이 크고 줄기도 긴 강낭콩이 있었다.

 

... 강낭콩은 우리의 노력을 먹고

예쁘게 자란 것 같다.

 

황태림(4-1), <강낭콩>

 

그러거나 말거나 한쪽에서는 강낭콩을 키우는 태림이가 조용히 시를 썼다. 어느새 잎이 크고 줄기도 긴 강낭콩이 달린 걸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창가에 두고 물 당번을 따로 두어 정성스럽게 키워낸 것이니 예쁠 수밖에 없다.

 

5월에 새로운 짝꿍이 생겼다.

그 짝꿍 이름은 박대휘다.

박대휘랑 같이 있으니까 너무 좋다.

 

김태환(4-1), <새로운 짝꿍>

 

그리고 태환이나 짝꿍 자랑에 열심이다. 대휘가 5월에 새로운 짝꿍이 되어서 좋다는데 남학생이라 그런지 한 줄만 쓰고 말았기에 조금 더 자랑을 해보라고 해서 더 쓴 것인데, 이름을 공개한 것 말고는 새로울 게 없지만 조금이라도 표현해주어 좋다.

 

너를 보면 웃음이 난다.

너도 나를 보고 미소짓네.

나는 네가 날 배려해줘서 좋아.

 

화가 났네!

나를 보고 씩씩댄다.

하지만 난 금세 잊었네.

 

난 그게 옳다고 생각해.

그 과정이 우정을 더

단단하게 해주니.

 

정다솜(4-1), <친구>

 

조금 더 나아가 다솜이는 우정론을 펼치고 있다. 친구 관계에서 배려가 가장 빛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금세 화를 내며 소원해지는 과정이야말로 우정을 단단하게 하는 일임을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교실 안에서 의견일 엇갈려 부딪칠 때 보면 번개가 치듯 급박한 일이 터질 것 같다가도 이내 화해하며 돌아서는 것을 시 쓰는 동안에도 볼 수 있기 때문에 다솜이의 시가 여유롭게 읽힌다. 또 어떤 이유에서 반복되는 것일까.

 

실수로 친구에게 화를 냈다.

친구는 울며 선생님께 일렀다.

내 얼굴이 복숭아처럼 빨개졌다.

 

지금 4학년이 된 이후로도

생각이 떠나가지 않는다.

 

나는 생각한다.

지금 내 책상 위에 있는

지우개가 나의

기억을 지워줬으면.

 

정예린(4-1), <지우개>

 

예린이는 지우개로 지워내고 싶은 과거의 실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실수로 화를 냈다는 건 오해가 있었거나 조금만 참고 대화로 풀 수 있었던 일에 화를 냈던 때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3학년 때의 일이기도 해서 잊을 만도 하지만 지우개가 다시 떠올리게 해준 것이다. 4학년이 되어서도 그 친구를 만나면 미안한 일이어서 지우개가 기억을 지워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뒤늦은 후회는 다시 되돌릴 수 없지만 사과는 유효하다. 빠른 사과가 중요하지만 나중에라도 그때를 떠올리며 사과하면 친구 사이는 더 돈독해질 것이다.

 

오늘은 물고기 가족이

놀러 가는 날

길 못 잃게 모두 손을 잡아요.

 

물고기 공원에 가서

모두 냠냠 맛있게

도시락을 먹어요.

 

오늘도 재밌는 물고기 가족.

 

박채영(4-1), <물고기 가족>

 

가족에 대한 시는 채영이가 쓴 시 한 편인데 물고기를 빗대어 써서 1반은 말을 아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고기 가족으로 말한 누군가의 가족이 공원에 가서 도시락을 맛있게 먹으며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다는 단순한 내용이지만 채영이 가족의 한때이거나 다시 누리고 싶은 일이지 않을까 미루어 생각해보기도 한다.

 

날이 따뜻해지면

새싹이 하나 둘

돋아난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참 신기하다.

 

박지우(4-1), <새싹>

 

비 오는 날에는

축축하고

할 일도 없어 심심하다.

가끔 갑자기 비가 오면

우산이 없어 당황하기도 한다.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뜬다.

 

이유찬(4-1), <비 오는 날>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던 날은 누구에게나 뜻깊은 날이다. 추운 날이 지나고 얼어붙은 땅에서 새싹이 돋기 때문에 봄은 다른 계절과 달리 시에 많이 나온다. 그런데 대부분 비슷한 시가 나올 때가 많다. 새싹이 돋아나는 순간을 직접 보고 느꼈다기보다는 어느새 와있는 봄을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지우는 신기하다는 말로 마무리하고 있지만 봄은 모두에게 봐달라는 듯 훨씬 요란?하게 오는 것이니 당연히 나아가 보고 느끼며 맞아야 제대로 된 봄 시가 나올 수 있다.

뒤이어 유찬이가 쓴 <비 오는 날>도 축축하고 심심한 날까지 표현했다가 우산이 없는 데다가 무지개까지 본 특별한 날인데도 그냥 지나친 느낌이다. 무지개가 뜨기 앞서 우산이 없어 어떻게 했는지 써주었더라면 축축하고 심심한 것이 한꺼번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오늘도 피아노학원을 간다.

피아노학원 문을 열자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나도 잘 쳐보려고 하지만

내 마음대로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선생님은 자꾸 안되는 곡만 연습하라고 하신다.

나도 잘 치고 싶은데.

 

안서연(4-1), <피아노>

 

서연이는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서 피아노를 친다. 피아노는 악기지만 학원에서 잘 쳐보려고 하지만’ ‘마음대로 손이 움직이지 않고 자꾸 안되는 곡만 연습하다 보면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로 바뀌지 않는다. 문을 열고 학원에 들어갈 때는 다들 잘 치는 소리만 들려 아름답다 했지만 자신이 치려고 하면 꾸중을 듣거나 반복된 구간만 치게 되어 3학년 반에서 나왔듯 흰 건반과 검은 건반만 봐도 괴로울 수밖에 없다. 서연이는 잘 안되는 피아노 연주에 자꾸만 손가락이 굳는다. 잘 이겨내고 연습을 거듭해서 아름다운 곡 해석을 곁들인 시가 나올 수 있도록 응원해 본다.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를 다룬 시에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긴 시가 나오길 기다려본다.

 

태권도 시범단을

재미있으면서 힘들기도 하다.

매달마다 시범공연이

1~2개씩 잡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매년마다 열리는

66일 대회 시범!!

우리 시범단은

이 대회가 너무 싫다.

이 대회에 시범을 보이려면

격파, 천부경, 태권체조, 품세 등등

하지만 이 대회가 끝나면

워터파크를 가기 때문에

힘이 솟아난다.

 

김서하(4-1), <태권도 시범단>

 

서하는 학원을 넘어 태권도 시범단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서 그런지 어깨가 무겁다. 달마다 시범 공연이 잡혀 있으니 재미보다는 힘들 것이다. 남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다. 격파에서 품세까지 잊지 않고 몸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일이니 쉬운 일이 아니다. 끊이지 않고 이어져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동작들을 설명하면서 진짜 어려움을 표현했어야 하는데 재미있고 힘들고, 싫다는 투로 에둘러 말하고 말았다. 워터파크는 고된 훈련과 시범 뒤에 오는 보상이어서 좋지만 시범단으로서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것이 우선이다.

