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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행복은 다를 수 있다-음성 한일중 1학년 시를 중심으로

시와 함께한 나날

by 참도깨비 2023. 7. 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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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행복은 다를 수 있다

-충북 음성 한일중학교 1학년 시를 중심으로

 

올 여름방학에도 한일중 아이들과 문학 캠프를 했다. 이번에는 1학년 아이들만 신청을 하였고, 두 명은 레슬링부라 참여하지 못하고 4명과 총 515시간에 걸쳐 시 이야기와 함께 시 쓰기를 했다. 민호, 태현, 시현, 기선은 무척 친한 친구들이어서 영화(<세 친구>란 영화가 있었다)로 찍어도 좋을 만큼 개성이 강하면서도 잘 어울렸다. 민호는 예민하면서 모범생이고, 태현이는 레슬링에 막 입문한 음성터미널 앞 김밥천국사장님의 아들이다. 그리고 시현이는 읍내에서 떨어진 소이면 갑산리로 귀농하여 왔는데도 분위기를 끌어가면서 밝고 긍정적이었다. 이름 때문에 기선제압을 당하는 기선이는 조용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친구였다. 아침 밥을 굶고 와서 집 생각이 간절하였다.

넷에게는 각별한 여름방학인 셈이다. 캠프가 끝나면 넷이 모여 패스트푸드점이나 김밥천국에 가서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까지 하면서 더 친해지는 시간이니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까지 한층 더 깊어진 것 같다. 먼저 단톡방을 만들어 언제든 자유롭게 시를 올릴 수 있도록 하고 다양한 연령층의 보기 시를 읽고 멀리서 찾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이야기를 찾되 간절한 자기 이야기 위주로 써보자고 했다.

 

제목은 거창하지만

음성 한일중학교 아이들과

시 쓰는 시간이다

시인은 이렇게 불러줄 때야 의미가 있다.

5일 동안 아침 910분부터

2시간 시 이야기,

오늘은 첫 시간

단톡방을 만들어 실시간으로 시 올리고 나누자고 말해야지

수업 시간에 써도 되고

화장실, 버스에서 써도 된다.

거기 가려면 여섯 시 반에 일어나

851버스 타고 다시 115번 버스로 갈아타서

도서관 문 열고

상호대차 나가는 책 처리하고 나와

북청주버스정류장에서 버스 타고

증평, 도안, 원남 거쳐 음성 가서

터미널 가까이 있는 중학교까지 걸어가야 한다.

끝나서는?

출출하니 하루는 김밥천국에서

하루는 김밥나라에서 점심 먹고

증평까지 버스 타고 나와 105번을 타야 한다.

내 차가 없어서 얻는

시적 장치들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둘러볼 수 있는 거리거리

나무와 풀, 구름, 새와 벌레들이 다

시다.

시여서 5일 내내

장날이다.

 

이종수, <여름 문학 캠프>

 

첫 시의 운은 내가 먼저 뗐다. 이런 마음으로 버스 타고 왔다가 돌아간다고. 그리고 서로 다른 친구들의 성향을 알아보기 위해 문제 아닌 문제를 내고 시작했다.

 

시현이는 자연이 그러니까 간섭하면 안 된다고

민호는 잠자리를 도와주고 싶지만 거미가 물까 두려워 그냥 볼 거라고

기선이는 개구리를 잡아 거미를 먹일 거라고

태현이는 잠자리를 떼어주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모기를 갖다 바친다고 했다.

그러니 시현이가 나섰다

모든 목숨은 생명이어서 무게가 다를 수 없다고

친구들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그런데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시현이는 다시 말했다

 

이종수, <거미줄에 잠자리가 걸렸을 때>

 

서로에게 중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도 이렇게 의견을 나눌 것 같았다. 그래도 서로의 배격하지 않는 친구들이어서 문제를 풀어가는 것 또한 뛰어났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분위기여서 고치고 다듬어가면서 내놓은 시도 따로 또 같은 마음이었다.

