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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선한 교만, 마리아 투마킨의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새책 소식

by 참도깨비 2023. 12. 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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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없다. 그러나 슬픔에는 한계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살이나 고통스런 남의 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할 때가 있다. 그 마음을 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선한 교만이라고 마리아 투마킨은 지적하고 있다. 첫 장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청소년들의 자살을 다룬 장에서 "학교는 기관이지만 가족이나 마찬가지예요. (줄임)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학교는 가족과 마찬가지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어요. 가족과 마찬가지로 자살 사건의 기억에 시달리죠. 가족과 마찬가지로 그 안의 구성원들은 우리가 안 한 게 뭘까, 못 본 게 뭘가, 말을 했어야 했을까,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묻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학교야말로 가족과 같은 기관이나 마찬가지이니 연민의 감정을 가진 곳이어야 한다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에게는 생각보다 냉철한 현실, 그러나 저자는 이해를 우선하지 않는 연대는 일방적인 호혜에 가깝고, 이는 결국 결례와 오만을 내보이는 행위로 변질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선한 교만인 것이다.  투마킨에 따르면 타인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행복한 결말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자기 만족적인) 환상이라고 거듭 말한다. 내가 아닌 타인을,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론에 다다를 수 없는 영원한 과정이자 실패와 좌절이 따르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수없이 좌절하면서 기어코 계속 시도해야 한다고.

우리가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린 현상들(자살, 총기 폭력, 대량 학살, 지속적인 구조적 빈곤 등)에 대해 연구하고 우리의 선한 교만을 뒤흔드는 논픽션이자 문학이자 실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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