 

기차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한 곳 있다.

바로 스위스이다.

 

이상윤(4-1), <기차>

 

그런 점에서 상윤이도 기차 여행 이야기를 썼으면서 가고 싶은 종착지만 있다. 서하가 워터파크로 서둘러 보상받는 것처럼 스위스에 가고 싶은 바람만 담았다. 기차는 어디로든 안전하게 이어서 갈 수 있는 여행 수단이자 즐겁고 설레는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교통 수단이니 다음에는 기차 여행에 대한 시가 제대로 나오길 기대해 본다.

 

블랙홀은

내 마음처럼

어둡다.

그래서

울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다

어둡고

어두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면

나는 한 줄기 빛으로

빠져나간다.

그 빛의 이름은,

무지개다.

 

현승준(4-1), <블랙홀>

 

그런 점에서 승준이의 블랙홀은 재미있는 시다. 비록 상상 속의 여행이지만 한 줄기 빛으로 빠져나가는 마음을 느껴본다는 차원에서 훌륭한 여행 시라고 할 수 있다. 승준이는 수업 시간에 그림만 그리는 아이라고 한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블랙홀에 빨려드는 자신을 굵고 세밀한 선으로 그리기까지 했다. 보기시로 읽어준 <무지개>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빛을 만들어냈고 그 빛을 타고 그림속이나마 여행을 다녀왔다. 이 시를 눈여겨볼 만한 시로 뽑으니 승준이를 잘 아는 선생님도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수업 진도에 맞춰 따라오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으니 그림까지 곁들인 이 시가 낯설 것이다. 그러나 시는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에서 느끼고 상상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다시 돌아온(돌아오지 못하면 판타지가 아니라 했듯이) 승준이에게 박수를 쳐주어야 마땅하다.

 

친척 형이랑 나는 같은 팀

내 동생이란 친척 동생이 팀이었다.

장례식장 뒤에서 축구를 했다.

나는 3, 친척 형은 1

동생은 1, 친척 동생은 0골이었다.

아침으로 라면을 먹으니

힘이 났다.

 

서채원(4-1), <재미있는 축구 게임>

 

채원이에게 블랙홀은 축구지 않을까. 장례식장 뒤에서 축구를 했다고 해서 더 특별한 시가 나올 줄 알았지만 친척들과 팀을 나누어 홀로 빛나는 경기로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그곳에서 축구를 한 것은 가족이나 친척 중 한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이라는 낯선 자리에서 축구를 하게 된 것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보았지만 아침으로 라면을 먹으면서 힘을 얻은 뿌듯함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난 오늘도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한다.

버스가 덜덜~~

잠을 자는 나를 깨운다.

잠 좀 자라ㅜㅜ

속으로 생각한다.

갑자기 멈춘 버스 때문에 머리를 쿵!

빨리 집에 가고 싶다.

나도 그냥 차를 살까?

 

○○○(4-1), <버스>

 

이 시는 자신이 직장에 다니는 어른이 되었을 때를 떠올려보면서 쓴 거란다. 버스로 퇴근하다가 겪는 불편 때문에 차를 사고 싶은 평범한 직장인(아빠의 모습일까?)을 그려 본 것이다. 중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버스를 제대로 겪어보겠지만 너무 멀리 나간 것 같다.

 

나는 모기가 너무 싫다.

오늘도 모기한테 또 당했다.

저번에도 56방이나 물렸는데,

또 당했다.

 

정나윤(4-1), <모기>

 

나윤이가 56방 물린 모기는 지금도 시에 자주 등장하는 좋은 소재다. 모두가 싫어하지만 사람 세상에 끝까지 살아남아 괴롭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준비를 하고 약을 뿌려도 방심한 순간을 노리기 때문에 끝없이 조심해야 한다. 다음에는 또 어떻게 물렸는지. 모기 한 마리를 두고 씨름한 여름밤 이야기가 나오길 바란다.

 

4학년 2반에서는 짝꿍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하루종일 함께하는 친구이니 서로에 대해 할 말이 많은가 보다.

 

내 짝꿍은 먹는 것만 찾는다.

자기는 소식좌라면서 밥을 8그릇 먹는다.

이상하다. 대식좌인 것 같다.

계속 배고프다고 한다.

근데 29킬로이다.

밥을 8그릇이나 먹는데

어떻게 살이 안 찔까?

진정우는 신기하고 신기하다.

 

○○○(4-2), <짝꿍 진정우>

 

어찌 보면 정우란 친구에 대해서 디스한 것인데 정우는 대식좌이면서도 살아 안 찌는 체질이라 묘하게 빠져나갔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플 나이가 되었지만 그렇게 먹는 데도 29킬로나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적게 먹으면서 살을 유지하는 다이어트에 민감해지는 때라서 8그릇(과장된 듯) 먹고도 29킬로그램을 유지하는 것이 신기한 것이다. 이렇게 서로의 현안은 다른 것이 당연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짝꿍이란 이름으로 나오면 좋겠다.

 

내 옆에 짝꿍은

모범생이다. 수학을 알려줄 땐

15초만에 알려준다.

153÷610초면 푼다.

나도 잘 풀고 싶다.

 

조성헌(4-2), <짝꿍>

 

성헌이의 짝꿍은 수학을 잘하는 모범생이다. 빠른 시간에 답을 알려주는 친구 앞에서 놀란다. 혼자 잘하는 공부를 친구와 나눌 줄 아는 짝꿍이니 저절로 자신도 잘 풀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는 것이어서 짝꿍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다. 어느 학교의 1학년 시 <강해용> ‘엄청 빠르다/내 친구다를 보는 느낌이다. 알려줄 것만 딱 집어서 보여주어서 좋다.

 

내 짝꿍은 인간 샌드백을 찾는다.

우리 반 애들을 협박한다.

애는 꿈이 레슬링 선수인 것 같다.

맨날 애는 자신이 예쁘다 생각한다.

안 예쁜데

맨날 안 예쁘다고 하면 강제로 때린다.

조폭이다.

 

○○(4-2), <내 짝꿍 김○○>

 

물은 차갑고 불은 뜨겁다.

불은 각성한 김○○빈이

날 때릴 때처럼 뜨겁고

물은 각성을 못한 김○○

싸대기를 때릴 때처럼 차갑다.

 

○○(4-2), <물과 불>

 

처음 시와 나중에 고친 시를 함께 두었다. 처음 시에서 밝힌 짝꿍은 그야말로 험상궂다. 시를 쓴 친구의 몸집도 작아서 날마다 맞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써서 그 짝꿍의 말을 들어보기도 전에 끝내버린 느낌이다. 속 마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예쁜 척하면서 사납기까지 해서 폭력적이라고 해버린 것이다. 이제 말만 해도 주먹이 나올 만큼 늘 경계 태세로 서로를 바라본다.