민호와는 한 차례 마찰이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기보다 좀 더 마음이 가는 이야기를 새롭게 써보자고 토라져서 끝나자마자 바로 가버리기도 했다. 자기 시만 뭐라 하는 것 같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먼저 쓴 시 꼬르륵 꼬르륵 아침에도 꼬르륵 점심에도 꼬르륵 저녁에도 꼬르륵 쉴 새 없이 꼬르륵 나를 배고프게 만드는 내 배꼽시계/언제 어디서나 배를 두드리는 참 부지런한 내 배꼽시계’(<시계>)봄 봄 봄 너무나 따뜻한 봄 소풍가기도 좋은 날씨의 봄 /예쁜 꽃도 보고 기념사진을 찍는 재밌는 계절의 봄/따뜻하고 체험학습도 가기 좋은 날씨의 봄/나들이를 갈 수 있는 봄이 좋아.//여름 여름 더운 날씨의 여름 선풍기도 틀고 에어컨도 틀며 시원한 추억을 만드는 계절의 여름/ 어떨 땐 시원한 하루를 보내는 여름 시원한 수영장을 가며 첨벙첨벙 놀고 시원한 여름이 좋아.//가을 가을 봄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날씨의 가을/단풍 구경을 가며 예쁜 단풍잎, 은행잎을 볼 수 있는 가을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는 가을/사진찍기에 풍경이 좋은 가을이 좋아.//겨울 겨울 겨울 바람 겨울 바람 씽씽씽 불어와./스키, 썰매 타기에 좋은 날씨 겨울 온 세상이 하얀 나라로 뒤덮여 추운 겨울/하지만 난로를 틀면 따뜻한 집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지내는 겨울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며 눈이 내리는 겨울이 좋아.’(<봄 여름 가을 겨울>)에 대한 지적 때문이었다.

 

그래도 장점을 살렸으면 해서 한 말이니 이해해 달라고 사과 문자를 보냈더니 곧 많이 접하지 않았던 시를 쓰는 것이 어렵긴 해요. 그래도 자꾸 생각하고 써보다 보면 잘 할 수 있겠죠?’라는 답장을 보내올 만큼 진지하면서도 열성이 민호의 시는 점점 달라졌다.

 

무지개는 비 온 뒤에 뜨지만

매번 뜨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것도

무지개처럼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행복은 언제나 피어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행복은 무지개처럼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행복은 긍정적인 감정이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씩 드러날 때도 있다.

 

사람마다 행복은 다를 수 있다.

 

박민호, <무지개>

 

행복은 어른들만의 말이 아니다. 초등 고중학년부터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아마 서로에게서 궁금한 말이기도 한 것 같다. 가끔 , 행복하니?” 하고 물어보았을 때 당황스러워 새삼 행복한지 곱씹어보지 않았을까. 민호도 그렇게 물어오면 당황스럽다고 한다.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데 느닷없이 물어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다양하다고만 썼다가 민호만의 행복론?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했더니 이런 말을 꺼냈다. 행복도 무지개처럼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행복이라고 해서 항상 좋은 상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일까? 사람에 따라서는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고 부정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뜻일까? 무엇보다 서로에게 강요하는 행복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내비친 말이라 할 수 있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과 상태와 만족도가 다를 수 있는데, 오로지 행복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게 무지개이지 않을까 하면서 민호는 시를 마치고 있다. 비가 온 뒤 뜨는 무지개라지만 매번 뜨지는 않는다는 첫 말이 뚜렷하게 다가온다. 시를 읽는 모두가 피어나는 노력이 담고 있는 깊은 뜻을 헤아려 보면 좋겠다.

다음 시는 민호가 학원에서 공부하다가 써서 올린 것이다.

 

종이 위 가는 선들 사이로 주문을 건다.

부드러운 문장들은 폭풍우를 약속하는 하늘을 닮은 회색빛

 

내가 간절히 필요할 때 너는 거기 있다.

흑연의 몸짓이 내 마음을 하나의 상징으로 만든다.

 

글자에 내 목소리를 담아줘.

네가 종이 위에

기도를 쏟아붓는다.