그런데 다음 시간에 <물과 불>이란 제목으로 바꿔 빨간 뭉텅이와 파란 뭉텅이의 싸움을 그린 그림까지 곁들여서 다시 썼다. 여기에서 각성은 깨달았다고 할 때의 그 말이 아니라 제대로 열 받거나 화가 났을 때의 물과 불 같은 차가움과 뜨거움 그 자체다. 필자도 오래전에 물과 불의 싸움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는데 서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란 내용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는 짝꿍에 대한 감정이 물과 불처럼 미묘하다. 강렬한 만큼 뭔가 사로잡혀 있는 듯한 애증? 근처의 감정 같기만 하다. 어른들에게도 읽어주었더니 시를 아는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물과 불의 각성 상태를 보여주는 상징성이 뛰어나다고도 했다. 고치고 다음으면서 전혀 다르고도 새로운 시가 된 과정을 보고 나니 아이가 커서도 자기만의 개성 있는 시를 쓸 것 같아 흐뭇했다.

 

(나는)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

다양하다고 치자.

, 상관없지만

남자애들은 축구가 뭐 그리 좋다니 뭐니

그러던데

남자들의 생각은 50%로 사실이고

50%로는 의견이다.

참 이상한 녀석들이다.

여자애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리고 여자애들은 화장실을 좋아한다.

왜 좋아할까? ! 알겠다!

남자애들 출입금지! 이상한 녀석들을 싫어하나 보다.

특히 짜파구리! 그 이상한 녀석들 중에

한 명이다. 여자애들이 화장실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았다.

마지막! 아 시의 줄거리는 이상한 우리 반!

 

김태희(4-2), <우리 반>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조화가 필요하다. 앞서 1반에서 보았던 <못난이 3형제> 중의 하나일 것 같은 태희는 여학생들을 대표하듯 말을 했다. <이상한 우리 반>이라고 하면 영락없이 남자아이들만이 이상한 것으로 비쳐지겠지만, 아무튼 이상한 녀석들과 한 반에서 지낸다는 이상한 기분을 드러내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고 땀 냄새를 풍기는 남자 아이들은 여자들을 제외하고 이상하다고 본다. 어디까지나 50%는 사실이고 나머지는 의견일 뿐이라고 하면서 심증을 굳히려 한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비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화장실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다양하다고 치자고 하면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대답은 상관없다는 걸 깔고 말하고 있어서 재미있다. 1반의 대휘 시에 나오는 말로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논리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상한 친구들이 어울려 지내는 교실에서 더 이상 남자와 여자로 구분 짓지 않고 문제를 풀어가는 대안 시가 나왔으면 좋겠다.

 

남들은 모르고 나만

가슴에 품고 있구나.

 

가슴은

창에

칼에

계속 찔리는구나.

 

양심은 부르짖는다.

그때야 정신을 차리고

미안해하면

가슴은 편히 쉬고

양심은

박수를 친다.

 

이현진(4-2), <거짓말>

 

막바지로 나온 현진이의 시는 <거짓말>이지만 양심을 부르짖고 있다. 양심은 거짓말에 끌리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미안해할 때는 사과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까. 남들은 모르고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 양심이니 계속 창과 칼에 찔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는 현진이의 말이 의젓해 보인다. 충분히 오해하고 엇갈리는 이상함 속에서 양심이 박수 소리를 내는 지점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샘물 같은 양심으로 바라보면서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다.

 

오늘은 킹피스를 했다.

오늘은 견각과 상다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견각 보스가 너무 강하다.

망했다. 아 아 아

하지만 내가 꼼수를 발견했다.

잡는 게 쉬워졌다.

상다 각성도 했다.

간지났다.

하지만 이거 두 개 하고 나면 12500만 원이 필요했다.

내 돈...

 

정유재(4-2), <킹피스>

 

킹피스는 게임이라는 걸 한참만에 알았다. ‘견각상다각’ ‘상다 각성간지나다는 것 또한 게임에 열중일 때 나오는 말이었다. 온라인 게임으로 주고 받는 옆방에서 가끔 듣던 말인 것을. 게임 이야기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해주니 좋다. 게임도 또 다른 세상이니 그곳에서 겪는 이야기도 열어놓고 해야 한다.

 

이모, 7시까지 들어가면 안 돼?”

오늘도 사정사정 부탁한다.

아차피 부탁해도

돌아오는 답은?

안 돼!”

오늘도 똑같은 단호박.

이모, 아 제발!”

결국 이모는 머리가 머리가!

! ! ! !

, 네 맘대로 해!!”

결국 내 맘대로 하면?

,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박서빈(4-2), <이모의 잔소리>

 

2반에서는 가족 이야기는 없고 이모 이야기가 한 편 있다. 가족 구성원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모에게 외출 동안 무언가 계속하고 싶은 것을 요구하는 서빈이의 말이 안쓰럽다. 결국 화산이 폭발하듯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알면서도 요구하고 있는 마음은 어떨까? 내 마음대로 하면 어찌 된다는 것일까? 이모의 잔소리에 숨은 과거가 궁금하지만 모른 척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사정사정 부탁하는 데에도 협상력이 필요하다. 그럴 나이가 되었고 과거로 돌아가는 대신 현명한 대화로 해결책을 만들기 바랄 뿐이다.

 

여름이 되면 수박이 먹고 싶다.

수박을 삼각형으로 잘라서

한입에 와다닥 씨는

! ! !

잘못 씹으면 으아 딱딱해!

이빨이 나갈 것 같다.

 

한성빈(4-2), <수박>

2반 마지막 시는 성빈이의 수박이다. 수박은 여름 과일을 대표하는 만큼 약간은 과장된 듯 씨를 뱉으면서 재미있게 쓰려고 했다. 쉽지 않지만 다시 써보았으면 좋겠다. <태양왕 수바씨>란 그림책도 있고, <수박 수영장>도 있으니 수박씨 멀리 뱉기나 자기 얼굴 가운데로 떨어지도록 놀아보는 것도 좋겠다. 수박은 맛있어야 하니까.

 

4학년 3반에서는 학교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많이 나왔다. 4학년 깊숙이 더 들어간 느낌이었다. 윤서의 시부터 보자.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하루는 좋고

하루는 안 좋다.

왜냐하면 하율이가 계속...

다른 친구에게는

아주 차분하게 대하면서

나한테는... ...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가끔씩 기분이 너무 안 좋다.

다른 친구가 말하면 리액션이 좋은데

나한테는 (, 그러네,, ! ××!~)

그래서 너무 슬프다.

이제는 학교 가기가 힘들긴 하다.

그냥 빨리 전학 가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다.

 

고윤서(4-3), <학교 생활>

 

두 편의 시는 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지기 앞서 친구 관계를 되짚어보자는 뜻에서 이름을 밝혀두었다. 먼저 윤서는 친구 이름을 대면서 하루하루 기분이 달라지다 못해 전학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리액션의 차이다. 다른 친구에게 대하는 모습과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다르게 느끼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날그날의 기분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느낌이 거듭될수록 심증을 굳혀 선을 긋게 된 것 같다. 그러니 이 시를 써서 읽어주면서 오해를 풀거나 잘못이 있다면 사과하고 관계를 다시 되돌려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윤서 또한 리액션(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진심을 담은 표정과 말 모두)에 최선이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어디까지나 시를 쓴 이유는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오해를 풀고 진심으로 대화를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학교를 아침마다

기분 안 좋게 다닌다.

난 친구들 4명이서 간다.

선생님께서 계속 4명이서 다니지 말랬다.

그럼 싸운다고.

그래서 선생님 말을 듣고 싶은데

듣지 못한다.

혼자 가고 싶을 때도 있는데...

애들이 ?”라고 말한다.

그것도 화난 말투로.

난 참는다!

그런데 이제 참을 수 없다.

애들이랑 가끔 싸울 때가 있는데

다 내 잘못이 된다.

난 그 일이 다 스트레스다.

진짜로 어떡할까?

 

최하율(4-3), <학교 생활>

 

위의 시에서 지목을 당한 하율이도 할 말이 많다. 4명이 모여 다니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그런지 선생님까지 몰려다니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정작 하율이로서는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율이도 혼자 다니고 싶을 때가 있는데, 다른 친구들은 화난 말투로 왜 그러느냐고, 우정에 금이 간 것 아니냐고 하율이 잘못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왜 그래야만 할까? 의리를 지키기 위해 항상 같이 있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인가? 이런 고민이 시로 나왔으니 윤서도 하율이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본 것이 다름없을 것이다. 말못할 사정이 있었구나 싶으면 윤서도 자기에게만 좋게 비쳤으면 하고 바랐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야 마땅하다. 시로 쓰지 않았다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보이지 못한 채, 말로 풀어볼 기회도 없이 지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학교 생활이 그만큼 어렵다.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배우는 시간도 공부의 연장 아닐까.

 

우리 집은 엄마 손바닥

안이다. 엄마는 집에

꽁꽁 숨어 있는 물건을

다 찾아낸다. 우리 집은

엄마 손바닥 안이다.

 

신이준(4-3), <우리 집은 엄마 손바닥 안>

 

가족이 나오는 시 가운데 재미있는 시는 이준이의 엄마 손바닥 시다. 손오공이 아무리 뛰어보았자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족의 모든 것은 엄마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말 같다. 엄마는 어디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다 안다. 때로는 아빠부터 막내까지 양말을 찾고 자기 물건까지 찾아달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꽁꽁 숨어 있는 물건자리를 알려주는 엄마는 슈퍼우먼인 것이다. 그런 이야기까지 담고 있는 듯한 시다. 때로는 마녀가 되었다가 외계인이 되기도 하는 엄마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다른 가족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집에 있었다.

할머니가 오셨다.

할머니가 용돈을 주시고 가셨다.

10,000원을 받았다.

형은 오만 원을 받았다.

난 만 원에 만족했다.

친구랑 놀러 갔다.

그런데 형이 내 돈을 뺏어갔다.

정말 화....

 

김대환(4-3), <용돈 뺏긴 날>

 

대환이 형은 치사하게 할머니가 주신 용돈을 뺏어간다. 오만 원과 만 원 차이도 억울한데 그것마저 뺏어가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대환이에게 물어보니 말이 안 통한단다. 나중에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해도 그렇게 될지 의문이다. 일방적인 폭력이 맞다면 대환이도 당당하게 맞서서 말해야 한다.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하기 어렵다면 이 시를 냉장고에 붙여서 가족회의라도 해야 한다. 엄마 아빠는 공정한 판단을 내려주어야 마땅하다.

 

부엌에서 대포를 쏜다.

대포를 쏘는 소리에

부엌에 가 보니

엄마가 팝콘을 하고 있었다.

팝콘을 먹는 기분이 좋았다.

 

이강민(4-3), <팝콘이 팡팡>

 

강민이는 엄마가 튀겨주는 팝콘을 크게 그리고 평화스럽게 마무리했다. 새로울 것은 없지만 가족에 대한 시 사이에 있으니 베개밤처럼 편안하고 납작해 보인다.

 

우리 집에 외계인이 들어왔다.

외계인의 정체는 엄마다.

우리 집에 거인이 들어왔다.

거인의 정체는 아빠다.

우리 집에 초싸이언이 들어왔다.

초싸이언의 정체는 누나다.

우리 집에 난쟁이가 들어왔다.

난쟁이의 정체는 형이다.

그럼?

난 누구지?

형이 말했다.

너는 ×친 놈이라고 했다.

 

전찬웅(4-3), <가족>

 

찬웅이가 처음 썼던 시다. 가족 모두가 외계인이자 다양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엄마는 외계인, 아빠는 거인, 누나는 초싸이언, 형은 난쟁이다. 진짜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일까? 각자 개성이 넘쳐서 그런 것일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엄마는 외계어로 말하는 존재이고, 아빠는 거인처럼 키가 크고 출퇴근만 반복하는 존재, 그리고 누나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에너지파의 초싸이언, 키가 작은 형은 찬웅이가 만만하게 보는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런 난? 하고 물어보니 형이 명쾌하게 해답을 준다. 형이 제대로 본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복수일까? 이런 가족이 요즘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하다. 다음 시간에 다시 쓴 시를 보면 좀 더 과장되게 리액션을 해가며 가족을 저격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괴물이다. 초싸이언 누나는 정체 모를 괴물이다. 그렇다면 형으로부터 미친 놈 소리를 들었던 나는 누구로 변했을까 봤더니 외계정난인지 외계장난인지 알 수 없다. 엄마가 외계인이니 외계장난이 아니냐고 반응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집은 UAT 집이다.

괴물이 계속 놀러 온다.

첫 번째로 놀러 온 괴물은

외계인이다.

외계인의 정체는 엄마다.

두 번째로 놀러 온 괴물은

거인이다.

거인의 정체는 아빠다.

세 번째로 놀러 온 괴물은

으잉?!?!

정체 모를 괴물이다.

!

이제 알겠다!

괴물의 정체는 누나다.

네 번째로 놀러 온 괴물은

?

난쟁이다.

난쟁이의 정체는 형이다.

?

누구?

나는 외계정난인가?

 

전찬웅(4-3), <UAT 가족>

 

UAT 가족이라 하면 무슨 합성어일까? 외계인 연합? 따로 또 같이 사느라 벌어진 틈을 대변하는 이야기일까? 얼마 전에 개봉했던 영화 외계+D4D로 본 것일까? 각자의 캐릭터를 확인한 가족이 본다면 어떨까 궁금하다. 왜 그렇게 비쳤을까, 각자의 배역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계기가 되면 좋을 것 같다.

 

난 보고 싶다 난 너무 보고 싶다.

바로 바보상자가

그것은 너무 재미있다.

멈출 수가 없을 것 같다.

왜냐면 거기에 나오는 게 너무

재미있다. 그 장면 생각이 많이 난다.

집에 와서도 계속 보게 돼서

엄마에게 혼나기도 한다.

그러니 숙제를 다 하고 보자.