 

박민호, <연필>

 

독서대에 앉아 문제집을 풀거나 숙제를 하다가 공책 위에 스치는 연필 소리를 듣다가 썼다고 한다. “이렇게 멋진 문장이 어떻게 금방 나왔을까?” 하고 물으니 그런 말들이 술술 나오더란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일구어낸 문장이다. 어디선가 멋진 말이 떠올랐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공부에 집중하다가 잠시 쉬어갈 때 찾아오는 말은 시적인 문장일 때가 많다. 그렇게 쉴 때 찾아드는 바람이기도 하다. 비가 오다가 멈춘 낮, 잿빛 구름으로 뭉친 창문 밖 하늘을 보다가 흑연의 몸짓을 빌려왔을 수도 있다. 간절할 때 드리는 기도처럼 연필이 민호의 목소리를 담아 쓰고 있는 것이다. 간절하게 필요할 때 흑연의 몸짓이 자신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건 문학 캠프를 함께하는 친구들 같은 뜻일 수도 있다.

 

혼자는 외로우니까 새로 만들어보는 친구

도움이 필요할 때 꼭 필요한 친구

나와 잘 맞는 특징이 있어서 사귀어 보는 친구

친구와 함께라면 안 좋은 일도 다 날아가버리는 마술

 

친구는 위로할 때나 시켜줄 때나 필요한 존재

아무리 싸워도 절교하고 싶지 않은 존재

친구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

 

박민호, <친구>

 

흔하게 친구에 대해서 말할 때 쓰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 꼭 필요한 친구아무리 싸워도 절교하고 싶지 않은 존재는 앞선 기도만큼이나 간절한 말이다. 서로 달라 다툼도 많지만 금세 매듭을 풀 줄 아는 친구, 그렇기에 아무리 싸워도 절교란 말로 선을 긋지 않는 친구, 그런 친구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뜻깊게 다가온다.

 

나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

내가 좋아할 때도 같이 웃어주는 사람

 

슬플 때도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

어떨 땐 나를 혼내서 미운 존재이긴 하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

 

갈등이 일어나서 말을 걸진 않지만

속으로는 너무나 사랑하는 존재

 

나에게 "못하는 것이 있어도 괜찮아" 라고 말하는 사람

나에게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사람

 

박민호, <엄마>

 

친구에 이어 쓴 엄마에서도 진지하게 정의 내리는 민호의 마음이 드러난다. 속내를 짚어보면 지금 사소한 갈등으로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자신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엄마이자 가족이란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못하는 것이 있어도 괜찮아하고 말해주는 사람이 엄마라서 좋다는 표현이 환하게 다가온다. 갈등을 푸는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이기 때문이다. 앞선 행복에서 말했듯이 기준표를 어디에다 두느냐에 따라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기대치가 다르고 만족도마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만 알아도 피해가거나 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얼마나 많은가. 초등학교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중 1학년이지만 뭔가 달라도 다른 길이 있는 것이다. 한 뼘씩 성장해가는 길목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좋다. 민호에게 이 시를 연필로 써서 냉장고에 붙이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 뿐이다.

 

풀어도 풀어도 계속 풀리지 않는 궁금증

다른 친구와 함께해도 무슨 이유로 풀리지 않는 궁금증

어떻게 하면 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까?

선생님과 함께 풀어보는 궁금증

선생님이 풀어주셨는데도 왜 궁금증이 지속이 될까?

다른 것도 여전히 맴도는 궁금증

가끔씩 풀리고 대부분 풀리지 않는 궁금증

궁금증은 장난꾸러기 같다.

 

박민호, <궁금증>

 

그것은 어찌 보면 풀어도 풀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에 계속 다가가는 자세 때문이지 않을까.

궁금증은 수학 문제를 풀다가 생겼다고 한다. 친구와 풀어보다가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는데도 풀리지 않는 것에 대한 답은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로 쉽게 할 수 있지만 민호에게 궁금증은 그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궁금증은 장난꾸러기라고 말해버리고 끝난 것은 날씨는 변덕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문제를 깊게 끌고 들어가지 못한 증거이기도 하다. 자연의 본 얼굴이 제멋대로 부리는 변덕에 빗댈 것이 아니듯이 궁금증도 장난꾸러기란 말 대신 처음 가진 생각을 거듭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말로 표현했어야 한다.

 

우와~ 신나는 여행이다.

여행으로 무엇을 싸가면 좋을까?

 

여름이니까 튜브를 사갈까나~

또 여름이면 시원한 것이 빠질 수가 없지.