 

송인찬(4-3), <바보상자>

 

텔레비전을 자주 보는 인찬이에게 엄마가 바보상자라고 말한 것 같다. 엄마한테 혼날 때 들을 만한 단어다. 어른들도 많이 듣던 말일 것이다. 휴대폰을 포기할 수 없듯이 텔레비전의 예능과 애니메이션, 드라마를 포기할 수 없는 건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뻔한 내용에 똑같은 결말을 보여주는 드라마를 정주행한다는 말도 바보상자를 끼고 산다는 뜻이니 인찬이의 바람을 뭐라 하기 어렵다. 재미있는 콘텐츠(유무선 형태로 주어지는 정보들)들이 많아서 텔레비전을 포기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을 대신할 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가 쉽지 않다.

 

학교가 끝나면 꼭 나무를

본다. 봄이 되니까

나무가 더 예뻐지는 것 같다.

봄이 되면 따뜻해지는 것 같다.

봄이 따뜻해서 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최지현(4-3), <>

 

지현이에게 볼거리를 주는 봄과 선우가 내다보는 거리는 어떨까? 텔레비전 대신 선택한 자기만의 콘텐츠가 아닐까? 학교 끝나면 꼭 나무를 본다는 지현이처럼 하기가 쉬운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나무를 보면 봄이 온 줄 알고 변화를 읽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껴볼 겨를도 없이 바보상자에 빠져들고 학원과 공부에 우선권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도로에서 보이는 건물, 야경, 학교, 문구점 등

도로에서 다양하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

부우웅 빵빵 드르륵, 차들과 공사하는 소리가

들린다. 뻥 축구공을 차는 소리도 들리고

스르륵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날리는 게

보인다. 다양하게 소리도 들리고

보고 듣고 정말 재미있다.

 

정선우(4-3), <도로에서 어디까지 보일까?>

 

선우는 교실에서 볼 수 있는 곳까지 한껏 늘여서 보고 있다. 학교 운동장, 교문, 교문 앞 도로에서 공사하는 소리와 온갖 건설도구와 사람들만 보는 것이 아니다. 가로수와 천변의 나무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까지 보고 느끼고 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과 글을 낳는 법이다.

 

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예뻤다.

사진을 찍었다. 1, 2, 3 찰칵

그런데 구름이 따봉을 날렸다.

다시 사진을 찍었다.

1, 2, 3 찰칵

이제 사진이 예뻐졌다.

 

정수연(4-3), <하늘>

 

수연이도 동참했다. 하늘의 구름이 예뻐서 사진을 찍자, 구름이 따봉을 날렸다며 웃는다. 단순하게 어떤 구름 모양이었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인상에 남는다. 1, 2, 3를 세면서 사진으로 나올 모습을 다시 보는 것까지 여유가 넘친다. 사진에 담는 것도 좋지만 오래오래 관찰하는 모임을 만들어 다시 그려보는 것도 권해 본다. 여기에 한 발 나아가 자연이 주는 다른 뜻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어떤 여우의 이름은 빨간잎이다.

여름까지만 해도 자신이 푸른잎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가을이 되어서야 자신이 왜 빨간잎인지 알았다고 한다.

 

곽제이(4-3), <빨간잎>

 

곽제이는 아주 짧은 동화를 말하듯이 썼다. 여름까지만 해도 푸른잎 여우였는데 가을이 되어서야 빨간잎 여우로 바뀐 자연스러움에 대해 썼다. ‘빨간잎 여우란 제목으로 좀 더 이야기를 덧붙여 써보면 좋을 것 같다. 김미혜 작가의 그림책 빨간 조끼 여우의 장신구 가게(사계절)처럼 숲속에서 발견한 이야기로 만들면 작가로서의 소질을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자신만 모르고 있었던 일처럼 가을이 되어서야 느끼는 계절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겨울이 시작이 되었을 때

나무에 잎이 하나 있다.

그 나무 밑에는

풀이 나 있다.

나뭇잎이 떨어졌을 때

눈이 내려와

풀을 덮어준다.

 

곽제이(4-3), <겨울의 인사>

 

그리고 또 한 편의 명작, <겨울 눈>. 한껏 멋을 부려 <겨울의 인사>라고 했다. 모든 잎이 떨어진 겨울 무렵 나무 아래에는 아직 풀이 푸르고 마지막 잎이 떨어지면 위로하듯 겨울 눈이 내려와 풀을 덮어주는 장면이 움직이는 그림 동화 같다. 제이는 어디에서 이런 감성을 배웠을까? 그림책과 동화를 많이 읽은 탓일까? 책과 현실을 넘나드는 감성이 돋보이는 것 같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는 아이를 보면 이런 시가 떠오른다.

 

눈이 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에

서투른 창이라도 겨눌 것인가

아니면 어린 나무를 감싸 안고

내가 눈을 맞을 것인가

 

저녁 정원을

막대를 들고 다닌다

도우려고,

그저

막대로 두드려주거나

가지 끝을 당겨준다.

사과나무가 휘어졌다가 돌아와 설 때는

온몸에 눈을 맞는다

 

얼마나 당당한가 어린 나무들은

바람 아니면

어디에도 굽힌 적이 없다

바람과의 어울림도

짜릿한 놀이일 뿐이다

열매를 맺어 본 나무들은

한 아름 눈을 안고 있다

안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올라브 하우게,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멀고 먼 눈의 나라, 노르웨이의 울라브 하우게 시인의 마음이 제이의 마음과 맞닿아 있지 않은가. 겨울나무 아래 돋은 풀 위에 겨울 눈이 내려 살포시 덮어준다고 말하는 제이의 시가 막대 하나 들고 나무의 눈을 털어주는 마음이다. 덮는다고 해서 무거운 것도 아닌, 안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덮고 있는 겨울의 인사가 돋보인다.

 

하늘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상쾌해진다.

하늘을 다시 보면 마음이 편해질 때도 있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

나도 하늘을 날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도윤(4-3), <하늘>

 

초록잎에 누워 하늘을 쳐다본다.

, 이상하다. 구름 모양이 특이하다.

구름을 만져보고 싶어졌다.

구름이 몽실몽실하니

누워보고 싶었다.

 

김채율(4-3), <구름>

 

흔히 하늘 올려다볼 시간조차 없이 바쁘다고 한다. 잠자코 서거나 앉아서 바라볼 시간이 없다 보니 도윤이 마음이 상쾌해지고 편해진다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하늘 이야기가 나왔으니 언제가 느꼈던 것 썼을까, 아니면 날마다 하는 일일까.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정말 하늘을 올려다보고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이 편해졌으면 좋겠다. 채율이도 비슷한 시는 쓰고 나면 수백 편도 넘을 거라는 말을 해서 그런지 이미 나와 있는 시들과 비슷하게 가려다가 틀었다. 초록잎 위에 누워 하늘을 보다가 구름으로 올라가 누워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층 끌어올렸다. 어른들의 삶에서도 바쁜 활동을 멈추어서 명상하는 것이 회복력을 높여주는 일이라고 한다.

 

축구는 재미있다.

그중에 내 옆에 있는 애를 뚫는 게

가장 재미있다.

애를 뚫으면 모든 스트레스가 풀린다.

 

함영준(4-3), <축구>

 

영준이처럼 신나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균형이 맞는 운동기구를 이러저리 움직이며 중심을 잡는 일도 또 다른 명상이듯이 땀을 흘리며 신나게 움직이고 하늘까지 보고 숨을 가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아침부터 운동장에 모여서 축구할 때 보면 영준이 같은 아이가 돋보이는 것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

 

병원에 갔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내 이름은 들리지 않는다.

드디어 내 이름이

들린다.

막상 주사를 맞으려 하니

떨린다.

두 눈을 꼭 감는다.

마음 속으로 숫자를 센다.

1... 2... 3...

동시에 콕!!

? 내가 왜 떨렸지?

이상하다...

 

임하윤(4-3), <예방주사>

 

병원은 무섭다.

내가 감기나 독감에 걸리면

주사를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 날 감기에 걸려

병원으로 끌려갔다.

나는 검진을 하고 기다리고 있다.

주사실로 끌려갔다.

나는 기대하지 않은 주사를

따끔하고

벌써 끝났다.

 

길미소(4-3), <병원>

 

나는 병원에서 돌팔이 의사를 만났다.

내가 아팠다. 여행 중에

너무나도 아팠다.

병원에 갔다.

아주 옛날 병원이었다.

부부로 하는 병원이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그리고 돌팔이 의사였다.

90대였는데 손을

달달달 떨었다.

엄청나게 긴 면봉을 갖고 왔다.

, 입에 넣었다.

아팠다.

, 몸무게도 안 물어봤다.

치료를 받고 울었다. 아파서

 

김혜원(4-3), <병원>

 

하윤이와 미소, 혜원이는 서로 같은 이야기로 쓰자고 맞추었는데 병원에 갔던 이야기를 썼다. 하윤이와 미소는 예방주사를 맞기 전의 두려움으로 시작했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끝났던 일에 대해 썼다. 하윤이는 또 다른 내가 예방주사를 기다리다 맞는 과정에 공을 들였고, 미소는 보호자 손에 끌려 주사를 맞기까지의 강압적인 분위기에 공을 들였다. 그에 비해 혜원이가 겪은 병원은 여행 중에 겪은 낯선 일에 대해 썼다. 자주 가는 병원이 아니라 낯선 도시에서 잔뜩 긴장한 데다가 믿지 못할 것 같은 의사에게도 진료를 받을 때의 느낌을 자세하게 표현했다. 코로나 시절의 이야기 같다. 어른들도 긴 면봉이 코와 입에 들어올 때 두려웠다고 말하는데 혜원이로서는 얼마나 기겁할 일인가. 당연히 물어봐야 할 키와 몸무게를 묻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진료를 하는 부부 의사를 돌팔이라는 다소 심한 말로 표현하고 있다.

 

팝콘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 ! !

팝콘이 터지는 소리가 또 들린다.

! !

팝콘이 전쟁을 하고 있나 보다.

팝콘이 터지는 소리가

정말로 크다.

!

 

김민건(4-3), <팝콘>

 

민건이 시는 새로울 것이 없지만 겁먹고 들떴던 마음을 묘하게 가라앉혔다가 다시 들쑤시는 것 같다. 팝콘 터지는 소리에 맞춰 재미있게 썼을 법도 한데 큰 소리로 강조하고 끝내버려 아쉽다.

 

4학년 4반 아이들은 보기 시로 읽어준 것을 자기 시로 만드는데 귀재들 같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자기만의 감성을 살려 독특한 시를 쓴 아이도 있다.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학교나 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조금씩 자기만의 느낌을 살려 쓰려고 했다.

 

집에서 학교로 뛰어간다.

지각이다.

 

나는 학교만 가면 슬프다.

1교시... 5교시가 다 됐다.

나는 기쁘다.

 

학원이 있다

기쁘다 한 게 싹 도망가서 내 마음이

텅 비었다.

 

1.... 5시 와!

1시가 5시가 되는 마술!

 

다 하고 나서 속이 후련했다.

 

정주언(4-4), <학교>

 

주언이는 학교와 학원 일정을 소화하느라 늘 벅차고 감정 변화 또한 많은 것 같다. 학교와 학원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보낸 시간을 1시가 5시가 되는 마술이라고 했다. 학교가 끝난 기쁨도 잠시 학원으로 가는 텅 빈 마음이라니, 그것도 어찌어찌 보내고 나서야 후련함을 맛보고 다시 바쁘게 학교로 뛰어가면 지각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똑같은 날이라는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기쁘다 한 게 싹 도망가버렸다는 말에 고단함이 묻어난다. 더 할 말이 없더라도 그때의 감정을 표현해주어야 한다. 그냥 싫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솔직한 마음을 표현해주어야 하는데 사정을 들어보면 그것마저 귀찮다고 하는 게 문제지만.

 

공부는 싫어

왜냐면 싫기 때문이다.

학원도 싫다.

또 싫기 때문이다.

? 자세히 설명을 해달라고?

알겠어. 싫은 이유는 귀찮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걸 할 바엔 오버워치2 한다.

 

서민규(4-4), <공부>

 

민규는 왜 그런 걸 시로 표현하라고 하느냐고 대놓고 불만이다. 그것도 알겠어. 싫은 이유는 귀찮고 설명하자면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럴 시간에 게임을 하겠단다. 주언이 시에서 달라질 게 없는 현실이 반복되듯이 게임으로 잊고 다시 싫고 싫은 공부와 학원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다. 간절하게 자유를 외치고 싶지만 마법에서 풀려날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 말로 다 하느냐고 말하는 것 같다.

 

학원은 마법이 걸려 있다.

가면은 갑자기 아,

학원의 마법이 날 힘들게 한다.

1초가 분 동안 기다리는 것과 같다.

학원은 날 힘들게 해.

학원은 지루해.

 

학원이 끝나면 도비마냥

Dobi is free를 외치게 된다.

학원은 힘들어.

 

학원... 나의 미래는

지금 학원을 탈출하는 것이다.

 

도제휴(4-4), <학원>

 

모든 사람들이 외치는 말이기도 하다. 도비 이즈 프리! 제휴는 1초가 1분이 되고 1분이 1시간 같은 마법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힘들고 지루하다는 말의 반복이다. 마법에서 탈출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삶을 말하는 것일까? 그러면 어른들은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느냐고 자유가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말인지 아느냐고 말하겠지만 당장의 현실은 지루하고 힘들 뿐이다. 그래서 윤후가 말한 것처럼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파도가 나를 민다. 나는

하지 말라는데...

엄마, 아빠는 저어 멀리

있는데 나는 제자리걸음이다.

나도 좀 가자!

 

김윤후(4-4), <파도>

 

윤후는 가족과 함께 떠난 바다 여행에서 제대로 겪어보고 있다. 파도가 밀어내는 바람에 엄마, 아빠가 있는 자리로 가기 어려운 것이다. 나를 밀어내고 또 밀어내는 파도야말로 마법처럼 옭아매는 학교와 학원과 비슷한 것이다. ‘나도 좀 가자!’는 말이 독백 같아 보여 안쓰럽다.