시원시원한 수박을 싸가자.

너무나 더운 여름

 

오늘도 시원하게 끝내보자

여행은 가족이랑 가도 친구들이랑 가도 너무 재미있어!

부정적인 것은 시원하게 끝내버리고

긍정적인 것으로 바꿔보자, 파이팅!

이번 여름도 에어컨, 선풍기 틀며 알차게 보내보자.

 

박민호, <여행>

 

이 시는 가볍게 읽으면서 마무리하는 여름방학나기용이다. 행복에 대해 쓸 때 나온 긍정부정이란 말도 멀리 갈 것 없이 수박과 선풍기로 알차게 보내자는 뜻이니 가볍게 읽고 태현이 시로 넘어가 보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답을 정하기 어려울 때

친구를 감싸주고 싶을 때

내가 자주 하는 말

 

이태현,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태현이는 터미널 옆 김밥천국 사장님의 아들이자 한일중학교 운동부 레슬링부원이다. 덩치가 커서 의자에 앉아있다가도 바닥에 앉거나 쉬는 시간에는 바닥에 놉곤 해서 물어보니 몸에 맞는 속옷이 없어서 작은 수치의 속옷이 엉덩이에 끼어서 그렇단다. 비밀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태현이 시를 이해하기에 필요해 보여서 할 수 없이 공개한다. 넉살이 좋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 운동을 하면서도 친구들과 너나없이 지내고 점심이면 김밥천국에서 집안일(음식 서빙)을 돕기도 한다.

위의 시는 며칠간 태현이가 자주 하는 말에 대해 쓴 것이다. 왜 이런 말을 쓰게 되었는지 말해달라고 하니 시로 썼다. 듣기에 따라 맞닥뜨린 문제를 애매하게 피해가기 위한 말이면서 중간에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조정해주는 역할을 맡아서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볼 수 있죠에 가깝다. 어쩌면 충청도 사투리로 대표되는 봐서!’란 말과 비슷해보이지 않느냐니까 넉살 좋게 웃는 태현이가 두 번째로 쓴 시는 <왔다>.

 

집으로 택배가 왔다

집으로 친구가 놀러 왔다

집으로 엄마 아빠가 왔다

집으로 할아버지가 왔다

하지만 형은 곧 군대로 떠난다.

 

이태현, <왔다>

 

한 마디로 모두가 집으로 왔는데, 형만이 곧 군대 간다는 말인데, 지금 집안 상황을 아주 간결하게 말하고 있어서 붙일 것도 뺄 것도 없다.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이에서 겪은 일에 대해 써보라고 했더니 나흘째 되는 날 단숨에 썼다. 뭔가 닥쳐야 하는 버릇이 그대로 시에 나타난 것 같다. 그렇다고 할 말은 다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교문 옆에 있는 훈련장 매트를 그려놓고 물어보니 본연의 일에 대해 썼다.

 

나는 레슬링부다

레슬링은 엄청 힘들다.

매트 위의 원을 계속 달리고

사람을 들고 뛰거나

아령을 들고 뛰기도 한다.

 

아령을 들어 힘을 기르고

벤치를 하기도 한다.

 

구르기도 하고

손목 싸움 기술을 익힌다.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나도 대단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태현, <레슬링>

 

레슬링은 몸과 몸을 어느 운동보다 밀착시키면서 힘을 쓰는 운동이다. 아직은 1학년이어서 시합 나간 형들처럼 문학 캠프에서 레슬링부를 대신해서 시를 쓰고 있는 태현이가 이렇게 조목조목 시를 잘 쓸 줄이야. 더 자세한 기술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자기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몸으로 하는 일이나 공부 이야기까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지가 드러나야 마땅하다. 시합에 나가서 다른 선수들과 맞붙는 이야기는 얼마나 실감이 날까, 그런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 또한 시를 쓰는 것이니. 태현이의 다음 시는 첫 시 만큼이나 재미있다. 첫 시는 그런 말의 느낌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면 이 시는 그대로 태현이다.

 

나는 라면처럼 살고 싶다.

라면은 겉보기와 다르게

물에 삶아 쭉 펴면

아파트 13층 높이다.

 

오래 살아서

미래의 기술을 누리고 싶다.