 

연필을 쓸 때마다

나는 소리는

사각사각

~

또 한 번 사각사각

~

소리가 꼭

알록달록 무지개 같다.

 

윤서영(4-4), <연필의 소리>

 

서영이는 무지개를 소리로 그려냈다. 연필로 글씨를 쓸 때 나는 소리가 무지개 빛깔처럼 알록달록하다고 했다. 어떤 글자들이었을까? 글자만이 아니라 그림이나 숫자이기도 했을 것이다. 다양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무지개가 뜰 수도 있겠다는 자기만의 생각을 잘 부려 썼다.

 

엄마의 잔소리는 아주 무섭다.

첫 번째는 내가 엄마 말을 안 들을 때

두 번째는 엄마 몰래 게임을 하는 거다.

세 번째 엄마가 화내면

도망간다.

 

서보혁(4-4), <잔소리>

 

사람들은 기분이란 걸 가지고 있다.

기분은 화나거나 슬프거나 기쁜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화날 때는 딴 사람한테도 괜히 짜증을 내서

딴사람도 내 기분과 똑같이 만들게 된다.

기쁠 때는 반대로 나 혼자서 신나 하는데

딴 사람도 기분이 좋게 만든다.

슬플 때는 그냥 내 기분을 숨긴다.

그러면 친한 사람이 내 가족들이

위로해준다. 그러면 나는 저절로 눈물이 나 운다.

기분은 언제나 같은 게 아니라

항상 다르다.

 

김민채(4-4), <기분>

 

그러나 보혁이가 말했듯이 엄마의 잔소리는 어떤 그림으로도 다룰 수 없는 것이다. 무엇으로도 말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소리일 뿐이다. 잔소리에 이어 화까지 불러오면 어떻게든 도망가고 보는 일이 반복된다. 엄마 말대로 하지 않아서 반복되는 일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몰래 게임까지 하니 혼나게 된다. 잔소리와 화가 먹히지 않는다는 증거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큐브처럼 맞춰질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감정, 기분은 생각보다 세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채의 기분을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가 기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다루는지가 드러난다. 화가 나거나 기쁜 것은 바로 앞에 있는 상대에게 감염되기 쉽다. 화가 났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만 하듯이 기쁜 것도 주위를 하나로 만들기 쉽다. 집안에서 엄마 아빠가 화가 나면 전체 분위기가 가라앉듯이 기쁜 것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요동친다. 그러나 슬플 때는 어떤가? 민채가 그렇듯 자연스럽게 감추게 된다. 슬픈 감정은 내비치지 않도록 강요한 것일까? 남학생들이 아직도 남자는 평생 3번 운다는 말을 전해 듣고 아직도 통용되는 것처럼 말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있을까? 슬픔도 함께 울어주고 위로해주면 눈물로 씻겨나가는 또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닌가? 가족이기에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건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다.

 

올리고, 내리고, 돌리고

반복하다 보면

벌써 1분이 지나고 또 30초까지 지나면

드디어 맞춰졌다.

 

서지환(4-4), <큐브>

 

지환이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올리고, 내리고, 돌려서 맞출 수 있는 큐브라면. 그렇게 되지 않는 게 사람의 일이다. 지환이에게 어떻게 그렇게 되느냐고 물어봐도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고 한다. 큐브 공식처럼 30초만에 풀 수 있는 비결이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4학년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면 무한반복되는 듯한 답답하고 짜증 나고 화가 나는 일은 줄여나가야 한다.

 

동생과 수박을 맛있게 먹는다

수박씨가 많았다.

수박씨를 책상에다 발사했다.

그런데 동생 얼굴에 튀었다.

갑자기 동생이 기습 공격을 했다.

나도 입에서 씨를 두두두

동생 얼굴에

씨가 세

발이 얼굴에 다 묻고

엄마에게 30분 동안 혼났다.

다음부터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이유준(4-4), <수박씨>

 

지환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큐브를 맞추었다면 유준이는 동생과 수박씨 뱉기로 장난에 빠져있다. 이 시는 조금이라도 재밌게 된 것은 수박씨를 잘 활용한 탓이다. 여기에서 30분 동안 혼난 것은 앞의 잔소리처럼 무섭지 않은 일이다. 충분히 견딜 만하다. 동생과의 놀이로 충분히 즐겼으니 뒷감당 또한 잘 해낼 수 있는 넉살이 있는 것이다.

 

아빠는 돼지다.

집에서 가장 잘 먹기 때문이다.

 

아빠는 사자다.

잠만 들면

코 고는 소리가

파도처럼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아빠는 조선 시대 사람이다.

옛날 시대처럼 아빠를 왕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빠는

집에서만큼은

내 최고의 친구다.

 

김지연(4-4), <아빠>

 

지연이는 아빠에게 해줄 말이 많은 것 같다. 아직은 사춘기에 들어선 것이 아닌지 아빠를 위한 마지막 찬사를 남겨두었다. 먹성 좋은 코골이 아빠에다가 스스로 왕처럼 군림하는 모습에도 최고라 말하고 있다. 아무래도 아빠가 이 시를 읽는다면 3연의 조선 시대 사람이자 에 대해서 고민하셔야 할 것 같다. 엄마의 의견 또한 궁금하다. 엄마들에게 물어보면 우리에게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데 조선 시대 사람처럼 군다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 지연이가 그걸 알고서 일부러 3연에 남겨둔 것일까? 여느 아빠처럼 딸바보인지도 모른다.딸바보가 다른 아들이나 엄마에게 어떻게 보일까도 궁금해진다. 시로 남겼으니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다.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아무것도 없어 보여도

자세히 보면

벌레가 있다.

 

잘 생각하면

나도 벌레를 밟았을지 몰라

! 너무 끔찍해!

 

한동안 낙엽을 못 밟겠잖아...

 

○○○(4-4),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

 

자연을 대하는 두 편의 시를 보면 극명하게 둘로 갈라진다. 낙엽에 붙은 벌레가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벌레가 날아오면 비명을 지르고 약을 뿌려대는 건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이 아니라 본능인 것 같다. 벌레는 삶의 둘레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혐오스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생활 자체가 깔끔하게 맞춰져 벌레가 들어올 수 없는 환경이니 더 그렇다. 자연이 처음부터 그런 것인데도 한동안 낙엽마저 밟지 못하겠다고 거리를 두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잘 생각하면~ ’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야만 무지개가 아름답다는 말도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만 보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니.

 

어느 날 비가 주륵주륵

내린다.

하지만

애들은 비가 싫다고 한다.

하교 시간이 되었다.

비가 그쳤다.

집에 가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아름다운 무지개가

펴있었다.

알록달록한

무지개

소나기가 놓고 갔다.

보다

소나기에게

이쁜 무지개

가져 가

소나기야.

 

○○○(4-4), <소나기의 무지개>

 

무지개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흔한 무지개로 끝나지 않고, 무지개는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생각해 보니 소나기가 놓고 간것이어서 소나기에게 다시 가져가라고 말했다는 것이 놀랍다.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빛의 파장이 어떻게 보이느냐는 문제지만 아름다운 무지개는 바로 앞서 퍼붓던 소나기가 놓고 간 우산이나 손수건처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도 소나기의 무지개이다. 소나기란 말을 느껴보는 것도 좋지만 그 뒤에 생기는 무지개를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넘치는 말이다.