 

이태현, <길게>

 

이 시는 앞선 시간에 생명 연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쓴 것 같다. 자기가 내뱉은 말을 첫 문장으로 써놓고 나면 생각을 거듭해서 다음 말을 만들고 근거를 대고 해명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운명에 대해 쓴 시를 두고 태현이는 가능하면 2백 살, 3백 살까지도 살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자기만이라도 오래 살아서 미래의 기술을 누리고 싶다는 말로 귀결이 되는 셈이다. 어디에선가 봤던 프로그램에서 라면 한 개를 늘여놓으면 아파트 13층 높이라는 말을 듣고 제목도 <길게> 빼놓은 것이다. 이 시에 토를 달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태현이 생각이니. 흔한 말로 가늘게 길게 산다고는 하지 않았다. ‘굵고 길게!’라고 덧붙여 말하는 태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어볼 일이니. 오늘도 친구들이 햄버거 먹으러 가자는 말을 밀치고 김밥천국에 알바(“중학생이 어떻게 알바를 해요, 그냥 도와주는 거지요.”-태현이 말)하러 가는 태현이가 귀엽게? 보인다.

 

나는 노을이 질 때

밖으로 나와

Paris in the rain을 듣지

 

나는 노을이 질 때

밖으로 나와서

Paris in the rain을 틀고

해가 지는 걸 봐

 

해가 지는 걸 보면

울진 않지만 울컥해지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하지

 

김시현, <노을이 질 때>

 

시현이는 멋을 아는 친구다. 비닐하우스가 있는 집에서 저녁 노을을 보면서 뭔가 울컥했다고 하면서 쓴 시인데 ‘Paris in the rain’란 노래를 들으면서 분위기를 잔뜩 띄운다고 한다. 엄마가 도시에 살 때는 음악 선생님이었다고 해서 그런지 엄마 취향과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해 볼 따름이다. 어른들도 노을을 바라보며 지나간 추억을 떠올려보거나 갑자기 분위기에 휩싸여 울컥해진다고 하니 자기도 그렇다면서 화룡점정으로 울지 않지만 울컥해진다고 붙여넣어서 완성된 시다. 그리고 이어 골똘하게 붙들고 있는 이야기를 더 했다.

 

우리는 일 때문에 앞만 보고 살지

하지만 앞만 보고 달리면 힘들지

그래서 위를 보았으면 해

 

위를 보면 신비로운 하늘과 멋진 달과 행복한 해가 있어

 

기분이 편해지잖아

 

김시현, <위를 봐>

 

말도 많이 하고 붙임성이 좋은 아이, 시현이는 어른들이 가끔 말하듯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살라고 제법 의젓하게 말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편해지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용인에서 전학을 와서 음성에서 조금 떨어진 소이면 갑산리에 사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도시 생활에서 시골에 와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다. 처음에는 복숭아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더니 사과나무를 심었다가 과수화상병 때문에 다 뽑고 감자와 고구마를 심었다고 한다. 복숭아와 사과(알고 보니 윗집 비탈에 있는 복숭아나무를 자기 집 나무로 착각한 탓이란다)를 헷갈려 할 수 있느냐고 말했더니 엄마 아빠가 거들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했단다.

그래도 도시에 와서 적응하기 어려웠을 텐데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걸 보면 넉살이 좋아보인다. 시도 개성이 있다. 친구들은 만화를 주로 많이 보는데도 아는 척을 많이 한다고 투덜댄다. 시현이로서는 아는 만큼 알려주려는 생각이 앞서서 그런 것뿐이다. 친구들도 크게 선을 넘지는 않고, 태현이 말대로 그렇다고 볼 수 있는 문제로 여기는 것 같다. 그만큼 서로를 받아들이는 폭이 넓어 보여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바다는 착하고 겸손하다

바다는 계속 아래로 가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받아야 하지만 우리

사람들은 서로를 제치고 위로 올라가려고만 한다.

 

하지만 정상까지 올라갔을 때

아무도 없다

 

바다가 부럽다

 

김시현, <바다>

 

시현이는 생각보다 어른스럽다고 해야 할까,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 같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책에서 읽어서 알고 있거나 어른들이나 매체 영향이 큰 것 같지만 자기 생각으로 굳혀가는 것만은 남다르다. 요즘 기후위기다 해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니 시현이는 우리들의 삶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바다에 가 보았던 기억을 이야기하거나 바닷가 파도 치는 소리를 흉내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 다른 시에 비해 훨씬 좋다. 어른들도 물은 낮은 데로 흘러가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된다는 것은 삶에 지칠수록 깨닫곤 하니까. 그리고 앞서 던진 거미줄에 잠자리가 걸렸을 때에 말한 것을 시로 다시 쓴 것을 보면 시현이를 다시 느낄 수 있다.

 

만약 나비가 물에 빠지면 도와줄 것인가?

이 질문을 받으면 가만히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은 자연이 알아서 해야 하고

자연의 룰을 어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상을 사람으로 바꾸면

나는 아무 말을 못 할 것 같다.

 

김시현, <생명의 가치>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를 떼어주는 것은 자연의 룰을 어기는 일이기에 자연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해서 좋다 나쁘다 할 수 없다. 생명의 가치는 그렇게 나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생명의 무게 또한 저울질할 수 없다는 말도 하는 것을 보면 자기 생각이 뚜렷하다. 그러나 풀 수 없는 고민은 그 대상이 사람이었을 경우 섣불리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여러 차례 접하면서 쉽지 않은 사람으로서의 무게를 느낀다고 해야 할까, 솔직하면서도 생각이 깊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우리의 인기

인기가 많을 때가 있으면

인기가 쪼그라들 때도 있다

 

반대로

 

인기가 쪼그라들 때가 있으면

인기가 많아질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린

인기가 많아지길 바라지만

인기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

 

김시현, <인기>

 

다음 시들은 처음 썼던 것들이다. 가볍게 말해보는 정도로 썼다가 생각이 깊어지니 앞선 시들처럼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인기’(남학생만 있는 학교여서 뭐라 말할 수 없다고 하지만)는 연예인이거나 자기 같은 학생이나 오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기가 있다고 자만하지 말고 외모 때문에 인기가 없다고 걱정할 일도 아니라는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한 말이어서 다른 친구들도 공감하면서 마무리했다.

 

눈이 오면

눈이 오면 아이들은 눈 놀이를 하러 나가고

눈이 오면 연인들은 유명한 식당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을 한다네

 

눈이 오면 산타할아버지기 선물을 주러 오고.

눈이 오면 강아지들은 월월 짖고

눈이 오면 고양이는 미야옹 미야옹 우네

눈이 오면 다른 가족들은 트리도 만들고 여행을 가지만

 

눈이 오면 우리 가족은 집에만 있다네

하지만 나는 괜찮다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이 있기 때문이라네

 

김시현, <눈이 오면>

 

눈이 오면가족 여행이라도 가고 싶지만 도시만큼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은 지난겨울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트리를 만들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으레 찾아가는 식당의 추억도 시골살이에 맞춰야 하니 원망이 있겠지만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말한다. 역시 가볍게 읽어도 좋은 시다.

 

우르르 쾅쾅 시작되었다

강아지들은 집에 들어가 벌벌 떨고 있고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빨리 집으로 들어갔다

나와 가족들도 집으로 대피했다

시작되었다 괴물의 눈물이

~

괴물의 눈물이 마구마구 떨어졌다

우리 가족은 괴물의 눈물이 끝날 때까지 집에서 기다렸다

그렇게 고군분투하여 괴물의 눈물이 멈췄다

 

김시현, <괴물의 눈물>

 

이 시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려서 지구가 뜨거워지고 빙하가 녹으면서 열대기후가 계속되어 가는 것을 괴물에 빗대 쓴 것이다. 그러니까 <괴물>이란 영화처럼 우리가 만든 또 다른 얼굴인 셈이다. 괴물의 눈물이 곧 비로 나타난 것이다. 날씨란 우리가 만든 잘못된 바탕 위에서 변화무쌍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의도와 달리 이번 피해를 입은 곳곳의 마음을 담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그건 어른도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이니 이만큼 표현해준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집에 가고 싶지만 학교가 끝나지 않아서 갈 수 없다.

학교가 끝나면 방과 후 수업하러 가야 한다.

다시 방과 후에는 학원에 가야 한다.