 

나는 유성매직이라는 소리가

싫다.

유정매직이라는 소리는 나를

부르는 소리 같다.

 

유성! 유성! 유성만

아니면 될 것 같다.

 

유성민(4-4), <유성매직>

 

성민이가 조금만 아량이 있었다면 밤하늘을 수놓는 유성이자 매직이었을 거라고 느꼈을 것이다. 이름 가지고 놀리는 것은 별명축에도 낄 수 없는 아주 치사한 장난이라고 여긴다면 내 이름은 유성!이자 매직!’ 멋지지 않는냐고 돌려 말할 법도 하다.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질 것 같은데

항상 안 떨어진다.

하늘에선 비나 눈, 우박만 날라 오고

다른 것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하늘에서 핸드폰이나 물건들이 떨어지면 좋겠다.

 

박병유(4-4), <하늘>

 

또 한 사람, 병유는 자연스러운 비, , 우박 대신 먹을 것이나 휴대폰처럼 진정 바라는 물건이 떨어지길 바란다. 어디까지나 애교로 봐줄 만하다. 음식이 하늘에서 내린다는 내용의 그림책도 있으니 그것이 왜 떨어지는지, 떨어져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해 보며 다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4학년이라면 여기서 끝내지 말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의 근거를 대고 자신이 바라는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을까?

 

드디어 5반이다. 이 반에서는 현재의 자기 기분에 대한 짧은 시들이 많이 나왔다.

 

이 시각 난

깨어나야 한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피곤하다.

아침이다.

엄마는 아직 자고 있다.

방과 전 수업이라서

이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

피곤하다.

 

○○○(4-5), <7>

 

아침은 너무 싫다.

학교는 좋지만

아침에 눈이 안 떠진다.

아침은 너무 싫다.

눈을 뜨면 시계가 눈앞에 있다.

 

○○○(4-5), <아침>

 

 

어쩐 일로 엄마가 아직도 자는 시간에 일찍 일어나서 피곤하다는 것으로 시작하여 시험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는 식이다. 방과 전 수업이라 일찍 집을 나서야 하는 7시가 알람처럼 곧추 서 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눈을 뜨면 시계가 눈앞에 버티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학교는 좋지만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가는 것은 몸의 리듬상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은 대부분 겪는 일이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고민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시험만 볼 때면 짜증이 난다.

시험에서 문제를 틀리면

백 점이 될 수 없다.

나는 완벽주의자 같다.

모든 게 완벽했으면 좋겠다.

공부도 어려운데

어차피 공부를 하는데 왜 시험을 볼까?

 

이재서(4-5), <시험은 왜 볼까?>

 

그리고 시험은 내리내리 아이들을 짓누르는 짜증이라는 것도 비슷하다. 완벽주의자이면서 시험에는 백 점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것 같아 짜증이 난다. 스스로 완벽주의자라 말하면서 공부의 어려움과 시험에 대한 불만은 스트레스만 더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완벽주의자는 실수도 없어야 하고 시험마저 놓치지 않는 준비성과 계획성이 뛰어나야 하는데 어찌 그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 그래도 공부까지는 인정하는데 시험으로 결과치를 만들고 줄을 세워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 핵심을 짚으려고 한 것은 좋다.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좀 더 나갔어야 했다.

 

호나우지뉴는 잘 한다.

알을 잘 먹인다.

개인기가 멋지다.

프리킥을 정말 잘 찬다.

땅볼 프리킥을 3개가 넣었다.

칩슛 프리킥으로도 넣었다.

볼을 띄워서 드리블하는 걸 좋아했다.

티브이로 보니 너무 잘 한다.

 

이준석(4-5), <호나우지뉴의 대단한 축구>

 

준석이에게 축구는 학교에서 즐거운 공부나 다름없다. 지나간 축구 스타를 좋아하면서 그와 닮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것을 즐기고 잘 해내기 위해 배우는 것이 꼭 교과서만은 아니지 않을까? 이어지는 시들이 더 간절하게 말해주고 있다.

 

체육 시간이다.

근데 왜 하필 피구일까?

피구가 가장 싫은데

왜 축구가 안 나오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에

피구, 야구, 농구, 배구, 이런 거는 나오는데

왜 축구만 안 나올까?

축구가 체육 시간에 딱 한 번 나왔으면 좋겠다.

축구가 체육 시간에 나와 멋을 보여주고 싶다.

 

김민석(4-5), <축구>

 

민석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축구가 체육 시간에만 빠지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피구는 남학생이나 여학생 모두 어울려 할 수 있는 놀이지만 축구는 남학생들만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까? 스포츠가 한쪽 영역으로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 골고루 맛 볼 수 있게 해야 하고 민석이가 자랑하는 자신의 기술을 뽐낼 수 있는 기회도 있어야 한다. 시로 써서 건의하거나 보여진다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기분은 아주 많이 바뀐다.

학교를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면 피곤해서 짜증난다.

하지만 교실에 있는 친구들 생각에 힘이 난다.

학원에 가면 숙제가 많아서 슬프다.

그런데 선생님이 칭찬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시험을 못 보면 슬프다.

집에 오면 엄마가 시험 못 봐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면 기분이 괜찮아진다.

오늘 기분이 아주 많이 바뀌었다.

 

임나령(4-5), <나의 기분>

 

나령이 시를 읽고 나니 학교가 조금 더 선명해진다. 피곤하고 짜증나도 학교나 학원에 가는 것은 공부나 숙제를 더 잘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친구들 생각에 힘이 나고 선생님의 칭찬 또한 기분을 좋게 하고 시험 성적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북돋아 주는 학교와 가족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나령이와 친구들이 바라는 학교의 그림을 그려주어야 한다. 선생님 또한 그렇게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아직도 학교는 선생님이 하기에 따라 많은 부분이 바뀌고 학교다워진다는 진실을 믿어야 한다.

 

꾸룩꾸룩

우유를 먹으니

배가 아프다.

 

꾸룩꾸룩

난 우유가 정말 싫다.

 

냄새도 나고

꾸룩꾸룩

배도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가 크려면

먹어야 한다.

 

김하은(4-5), <우유>

 

하은이가 걱정하는 것은 우유를 먹으면 정말 키가 커질까 하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우유가 맞지 않는데도 억지로 먹어야 하는 이유가 키 때문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데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하은이의 표정을 보면 단순한 걱정이 아닌 고민거리로 보인다. 우유를 꾸준히 먹으면 키가 커질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이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키에 대한 걱정보다 그것을 넘을 수 있는 활동 프로그램이나 즐거운 학교생활로 이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해 공부해보는 역발상도 필요하지 않을까? 시 쓰기에 더해 자신을 표현하는 만큼 다양한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학교이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2023년 5월 9일부터 19일까지 청주 진흥초 4학년 아이들과 함께한 시 쓰기 시간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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