대체 언제 집에 갈 수 있을까

 

엄기선, <언제 집에 갈 수 있을까>

 

기선이는 말문이 터질 때 말고는 조용히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있는 편이다. 자기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까닭을 아침밥을 안 먹고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먹는 것에 진심이면서 걱정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 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먹는다는 일, 자신의 욕망에 대해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쓸 수 있기를 바랐으나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어서 며칠을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밤늦게 한 편 더 써서 보냈다. ‘한일중 시인 교실이란 제목으로 단톡방을 만들고 언제 어디서든 올릴 수 있게 한 것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나는 컴퓨터를 할 때 헤드셋을 쓴다.

헤드셋은 친구와 통화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다.

헤드셋으로 소리를 듣고 마이크로 내 목소리 전달한다.

하지만 나의 헤드셋은 오래되어 성능이 예전에 비해 안 좋아졌다.

그래서 꼭 돈을 모아 헤드셋을 살 것이다.

 

엄기선, <헤드셋>

 

기선이를 더욱 잘 이해하게 해주는 시다. 태현이가 2일과 7일에 여는 음성장이 시들해진 것도 프렌차이즈 가게들이 많이 생긴 탓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기선이의 헤드셋에 대한 욕망은 대부분 아이들의 욕망이기도 하다. 새로운 물건에 꽂히면 용돈을 모아서라도 사야 하는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현재 기선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셈이다.

 

내 안경은 좀 더럽다

하지만 눈이 적응한 것일까

잘 보인다.

 

가끔씩 옷으로 닦기만 해도 잘 보인다.

 

그래도 가끔은 제대로 닦는데 그때만큼은

시력이 2.0이 된 것처럼 잘 보인다.

 

엄기선, <더러운 안경>

 

기선이는 조금 두터워 보이는 뿔테 안경을 썼다. ‘헤드셋처럼 가까운 이야기를 했다. 안경 닦는 천이 안경집에 있어도 안경은 더럽기 일쑤다. 눈이 적응했다는 말이 맞다.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면서 기름때가 묻고 오물이 묻기 쉬운 것이어서 자주 닦아주어야만 하는데, 기선이는 눈이 적응해버려서 제목만큼이나 더러운 안경인 것이다. 안경을 낄 수밖에 없는 시력이지만 제대로 닦아주면 2.0이 된 것처럼 잘 보인다는 것이 그대로 기선이 마음이다. 헤드셋이 남의 말을 듣게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해주는 마음의 물건이듯이 안경 또한 제대로 닦으면 환하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같다.

 

엄마는 감자탕을 가끔씩 사 오실 때가 있다.

 

1~2일 정도는 편하게 먹을 수 있는데

먹다 보면 고기만 남는다

 

그럴 때 엄마는 국물을 더 만들어주신다.

 

하지만 가끔씩 간을 잘못해 된장국 맛이 난다.

 

이때 나는 이걸 된장국 감자탕이라고 한다.

 

엄기선, <된장국 감자탕>

 

기선이는 먹을 것에 진심이지만 야식 앞에서는 잘 참아낼 줄도 안다고 했다. 그래서 먹는 이야기를 써도 좋다고 했더니 감자탕이 된장국 맛이 나게 되는 사연이 깔려있는 시를 보내왔다. 먹는다는 것은 기선이 삶이나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어서, 직접 요리를 하거나 지켜보면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재미있는 시를 썼다. 서로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늘 휼륭하고 맛있는 음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짜고 맵고 싱거우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더운 여름날 아침부터 점심 무렵까지 네 명의 친구가 따로 또 같이 써준 시가 빛난다. 그동안 지치지 않고 시를 읽고 자신만의 시를 써 주어서 고맙다. 민호 시에서 뽑은 사람마다 행복은 다를 수 있다처럼 개성 있고 활기찬 시들이다. ‘피어나는 노력이 만들어낸 무지개인 셈이다. 훗날 여름 문학 캠프를 떠올리며 시를 쓰는 날이야말로 참 아름다운 날이었다고 말할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 이 글은 2023년 7월 19일부터 25일까지 5일 동안 충북 음성 한일중학교 여름 문학 캠프에서 1학년 아이들과 활동하고 쓴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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